전지적 고양이 시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매혹하는가
세라 브라운 지음, 고현석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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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책을 받아본 순간, 표지의 고양이가 이미 나라는 인간을 매혹했다.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매혹 당했으니,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게 될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고양이를 어쩌나. 또 나는 또 어쩌냐. 행복한 걱정을 하며 책을 읽어나가지 시작했다.

소설을 시점으로 나누면, 1인칭과 3인칭과 소설이 있다(물론 2인칭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렇게 둘로 볼 수 있다). 그 중 3인칭 소설 시점에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있다. 갑자기 소설의 시점 공부를 하나, 싶지만. 이 책은 전지적 '고양이' 시점이다. 이 표지 고양이의 눈빛이 사뭇 날카로워 보였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겠다 싶었다. 결국 고양이의 관점으로 사람들의 심리까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글이라는 것. 과연 고양이는 어느만큼이나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 첫 번째는, 이러다가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이미 고양이의 가족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할나위없이 유익한 책이 될 것이고. 고양이가 보이는 작은 행위와 표현들을 어떻게 인간이 받아들이면 좋을지에 대해 무척 따뜻하고 친근한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고양이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표현들을 통한 다정함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인상이었다.
저자는 오랜 관찰과 연구 등을 통해 고양이에 대해 매우 박식하며, 그러면서 자연스레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은 개에 대해서 나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에 비해 고양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개보다는 고양이를 가족을 맞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런 면에서 고양이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든 생각은, 자꾸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처럼 생각하고 읽고 있구나, 였다. 마치 고양이의 행동과 표현, 고양이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혹시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헌데 이건, 책을 잘못 읽고 있다기보다는 고양이를 인간과 동등한 생명, 존재로 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느꼈듯이, 단순히 인간이 동물을 돌본다 혹은 키운다의 맥락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 책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결국 집고양이가 인간과 어떤 상호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고양이가 인간을 곁에 두어도 좋겠다고 받아들여준 것이란 생각을 했다, 고맙게도. 참 성가시고 귀찮지만 또 참 같이 있을 만한 것이 인간이라고, 고양이가 생각해준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고양이가 어떤 인간과는 사귀고 곁을 허락하고, 또 어떤 인간은 거부하는. 그렇다면 인간이 고양이에게 잘 보여야할 거 같다.
헌데 그게 너무도 당연한 것은 아닐까. 인간이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고양이 눈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잘 좀 살면 좋겠다는 어른의 마음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런 소중한 마음을 잃지 말라고, 인간 곁에 고양이가 남아주는 것은 아닐지, 혼자 상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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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캐나다의한국인응급구조사 #김준일 #한겨레엔 #하니포터8기 #서평 #책추천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김준일 지음. 한겨레엔. 2024.
_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고통과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자를 향해 달려가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의 마지막 대화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자의 심정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사망한 환자들과, 그들과 마지막으로 닿았던 내 손,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가족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감정이 북받쳐서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다시 별의별 생각이 휘몰아치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가족 누구에게도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고 끝까지 입 다물고 있길 잘했다.(78쪽)

특히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게 되는 가족의 심정을 함께 헤아리는 것 또한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환자만을 향하고 또 환자를 구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죽음은 어떤 경우든 주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와 아픔을 만들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남겨진 이들의 마음까지 보살피는 것 또한 응급구조사가 해야할 몫이겠구나, 싶었다.

경찰과 검시관이 올 때까지 저희는 그곳에 남아 남편과 대화를 이어가려고 최대한 애썼습니다. 저희가 그대로 떠나버리면 홀로 남은 남편이 극당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까요.(250쪽)

저자는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별 말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지에 대해서도. 물론 쉽게 생각하면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습관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흔히 말하는 직업병일 테고, 수많은 직업병들 중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낯선 나라 낯선 언어의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로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어 그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는 이의 모습을 가만히 머릿속에 상상해 그려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없겠구나 싶다. 저자의 캐나다 삶에 대한 시도는 이것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가는 길이세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168쪽)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위험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만 건넬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한번쯤 그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할 수 있는 말. 내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오고가며 마주치는 어느 누구라도,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 중이며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말은 그저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꾸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괜찮다고 대답하면서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허리가 조금은 펴질 것만 같은, 위로의 말로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봐 준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다만 자신에게 친절함으로써, 내 마음의 크기가 더 자라나 그동안 품었던 슬프고 힘든 감정까지 모두 안을 수 있게 되었다.(197-198쪽)

딸의 학교 숙제였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 오기'를 통해 저자가 깨달은 것. 나도 같은 숙제를 받아든 학생처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우선은 자책부터 금지. 무언가의 상황에 놓이면 문제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서 찾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 '나 자신'에게 친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이를 대하듯 나 자신을 대해야겠다는 다짐까지.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과 그 도전 속에서 값진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된 저자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며, 나의 삶까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무엇을 향해 달려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멋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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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 - 오늘은 일본 위스키를 마십니다
김대영 지음 / 싱긋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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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어이없어 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술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다만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을 뿐. 술이 매개가 되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흥을 돋우는 가장 서민적인 술들을 접해봤을 뿐, 그 외의 주종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심지어 종종 선물로 받는 와인도 몇 년씩 상자째 묵혀놓았다 집에 방문하는 누군가의 손에 다시 들려 보내주는 과정을 반복하곤 한다.
그런데, 위스키? 위스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생소하고 낯설고, 솔직히 선뜻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기는 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 전혀 나의 세상과는 다른 곳에 놓여 보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마치 선생님이 이끄는대로 별 관심없이 따라나선 견학에서 눈과 입이 벌어져 우아! 감탄을 내뱉는 학생이 된 듯도 했다. 더군다나 일본 여행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뼛속까지 집순이라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 성격 덕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아, 일본 여행을 가보고 일본 위스키를 마셔봐야겠구나, 싶었다(더 솔직히는 저 오크통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도). 위스키, 일본, 그리고 일본 위스키에 과연 어떤 매력이 있는지 한번쯤은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관심과 애정이 아니고서는 이런 방대한 내용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위스키를 대하는 마음이 진심임을 이 책 한 권으로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렇게 총망라해서 책으로 엮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위본 위스키에 대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각 증류소까지, 그리고 인터뷰의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냥 이런 곳이 있어, 이런 역사와 전통이 있어, 그리고 이곳에 가면 이런 특징이 있지, 정도로만 기술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저자가 느끼는 소중함이 배어있어 이 책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자연스레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알려주고 싶어지는 마음, 그게 전해졌다(마치, 저자가 위스키를 앞에 놓고 밤새 신나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듯도 했다).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오랜 세월 하나에 몰입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끈기.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달라지면서 가장 쉬운 것이 변하는 것이라면, 이 책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쉬웠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이틀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오랜 기다림과 긴장이 스며있을 것이며, 그런 시간이 쌓여 지금의 일본 위스키의 역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공장장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아무것도 안 해요.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만 생각합니다.
위스키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인생은 여행입니다. 인생 여행 중에 위스키를 즐기는 여행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에서 위스키가 조금이라도 등장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124-127쪽_'이와타케 기미아키 공장장 인터뷰' 중)

인생 여행 중 내가 알지 못했던 여행지에 다녀왔다.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위스키 여행은 내 인생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좋은 관계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자리에서 한번 쯤은 위스키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도전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위스키의 향과 맛이 나의 어떤 감각을 톡톡 깨워줄 지, 지금 무척 궁금하고 설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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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한다 -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이베트 쿠퍼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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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로나19의 위기는 우리에게 언어의 힘을 보여주었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6쪽)

위기 속에서 결국 힘을 갖는 것은 '언어'구나, 하고 깨달았다. 사방이 막히고 거절당하고, 칸막이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진 세상에서 결국 힘이 될 수 있는 것이 '언어'였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반대로 생각했었다. 단절되면 언어마저도 전달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언어이고 소통이라는 것을.
'연설'은 말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는 소통의 방식이다. 연설이라고 하면 자신의 생각이 어떤 표현과 방식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 지금까지의 연설도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영역이었고, 남성이 하는 말에 더 힘을 보태는 사회 분위기는 오늘날 지금까지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대에 여성의 연설이 이토록 많이 있었으며, 또한 이런 연설을 모아 볼 수 있었던 기회가 새삼 새롭고 흥미로웠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여성의 권리는 왜 이렇게도 힘겹고 치열하게 말하지 않고서는 보장받지 못했고, 여전히 못하고 있는 것인가이다. 이렇게나 역사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협박과 폭력, 갖은 위험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무척 씁쓸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오랜 시간 제 목소리의 힘을 찾기 위해, 그리고 여성의 권리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수 있었던 여성들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들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침묵하는 이유로 이야기할 때 각자 가진 두려움에 의지합니다. 경멸을 받을까 두렵고, 검열이나 비판의 대상이 될까 또는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고, 이의제기가 있을까 두렵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가시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시화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94쪽_'오드리 로드' 연설문 중)

가끔 '침묵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섣불리 내 의견을 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방향,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자주 맞닥뜨리게 되면서, 결국 하게 되는 선택은 침묵. 나의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 간의 관계나 문제 상황을 더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확고한 주장을 펼칠 줄 알았던 이 여성들의 삶과 용기를 보며 어떤 자리와 입장에서 나의 생각을 주저없이 말할 줄 아는 힘을 키워야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지지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하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가 이 여성들의 삶과 의지, 힘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음을 다시 생각하며, 이들이 어떤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했는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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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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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의 103이 10월 3일이었구나. 개천절. 열 개, 하늘 천, 하늘이 열린 날.

"왜...... 그래?"
"내 생일도 10월 3일이거든."(288쪽)

다형에게 터널 103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았던 삶의 공간이었고, 또다시 죽음의 공간이었으며,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운명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다형은 이미 이 터널을 통과해 나아갈 수 있을 힘을 갖고 태어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의 '고귀한 혈통' 정도. 이미 다른 이들을 구할 영웅의 능력을 갖고있는 자.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
결국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소설에서도 역시나 다형, 승하와 같은 소녀소년이 어른들의 욕심, 혹은 안전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고 희망을 되찾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어른인 나로서는 참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 어른들은 그 어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지위, 권한을 더 우선시하는 걸까. 그리고 애초에 사람들의 삶을 가두고 공포와 살육의 현장으로 내몰았던 시작이, 결국은 더 강한 힘을 소유하고자 했던 자들의 안일한 이기심이었다는 것이, 화가 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무기에 가까운 인간 병기를 만들던 실험. 정식 명칭은 워킹웨폰(Walking Weapon) 프로젝트였네."(142쪽)

비인간적인 실험과 그 결과물을 통해 더 비인간적인 행위를 일삼으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에 의해 결국 평화롭고 안전했던 공간이 무자비하고 공포스런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공포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임을 인지하고 판단할 힘조차 갖지 못한 채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끔찍하고 암담한 것인가.

"싱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은 이곳에서 이방인이고 비정상이라 여기고 있어."/준익의 발언에 다형은 싱아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하고 똑같이 생겼어'라던 말.(178쪽)

물론,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정상이고 또 비정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사회적인 편견이 개입되는 순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오히려 차별을 만드는 또 다른 이름이 되니까). 하지만 이 판단 역시 다양한 경험이 있고나서야 가능하다고 한다면, 싱아에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주어야 하니까.

촌장 황필규가 다형을 사지로 내몰고 대신 자신의 세상을 뜻대로 유지하려는 모습에서 이강백의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거짓에 거짓을 보태고, 결국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 자신의 체제만을 맹목적적으로 따르도록 만드는 촌장의 모습이 끔찍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우기던 촌장의 최후 역시 끔찍하기만 했다(이런 장면에서 오히려 인간의 잔인함만을 더 느끼게 된다).

분명,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길은 열렸다. 용기와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임은 확실하다. 가족의 응원과 책임이 수반되어 있었지만 결국은 자신이 해내야겠다는 각오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정도의 각오 없이는 쉽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문을 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형과 승하가 앞으로 열어야 할 문은 더 많겠지. 그 문들이 너무 어렵게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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