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파란 - 제19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47
유지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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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파란. 유지현 장편소설. 창비. 2026.

파란(波瀾)
「1」잔물결과 큰 물결. =파랑.
「2」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

궁금하면 사전을 먼저 찾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파란 파란>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았다. 아마도, 이 책의 제목에 쓰인 '파란'은 저 2개의 의미가 모두 쓰인 제목이겠구나 싶었다. 잔물결과 큰 물결이 넘실거리는 와중에, 순탄하지 않고 어수선한 시련이 나타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 아이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소설. 표지 그림에서처럼 소용돌이치는 물살과 그 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는 한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소설의 제목과 내용을 암시해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과연 이 아이는 자신의 앞에 주어진 넘실거리는 물결의 시련을 어떤 방식으로 맞부딪혀나갈 것인지. 예의 주시하며 책을 읽게 됐다.

사는 곳이나 생활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가 하는 고민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수림과 나는 자신의 인생인데도 한 치 앞조차 내다보지 못했다.(33쪽)

모파와 수림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해종과 고산종? 어떤 종이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든, 이 시기를 지나야하는 청소년의 시기라면, 이 시기의 특징을 비슷하게 보인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닐까. 결국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지,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청소년들이 꼭 거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숙제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 짐작 가능하다.

이모의 충격 발언으로 인해서 이모 같은 어른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구나.(79쪽)

하지만 청소년들만 하는 고민이 아니다. 어른도 자신에 대한 고민의 끝은 나이를 먹어도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이 너무 와닿았다. 어른이라고 자신의 진로를 확신하고 살아간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내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 맞는지, 과연 그 다음은 어디고 방향을 돌려야 할지, 때론 지금으로부터 다시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야 한다는 절망과 갈등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는 걸,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단순히 우리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정과 그 결정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과 용기는 누구하는 대상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는 것. 아이들 어른이든, 언제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항로를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멈추지 말아야 할 가장 애써야할 지점이 아닐까.

"누가 그러는데,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그중에서 내가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더라."(...)
"그래서 나도 뭐든지 해 보려고. 당연히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243쪽)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그 과정을 알지 못한 채 이 말만 듣는다면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못할 거를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오해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파란한 일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그 어떤 파란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그 파란을 겁내지 않을 수 있게 된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모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운하도 유일, 유이, 수림이도, 그리고 이모도 모두 다, 자신에게 다가올 파란을 오히려 긍정적인 자세로 맞부딪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 괜히 뭉클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나도! 나에게도 파란 가득한 삶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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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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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빈자리에 #권혁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_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처음 제목과 부제를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공포인가? 괴물에 망자라니. 하지만 그 사이에 여자가 있었다. 이 세 단어 사이의 관련성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다음 중에 쓰인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이란 말에서 좀 슬퍼졌다. 결국, 괴물로 불리거나, 망자가 되어서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그 와중에 여자도. 여자라는 이유로 호명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삶이라고 한다면, 이런 삶을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까. 여자로서 끔찍한 지점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책이 <이름의 빈자리에>이다. 그러면서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이름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이니, 어디에서라도 이름을 가져다가 채워넣어야할텐데, 어느 이름을 가져다가 넣으면 좋을까. 그 빈자리 채워넣고 싶은 이름들이 많아지겠구나, 싶었다.

생전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은 순간이다. 그 이름으로 불린 첫 순간이다. 큰딸은 지치지 않는다. 저 소리는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를 부르면 얼른 돌아서서 마주보면 된다.(...) 이름을 부르고 대답하는 걸 하염없이 반복하는 두 사람, 이름 없'던' 자매의 얼굴을 나는 거의 울면서 보았다.(29쪽)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비로소 인지하게 된 순간의 감격이 얼마나 소중하고. 누구나에게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 무척 고통스런 결과를 낳게 되더라도 그럼에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간절하다는 것. 이름이 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로의 인정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존엄하고 숭고한. 어떤 것보다도 상위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름인 것이다.

작은 존재는 바로 티티우가 된다. 티티우는 몇 번이고 새로 지어 받은 이름 '티티우는'를 소리 내어 불러본다. 티티우, 티티우. 둘이서 함께, 티티우, 티티우. 밤 숲이 다 울릴 만큼, 펄쩍풀쩍 점프하면서 외친다. 굉장한 이름이야, 티티우. 덤블링 하면서도,티티우. 저다지도 기쁠까.(80-81쪽)

기쁠 것 같다.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경험을 이름을 얻은 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부르게 되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며 기뻐하는 저 장면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저 장면의 앞뒤로 더 이상 티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만큼 이미 이름을 얻은 후이니, 그 이후에는 이름을 위한 여행이 아닌 이제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을 시작했을 것 같다.

별 거 아닌 것같은 이름이 갖는 무게와 그 깊이, 필요성과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중요하구나. 이름이 그 존재의 가치를 어떻게 빛내줄 수 있는지, 그런 빛남을 우린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비로소 다가가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이름이 그 존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름을 어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다른 이들의 이름을 소중히 불러보게 되고, 여러 작품속에서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살피게 될 것 같다. 이제 한동안 이름을 신경쓰며 지내게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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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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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복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펑펑. 복길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나를 울리고 나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국뽕이란 단어가 생겨나고 방역이란 말 앞에도 K가 붙는 때가 있었다. 뭐든 K가 붙으면 괜히 뭉클하게 되고 어깨가 높아지고 또, 내가 그 관계자일 리가 없는데 그냥 나도 그 K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목소리도 커지고. 당연히 K-드라마, K-푸드에 K-팝이 붐이었고, 그런 붐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며, 언론에서도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도 그 위세를 강조하고 했다. 그 중 K-팝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힘이 막강했고, 세계적인 음악 순위에도 곧잘 이름을 올리는 걸 보며, 우리의 것이 그만큼 인정받는 수준이 되었구나 싶어 더 자랑스러워하곤 했다

케이-팝(K-pop)
명사
(음악) 현대 한국의 대중가요를 다른 나라의 대중가요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케이팝 스타.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의 수도 함께 늘고 있다.

사전에 나와있는 정보다. 역시, 상대적으로 우리의 것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하는 용어였다. 이러니, K의 일원이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또 쉽사리 그 일원에서 벗어날 일은 없겠다 싶다. 그런 케이팝이다.

늘 케이팝은 '듣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7쪽)

'듣는 음악'이란 표현이 신선했다. 듣기만 하기 위해 음악을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생각해봤다. 언젠가부터 소비되기 위한 상품으로 인식되었고, 그런 상품으로서 더 높은 가치를 두기 위한 화려함이 늘 동반되었다. 나의 덕질 시절에도, 우리 아이들의 덕질 시절에도. 잡지에 나온 사진을 잘라 친구들과 나눠가지고, 콘서트장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이에 다가가 보고 싶어하고, 앨범과 굿즈를 사고 모으며 방 벽에 그들의 사진을 도배해놔야 좋아한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듣는 음악'이라니. 이미 이쯤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노래 한 소절만 떠올리고 거기에 얽힌 추억이 줄줄 딸려 나온다. 그 감상을 하나하나 낱낱이 추궁해야만 비로소 노래를 "들었다" 말할 수 있다. "아, 케이팝이요? 진짜 흥미로운 음악이죠" 하고 교양 있는 웃음을 짓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이야기다.(69쪽)

그럼 그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노래만 들어도 그 노래와 관련한 이야기를 친구와 끝없이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노래에 한창일 때의 그 시절을 소환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노래에만 빠져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마주친 노래를 만나게 되면, 그 노래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들고 반가움의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는 건, 우리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린 이미 '듣는 음악'을 실현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2NE1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건 사랑과 그리움을 대충 뭉뚱그려낸 응원의 표현도, 순진한 바람도 아니다. 정말로 나는 2NE1이 영원할 줄 알았다. 아이돌 그룹 안과 밖에 맞물린 수많은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영원'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부직없는 개념인가 싶지만 적어도 2NE1에겐 그게 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뭔가 멋있는 말을 인용해야 하는데 떠오르는 것은 오직......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결국에 넌 변했다는 가사......(172-173쪽)

우리가 바라보는 아이돌이란 세계는 그저 겉으로 포장된 모습의 일면일 뿐이고, 그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일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짐작만 할 뿐 그 실체를 알 수 없으니, 그 안에서 아이돌은 또 음악은 어떻게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간섭,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여러 논리가 얽히면서 마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을 것 같은 아이돌의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과 쓸쓸함을 짐작만 할 뿐이다. 알려고 들면 충분히 알 수 있을테지만, 어쩌면 살짝 눈 감고, 노래를 통해 전달받는 그 최종적인 행복감만을 위해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노래를 노래로만 즐기고 싶은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일로 삼는 편이 낫다'라는 선생의 조언이 반쯤 실현된 상황에서 나는 이제 체념을 해보려고 한다.(308쪽)

어쩌면 내가 눈감고 노래를 노래로만 남겨두려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전문으로 파고드는 일이 좋은 결과만을 안겨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이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추억 한바구니 꺼내놓는 호사를 누려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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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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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왜실패하는가 #이창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이창곤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어떤 기관이든 단체든, 그리고 국가든. 정책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정책이 실효성이 있든 발전적 방향성을 지니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물론 긍정적이고 건강한, 가치있는 정책들도 많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정책을 위한 정책도 상당하단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다 그만한 목적과 이익이 숨어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정책이 진짜 정책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검증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런 검증 시스템 또한 잘 갖춰져 있는 것이 맞나, 하는 데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의 저출산 정책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아이를 낳으면 보상하겠다"는 논리 아래 현금 지원과 출산 장려금, 각종 바우처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금세 한계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단지 보상을 받기 위해 아이의 생애를 거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49쪽)

그러니까 말이다. 생각이 짧은 나도 단순히 얼만큼의 보상을 받으려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정책이 정책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려면 충분한 숙고와 시장 경제,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식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일정 부분 정치적인 목적을 밑바탕이 깔고 이루어지는 정책이 많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런 생각이 결국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면도 없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출산 관련 정책은, 단순히 달콤한 사탕 준다고 꼬시는 수준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정책은 결코 여의도의 회의실이나 정부세종청사의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은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싹터 시민의 뜨거운 열망을 먹고 자라며, 주권자의 단호한 의지를 통해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330쪽)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설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여전히 당연하지 않은 채 이어지는 때가 많으므로, 당연한 말을 새삼스럽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왜, 당연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당연히 정책이 일부 몇 명의 머리에서만 나와서 해결될 수만은 없다. 당연히 좋은 정책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집단과 단체, 그리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만들어나가야 할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지점이 쉽게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리고 어려운데, 우린 또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을 보호하고 그 삶의 질을 높이는 것, 그것이 정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즉,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무한한 의무를 지며, 국민은 그러한 국가를 만들고 감시할 권리를 갖는다.(141-142쪽)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일들을 우선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를 믿고 지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과 방향이 적절한지 알아야한다, 국민이. 잘 알아야 잘 싸울 수도 있고 잘 받아들일 수도 있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이 책에 잔뜩 담겨있는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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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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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주문 #이다혜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출근길의 주문. 이다혜 지음. 한겨레출판. 2019(개정증보판 2026)
_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표지 그림 속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의 주인들은 모두, 일하는 여자들이겠지. 그리고 <출근길의 주문>이니 출근하는 길의 지하철 안의 모습일 것이다. 손잡이를 꼭 잡고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흔들려 넘어지지 않도록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고 있을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나는, 어떤 주문을 외우며 아침 출근길을 나서고 있있나.

일은 내가 아니다.(명함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일보다 내가 중요하다.(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나는 사장이 아니다.(사장이었으면)
언제든 때려치울 수 있다.(아마도)
대출금과 할부금 잔액 리멤버.(신이시여 제게 로또 1등 세 번!)
-출근길의 주문(143쪽)

솔직히, 나는 내 일이 좋다. 출근이 싫고 귀찮고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게 느껴질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나의 출근길이 못 견딜 정도로 괴로워 매번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출근하지는 않는다. 출근을 해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일들도 썩 나쁘지 않고 말이다. 오히려,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나름 나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고도 한다, 긍정적으로. 그래서일까, 나의 출근길의 주문은 저자의 출근길의 주문과는 많이 다른 느낌의 주문이기도 하다.

'돈 받은 만큼만 하자,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는 말자.(근데, 남들이 안 쓰러지는 게 이상하다고)
오늘의 해야할 일 목록을 우선순위별로 잘 정리해 클리어하자.(메모, 메모! 출근하자마자 메모부터!)
귀를 닫고 입도 닫자. 다른 이의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피하자.(충분히 생각하고 가장 현명한 답을 내놓아야지)
나에게서 선한 영향력이 다른 이들에게 닿도록 하자.(남들도 선하다고 인정해 준다면)
멋진 내가 되자.(예쁜 것도 좋지만 멋지다고 해주면 뭔가 근사해진 느낌이야)'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동안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여자'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꾸 더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성별에 따른 일에서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하나 싶었다.물론,직장에서의 상하관계 내에서 남자 직장인의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 않을 때가 분명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모습이 꼭 남자여서면 나타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종종 여자 직장인에게서도 유사한 모습이 보이기도 해서, 나의 경우는 성에 따른 구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의 구분이 더 맞지 않을까,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이 가능한 건 나의 직장이 갖는 특수성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책 속 여자 직장인들의 생활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다행인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생활이 만만하다거나, 혹은 마음에 든다거나, 내지는 내가 원하는대로 모두 이루어져서 마음이 평온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나에게 슬프고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한 일들이 많다. 다만 그런 일들을 행복하고 즐겁고 의미있고 뿌듯한 일들로 상쇄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은 술을 한 달에 세 번 이상 마시지 않는다. 사실 아예 안 마시는 때가 훨씬 많다. 부정적인 인간 관계는 가능한 한 줄이거나 끊는다. 수면 시간은 하루 최저 여섯 시간은 확보한다. 나라는 인간의 최저한도를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생활 습관이 나에게도 있다.
-남의 인생은 순탄해 보인다(180쪽)

이런 생활 습관을 나도 정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최저한도. 나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나 자신의 최면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까. 어쩌면 이 책 전체가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기위한 정성과 노력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여자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존재적 의미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나'로 서기 위한 하나하나의 다짐이지 않을까. 이런 다짐들을 스스로 쌓아올리며, 흔들릴 수도 있을 자기 자신을 잡아줄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나도 이런 글을 차근차근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이 폭풍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차분히 나 자신을 정리하고 보듬으며, 단단하게 지켜내기 위한 글을 쌓아올릴 수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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