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와 꼬마 기관차 상상 동시집 31
권오삼 지음, 이한재 그림 / 상상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퍼와꼬마기관차 #권오삼_시 #이한재_그림 #출판그룹상상 #상상동시집 #서평단 #서평 #책추천

동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된다. 어쩜 이렇게 기발하고 명료하며, 재치있을 수 있을까. 늘 감탄하게 된다. <지퍼와 꼬마 기관차>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아, 그렇지!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 와, 이런 생각을 미처 못 해봤네! 하는 생각을 하며 동시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 중 정말 인상적인 시 몇 편을 적었다. 역시! 시는 눈으로 읽을 때, 소리내서 읽을 때, 글로 쓸 때, 각각 느껴지는 느낌이 또 다르다. 글로 쓰면서 시를 천천히 읽다보면, 눈으로 봤을 때 놓쳤던 또 다른 재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쓴소리도 보인다. 그러니 필사를 안 할 수가 없다.

'통도 여러 가지'(10쪽)에, '우체통', '필통', '쓰레기통', '저금통', '밥통', '물통'! 거기에, '먹통', '분통', '두통', '복통'까지! "통, 통, 통자로 끝나는 말은~" 하고 노래를 부르며 하나씩 노래에 맞춰 말해봐도 재밌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먹통, 분통이라니! 지금의 심정을 딱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정말, '꽉 막혔'고, 그래서 '속 터진다'는 말이 딱 맞다. 감탄이 절로 난다.

공책은 글자 씨앗을 심는 밭이랍니다/연필로 글자를 심을 때 또박또박 가지런히/(...) 함부로 낙서하면/그건 밭에다 잡초를 심는 거랍니다('공책' 중(37쪽))

얼마 전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여기 딱 나왔다. '또박또박'! 제발 시험 답안지에 글씨를 또박또박 써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해독 수준의 글씨를 읽으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 이를 어떡해 하면 좋을까, 싶었는데 이 시를 만났다. 아무래도 이 시를 '또박또박' 써보자고 아이들에게 내밀어봐야겠다. 잡초 말고 예쁜 글자 씨앗을 심어 보자고 말이다.

꼬마 기관차가/지퍼 철도 위를 달린다/주르르르르르르르르르('기차와 꼬마 기관차' 중(42쪽))

앗! 지퍼 철도였다. 와! 여기서도 감탄했다. 지퍼의 꼭지를 잡고 올릴 때의 모습과 소리를 이렇게 표현했구나 싶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너무나 일상적인 장면일 뿐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색다른 시로 표현하니 또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시를 필사할 때 '르'가 몇 번인지 꼼꼼하게 세어 적었다. '르'의 글자 수를 세고 있는 나도 재밌었다. 1연의 '르'는 9번, 2연의 '르'는 5번, 3연의 '르'는 3번, 다시 4연의 '르'는 9번. 헌데 르의 수에 따라 진짜 그 느낌이 모두 달랐다. 1연과 4연은 글자 수가 같았지만 속도는 또 달랐다. 이렇게 감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구나, 역시! 시인님의 감각은 완전 인정이다!

그리고, 진짜 깜짝 놀란 시 발견!

다 보고 난 뒤/꾹, 마침 버튼을 눌렀다/텔레비전 속/우리가 사는 세상이/퍽, 사라졌다//재밌고 신기한 것도 많았지만/화나고 슬픈 게 더 많았다('텔레비전 속 세상' 중(60쪽))

예전부터 의문이었던 점이 있었다. 왜 한결같이 뉴스에는 나쁜 소식이 훨씬 더 많을까. 좋은 소식이 5%라면 나쁜 소식이 95% 정도 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특히 요즘은 더! 나쁜 소식들 투성이다. 정말, '화나고 슬픈 게' 너무 많은 우리 세상이니, 이런 세상이 문제일까 아니면 이런 이야기만 쏙쏙 놀라 보여주는 텔레비전이 문제일까. 아마 이 시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교실이 시끌시끌해질 것 같다. 앗, 위험해질 수도!

동시의 재발견이다. 간혹 아이들 중 동시라고 소개해주면 자신들은 이제 동시 읽을 나이 지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조용히 말해준다. 어른인 나는 아직도 동시가 좋아 자주 읽는다고. 이 동시집도 다시 꺼내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백 호빵 웅진 우리그림책 132
백유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백호빵 #백유연 #백유연그림책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티테이블 #서평단 #서평 #그림책추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덩달아 행복하고 따뜻해진다. 저 빨간 동백꽃 속으로 나도 슬며시 들어가보고 싶고, 한 입 베어물며 전해지는 따끈하고도 달콤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 추운 계절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이 시기에, 동백 호빵 하나면 추위가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이건 작가의 마음 또한 동백 호빵과 같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작가를 잘 알지 못해도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작가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는 작가일까.

몸집이 십여 센티 정도에 녹색과 노란색, 흰색의 깃털을 고루 가진 동박새는 겨우내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흔한 텃새다. 동백나무는 이 동박새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마침 동박새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기에 동백꽃에 담긴 달콤한 꿀을 빨아먹기로 하고, 동백나무의 수분 매개자가 되어 준다.(...) 춥고 고될수록, 주변의 환경이 나빠질수록, 그들은 더 끈끈히 유대한다. 마치 서로에게만 꼭 맞는 퍼즐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동백나무와 동박새, 그리고 겨울 숲의 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공생' 중_2018.1.4.)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유대, 겨울 숲 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말이 제대로 와 닿았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런 것 같다. 어떤 생물도 겨울의 추위 속에서 여유롭거나 안전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어야만 다시 올 봄을 맞을 수 있다. 봄이 되어 생명을 틔우고 삶을 이어갈 수 있기 위해서는 겨울을 잘 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이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방법.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다같이 하면 가능한 법이니까.
이것을 제대로 할 줄 알았던 동물 친구들이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끝까지 돌볼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돌봄이 단순히 자신의 가족이었어야만 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나에게도 어려움이라면 모두에게 다 어려움일 것이고,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나눌 줄 알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았을까. 이 동물 친구들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겠다는 마음과 생각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이 무척 소중하다.

이를 통해 숲속 친구들은 또 하나의 소중한 관계를 얻었다. 겨울의 추운 숲속 생활을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을 찾았다. 이건 비단 숲속 친구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그림책은 지금의 꽁꽁 얼어붙어버린 추운 겨울을 우리가 어떻게 지내야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나만 따뜻한 집 안 훈훈한 공기 안에서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하게 지내고만 있다고 좋은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무엇에 마음을 보탤 줄 알고 또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이 그림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만난 것이 너무 다행이다.

<동백 호빵>. 동지인 오늘, 딱 어울리는 그림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식 동남아 - 24가지 요리로 배우는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현시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식동남아 #현시내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요리 #동남아시아의역사와문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목차를 둘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에 뭐가 있지? 열심히 훑어보았다. 아! 난 진짜 음식을 잘 모르나보다. 혹은 동남아에 대한 관심이 잘 없었나? 싶기도 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음식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무지했구나, 싶어 반성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떤 음식들이길래, 그리고 내가 먹고 싶어질 음식, 그래서 덩달아 그 나라가 궁금해질 음식은 무엇일까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그나마 친숙하게 다가오는 나라의 음식들이 있다. 바로 베트남의 음식들. 우연한 인연으로 베트남에 잠시 살있다고 베트남의 음식들은 낯이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그래서인가 베트남 음식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쌀국수 '퍼'나 쌀밥 '껌떰'은 주말 아침 자주 사 먹었던 식사였다. 집 앞에만 나가도 바로 먹을 수 있던 쌀국수 집과 껌떰 집이 있었다. 가서 먹거나 혹은 포장해와서 먹거나. 가끔 저녁으로 동료들이나 혹은 가족끼리 '반쎄오'도 종종 먹었다. 전을 쌈에 싸서 먹는다고? 싶어 신기했던 기억이. 나중에는 쌈 채소를 함께 겯들여 먹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던 베트남 음식들이었다.

산업화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간편하면서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이 길거리 상인들에 의해 팔리기 시작했다.(251쪽)

이 말에 동의했다. 베트남음식은 어디에서든 간편하게 길거리 음식으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베트남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길거리 음식들의 다양함과 간편함을. 그리고 이것이 또한 그 나라를 알아가는 재미라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외국인이나 타지인을 혐오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으로 개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도가도 같은 음식도 다양한 재료를 땅콩 소스로 버무리듯이 혼합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46쪽)

인도네시아는 생소하다. 가본 적도 없고 그동안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참, 무지했구나 싶다. 사실, 채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샐러드에 관심이 제일 먼저 갔다. 어떤 샐러디가 각종 나라의 특징에 맞춰 발달되어 있을까 싶어 궁금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의 '가도가도'. 그 나라의 말을 잘 모르니 이름이 낯설지만 재밌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음식은 결국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구나 하는 생각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결코 그 나라의 방식으로만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 어떤 시간들과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문화가 형성되었는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다른 나라의 음식에 무엇이 있는가를 흥미롭게만 혹은 신기하게만 보고 지난칠 것은 않겠다는 생각. 우리나라의 음식도 그 나름의 사연이 모두 담겨 있듯이, 음식은 그 나라를 알아가는 좋은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그렇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신기한 발견. 팟타이, 미고랭, 빤싯 등. 이 음식들은 사실 우리의 잡채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사람 사는 곳의 음식이라는 것이 그리 다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재료와 어떤 향신료가 겯들여져 있는가만 다를 뿐, 각 나라의 음식 문화가 그리 동떨어져있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이걸 보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가끔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들이 그 나라의 음식이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사람들은 우리 입맛에 맞았어라는 얘기를 종종 한다. 이건, 우리에게 익숙해져있던 음식에 대한 생각이 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친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각 나라를 여행한 기분이면서 그 음식들의 맛을 상상해본다. 다음 여행지를 떠올려보거나 길거리에 앉아 음식을 먹어보는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여행을 즐겨하지 않아 당장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여행을 가게 되는 때 다시 이 책을 펼치고 그 나라의 음식들을 적어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먹어보고 함께 먹는 사람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이제 좀 안다고 아는 척 좀 해봐도 좋겠다는, 웃음이 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운하우스 #전지영 #전지영소설집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어, 이 소설들 뭐지? 소설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독특하고 때론 괴기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섬뜩하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았고 뭔가 이상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이 이렇게 끝난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을 남긴 채 끝난다고? 그러면서도 자꾸 궁금해 다음 소설을 바로 연이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집은 이런 식이구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끌어당기는구나, 싶었다.

"이유가 뭐든 그냥 버티시라고요."(...)
"할 수 없죠, 뭐.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144-5쪽)

그리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이것이 우리 세상에 대한 민낯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은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순진한 척을 하고, 사람들은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불편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소설들에는 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들 한 가지 이상의 문제들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애써 그 문제들에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처럼 겉으로 뻔뻔스러운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 문제에서 누구 하나 자유롭지 못하다. 해결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내는 수밖에. 그러다 부딪히는 난관에서 결국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 안에서 다시 살아낼 궁리를 하는 것. 이게 어쩌면 이 소설에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제목이 <타운하우스>인 이유가 궁금했다. 보통의 소설집은 단편 소설의 제목 중 하나가 책의 제목이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어디에도 없는 제목을 새로 붙였다. '타운하우스'라고 하면, 저밀도 주택단지.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살아가는 아파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소설들과 '타운하우스' 사이의 관계는 뭘까.

'타운하우스'가 안온함, 여유,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면, 그 안에서 사는 나는 대척점에 존재하는 불안과 외롭게 싸워온 셈이다.(298쪽_'작가의 말' 중)

겉으로는 무척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상류의 상징처럼 '타운하우스'가 비춰질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는 삶이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건 누구나 비슷할 거니까. 좋고 넓은 집,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위치, 웬만한 건 모두 갖추고 산다고 느껴지는 삶 속에서도 안고 가야 할 문제와 역경은 있기 나름이니까. 그리고 그게 어쩌면 진짜 우리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들을 읽으며 불안하고 인상이 써지며 무엇 하나 속시원히 해결되지도 않은 답답함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심쩍음이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되고 또 읽고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지영. 소설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이 다음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 이 소설집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다음 소설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으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정덕시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미는토요일새벽 #정덕시 #정덕시장편소설 #은행나무 #아르테문학상 #서평단 #서평 #책추천

제목에서 내용이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거미가 주요 소재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토요일 새벽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직접 읽어 궁금증을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 제목이 독특하고 직관적이지 않아 이런 제목이 정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두희는 17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동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빳빳하지만 부드러운 털들이 손끝을 지나갔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두희가 거미란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두희가 타란툴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질문들이 쏟아진다.(7-8쪽)

소설은 이렇게 시작했다. 타란툴라 반려동물 두희의 죽음. 그리고 그런 죽음을 겪는 수현의 마음. 처음에는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무려 17년이었고 두희와의 시간들 속에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건 단순히 두희를 둘러싼 일들만도 아니고 이때는 수현과 두희를 함께 묶어 그들을 둘러싼 일들이 17년의 시간과 그 이후까지의 시간들 속에서 일어났다고 해야 맞다. 그러니 수현의 삶에서 두희를 빼고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토요일 새벽마다 두희의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출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두희의 움직임을 어렴풋하게 살필 수 있었다. 두희도 눈치챘을까. 유리벽 너머에 함께 지내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 무언가는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는 개체이며, 토요일 새벽마다 졸음을 참고 자신과 온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137쪽)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 이토록 일방적일 수 있을까. 수현의 두희를 향한 한 방향의 마음을 과연 두희가 알았을까. 칸이 칭과 교감하기 위해 굶기는 방법으로 겨우 산책을 해나가는 것을 본다면, 수현이 두희와 토요일 새벽을 함께 보내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며 인간중심의 시각으로 다른 개체를 살피는 것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두희가, 칭이 이런 인간들의 행동이 반가울까. 과연 좋아했을까, 아니 이런 노력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는 했을까.

J가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코끼리의 사육 환경을 신경쓴다고 하더라도 야생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으며,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가 인간의 욕심 때문에 그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203쪽)
"근데,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뭐가 나쁜 거야? 우린 인간이잖아. 얘네도 타란툴라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이해할 텐데."
"사람들이 가진 힘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너무 강력하잖아."(219쪽)

소리가 제 자식을 위해 거침없이 두희를 내리치려 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인간은 너무 강력하다. 한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으로 다른 동물들을 제압하고 죽일 수 있다. 그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편의와 욕심으로 동물들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분명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 J가 이제 그만하려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환경과 관련해서도 동물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인간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인간에 의해 자연 혹은 야생의 환경이 바뀌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렇게 봤을 때 불빛을 제거하고 최대한 타란툴라의 삶의 환경을 최대한 맞춰주었던 방에 있었던 두희는 과연 괜찮았던 것일까. 야생에서의 삶과 비교한다면 결국 인간의 보호 안에 주는 먹이를 먹으며 생활했던 동물원의 코끼리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같은 소통 방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물들 사이의 교감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교감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일지도 궁금해졌다. 이건 꼭 다른 동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인간들 사이 소통도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 어떤 방식으로 나의 환경과 모두의 환경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