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샤를로트 파랑 지음, 최혜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때그게거기있었어 #샤를로트파랑 #문학동네 #뭉끄6기 #서평

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샤롤로트 파랑 글그림/최혜진 옮김. 문학동네. 2026.

가끔 어느 한 가지 분야에 오래 머물러 일을 하다보면, 그 분야의 모든 일을 내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오히려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티를 내거나 혹은 강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럴 때 여지없이 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는 때가 오게 된다.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 쳤지만, 그렇게 큰소리 친 것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물론,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순간에 맞닥뜨려졌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자일 때 그 부끄러움은 더욱 커지기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혼자이지만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쉴새없이 질책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고 넘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집착이거나 혹은 자책이거나. 이런 감정에 한번 휩싸이게 되면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다.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참 두려워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순간에 '아, 그게 이거였구나' 하고 알게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저 모른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미지의 그걸 한아름 끌어안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뮈리엘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해요.

잠이 오지 않아요."

뮈리엘이 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지 너무도 잘 알 것 같다. 그게 뭔지 알고 싶지만 알 수 없어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뭐라고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확연하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막연하게 그런 존재가 있음을 느끼고 있을 뿐, 그 이상의 무엇이라는 확실한 모습을 나 스스로도 만들어내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상황,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 그게 무엇인지 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인정해야하는데, 인정하기까지가 쉽지 않아서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나 자신이 무너지거나 혹은 크게 다치거나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그냥 미지의 그 상태로 나 자신을 놔두는 것이야말로, 다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중대한 부분일 것이다.

다행히도 뮈리엘은 그 답을 찾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답을 찾았을까.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껏 내가 갖고 있는 삶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적절했는지.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속이고 또 착각하며 나의 지금의 상태와 방향에 대해 나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한없이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된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한없이 점점 더 길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서울 - 공간·사람·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토록서울 #서울다움 #서울러 #김진애 #서울

이토록 서울. 김진애. 창비. 2025.
_공간 사람 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서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 나들이조차 즐기지 않는 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정에 서울을 가게 된다면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볼일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온다. 서울은 내가 갈만한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가장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안심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나라는 사람이 도시에 최적화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를 사랑하고 그 도시의 화려함과 다양함, 활기와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도시 중 당연히 첫번째 도시로 서울을 꼽을 것이다. 그 외 상징적인 의미도 있으니 더욱, 서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득 담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생활 스타일이라고 해서 이 책에 재미없었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저자가 진짜 찐 서울 팬이구나, 서울을 진짜 사랑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기억하는 서울, 좋아하는 서울, 간직하고 유지하고 싶은 서울, 바뀌었으면 좋겠는 서울 등. 서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를 모두 총망라해서 서울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헌데 가만히 계속 읽어나가다보니, 저자의 서울 사랑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책은 또한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저 서울이라는 지역성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어떤 공간이 자리잡고 또 살아오면서 그 공간에 담겨졌던 역사와 사람과 또 시대의 변화와 그 안에서의 의미까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진짜 의도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한 도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 해결해야 할 문제들, 추구해나가야 할 미래들까지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봐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정치까지도.

W자에서부터 시작해 서울의 공간을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그런 공간에 대한 감각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조망할 수 있을 때 진짜 공간과 사람이 연결되어 진짜 삶이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서울을 소재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저 타지의 사람이 바라보는 서울이라기보다는 진짜 그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단순히 서울을 겨냥한 책으로만 읽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면 아마도 '이토록 OO'과 같은 다른 도시나 지역을 소재로 한 책들이 이후에도 계속 나와야 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생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만을 이야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갖고 있는 의미가 분명 있고, 그런 서울이 단순히 수많은 도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서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이 책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특징을 확인해볼 수 있는 책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서울 사람 아니니까, 하고 한발 물러나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서울의 이모저모에서 풍겨나는 특성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맥락 중 하나가 어떤 방향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구축해나갈 것인가를 결정하고 추진해나가는가였다. 이때 알았다. 이 책이 왜 정치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지. 결국 정치가 갖고 있는 힘이 어디까지 미치게 되느냐에 따라 도시와 공간에 대한 의미가 달리 활용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방향의 지향점을 갖고 있는가의 의식의 차이가 결과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광화문광장에 자꾸 여러 조형물을 놓는 게 그리 마땅치 않다. 광장은 광장으로서 가만히 배경으로 있어 주는 게 최고다. 광장은 무대이고 사람이 주인공이다. 뭘 자꾸 채우려 드는 건 불안해서거나 다른 불순한 목적이 있어서이기 십상이다.(230쪽)

광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직접 목격한 바도 있거니와, 저자의 말대로 공간은,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맞다. 자꾸 무얼 만들어 채우고 싶은 이들, 아무래도 진짜 불안하거나 불순한 게 맞는 것 같다. 광화문광장. 참 멋진 공간이다.

진화하는 서울다움이 유독 뿌듯한 것은, 나는 우리 도시의 특성인 잡종성, 혼종성, 변종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서울 고유의 도시성으로 보자고 주장했는데 그게 드디어 실현되고 있는 현상이 무척 반갑기 때문이다.(316쪽)

내가 생각하는 서울다움은, 정신없음이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다. 이때 정신없음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련되고 위트있는 모든 것이 한곳에 뒤섞여 있어 잠시만으로도 모든 특성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잡종, 혼종, 변종의 특징과도 유사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뿌리 왕국 - 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뿌리왕국 #데이비드스펜서 #흐름출판 #서평 #책추천

뿌리 왕국.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배명자 옮김. 흐름출판. 2025.
_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살아 움직이는 식물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었다. 뿌리가 뻗어나가고 있을 그 흙과 땅속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읽었다. 마치 지금도 저 땅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생명과 균, 그리고 다양한 화학 작용과 소통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마치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아래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 미약한 인간은 감히 알 수도 없을 정도의 거대하고도 은밀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겠다는, 한편으로는 가슴 떨리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이지만, 마치 한 편의 다큐 영화를 본 듯한 감흥이 남았다. 식물과 자연이 만들어내고 있는 신비가, 물론 신비가 아니라 너무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그저 한없이 작고도 어리석은 동물이구나, 반성도 하면서.

환경과 자연에 진심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죄 짓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식물, 동물(인간 빼고)과 관련한 이야기라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뭐든 알고 싶고 또 각성하고 싶은 마음으로 쫓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서도 훨씬 잘 알지 못하는 생명이란 생각을 한다. 동물과 같은 즉각적은 행동 반응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식물의 생명, 생존, 번성 등이 늘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이 조금 해소가 됐다. 아니, 해소가 된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꼭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나도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과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과학이 만들어내는 그 수많은 현상에 대한 진실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세계가 과학과 더불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학에 우리가 지금껏 배제하거나 등한시했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이 식물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간은 지금이라도 잘 알아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이 너무 모르니까.

인상적인 구절이 너무 많았다. 분명 과학자의 책이면 내용이 어려워서 금방 지치거나 힘들어해야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은 달랐다. 자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고 심지어는 책을 읽으며 웃기까지 했다. 과학자의 유머가 나한테도 먹히다니.

"용량이 독을 만든다!" / 나는 이 명언을 지치지 않고 인용한다.(29쪽)
최소한 이쯤에서 우리는 식물도 공동체가 필요하고 다른 식물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 의존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활발한 가족 단체대화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크고 작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활한 의사소통이다.(92쪽)
인권비가 하루 2유로면 충분하다고 해서 먼 나라에서 재배되고, 이미 살충제와 엄청난 양의 식수가 없으면 재배할 수 없는 과도하게 개량된 꽃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우리의 토종 꽃들이 정말 그렇게 볼품없을까? 어쩌면 꽃의 언어에서도 리셋이 필요한 것 같다.(115쪽)
간략히 요약하면, 의미에서 세쿼이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이런 공생 관계를 맺고 산다.(123쪽)
어쨌든 논란의 여지없이 확실한 건, 기후 위기라는 변화무쌍한 시대에도 안정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먹거리를 계속 생산하려면 토양생물을 지원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134쪽)
결론적으로 말해, 식물과 인간은 함께일 때 강하다. 그러니 내면의 향을 모두 모아, 조금이나마 평화와 사랑을 퍼뜨려보자. 무장, 호전적 언어, 해충과의 생물학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식물은 역시 사회성 생물이다.(187쪽)
식물과 인간은 종종 서로 경쟁하는 거대 집단이다. 하지만 둘이 협력한다면, 무적이 된다.(260쪽)

어쩌면 내 관심으로만 책의 내용을 쏙쏙 골라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했다 하더라도 너무 감동이었다. 인간이 형성해놓은 사회라는 구조와 욕망이 식물의 세계 안에서는 너무도 하찮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식물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몫의 부분을 수행해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인간이 그 보조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었고 말이다. 왜 단순히 식물의 뿌리, 뿌리의 생태 혹은 삶 정도로 설명하지 않고 <뿌리 왕국>이라고 지칭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표현이 인간 중심의, 인간적인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이런 비유가 인간의 삶과 대등한 세상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적절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왜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았다. 과학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하는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 앞으로 찾아 읽어야할 책의 분야가 확실해졌다.

덧_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의 옌스 포엘이 동료라니! 이 두 책을 모두 읽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2 시 (최신 개정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최신개정판)
신미나.최지혜 엮음 / 창비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어교과서작품읽기_중2시 #신미나 #최지혜 #창비 #서평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_중2 시. 신미나 최지혜 엮음. 창비. 최신 개정판 2025.

2025년 중2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했다. 수업 후 평가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국어의 어느 지점을 어려워하는지 잘 알게 된다. 수업을 할 때는 문법을 가장 힘들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외워야하니까. 국어 과목은 암기 과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암기해야하는 부분이 나오는 순간, 지레 겁을 먹고 공부를 포기하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어르고 달래는 시간이 무척 필요해진다. 하지만 평가를 하고 나면 아이들의 반응은 역전된다. 국어 문법이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문학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며 다른 의미의 좌절을 한다. 평가 문항을 출제한 교사에 대한 원망과 허탈함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어느 한 아이는 수업 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국어 문법 수업 하시기 힘드실 것 같아요. 문법 수업을 듣고나니, 국어 선생님 하기가 제일 힘들 것 같아요." 그만큼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문법을 처음 다루게될 때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 이후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문법은 하나도 안 어려운데, 오히려 문학이 너무 어려워요. 저는 문학적인 인간은 못 되나봐요." 이렇게 반응이 나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다. 정답이 있느냐 없느냐.
우리가 흔히, 문학은 정답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문항을 출제할 때도 '가장 적절한 것은?'이라고 묻는다. 이때 '가장'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것과 안 들어가는 것은 천지차이다. 어느 순간에도 '가장'을 빼고는 문항을 출제할 수가 없다. 그만큼 문학은 아이들에게 무척 힘든 영역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문학 수업을 가장 좋아한다. 이야기가 있고 흐름이 있으며, 문학의 묘미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롭기 때문이다. 문학 수업을 하다보면 할 수 있는 활동도 많아진다. 시를 읽고 그림으로 표현해보거나 실제 사진이나 장면을 시로 창작해보기도 한다. 모둠별로 작품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각색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연극이나 영상으로 꾸며볼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다. 지필평가만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러다보면 자칫, 아이들은 평가 때문에 문학에 대한 흥미를 더 잃을 수도 있다. 이 지점이 무척 고민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문학 수업을 통해 문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데 말이다.

사설이 길었다. 이 책의 장점이 이런 나의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단순히 읽어, 그리고 해석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감상'을 해볼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단순히 느낌만을 이야기하는 감상이 아니라, 그 작품에서 꼭 알아야 할 시적 요소를 빠트리지 않고 짚어주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단순히 느끼는 것만으로 문학을 잘 공부했다고는 할 수 없다. 기본적인 시에 대한 개념과 특징을 알아야 더 잘 시를 감상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쏙 뽑아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또 하나, '활동'이 있다. 활동을 함께 하며 시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두고두고 그 작품을 기억하고 되새기게 된다. 어떤 친구는 1년도 전에 수업 시간에 배운 문학 작품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다.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상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활동이다. 수업 시간 가볍게 혹은 힘을 주어 해볼 수 있는 활동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좋다. 국어 교사로서도 활용해보기 딱 알맞다.
더 재밌는 건, 지필고사 예상 문제가 수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특히 지금은 중학교의 논술형 평가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논술형 문항에 대한 감각을 연습해볼 수 있는 문항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2 교과서에 시는 많아야 한 두편이 전부다. 많은 시를 모두 다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시만 수업할 수는 없다. 해야할 영역이 6개나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이 책을 보조 교재처럼 활용하며 아이들과 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시는 무척 많지만 딱, 중2에게 적합한 시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좀 난감하고 어렵기만 한데, 이럴 때 딱 안성맞춤인 책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 포인트 웅진책마을 127
이현아 지음, 오묘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포인트 #이현아 #오묘 #웅진주니어 #서평

원 포인트. 글 이현아/그림 오묘. 웅진주니어. 2025.

여러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질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할 수 있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다. 어른이 나도 실패를 뻔히 알면서도 달려들어 최선을 다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소진과 그 친구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언제 그런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보았는지, 반성해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 혹은 인정받고 싶은 것들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줄 안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 정구부가 있었다. 학교 건물 뒤쪽에 정구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정구부 아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그때도 정구라는 스포츠가 생소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생소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중목이구나 싶다. 그래도 중학교 때의 기억으로 정구에 대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에,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땡볕에도 열심히 운동하던 그 시절 정구부 아이들의 모습이 이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듯했다.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원 포인트. 원 포인트를 얻을 기회는 남았어."(161쪽)

어떤 일에서든 늘 승리하고 이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또 언제나 내가 숫자 '1'만을 얻으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패하고 또 지면서, '1'이 아닌 2, 3 혹은 더 낮은 숫자를 받으며 살아야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걸 벌써부터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들을 승패에 휘둘리며 임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어떤 순간에서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소년 체전에 나가는 것도, 한유라를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진에게는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정구를 사랑하는 마음, 그 뜨거운 열정을 지켜 내는 것. 소진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건 항상 소진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열렬한 사랑을 적당히 할 수는 없다. 그건 뜨겁지도 절실하지도 않으니까.(105-106쪽)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절실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열정을 다 쏟아부어야 지더라도 충분히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 뿌듯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진은 이 모든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매 순간, 어떨 때는 뾰족하고 까칠하고 감정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정구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