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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ㅣ 꿈꾸는돌 43
강석희 지음 / 돌베개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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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강석희 장편소설. 돌베개. 2025.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를 먼저 읽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내용이 익숙했다. 이모와 연주의 산책은 앞선 소설책을 읽을 때도 인상적이었다. 뭔가 서로를 무뚝뚝하게 대하는 듯, 혹은 대면대면하는 듯하면서도 강하게 서로를 향하는 그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들이 서로에게 갖고 있던 마음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이었다.
장편 <녹색 광선>을 쓰며 해결해야 했던 첫 번째 질문은 그들이 왜 '서로를 돌볼 수 없는가?'였고,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돌보아야 하는가?'였으며, 마지막 질문은 '돌봄에서 희생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이야기는 그 질문에 대한 서툰 대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176쪽_'작가의 말' 중)
'돌봄'.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동안 고민했었다. 지금껏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던 돌봄에 대한 사회의 무책임과 떠넘김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생각만이 아니라 그게 대한 답을 내려야 하는데 말이다. 소설가는 답으로 이 소설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내놓으면 좋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연주가 갖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상실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있다. 솜이. 이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음을 주고 사랑으로 품었던 대상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그 이후 어떤 것도 삼킬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의 기분이 무엇일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돌봄의 과정으로 본다면, 연주는 솜이를 돌보지만 외할아버지는 이모를 돌보기 위해 그 돌봄의 대상인 솜이를 돌봄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결국 그 상처가 연주를 또 다른 돌봄의 대상으로 만들고, 다시 이모가 연주를 돌본다. 어쩌면 연주가 이모를 돌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어찌보면 이모가 다른 가족들의 돌봄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고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그런 이모 덕분에 이 가족이 살았을 수도 있다. 특히 연주에게 있어서 이모가 갖는 존재의 의미는 연주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이모와 연주가 서로의 돌봄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는 관계. 다시 연주를 먹게 하고 또 살찌우게 만들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
네 개의 손이 창백해진 내 손을 꽉 잡았다. 무척 따뜻했다. 다해와 정연의 손. 그 아이들은 부드럽게 힘을 주어 내 손이 주먹을 쥐도록 했다. 애들의 손이 떠나고 주먹 쥔 손을 펴 보니 묵묵이 있었다. 묵묵은 체온으로 데워져 따뜻했다. 아, 내가 돌볼 차례였구나.(159-160쪽)
다행인 건, 혜영이 있었고 다해와 정연이 있었고, 이들이 갖고 있는 따뜻함의 감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행동과 마음이 곧 '돌봄'이지 않을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함, 그 따뜻함의 돌봄을 사실 연주는 내내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주가 자꾸만 '생활 트래핑' 모임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아닐지. '친구'라는 말에도 감정이 누그러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 이미 연주는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 이전부터, 그 따뜻함에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이제 직접 다른 이에게 전해줄 차례가 된 것이다.
누가 '돌봄'을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서만 날을 세우고 지켜봤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돌봄'이란 것이 어떤 차원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경제적인 문제나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수준으로의 '돌봄'만이 아닌,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을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가 어쩌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즉,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뜻.
연주는 밤이와 함께, 그리고 혜영 다해 정연과 함께, 또 이모 엄마와 함께, 이제 진짜 본격적인 '돌봄'의 세계로 들어갔다. 이제, 연주의 '돌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잘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참 다행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