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망할토마토기막힌가지 #박찬일 #에세이 #서평단 #서평 #책추천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에세이. 창비. 2014(개정판 2025).
제목에 끌렸다. '망할'이라니! 토마토가 무슨 죄가 있기에 망할, 이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역시, 읽어보니 토마토는 죄가 없다. 그저 그 토마토에 이끌리 사람들의 잘못이 있으면 있을 뿐. "토마토만 이해하는 데도 평생이 필요하다."(19쪽)라고 생각하는 사람 밑에서 토마토를 요리해야 한다면, 당연히 '망할'이라고 말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재밌다. 사실, 음식이나 식재료에 그다지 진심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 책이 막 끌리고 엄청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만가만 읽다보면 흥미로워지고 또 재미있어졌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이 책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였다. 음식이란 누군가가 먹거나 혹은 먹이려고 내놓는 것이라면,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음식은 그저 맛이나 향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그 음식을 만나 먹었는가가 종합적으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억의 종합적 서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음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재밌는 것이다.
무려 11년 전에 나왔던 책이라는 것, 그럼에도 11년 후에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라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읽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라는 것. 시일이 정해진 책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아마도 또 11년 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와도, 또 읽기 좋은 책을 것이다. 음식은, 그리고 그 음식과 관련한 기억과 추억은 오래 묵힐수록 더 재밌고 진해질 테니까 말이다.
아귀찜을 놓고 무려 열명의 지역 문사들이 시를 짓고 글을 올렸다. 그러니까 마산에선 아귀로 시도 짓는다. 마산에서 아귀찜을 자리가 어디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107쪽)
그러니까 말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제대로 각 잡고 시를 짓기까지 했느냐 말이다. 그런 면에서 어떨 때는 내가 사는 우리 지역에, 전국적으로도 소문나고 찾아올, 그런 대표 음식이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장이나 지역에 대한 애정이 적어서 그런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대표 음식을 굳이 떠올리려 노력한 적도 없어서 그런가, 이런 이야기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용도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실감했다. 어린 시절 밥 대신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되어, 그저 알약 하나로 식사를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무척 흥미로울 수밖에.
엄한 어른들 틈에서 집은 굴비 한점은 간단한 소금 맛으로 혀에 남아있다. 그후로 다시는 그런 굴비 맛을 보지 못했다. 내 혀가 둔해진 건지 모르겠으나 어렴풋이, 공활한 가을 하늘 아래 화덕에 굽는 굴비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소금 간 잘된 좋은 굴비야 돈으로 살 수 있겠지만 유년의 가을을 되살 수는 없는 법이다 어쩐지 슬퍼진다.(162쪽)
이런 이야기가 가득이다. 음식에서 비롯된 당시의 추억이 어떻게 내면화되어 간직되고 있는지. 그 추억의 맛을 재현할 길이 없어 그저 아쉬운 마음을 가득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말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음식을 하는 사람의 섬세한 감정과 그 깊이가 무척 다정하게 담겨 있다.
요즘 부쩍 음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최근 다른 셰프의 책을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음식이 다분히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예술 등 다양한 영역이 종합되어 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저 입 안의 즐거움, 배를 채우는 포만감을 넘어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즉,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오는 풍속의 내막이 그대로 음식에 담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한입>이었던 기존 제목도 납득이 갔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그 음식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뜨겁게 들어오게 되었을 지를 짐작하게 해 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음식이란, 단순한 잣대로 쉽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한 시대 혹은 그 이전의 시대부터의 중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대표적인 소산이라는 것을. 이 책, 참 잘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