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저택
김지안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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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보며 떠오르는 기억들...
하나, 태어나서 대학시절을 보낼 때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주택이었고 주택가 골목의 가장 끝 코너집이었고, 그 코너 담에는 빨간 넝쿨장미가 가득했다. 이맘 때쯤이면 담을 타고 자라난 장미의 향이 진동했고, 우리집은 늘 넝쿨장미집이었다.
둘, 직장 뒤뜰에 커다란 목련 나무가 있었다. 너무도 탐스럽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어 저절로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목련을 감상하곤했다. 때마침 행사 사진 찍는 담당이 되어 커다란 카메라를 무겁게 목에 걸고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그때 이 아름다운 나무를 사진에 남겼다. 그리고 몇 달 안 지나 누군가가 나무의 가지들을 댕강댕강 다 잘라버렸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공포스럽기까지했다.
셋,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장미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장미가 제일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노란 장미를 무척 사랑했다. 노란장미 화분을 선물받아 잘 키워보려했지만, 실내 베란다 화분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다. 진딧물도 너무 많이 생겨, 결국 실패했다.

지나 생각해보니 그 각각의 순간들에서 이 모든 꽃들을 사랑했던 거였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사랑에 또한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장미 저택>의 장미들은 정성을 다 하는 멧밭쥐들과 멍멍 씨 덕분에 제 빛깔과 향기로 다시 피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피어난 모든 장미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아마 미미 씨도 그런 사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 다시 장미를 가꿀 수 있게 된 것이겠지. 사랑은 주머니에 넣은 송곳처럼 어떻게 해도 티가 나는 법. 그러니 미미 씨가 혼자 방 안에 있기에는 사랑의 마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숨길 수 없는 마음, 사랑의 마음.

멍멍 씨, 잠깐만요.
자르지 말고 그냥 둘까요?
조금 작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모두 함께 피면 좋겠어요.

꽃으로 피어나기 전의 봉우리만으로는 어떤 꽃이 피어나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느 누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저 제 힘으로 잘 피어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면 제각기 다른 속도와 크기대로 크겠지만, 꼭 알맞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꽃은 피어나게 될 것이다. 이때 조금 작아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꽃이 될 것이다. 잘 돌보고 보살피며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미미 씨와 멍멍 씨가 멧밭쥐들의 도움 없이도 다시 장미 정원을 잘 가꾸어나갈 것이다. 특히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넘치는 사랑의 마음을 잘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장미를 가꾸며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사랑을 감추지 않고 있는 힘껏 표현하며, 그 자체의 있는 그대로를 아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누구와도 함께 나눌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미 저택에 초대받아 가는 이들의 표정과 마음이 어느 때보다 들뜬 이유가, 미미 씨의 그 마음이 모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 그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며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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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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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율은 어떤 시선을 갖고 있다는 걸까 궁금했다. 세상은 자신이 보려는 방향으로 보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율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걸까.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그리고 누가 만들어 주었으며, 왜 그런 방향의 시선을 갖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껏 나와 같은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발로 인식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의 눈을 보는 게 싫었다.(14-15쪽)

아래를 향하는 율의 시선은, 더 정확히 사람의 눈을 보지 않는 율의 시선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놓여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 낸 마음의 행동이었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타인의 시선은 닿지만 그 시선에서 어떠한 따뜻함은 느낄 수 없었던 율에게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비극적인 극단의 상황에서 누구 하나 자신을 온전히 봐주지 않고 있다는 차가운 단절은, 다시는 그 시선을 믿지 않겠다는 불신, 바로 비정상의 상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율의 시선에 대한 책임이 율에게 있지 않다는 것도 너무나 명확했다.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9쪽)
물이 들어 있을 때는 가지고, 비어 있을 때는 버린다. 잔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까.(74쪽)

사람에게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상대를 자신의 필요 여부에 따라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쉽고 또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율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둘 수 있는지, 얼마나 그 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율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거짓 투성이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도 가식적이고 거짓말 투성이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율에게는 더 자연스럽고 편했던 것일 수도 있다.

"거짓말."(...)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 게 뭐냐며. 네가 물어봤잖아. 나 거짓말 잘해."(83쪽)

그래서 율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거짓말이었지 않을까. 거짓말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또한 받지도 않겠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런 율에게 소설를 쓰라고 추천을 해 주는 이도해는 과연 어떤 아이인 걸까. 오히려 도해는 율과 반대로 하늘만 본다. 하늘을 구름, 별을 통해 도해는 어딘가로 숨고싶어 한다. 이도해가 아닌 북극성.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반짝이는 별. 그런 도해와 율의 만남은, 서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었을 것이다.

새는 계속 쪼아 댔다. 틈새를 쪼고 또 쪼아 댔다. 고목이 있던 곳에는 까맣게 썩어 버린 톱밥만 간간이 흩날릴 뿐이었다. 새는 절망했다. 더 이상 먹이를 찾아 날 힘이 없었다.(104쪽)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142쪽)

도해의 추천으로 쓰기 시작한 율의 소설은, 이제 더 이상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챌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외계인 같은 서로를 알아봐주기를 위한 거짓이 아닌 진실의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안율, 너 좀 변한 거 알아?"
"어디가?"
"눈. 눈빛이 아주 재수 없어졌어."
눈빛? 내가 되묻자 서진욱은 내가 요즘 대화할 때 발이 아니라 눈을 본다고 말했다.(212쪽)

그리고 드디어 발이 아니라 눈을 볼 줄 아는 율의 성장. 중학교 졸업장은 무척 얇고 가벼워 금방 바람에 날아가지만, 그런 졸업장을 잡아주고 챙겨주는 가족,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 율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의 눈빛이 얼마나 재수 없어졌는지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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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운 게 뭔데? 창비청소년문고 43
저스틴 밸도니 지음, 이강룡 옮김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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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용감해야지, 똑똑해야지, 멋있어야지, 남자는 더 커야 해,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차례만 봐도 어마무시하다. 내가 남자가 아니어서 더 그런지 혹은 남자가 아닌 이유로 좀 덜 그런지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이 책에서의 '남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 책을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이미 시작도 전에 저자는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럼에도 꼭 읽겠다고 나서는 나같은 사람들은 분명 있을 수밖에 없고 읽어버렸으니, 그 다음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가만히 이 책의 효용과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우선, 이 책을 굳이 남자에 국한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싶다. 이 책에서 '남자'라는 단어를 '여자'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니까(왠지 '여자다운 게 뭔데?' 책이 곧 나와야할 것도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마 많은 부분의 내용과 사례는 달라져야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의도는, 성의 구분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들어내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이 책을 '남자'로만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면에서 남자 청소년들이 꼭 읽으면 좋을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특히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남자 아이들이 좀 잘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의 사회적 지식을 친구나 혹은 미디어를 통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친구와 미디어가 언제나 올바른 이야기를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하는 사람들 역시도 '남자란'의 생각을 머릿속에 갖고 있으니, 얘기해줄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진짜 남자 청소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책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에서 주의를 주고 있는 상황들은 굳이 '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이 세상에 너무도 많고 그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에게 벌어지는 일들이니까. 가령 남자만 뛰어내려야 용감한 것은 아니고 여자도 진짜 용기를 가져야할 일들은 너무도 많다. 그러니 이 책이 주고 있는 메시지는 남자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이 사회를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유연해질 수 있는 마음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주변의 누군가가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주의를 주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 이 약속 안 지키면 남자 아니다!' 이 말의 충격에 눈이 커졌고, 그 장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언어 속에 얼마나 위험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도달해야하는 가장 최종 목표는 사람이 되는 것일 거다. 남자 사람, 여자 사람, 이런 거 말고 그냥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나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 누군가가 입혀놓은 갑옷도 모두 다 벗어버리고 순수하게 나의 내면을 보여주며 다른 이와 관계맺을 수 있는 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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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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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 그림이 예쁘다. 각 단편 시작할 때마다 들어가 있는 간지의 흑백은 컬러 표지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표지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가는 책이다. 그리고나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의자가 2개다. 누구와 누구의 자리일까. 의자의 방향도 완전 나란하지 않고 둘 중 하나는 비스듬하다. 두 사람이 앉는다면 살짝 서로를 향할 수 있을 정도로 틀어져 놓여 있다. 의자도 일반 식탁 의자가 아니다. 휴양지나 야영지에서 펼쳐놓고 앉으면 편안할, 그런 의자다. 누구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의자일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차려진 테이블일까. 사람은 없고 사람을 기다리는 의자와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 앉으면 기분이 어떨까.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찾아오게 될까.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 이유는, 이 소설들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나름 각 인물들이 흐트러지지 않으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잘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분명 상처가 있고 쉽지 않은 삶의 여정을 겪었으며, 만족스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한 두가지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헌데 이 소설들 속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특히나 더 깊은 우물을 마음 한켠에 만들어놓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마치 그 우물의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차오르는 듯한, 서늘하고 차가우면서도 아득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다행인 것은, 이들이 끌어안고 있는 우물에는 튼튼하고 긴 밧줄에 두레박이 매달려 있고, 그 두레박에 깨끗하고 맑은 물을 잔뜩 담아 끌어당기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는 것이다. 몰론 이 밧줄은 각 인물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엮은 것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식사나 카풀해준 후배와의 식사,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간 뒤 마주한 초등학교 동창과의 식사, 그리고 추워하고 배고파하는 후배와의 식사 등, 등장인물들의 식사 장면들을 보면 이들의 식사는 마치 그동안 인물 간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편견이나 큰 담을 한순간에 허무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허물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은 이미 식사를 통해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무게나 짐, 마음에 갖고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지는 그 시작이, 이런 식사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인물들의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으로 쓰인 <가벼운 점심>이 어쩌면 우리 삶에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꼭 격식을 차리고 대단한 식사를 하지 않아도, 가볍게 하지만 오래 그리고 솔직하게 하는 식사의 자리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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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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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내가 아는 그 생선, 복어?
<나는 복어>라는 제목이 신선했다. 여기서 '나'는 절대 호락호락할 인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복어라고 했을 땐, 그 안에 '독'을 품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독이 누구가를 향한다면 어쩌면 나쁜 쪽으로 튕겨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면 그걸 통해 자신을 보호하든지. 어느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든, 이 아이가 세상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괜히 시작 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표지 그림 속 아이의 표정이 너무 단단해 보였다. 누구라도, 뭐라도 와 보라는 듯,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보이는 다부진 표정. 괜히 그림 속 아이에게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별명은 청산가리. 조폭은 아니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 키는 164cm에 몸무게는 55kg. 김두현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간혹 뒤에서 나를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다. 지금처럼.(5쪽)

<나는 복어> 제목에 이어, '내 별명은 청산가리.'라고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와! 복어에 청산가리! 뭔가 섬뜩한가 싶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현이가 7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갔고, 그 옆을 함께 해준 친구 준수가 있어서, '금강복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셔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현이에게 재경이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이들 눈에는 자신과 결이 닮은 아이들이 참 잘 보이는 법이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 특히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은 어른이 책임져주지 못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책임져 짊어지고 있구나. 그 많은 문제들을 잔뜩 안고 살아가느라 벅차지만, 또한 현명하게 혹은 저돌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해결하려고 하고 있구나. 두현이도 준수도 재경이도, 그리고 강태도. 분명 어른들은 이 시기를 모두 지나왔는데도, 왜 어른이 되면 그 시기의 문제와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모두 퉁치고 넘기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기도 했다. 어른의 세계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니까.
어른들은 어른들의 판단과 결정으로 아이들을 종속시키려고 든다.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제멋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른의 입장으로 아이들에게 강요할 뿐 아이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한다. 그저 회피하거나 어른의 힘과 권력으로 막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골이 깊어지고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의 지점이 더욱 확연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힘 있는 어른 쪽에서는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또 하나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부모의 자살, 빚과 생계에 대한 부담,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고. 이 소설 속 아이들이 감당해야했던 문제는 사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 어른들의 세계가 만들어낸 문제였고 그 문제의 해결 또한 어른이 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다만, 어른은 그런 노력을 안 했고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힘들 수밖에. 힘들게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이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나아갈 마음과 각오를 다졌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늘 그렇듯,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어른들은, 그리고 이 사회와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늘 화가 나는 지점이지만.

덧-
재경의 말 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장귀녀 사장한테만 말고, 이 세상에 대고 크게 말했으면 좋겠는 말들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용광로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사람이 끼여 죽게 만드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콜센터 직원을 자살에 내몰리도록 내버려두고, 현장 실습생이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가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허락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떠드는 거야.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이 개 같은 세상이!"
"돈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 개 같은 세상이 당신 편이어서 당신은 자기 말이 옳다고 믿는 거야!"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사과해요. 우리 오빠한테."(107-108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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