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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평점 :
어마어마한 책이었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무척 어리둥절해 한참 멍하기만 했다. 물론, 무거워서 들고 있을 수는 없었고 책상에 올려놓은 채 그저 쳐다만 봤었다. 이 거대하고도 대단한 책을 내가 과연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겁도 났다. 며칠 사이로 다 읽을 수 있을 책은 아님을 직감했고, 하루에 얼마씩 천천히 천천히, 한 부분씩 읽어나가자고 마음 먹었고, 꼭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물론 그게 잘 안 되는 때도 종종 있었지만.
이미 <독일인의 전쟁>이란 제목과 '2차대전'이란 부제의 설명으로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쟁'을 다루고 있으니 현재 진행형의 전쟁이 함께 떠오르며 이 전쟁의 이야기를 어떻게 감당해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전쟁'은 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도 어려운 숙제일 수밖에 없으니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감히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일 테고, 간접적으로 보더라도 쉽게 무어라 결론내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주제인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에 대한 나의 관점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제목을 다시 생각했다. 아, '독일인'의 전쟁이었구나!
2차대전이라고 하면 당연히 가해자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먼저 떠올이게 된다. 전쟁의 가장 참혹함은 죽음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때의 가장 잔인함은 학살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의 초점은 독일인에게 있었고, 이미 첫 시작부터 가해자의 독일인이냐 피해자의 독일인이냐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놀랐다. 솔직히, 지금껏 당연히 독일과 독일인을 함께 묶어 생각했고, 그런 독일인을 무조건 가해자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부터 나의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했다. 결국 어느 나라 사람이든, 전쟁을 벌인 사람과 전쟁으로 온전한 제 삶을 잃은 사람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구나. 누구 때문에를 떠나, 모두가 혹독한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 빠져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구나, 였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독일인들이 감당해야했던 6년 동안의 시간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음은 분명해 보였다. 결국 편지와 일기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더라도 특별히 악의를 갖고 생각한다거나 뭔가 의도를 갖고 행동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물론, 어느정도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비인간적인 면은 있다. 전쟁 상황에서 도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또 버리고, 전쟁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이기에 전쟁의 책임을 이들에게 다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고 이 국가 간 관계 또는 이념 속에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던 건 늘 국민이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쟁 소설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결국 사회적 문제로 개인의 삶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경우라도 전쟁은, 한 순간도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같은 마음일 테니까.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독인인들에게 있어서 2차대전은 특히나 더 직접적으로 겪은 전쟁이었고, 그 전쟁에서 본국의 결정과 행위, 과정과 결과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하는 책임도 분명할 것이다. 제 아무리 전쟁의 한복판에서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전쟁 속에 침투되어졌어야만 했다 하더라도, 전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전쟁 중에는 그렇다 쳐도, 전쟁 후에라도. 이건 어쩌면 늘 피해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처지가 반영된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그래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유대인의 보복이란 생각이 과연 어떤 의도를 갖고 하는 말인지도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왜 읽어야할까를 생각해 봤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전쟁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들은 지금껏 여러 권 읽어 보았고 죽음이나 학살의 공포와 분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지난 전쟁을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에서 조금 각도를 달리 변형하여 그 이면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부터도 지금껏 독일인들이 전쟁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차에 대해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런 하나의 역사적 사건 안에서 더 관심을 갖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피해자들일 테니까. 당연히 이들은 피해자에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그러니 이 전쟁을 따라가며, 현재 진쟁중인 전쟁을 떠올리게 되고, 이때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면은 없는지 살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 대한 판단을 독자 스스로 내리기를 바라는 듯도 보였다.(이 책은 보여주기였다. 판단과 주장을 펼치고 있다기보단,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지금껏 긴 책을 읽었으니 이젠 더 긴 사유의 시간으로 넘어갈 차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