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 - 오늘은 일본 위스키를 마십니다
김대영 지음 / 싱긋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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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어이없어 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술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다만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을 뿐. 술이 매개가 되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흥을 돋우는 가장 서민적인 술들을 접해봤을 뿐, 그 외의 주종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심지어 종종 선물로 받는 와인도 몇 년씩 상자째 묵혀놓았다 집에 방문하는 누군가의 손에 다시 들려 보내주는 과정을 반복하곤 한다.
그런데, 위스키? 위스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생소하고 낯설고, 솔직히 선뜻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기는 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 전혀 나의 세상과는 다른 곳에 놓여 보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마치 선생님이 이끄는대로 별 관심없이 따라나선 견학에서 눈과 입이 벌어져 우아! 감탄을 내뱉는 학생이 된 듯도 했다. 더군다나 일본 여행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뼛속까지 집순이라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 성격 덕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아, 일본 여행을 가보고 일본 위스키를 마셔봐야겠구나, 싶었다(더 솔직히는 저 오크통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도). 위스키, 일본, 그리고 일본 위스키에 과연 어떤 매력이 있는지 한번쯤은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관심과 애정이 아니고서는 이런 방대한 내용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위스키를 대하는 마음이 진심임을 이 책 한 권으로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렇게 총망라해서 책으로 엮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위본 위스키에 대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각 증류소까지, 그리고 인터뷰의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냥 이런 곳이 있어, 이런 역사와 전통이 있어, 그리고 이곳에 가면 이런 특징이 있지, 정도로만 기술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저자가 느끼는 소중함이 배어있어 이 책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자연스레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알려주고 싶어지는 마음, 그게 전해졌다(마치, 저자가 위스키를 앞에 놓고 밤새 신나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듯도 했다).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오랜 세월 하나에 몰입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끈기.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달라지면서 가장 쉬운 것이 변하는 것이라면, 이 책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쉬웠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이틀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오랜 기다림과 긴장이 스며있을 것이며, 그런 시간이 쌓여 지금의 일본 위스키의 역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공장장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아무것도 안 해요.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만 생각합니다.
위스키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인생은 여행입니다. 인생 여행 중에 위스키를 즐기는 여행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에서 위스키가 조금이라도 등장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124-127쪽_'이와타케 기미아키 공장장 인터뷰' 중)

인생 여행 중 내가 알지 못했던 여행지에 다녀왔다.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위스키 여행은 내 인생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좋은 관계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자리에서 한번 쯤은 위스키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도전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위스키의 향과 맛이 나의 어떤 감각을 톡톡 깨워줄 지, 지금 무척 궁금하고 설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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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한다 -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이베트 쿠퍼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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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로나19의 위기는 우리에게 언어의 힘을 보여주었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6쪽)

위기 속에서 결국 힘을 갖는 것은 '언어'구나, 하고 깨달았다. 사방이 막히고 거절당하고, 칸막이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진 세상에서 결국 힘이 될 수 있는 것이 '언어'였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반대로 생각했었다. 단절되면 언어마저도 전달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언어이고 소통이라는 것을.
'연설'은 말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는 소통의 방식이다. 연설이라고 하면 자신의 생각이 어떤 표현과 방식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 지금까지의 연설도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영역이었고, 남성이 하는 말에 더 힘을 보태는 사회 분위기는 오늘날 지금까지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대에 여성의 연설이 이토록 많이 있었으며, 또한 이런 연설을 모아 볼 수 있었던 기회가 새삼 새롭고 흥미로웠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여성의 권리는 왜 이렇게도 힘겹고 치열하게 말하지 않고서는 보장받지 못했고, 여전히 못하고 있는 것인가이다. 이렇게나 역사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협박과 폭력, 갖은 위험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무척 씁쓸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오랜 시간 제 목소리의 힘을 찾기 위해, 그리고 여성의 권리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수 있었던 여성들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들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침묵하는 이유로 이야기할 때 각자 가진 두려움에 의지합니다. 경멸을 받을까 두렵고, 검열이나 비판의 대상이 될까 또는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고, 이의제기가 있을까 두렵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가시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시화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94쪽_'오드리 로드' 연설문 중)

가끔 '침묵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섣불리 내 의견을 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방향,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자주 맞닥뜨리게 되면서, 결국 하게 되는 선택은 침묵. 나의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 간의 관계나 문제 상황을 더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확고한 주장을 펼칠 줄 알았던 이 여성들의 삶과 용기를 보며 어떤 자리와 입장에서 나의 생각을 주저없이 말할 줄 아는 힘을 키워야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지지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하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가 이 여성들의 삶과 의지, 힘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음을 다시 생각하며, 이들이 어떤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했는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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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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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의 103이 10월 3일이었구나. 개천절. 열 개, 하늘 천, 하늘이 열린 날.

"왜...... 그래?"
"내 생일도 10월 3일이거든."(288쪽)

다형에게 터널 103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았던 삶의 공간이었고, 또다시 죽음의 공간이었으며,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운명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다형은 이미 이 터널을 통과해 나아갈 수 있을 힘을 갖고 태어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의 '고귀한 혈통' 정도. 이미 다른 이들을 구할 영웅의 능력을 갖고있는 자.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
결국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소설에서도 역시나 다형, 승하와 같은 소녀소년이 어른들의 욕심, 혹은 안전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고 희망을 되찾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어른인 나로서는 참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 어른들은 그 어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지위, 권한을 더 우선시하는 걸까. 그리고 애초에 사람들의 삶을 가두고 공포와 살육의 현장으로 내몰았던 시작이, 결국은 더 강한 힘을 소유하고자 했던 자들의 안일한 이기심이었다는 것이, 화가 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무기에 가까운 인간 병기를 만들던 실험. 정식 명칭은 워킹웨폰(Walking Weapon) 프로젝트였네."(142쪽)

비인간적인 실험과 그 결과물을 통해 더 비인간적인 행위를 일삼으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에 의해 결국 평화롭고 안전했던 공간이 무자비하고 공포스런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공포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임을 인지하고 판단할 힘조차 갖지 못한 채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끔찍하고 암담한 것인가.

"싱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은 이곳에서 이방인이고 비정상이라 여기고 있어."/준익의 발언에 다형은 싱아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하고 똑같이 생겼어'라던 말.(178쪽)

물론,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정상이고 또 비정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사회적인 편견이 개입되는 순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오히려 차별을 만드는 또 다른 이름이 되니까). 하지만 이 판단 역시 다양한 경험이 있고나서야 가능하다고 한다면, 싱아에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주어야 하니까.

촌장 황필규가 다형을 사지로 내몰고 대신 자신의 세상을 뜻대로 유지하려는 모습에서 이강백의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거짓에 거짓을 보태고, 결국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 자신의 체제만을 맹목적적으로 따르도록 만드는 촌장의 모습이 끔찍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우기던 촌장의 최후 역시 끔찍하기만 했다(이런 장면에서 오히려 인간의 잔인함만을 더 느끼게 된다).

분명,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길은 열렸다. 용기와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임은 확실하다. 가족의 응원과 책임이 수반되어 있었지만 결국은 자신이 해내야겠다는 각오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정도의 각오 없이는 쉽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문을 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형과 승하가 앞으로 열어야 할 문은 더 많겠지. 그 문들이 너무 어렵게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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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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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는 이제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은유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읽고 싶어진다. 지금까지의 작가의 책들 중 절반 이상은 읽었고, 읽을 때마다 후회가 없었다. 당연히 이번 책도 마찬가지.
사실, 책에 대한 책에는 살짝 의심과 부담을 덧붙여 읽는다. 책을 소개하는 책이 되면 실망하게 될 터이고, 내가 잘 모르는 책에 대한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한다면 흥미를 잃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 책은 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만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 자연스레 은유 작가에게 빠져들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분류한다면 어디에 넣어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어찌보면 작가의 생각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에세이이면서, 사실은 우리 사회의 만연한 문제와 편견, 부조리 등을 설파하고 있는 인문학 책인 듯 보였다.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기보단,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삶의 철학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안에서 사람과 어떤 관계 속에 숨쉬고 있는지가 잘 보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자꾸 내 생각이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마침 설 연휴를 지나면서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딸로 며느리로 또 엄마로 명절을 지나온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실컷 설거지와 뒷정리 다 하고 돌아선 며느리에게, '설거지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이'니 설거지 정도 하는 건 당연하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목구멍에 걸려있다면, 내가 책을 바로 읽은 것이겠지 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그제서야 책의 제목도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해방의 밤>. 우리가 아직도 쟁취하지 못한 '해방'은 언제나 나의 삶이 될 수 있을지. 주변이 모두 잠들어야만 '나'가 될 수 있는 시간 '밤'은 온전한 '해방'의 통로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
다행인 건, 내가 찾아 숨고 싶어하는 곳과 작가가 그러하고 싶었던 곳이 일치했다는 것. 내가 집 곳곳을 책으로 쌓고 또 쌓으며, 아이로부터 '엄마는 책 중독'이란 말까지 들으면서 책에 파고드는 근본적인 이유가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또 한번 위안을 얻었다. 책이 답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책을 통해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지만, 읽고 있는 그 순간과 읽고 난 후의 마음과 생각의 미약한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책은 '해방'의 시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특히, 교사로서 과연 나는, 어떤 교사여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여전히 학교 안 아이들에 국한된 시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과연 그 많은 아이들이 세상과 부딪히게 되는 그 순간들에 나는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적자생존으로 돌아가는 경쟁 시스템은 멀쩡하던 사람도 '늘 화가 난 사람'이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풍토에서 어느 직종이라고 해서, 어떤 스펙으로 무장을 한들, 몇살이라고 해서 안전할 수 있겠느냐고요.(161쪽)
왜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요. 그럴 때 선생님에게 배운 아도르노의 말을 전합니다.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 줄 알아야 된다."(179쪽)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세상이라면, 과연 우린 아이들과 '희망'을 말할 수 있을지.

사실 잠재적 가해자의 억울함은 그가 잠재적 가해자의 고통을 알면 사라질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몸을 돌려 타인의 입장으로 건너가보는 일은 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일처럼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희망입니다.(312-313쪽)

결국 돌고 돌아, 언제나 마음 속에 남는 단어는 '공감'이다. 내 삶을 구성하는 몇 단어들 중 하나이기도 한 이 단어를, 다시 마음에 새긴다. 이 세상을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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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 선생과 우주 문지아이들 176
김울림 지음, 소복이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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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내가 꾸어 무엇 하나. 결국 아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재단될 거다. 싹둑싹둑 잘라질 거다.'(12쪽)

어른은 분명 아이 때를 모두 겪고 어른이 된 것인데도, 왜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이 질문은 어른인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집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래도 엄마가 그렇게 꽉 막힌 건 아니잖아? 아이들은 웃기만 할 뿐이다. 이럴 때 순간 다음 할말을 찾기 어렵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어른의, 그렇고 그런 어른의 그런 류의 잔소리들일 뿐이겠지 싶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 방에 자주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또 잘 되지는 않는다. 반성 모드.

우주는 이미 엄마 아빠가 자신을 집어넣으려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에 실망, 혹은 더 큰 절망을 안고 있다. 말해봐야 소용 없다고 생각해,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더 큰 실망이 되지만, 그런 감정조차 어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배려를 한다, 우주가.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아이의 배려는 어른에게 닿는데,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구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못하는구나, 어른이 갖고 있는 판단의 기준으로만 상황을 정리하지 아이의 눈과 입을 봐주지 않는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이 모습이 나의 모습일까봐 걱정이 됐다.

"오만불손한 대가가 되기보다 생물과 교감하는 진짜가 되고 싶어."(35쪽)
솟아오른 모양이 신기하고 재밌었을까. 맛있어 보여서일까. 짖고 장난치더니 먹어 버렸다. 진짜 강아지가 된 것처럼.(54쪽)

고타 선생 스스로도 사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어쩌면 그동안 진짜 자신이 모습을 찾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꾸미고 가꾸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지. 어떤 것이 자신의 '진짜'인지를 스스로 알아채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고타 선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것은 어른에게도 쉬운 것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별은 축구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축구공에는 글씨가 보였다. 글씨가 별빛처럼 반짝거렸다./'진짜 마음.'(66쪽)

우주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다만, 그 마음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그것이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속여, 가짜 자신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기타 선생과의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의 '진짜 마음'을 보여줄 때. 당당히 말하고 돌아서는 우주의 모습이 이렇게나 듬직하고 단단해 보일 수가 없다. 자신을 바로 세워 스스로 성장할 줄 아는 아이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재밌었다. 건조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애들 이야기에 무슨 재미냐고, 가볍게 취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어른의 이야기를 읽은 것 못지 않게 감동이 있었다. 단순히, 아이가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간다는 교훈이 다가 아니었으니까. 이 책의 소제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1. 가짜 진짜
2. 진짜 가짜
3. 진짜 진짜

우리는 어쩌면 많은 가짜를 나 스스로 만들며 진짜를 감추고 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진짜 자신을 알지 못한 채 가짜가 진짜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진짜, 진짜가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만 안다. 그런 면에서, 고타 선생과 우주는 스스로 자신의 진짜를 찾았으니, 이 둘은 이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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