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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문학전문기자. 나의 삶에 이 선택지가 있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조금 달라져 있었을까, 살짝 기자님의 글들을 읽으며 떠올려봤다. 이 말은 부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초에 대학의 전공을 선택하고 그 전공을 그대로 살려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았다면, 어쩌면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년 이상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또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던 책이었다.
표지 그림의 저 공간과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기자의 삶이 이리 평온하고 여유로웠을 리는 없다. 끊임없이 읽고 만나고 생각하고 썼어야만 했던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격은 매우 좁았을 것이고, 그 작은 시간의 틈에서 잠깐,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지. 혹은 어쩌면, 30년이란 시간을 다 지나오고난 후,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바로 이 그림과 같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다. 이 책에 자꾸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이유가 어쩌면,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애쓰며 문학과 동행했던 그 누적의 기록이 꾹꾹 눌러담아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30년의 기록 안에는 나 또한 심취했었던 작가와 작품이 오롯이 들어가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대학 때 빠져들었던 김소진, 김연수, 이청준, 그리고 늘 곁에 존재할 듯했던 박완서, 너무 늦게 알아버린 황현산, 허수경, 그리고 최근에도 꾸준히 읽게 되는 송경동, 진은영, 이산하의 시들과 한강, 최은영, 김애란의 소설들. 신형철의 비평집은 책장 한쪽에 잘 꽂아놓고 읽을 틈을 찾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의 절반 이상은 이미 읽었고, 대부분의 작가(북의 작가 빼고)는 거의 알고 있으니 또한 건성으로 읽을 수도 없었다.
단순히 서평만을 모아놓은 책이라면 조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_물론, 서평들을 읽으며 이렇게 서평을 써야겠다는 자극과 공부가 되기도 했지만._ 칼럼의 이야기들이나 특히 표절이나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내용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문학이라는 영역이 생각보다 환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지만은 않기도 하거니와 또한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들에 다시 화가 나기도 혹은 답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래서 결국 문학이구나.
왜 내가 문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그 언저리를 어슬렁거리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이런 다양한 생각과 사고의 과정이 모두 고스란히 담겨질 수 있는 것이 문학이었고, 또한 30년은 족히 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고 넘치는 이야기가 곧 문학이었다. 그래서 문학을 삶의 저편으로 밀어놓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짝사랑을 계속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결국 앞으로도 이런 문학 주변에 얼쩡거리며 어떤 소식 혹은 기사라도 발견하게 되면 반가워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_이렇게 말하니 꼭 뭐 대단한 문학을 하는 사람인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그저 단순한 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문학에 대한 애정을 좀 더 과한 과장으로 꾸민 정도라고나할까.
마치, 오랜만에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른 걱정 없이 그저 문학을 읽고 쓰며 말할 수 있었던 그때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책의 힘이 이 정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