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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표지 사진에 시선이 갔다. 이미 제목에도 '전쟁'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뭔가 알고싶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 같아 겁이 났다. 몰랐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알고나서는 도저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았다. 읽어야하지만 알고싶지 않기도 한, 그런 기분의 책이었다. 왜냐하면 읽는 순간, 지금의 시대와 국가에 실망할 거고, 사람들의 욕망과 이익,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나 소식 등을 접할 때면 들던 생각이 있다.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가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쩌면 저런 말과 일들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을까, 귀 닫고 눈 감는 시대가 아닌데 어쩌면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처럼 할 수가 있을까. 답답하면서도 속상하고, 결국 그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약자의 몫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난다. 나에게 이 책이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전쟁이라고 하면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라는 인식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다른 이유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무조건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사람이 어떤 이유 중에서도 가장 앞서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분명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 전쟁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왜 이런 전쟁을 반대하거나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그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길래,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전쟁을 내내 지켜보고만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정말 이기적이구나. 경주마도 아니고, 어떻게 자기 눈앞만을 보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미 우리나라의 과거 전쟁을 되짚어 보더라도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런 패턴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쾌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또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나 생각의 크기는 퍼졌을 것임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분노하고만 있다고해서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방도가 찾아지는 것은 또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이미 이 세상은 이렇게 서로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노골적인 다툼(전쟁)이 일어나는 시대가 되었으며, 결국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놓여있다는 것도 납득이 됐다.
결국 시대의 흐름과 세상이 무엇을 주목하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달려나가고 있는가를 잘 판단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목청껏 외쳐도 세상으로 그 고함이 퍼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는 그래도 나름 목소리를 내고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는 대단한 시민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결국 세계의 패권 싸움 속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다분히 경제적 정치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장을 잘 세워 대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말 회의적인 것은 이런 대응 방식이 적절히 잘 이루어지고 실행되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답답하고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헝크러진 실타래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는 심정이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해답이 썩 내키지 않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마치 투덜거리는 듯 글이 써지고 있는 건 아닌지. 3월 초의 바쁘고 정신없는 업무의 연속 속에서 이 책의 후유증이 남아있어 더욱 몸도 마음도 무겁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참을 표지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응시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