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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부 -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김선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2월
평점 :
도도새. 내가 알던 그 새가 맞나 싶어 검색해봤었다. '비둘기목 도도과의 멸종된 새'라는 설명으로 요약되어 설명되는 새. 천적이 없던 모리셔스에 살면서 나는 법을 잃은 새. 그러다 사람에 의해 멸종된 새, 도도새. 그런 도도새를 그리는 작가, 도도새 작가 김선우의 에세이를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든 전체적인 인상은,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었다.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에 가 닿아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과 마음에 담긴 따뜻한 기운도 전달되었다.
아마도 진심이 담겨 있어서 가능한 것이겠지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이 향하고 있는 목표와 목적지에는 작가가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러면서도 열정을 다해 도달하고자 열망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 있었다. 허름하고 열악했던 첫 작업실에서부터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12시간을 작업하는 지금 생활의 루틴까지. 작가가 지금까지 향해있는 관심의 지점이 무엇일지를 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과 생활, 그리고 그 일에 쏟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 군더더기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이런 모든 것이 작품으로 발현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작업적으로 비슷한 입장이 되고, 도도새를 고작 십 년 남짓 거쳐왔을 뿐인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무언가에서 마침내 새로움을 찾아내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야말로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비할 바 없이 어렵고 대단한 일이며, 인간만의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요.(205쪽)
예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많은 새들 중 하필 도도새인가, 도도새를 이 정도 그렸으면 된 거 아닌가,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또한 쉽게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고작'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할 말이 많고 더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감동이었다. 'LABOREMUS' 라보레무스. 아마도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써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겠지. '자, 일을 계속 하자'라는 의미의 저 단어를 매일 오고가는 작업실에 걸어두고,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하기 위한 힘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어주는 작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업이 가장 나다운 존재로 살아가게 해 준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기꺼이 "라보레무스"라고 읊조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가장 나다운 수 있는 일에 생의 모든 시간을 쏟아내려는 작가의 다부진 모습이 그려졌다.
예술가라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세간에 크게 알려지기 이전의 상태를 흔히 무명無名이라고 표현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면서도 냉정한 호칭입니다.(19쪽)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명無名.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알 수 없음.' 혹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음.'의 무명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쓰고 있는 것일까. '없음'과 '않음' 사이에도 큰 간격이 존재해 보였고, 그 사이 어디에서도 이름을 갖지 못하는 많은 예술가들을 이름이라는 잣대로 보게 되는 사회의 시선도 씁쓸했다. 유명해지기 위함이 목표인가, 그 유명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소통하려는 것이 목표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가 닿기를 바라며 기울이는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가 예술분야에서는 '유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여전히 '무명'이란 단어가 슬프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의 'LABOREMUS'에 더 강한 다짐과 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 책을 읽고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그들이 향해가는 모든 길이 반짝일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