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의 사자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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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네메시스의 사자 - 나카야마 시치리

장르소설 / 블루홀6



신간 소식이 정말 빈번하게 들리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소설, 범죄소설, 사회파 미스터리를 대표할만한 일본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

올 해 이 작가의 소설을 얼마나 읽은 것인지;; <세이렌의 참회>부터 최근 <은수의 레퀴엠>을 읽기 위해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를 전부 읽은 데다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권인 <테미스의 검> 역시 올 해 출간되어 읽은 작품이니 적어도 대여섯 권은 읽은 것 같다. 쫓아가기 벅찬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출간 소식이 들릴 때마다 눈이 가고 손이 가니 읽지 않을 수 없다는.


이번 소설 <네메시스의 사자>는 와타세 경부 시리즈이기도 하지만 나카야마 월드의 인물들이 여럿 보인다. 일단 '와타세'와 '고테가와' 형사, 그리고 여기서는 차장 검사로 등장하는 '미사키 교헤이', 일명 쥐새끼라 불리는 사이타마 일보 사회부 기자인 '오노우에 젠지'까지...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니 괜히 반갑다. 눈에 쏙속 들어오고 ㅎㅎ 이번 사건에서는 와타세 경부와 미사키 검사가 합을 맞춘다. 물론 그들이 전지전능하게 사건을 확확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근 합이 좋은 둘. 같이 술도 한 잔 하러 가시던데 조만간 어딘가에서 또 보게 되지 않을까?


<테미스의 검>에서도 원죄와 사형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네메시스의 사자>에서도 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이 오간다.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 소설의 특징이 사회적 문제들을 스토리 속으로 끌어들여 마치 그에 대해 토론하듯 자연스레 의견이 오가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여기에서도 사형제 존폐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교차된다. 그 출발은 검사가 사형을 구형한 사건 중 무기징역 혹은 징역형으로 감형된 수감자들의 가족이 살해된 것이다. 그 현장에 남아있던 피로 쓰여진 메세지 '네메시스'. 네메시스는 스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날개가 달린 여신으로 '천벌의 집행자'라고 불리지만 사실 인간이 저지른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신의 '의분'을 말한다. 복수의 의미로 잘못 해석되기도 하는데 과연 이 현장에 남아있는 네메시스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사적인 복수일까, 의분에 의한 처단일까? 일본은 사형 집행이 미뤄지다가 올 해 집행된 사형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이 소설에서 말하듯 사형수는 있지만 실제 형이 집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전작에서처럼 원죄를 두려워 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형 집행이 복수의 의미가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타인의 생명에 대한 권한이 법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을 것이다. 법을 잘 모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법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에 사형이라는 제도 역시 필요한가? 존폐 어느쪽이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유가 있다 보니 결국 개인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검찰이 사형을 주장할 정도의 범죄자가 무기징역이라는 형을 받고 모범수로 출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아... 또 얘기하다 보니 너무 갔나!


아무튼 이 소설에서는 여성 두 명이 희생된 묻지 마 살인 사건의 범인 '가루베 요이치'와 할머니와 손녀를 살해한 '니노미야 게이고'의 가족이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다. 이를 두고 경찰과 검찰에서는 누군가 법을 대신하여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 대신 그 가족을 처단한다고 여기는데 범인의 목적이 정말 그게 다일까? 반전은 범인이 너무 똑똑했다는 거...ㅋㅋ 잡혀야 되는데 잡히질 않아서 잡혀...(응?) 후반부에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속도를 올려 주는데 이번 소설 역시 읽는 맛도 있으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남긴다. 나카야마 시치리 다운 소설...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에 이어 와타세 경부 시리즈도 계속해서 기대가 된다.



'재판 제도는 유족의 한을 조금도 풀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기는커녕 괴물 같은 살인자를 극진히 감싸고 죽을 때까지 돌봐 주는 복지 제도였던 겁니다.' (p.98)


'징역형이라는 건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인간성을 말살하는 형벌입니다. 그들은 일반 상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과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적 장벽을 매일같이 절감합니다.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아닌 현실을 음미하는 겁니다. (...중략...) 저는 그들이 더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됐다는 절망을 맛보며 스스로를 영원히 저주하면서 죽어 가기를 바랍니다.'(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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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조성일 지음, 박지영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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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 조성일

이별... 에세이 / 팩토리나인



이별을 주제로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글로 적어 낸 조성일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조성일 작가는 전작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에 이어 이번에도 이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별을 경험했다면 읽으면서 공감이 될 수도 있고,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헤어진 사람을 이해한들 무슨 소용 있겠나 싶겠지만 또 다른 사랑을 시작했거나 앞으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별 경험과 후회, 그리고 이성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이별의 흉터가 진하게 남아 있다면 조금은 옅어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별을 한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마음일까? 서로 사랑한다고 그 마음이 서로 같지 않을 것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같을 수 없으며 이별 후에도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둘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는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이별과 이별 후의 감정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별의 그림자를 느꼈을 때의 불안과 초조 혹은 공허함, 후회와 아픔. 사랑하는 동안 감정 소모에 지쳐버린 누군가의 마음도 담았다. 그런 마음들을 포장하고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설레임 가득하던 때에는 몰랐던 숨어있던 감정들을 꺼내어 놓는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이별을 했다고 해서 사랑의 흔적마저 사라지진 않는다. 그 사람을 잊었다고 해서 그 사람과 사랑했던 그 순간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남아 아픔이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돌아보게 하기도 하고, 성장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랑했던 사람과의 순간이 그냥 버려진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별한 뒤의 아픔이 그저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별 뒤의 후회나 변명, 이별의 이유에 대한 생각들도 녹아 있다. 조성일 작가의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별의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138p의 '우리가 헤어진 이유'에서 이별의 이유가 결국 서로 맞지 않음이고 이것을 타당한 이유로 인정한다면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긴 어렵지 않을까? 사람은 다 같을 수 없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남매들끼리도 같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딱 맞는 사람을 찾아 만나겠는가? 그럼에도 둘이 만나 사랑했다면 그 다름 안에서도 사랑을 느낀 것일텐데...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른 부분을 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남편과 참 많이 다른 사람이다. 한 때는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부분을 인정하게 되고 그 사람 그대로를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더라. 물론 이건 나의 입장에서의 서술이다.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그냥 나는 이래서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다... 이별은 그냥 이별일 뿐, 이별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다. 저 사람을 왜 사랑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이별 역시 딱 어떤 것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조성일 작가의 이 책에는 이별에 대해서 하나의 정의를 내려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공감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고, 이별에 아픈 사람들이 이 에세이를 마주한다면 여러 시선으로 이별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건 아쉬움이 아니라

허전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p.21)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우리를 시험하지 말자.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자. (p.229)


내가 사랑을 잃은 이유는,

결국 나였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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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혼 1
모모세 시노부 지음, 추지나 옮김, 사카모토 유지 원작 / 박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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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혼 1

각본 : 사카모토 유지

쌤앤파커스



<최고의 이혼>은 드라마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소설로 일본에서 2013년에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작품이다. '사카모토 유지'는 얼마 전 '이보영'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드라마 <마더>의 원작 작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 역시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드라마가 먼저 방영되고 방영 중에 소설이 출간되기 시작한 것이라서 따지자면 일본 드라마가 원작일 것 같은 마음에 제목에 '원작 드라마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원작 드라마의 소설판) 드라마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이라 그런가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던 것 같다. 그 드라마가 2권까지 이어지지 않고 1권에서 멈추는 바람에 매우 아쉬웠다는...(1권도 가제본을 받아 보았고, 2권은 좀 더 있어야 출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카모토 유지의 <최고의 이혼>은 소설 출간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드라마로 방영된다. KBS 2TV에서 같은 제목으로 월화드라마로 방영되는데 주연은 배우 차태현, 배두나가 맡는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에도 두 배우가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 일드를 보진 못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두 사람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태현과 배두나 두 배우를 놓고 보면 어울릴까? 싶다가도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둘의 캐미가 벌써 기대가 될 정도!


두 부부가 등장한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부부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부부. 응? 좀 이상하다. 결과적으로 법적으로 모두 부부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게다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남자 미쓰오는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쪽의 아내 아카리와 예전에 사귀었던 사이이기도 하다. 아이고 복잡도 하다. 처음엔 정말 하나같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도, 예전 사귀던 여자를 만나서도 부인의 험담을 늘어놓는 남자. 털털 혹은 지저분, 남편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라 사사건건 부딪히는 여자. 아내가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 남편의 외도를 알은체 않고 혼자 눌러담는 고구마 같은 여자. 하지만 좀 읽다 보니 최악이던 그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너무 털털하고 매사에 느긋해 보였지만 의외로 단호하기도 하고,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이 답답했는데 사이다 같은 한 방을 날리기도 한다. 남자들은 의외로 마음이 약한 구석이 있고, 어딘가에 갖혀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넷이 자꾸 부딪히면서 각자의 속에 담겨있던 무언가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론 아카리의 반전이 기대된다. 미쓰오와 아카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서로 다른 부분, 그리고 아카리가 서류를 찢는 장면. 두 장면이 소설에서도 매우 인상 깊었기에, 드라마에서도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 궁금하다. 아마 아카리의 역할은 이엘씨가 연기하는 것 같던데 아카리가 기억하는 과거를 속 시원하게 질러줄 땐 빵 터질 것이고, 서류를 찢는 장면에서는 절절하게 표현되려나?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몰입했다. 혼자 내 머릿속 드라마에서 연출을 너무 열심히 한 것 같다. 부작용이다. 얼른 2권을 읽고, 드라마까지 섭렵해서 이 부작용을 없애야 할텐데...!


두 권 중 한 권, 약 260페이지 정도의 적은 분량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 자리에 앉아서 다 읽었다. 한참 재밌어지는데 1권이 끝나버린... 2권이 출간될 때까지 이 다음이 궁금해 어쩌지? 싶을 정도다. 10월 08일! 내일이면 드디어 드라마가 시작되니까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며 기다려 봐야지!



"10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네……?"

"나, 하마사키 씨랑 좋은 추억 따위 하나도 없어요."

담담하지만 확신에 찬 말투로 아키라가 말했다.

"당신이랑 헤어질 때 생각했죠. 죽었으면 좋겠어. 이딴 남자 죽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멋대로 좋은 추억으로 만들지 마세요."

(p. 91)


"뭘 모르는군. 가고 싶지 않다는 건 가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야."

"어, 그게 뭔 소리야?"

미쓰오는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고 싶지 않다는 건 가고 싶다는 뜻이라구."

"뭐? ㅜ머야 그게 여자만의 언어야?"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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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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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이국종

외상외과 외과의사 이국종의 기록... 에세이 _ 흐름출판



외과의사, 중증외상센터 센터장 이국종.

이국종 교수에 대해서는 석해균 선장, 북한 귀순 병사 등의 수술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나 역시도 석해균 선장의 수술 때 처음 들었던 이름이다. 그 때의 기록도 이 책에 실려 있다. 그런데 참... 읽을수록 내가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열악한 상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든다. 최악을 예상했는데 그보다 더한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였던 <골든 타임>, 어딘가에서 이국종 교수가 이는 잘못된 용어라며 <골든 아워(Golden hour)>가 바른 표현이라고 전했었다. 이 부분을 평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다시 떠올랐다. 골든아워... 중상을 입었을 경우 한 시간 이내에 응급 치료를 했을 때 성공 확률이 가장 크다는 의미의 말이라고 한다. 이국종 교수가 실제 샌디에이고에서 연수할 때 그들의 외상환자 이송 시간은 20분이었다고 한다. 런던에 있을 땐 환자가 있는 곳까지 15분 내에 런던 어디든 도착하는 그들의 시스템을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중증 외상센터로 이송되기까지 평균 시간이 245분이라고 한다. 골든 아워가 한참을 지난 시각... 그는 외국의 선진 시스템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시스템 도입을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봐야 저 잘났다고 나대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제대로 된 이유와 근거가 없다면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무작정 외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이 경우에는 그들이 이 교수가 외치는 근거나 운영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았거나, 득 되는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병원에서도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느낌이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중증 외상환자를 많이 겪은 이국종 교수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실려 온다고 한다. 없이 산다고 해서 그들의 목숨값 마저 비루하지 않은 것인데... 사람 목숨 누구나 하나씩인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 행정을 담당하는 고위층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을 일이 별로 없어서 관심이 없는 것일까? 난 참 평범한 소시민이라 그런가 이런 시스템의 중요성을 잘 알겠는데 말이다.

석해균 선장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그를 본국으로 이송해 수술한 뒤 뭔가 중증 외상센터의 시스템 정비와 지원에 관한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인력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하지만 그는 언제가 되더라도 이 외상센터가 발전할 그 날을 위해 여전히 나아가고, 기록하고 있다. 본질, 본업에 충실하기 힘든 조직생활을 하며 정치, 행정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지켜주길 소망하게 된다.


이 책은 솔직히 어지간한 소설보다 더 잘 읽힌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분명 아니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이들의 마지막 희망이었기에 뒤로 물러설 수 없었을 그들의 힘겨운 버팀. 그것이 결국 많은 생명을 붙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국종 교수의 희망인 외상외과의 선진국 시스템 도입은 도무지 그 빛이 보이질 않으니... 수많은 벽에 부딪혀 지치고 지쳤을 그 마음은 아직도 정치와 행정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이 널리 알려지고 개선되어 환자에게도, 그리고 환자를 놓지 않는 의료진들에게도 빛이 비춰지길 바라본다.


-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를 건조하게 응시하다 대답했다.

- 원래 세상이 이런 건데요.

(p.196)


2003년 말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사직 압력 속에서도 '잘리는 순간까지는 최고의 수술적 치료를 제공한다'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내건 직업적 원칙이었다. (p.247)


내 몫이 어디까지인지 나조차도 모르지만 내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될 때가 오면 정경원이, 권준식이, 김지영이, 그다음의 누군가가 또다시 나아갈 것이므로 아직은 조금 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밥벌이의 이유는 늘 헐거웠으나 그것만큼은 중요했다.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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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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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 마보융

중국소설 / 현대문학



작가 '마보융'의 중국소설 <장안 24시>

이게 정말 단 하루의 이야기란 말인가?! 나처럼 믿을 수 없단 반응이 많을 것을 예상한 것인지 소설의 목차가 시간의 흐름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10시를 뜻하는 사정(巳正)부터 21시를 뜻하는 해초(亥初)까지, '하'권은 그 이후의 12시간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상'권만 읽었으니까 이제 12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어찌나 사건 사고가 많은지 휙휙 바뀌는 장안의 운명을 따라가다가 숨이 차올랐다. 미스터리, 스릴러 이런 장르 소설을 참 즐겨 읽는 편인데 최근 읽은 책 중에 마보융의 <장안 24시>가 가장 스펙타클한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역사 소설, sf, 수필, 단편 코미디, 역사 논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내어 놓은 작가라서 그런지 그 필력이 화려하기 그지 없다.


상관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수가 된 '장소경'. 그는 형 집행을 앞 둔 죄인일 뿐이지만 지금 장안성을 구할 자는 장소경 뿐이다.

당나라의 원소절에 맞춰 장안성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돌궐족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감옥에 있던 장소경을 정안사로 데려온 정안 사승 '이필'. 돌궐족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계획이 틀어지자 탈출한 돌궐족 늑대전사 '조파연'을 잡기 위해 장소경을 이용한다. 하지만 조파연이 잡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장소경이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록 점점 사건의 종착지는 보이지 않고, 사건의 몸집은 거대하게 불어난다. 정말 단순히 돌궐족의 몸부림일까? 조파연이 잡히고 사건이 일단락 되면서 이제 그 다음을 향해 갈 줄 알았는데 어찌된 것일까? 등장 인물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사건의 중심도 묘하게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진정한 칼날은 어딜 향해 겨누어져 있는 것일까!


300페이지가 넘는 티저북을 읽고 이거 내용이 다 담긴 게 아닌가 했었는데 전체 분량의 1/4 정도였나 보다. 상, 하 합쳐서 총 24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티저북은 그 중 6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총 1200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인 것이다. 역사 소설이 이렇게 두꺼우면 덥썩 달려들기 겁이 나지만 이 소설만큼은 덥썩 물고 쭉 읽어내길 추천한다.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기가 막히다. 상권에서 돌궐족에 시선을 두었다면 이제 하권에서는 진정한 적을 노려보아야 할 것인데... 궁금해서 얼른 마저 읽어야 할 것 같다.


한정된 배경, 한적된 시간... 그러나 작가의 필력은 그 한계가 없었다.




"나는 오로지 장안 백성의 안위를 지킬 뿐,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닙니다. 조정의 국운이라니, 뭔가 오해한 모양입니다." (p58)


"이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분명 잘못된 일이야.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것뿐이네.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하지만 잘못은 분명히 잘못이야." (p203)


정보를 얻기 위해 동료를 팔아먹는 파렴치한, 악랄하고 냉혹한 전임 불량수, 목숨 바쳐 힘없는 백성을 구하겠다는 성인군자, 조정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도 온 힘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려는 장 도위…… (p299)


"비부라는 작은 벌레는 온몸이 하얗고 쌀알 크기만 하다오. 아주 보잘것없는 미물이지. 그런데 이놈들은 이빨이 아주 강해서 나무를 갉아먹고 산다오. 특히 서까래나 대들보, 나무 벽과 나무 기둥을 파고드는 걸 좋아하지. 으리으리한 대저택도, 천리 제방도 이 작은 미물이 파고들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무너진다오." (p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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