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개가 지킨다 상상 고래 9
최서현 지음, 모예진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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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했을 때는 우울했다.

버림받은 개 진돌이의 삶을 외계인의 침입을 막는

지구방위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야기인줄 알고.

혼자 남은 개들이 거리에서

비닐봉지를 쫓고, 뭘보고 짖는지 월월대는 모습들을

외계인과 싸우는 거다라고 위로하는 줄 알고.

그래봐야 진돌이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진않아!

라고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더욱 거대하고 위대한 이야기였다!!!

어린 행성의 보모가 되다니!!!

가장 보잘것없는 것이 가장 위대해진다.

지구는 개가 지킨다.

지구는 개가 키운다.

라는 진돌이의 외침이 자기위안도 아니고 괴로운 현실을 덮으려는 면피도 아닌

진짜 자신의 목소리라는 점이

엄청나게 엄청나게 위로가 되고, 감동적이였다.

주변의 하잖은 것들을 외계인으로 표현하는 지점이나

여의주 이야기와 연결되는 백호, 청룡, 주작, 현무 이야기들

그리고, 좀 더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살아왔던 구렁이 이야기

강강술래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서로서로 엮이며 큰 그림이 되어가는 것도 신선하고 놀라웠고

아기행성이라는 발상도 너무너무 깜찍하면서

행성의 탄생을 설명하는 방식도 즐거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마법같은 순간에 감탄하며 읽어갔다.

특히 진돌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행성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순간의 감동은!!!!

새 행성의 탄생을 우리 진돌이가!!!!

벅찬 감동이라고 하나?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는 발상이 많아서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둔탁하고 예민함은 없지만

측은지심과 책임감 있는 따뜻한 진돌이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지구방위대로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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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 2020-09-0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매이션으로 보면 재미겠다에 공감합니다.
 
매미가 고장 났다고? - <푸른 동시놀이터> 앤솔러지 제3집 푸른 동시놀이터 104
<푸른 동시놀이터> 앤솔러지 지음, 강나래 그림 / 푸른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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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푸른 동시놀이터> 앤솔러지 3집이다.

시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예술이다.

그 중에서도 동시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전달해주는 매체로

한 편, 한 편이 하나의 세상을 담은 이야기를 전달해줄 때가 많다.

그 중 마음에 들어오는 이야기를 만날 때면

알던 누군가를 만난 듯 반가워진다.

말미에 각 시가 선정된 이유가 첨부되어서

각 시를 다시금 살펴보는 기회도 되어 좋았다.

(비록, 제판 오류로 못 읽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나 캐릭터가 떠오르는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풀려라 겨울]에서

겨울이 묶어 놓은 날씨를 봄이 살살 풀고 있을 거라는 발상에 맞아! 하며 감탄했다.

우리가 흔하게 날이 풀린다네요. 라고 하는 말을 잡아낸 감각 덕에 한 번 웃는다.

[우리가 몰랐던 사실]도 귀여운 발상이 좋다.

거대한 지하조직 하루종일 발걸음을 세다가 짝수면 스파게티를 먹고

홀수면 우거지된장국을 먹는다니!

그런데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 봄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의 스탭을 꼬아버리다니!

이 거대한 음모론도 귀엽지만

왠지 이 이야기를 할 진진한 표정의 아이가 떠올라버리는거다.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는

짧은 달랑 세줄로 보내온 아들의 편지를 읽고 또 읽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라는 제목을 끌어낸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된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표현, 기발한 발상을 지닌 작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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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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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화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의 기숙사 노퍽관에 배정받는다.
지하실에서 '초혼 게임'을 한 후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7대 괴담 내용대로.

호러라는 장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찬호께이 답게 꼼꼼한 구성과 탄탄한 트릭을 무기삼아
호러 소설의 클리세를 이용해 끌어들인 후
비틀어버린다.

사회파적인 면모가 있는 작가라서
괴담을 끌어들였다는 측면에서
괴담이 가지는 사회적 뉘앙스를 활용하는 걸까 했는데

단순 오락적 요소로 읽더라도 재미는 충분하다.

중화권 작가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작품을 찾아읽는 작가가 된 거 같다.

최근 답답하고 안타까운 홍콩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이 시기를 지나는 찬호께이가 다음에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궁금하면서 걱정도 되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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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소녀의 여행
멜라니 크라우더 지음, 최지원 옮김 / 숲의전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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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려고 들췄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마린의 애타는 마음이 안타까워서.

마린은 열한 살이 되도록 위탁 가정을 전전한다.

그러면서도 친엄마가 나를 찾아올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포기해서

루시라는 사람에게 입양될 거란다.

루시는 좋은 사람이지만

입양되면 엄마에게 돌아갈 수 없게 된다.

71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각 소제목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짧다.

각 소제목 아래에서

마린, 루시, 길다, 부엉이, 지각판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생뚱맞잖아? 싶은 부엉이와 지각판의 이야기가

이 이야기를 환상동화처럼 만들어준다.

그래서 다분히 현실적인 마린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느껴지게 한다.

부모 자식 관계는 불공평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이 되겠느냐 묻지 않는다.

그러구선

마린의 친엄마에게는 더이상 마린의 엄마도 살지 않아도 괜찮으냐고 묻고

그 관계를 끊어낸다.

마린에게는 묻지 않는다.

엄마가 더이상 엄마가 아니여도 괜찮으냐고.

왜 마린에게는 묻지 않지?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마린이 다정한 루시를 받아들였으면 싶지만

마린이 엄마를 놓아버리기 위해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마음대로 끊어낼거라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납득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많은 위탁가정 아이들의 이야기 중

마린의 이야기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부엉이는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의 눈인걸까?

아니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의 눈이여야 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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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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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사회학과 교수로
[폭염사회]라는 책에서 시카고 폭염사태를
사회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했다.

사회 구조가 개인의 생존과 삶의 질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는
폭염같은 재난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 지역에 만들어진 자원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그의 도시는 내가 알던 곳과 조금 다른 곳 같다.

나에게 도시는 나 외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커다란 어떤 것이였다. 하지만 저자는 
도시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나도 도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며
어떻게 살아야 이 도시가 인간 전체에게 유익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도시는 나라는 세포를 포함한 거대한 생명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도시는
개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들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는 삶들로 채워진 곳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결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장소가 도서관이다.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장소가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관리될 때 지역사회가 번영할 수 있다.
그러면 사회문제들이 어떤 식으로 해결되어 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지역 사회와의 교류라고 하면
불필요한 간섭과 귀찮은 의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직 온전한 공동체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일까?

저자의 논리가 
전체를 발전시켜나가기에 합리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나를 주체로 하는 문제에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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