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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1. 대부분의 책읽기는 책읽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만
내 경우 가끔, 현실도피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음이, 머리가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을 때
눈앞의 현실을 잠시라도 외면하고 싶을 때
책을 잡고 이곳 너머의 공간으로 가버린다.
그럴 때,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혹은 우울감이 전해지거나 하는 책을 잡게 되면 아주 낭패다.
적당히 현실적되 따뜻한 용기와 사랑이 담겨 있으면서 강요하지는 않고.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그런 글을 만나는 것이 제격이다.
츠바키 문구점은 그런 조건에 모범답안과 같은 책이였다.
내가 도피로서의 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읽다가 깨닫게 해줄 정도로
(지금, 너무너무 나에게 필요한 책을 읽고 있어! 라고 계시처럼 깨달았다.)
맞춤했다.
2. 츠바키 문구점은 첫 인상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나무를 얇게 대패질 해 종이로 삼은 것 같은 표지.
그 위에 편안한 서체로 과하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고
이곳저곳 은박이 점점 박혀 반짝이는 마음을 전해주는 듯했다.
거기에 손 안에 기분좋은 중량감을 느낄 수 있는 두께와 무게.
책을 다 읽고서야 발견했는데
뒷편에 얇게 비치는 종이에 이야기 안에 나온 편지들이 적혀있다.
사실상 소설 속에서 정성드려 고른 종이를 그대로 살린
편지들이 첨부되었다면 어마어마하게 좋았겠지만
그러면 제작비가 어마어마해지고...
책가격이라고 할 수 없는 가격이 되었겠지 ^^;;;
아쉽지만 아쉬운대로 반가운 부록이였다.
3. 외국을 방랑하던 포포가 선대가 돌아가신 후 고향 가마쿠라로 돌아와 츠바키 문구점을 물려받은 첫 해의 이야기다.
포포는 가마쿠라의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며 문구점 만이 아니라 대필가로서의 가업을 물려받는다.
글씨를 쓰는 일이라면 연하장의 주소 쓰는 일 등이 있지만 이야기로 다루어 지는 것은 입소문으로 의뢰해오는 편지 대필이다.
누군가 츠바키 문구점을 찾아와 편지를 의뢰하면 포포는 의뢰자의 몸과 마음이 되어 편지를 쓴다.
여름으로 시작해 봄으로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는
실제 가마쿠라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소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장소들은 대부분 다정하고 편안하다.
과연 여행자로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번역자분의 방문기를 통해 느껴지는 실제감은 색다를 것 같기는 하다.
배경이 되는 공간의 실제감과 함께
포포가 대필을 하기 위해 고르는 종이와 필기구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이다.
실제 언제 제작되었고 어떤 질감과 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들이 매번 매력적이라 그 종이와 필기구를 가지고 싶은 것이다.
절연하고 싶을 때, 거절하고 싶을 때, 상대하기 불편한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할 때
그 종이와 필기구라면 좀 더 확실히 전해질 것 같다.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존중하지만 뜻이 같지 않음을 전할 때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손편지가 아닐까.
단지 종이와 필기구만이 아니다.
편지를 봉하는 방법. 우표까지도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세심하게
고려해 선택된다.
지금은 낯설어져 버린 편지쓰기라는 행위의 의미를 극대화한 과정이랄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포포가 의뢰자에 빙의하듯 편지를 써내는 장면은 흡사 판타지이다.
사실상 편지의 내용은 평범한지도 모르겠다.
좀 더 실질적인 것은 타인에게 마음을 의뢰함으로써 선명해지는 효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저정도의 정성이라면 마법을 부린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4. 포포에게는 선대와의 아픔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것에 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회는 한다. 인간사 후회없는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받아들이고 후회는 후회대로 남기고
살아간다. 좀 더 행복해질 수 있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후회를 대하는 자세.
5. 아름다운 책을 만나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