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타와 오토와 러셀과 제임스
엠마 후퍼 지음, 노진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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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뭐랄까 읽는 내내 부드러운 쓰다듬이 느껴진다고 할까?

 

에타의 편지, 레시피 카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오토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끓어오르는 감정과 당혹과 한탄은 없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지나 차곡차곡 쌓인 감정들이 장면장면마다 진하게 깔려있었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 어린 그들의 이야기부터를 번갈아가며

담담하게 보여준다. 담담할 뿐 아니라 구석구석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들.

 

결코 작지않은 사건들이 그들의 인생에 곳곳에서 그들의 다리를, 귀를, 자궁을 짖누르듯 덥쳐왔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후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인터넷 기사로 대한민국은 감정과잉 시대 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이야기들은 울고 있거나 화내고 있거나, 환희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뭐 대충 그런 것 같다. 워낙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그런 감정과잉의 이야기에 둘러쌓여있었기 때문일까?

이 작품의 잔잔함은 어떤 자극보다도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강한 힘이 되어 에타의 여정을 따라가게 했다.

 

간절히 바랬던 엔딩은 아니였지만

(어떤 엔딩을 바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해피엔딩을 원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어떤 엔딩이 해피엔딩인지는 모르겠다...

 아.... 왜 이제, 슬퍼지지...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그들의 시간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놀라운 건 현재의 에타와 오토와 러셀은 우리가 부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였다는 것이다.

과거 어린 시절의 그들을 모습을 함께 보면서 현재의 그들을 봐라봐서일까?

현재의 그들은 여전히 섬세하고, 연약하고, 여전히 확실하지는 않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 아마도 나의 어머니, 아버지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나이를 먹게되는 미래의 나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늙은 육체 안의 여전히 미성숙한 영혼을 내 보일 수 있는 상대와 나는 그 때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에타와 코요테 제임스와의 길 위에서의 대화가 참 좋았다.

그 순간에 필요한, 계산이 필요하지 않은 담백했던.

코요테 제임스가 에타의 또다른 자아가 아니였을까 하는 추측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담백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어쩌면 그 누구와도 아닌 나와.

 

p.317

브라이어니, 당신의 이야기는 뭔가요?

전 이야기가 없어요. 그게 문제죠.

하지만 분명 있을 거에요.

정말로 없다니까요.

겹겹이 쌓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밑에 분명 당신 이야기도 있어요.

아마 잊어버렸을 거예요.

아니면 너무 밑에 깔려서 닿지 않거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잘 생각해봐요. 그리고 기억나면 말해줘요.

 

 

사실 에타와 오토와 러셀의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을 함께 살아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비슷한

혹은 더 아프고, 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담담히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겹겹이 쌓여있던 많은 이야기들 밑에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길을 떠나고, 기다리고, 따라나섰던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줄거리를 전달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는 느낌이다.

사실 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 사랑, 엇갈리는 선택, 상처, 고통....

하지만, 에타와 오토와 러셀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순간에 그들이 느꼈던, 바라봤던, 사랑했던 것에 대한.

그러니 이런 글로 전달한 방법이 없다.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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