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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배를 엮다의 작가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픽.
받아본 책이 너무 이뻐서 기쁨 두배!
아직 어두운 새벽녁의 푸르스름 속에서 제 빛으로 빛나는 세밀한 식물들.
그 속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보이는 실험도구가 인간이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반짝반짝인다.
차가운 듯 하지만
은은하게 품고 있는 빛의 여운이 사랑 없는 세계가 얼마나 따뜻한지를 예고하는 것 같다.
식물학 실험실의 이야기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소년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요리로의 길을 파이팅 넘치게 내달리는 청년
후지마루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사랑 없는 세계.
좋은 가게임은 틀림없지만 엔푸쿠테이의 2층에서 기거하며 눈
뜨고 가게일을 시작하고 가게일이 끝나면 2층으로 올라와 잠들어 버리는 것 뿐인 일상에
아무런 불만이 없을 뿐더러 더욱 요리의 길에 매진하고자 하는
보기드문 성실과 열정을 지닌 후지마루의 삶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도 잠시.
가게 앞 대학의 연구실로 배달을 가서 만난 모토무라를 비롯한 연구실 사람들의 생활 또한 대단하다.
특히나 모토무라는 식물의 기공 무늬나 버섯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며
(읽으면서는 나도 그게 뭐 그렇게 특별한가? 했는데 성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온통 애기장대 생각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반해버린 후지마루.
모든 관심과 애정이 식물을 향해 있는 그녀에게 인간의 애정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알려주고 싶지만... 스포니까... 참아본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정말 좋은데,
일단 식물학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다.
일본식물학회에서 "식물연구 활동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통해 일반 사회에 식물학을 잘 알렸다." 며 특별상을 받았을만큼 차분차분한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이해했는지 여부를 따지지말자.) 뭐가 식물학에 대해 알아버린 것 같아진다. 어떤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아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이 작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사전 편찬 때도 그랬지만, 얼마나 공부하고 인터뷰를 한 걸까?
단지 알아본 정도로는 이렇게 못 쓸 것 같은데...
그리고, 또 하나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좋은 사람들에 대한 묘사다.
후지마루의 식당의 단골 손님과 대장. 대장의 연인.
많은 분량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전해지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모토무라 실험실의 개성넘치는 연구자들 또한 매력이 넘치는데
그중에서도 연구실 대장 마쓰다가 처음부터 넘 마음에 들었었다.
아, 마쓰다의 예전 동료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펑펑 울었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진행되어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지
스스로도 당황스러울만큼 서럽고 안타까워 한참을 울어댔다.
(영상화된다면 이 장면, 어떻게 풀어낼까? 어떤 배우로든 만족할 자신이 없다. 크흑.
나는 마쓰다에게 반해버렸다. 크흑...
가공인물을 사랑하는 이 사랑없는 세계라니... 크흐흑)
후일담이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은 독특한 작품.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이후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ㅎㅎㅎㅎ
참 좋은 책이다.
온기가 넘치는 사랑 없는 세계로 어서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