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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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읽기에 수월하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로 구성된 본문은, 뭔가 이해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손녀의 칼같은 질문들 덕에 할아버지의 설명을 무리없이 이해하며 읽어갈 수 있다. 주변에서 읽을 작정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주저마시고 잡아보시길.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그리고, 저자의 전작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 대해

저자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을 장악한 소수의 지배자들 - 세계정부의 끝이 없는 탐욕.

그리고, 그 탐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본주의라는 논리.

자본주의란 자연스러운, 통제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잘못된 사상.

등을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읽고 있다보면

좀 정말적이다. 결말에서 결국은 인간의 역사는 곪아버린 자본주의의 두 팔을 부러뜨리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려주지는 못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그 날이 나 죽기전에 오지 않더라도

눈돌리지 말고, 의식의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운이 좋았던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p. 52

자본주의자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토대가 되는 사유 재산권이, 다른 이들도 아닌 자코뱅파에 의해 신성불가침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재앙이 시작된 거야. 그건 오늘날까지 대단히 집요한 방식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으니 말이야.

p.104

네가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자라나건, 스위스의 슐렉스가 되었던 방글라데시가 되었건, 군도의 부유한 섬이건 낙후한 섬이건 상관없이 자본주의 체제가 너의 실존을 결정짓는 거야.

p. 143

프랑스를 예로 들면, 5명의 억만장자가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의 8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어. 그러므로 사실상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희생자들에 관한 너무 충격적인 정보는 집단의식에 도달하기도 전에 걸러지는 게지.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일로 67개 국적을 가진 2,977명의 남녀노소가 범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어. 이 비극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집단의식 속에 뚜렷하게 아로새겨져 있지.

그런데 말이다, 같은 2001년 9월 11일 남반구에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10세 미만 어린이 3만 5,000명이 기근 또는 그로 인한 우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단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어.

P.152

세계주의자들이 악착스럽게 부를 축적하는 데에는 탐욕 혹은 지배욕 같은 단 하나의 동기만 작용할 뿐이거든. 이들은 이웃이나 경쟁자보다 더 많은 부를, 더 큰 자본을 쌓겠다는 일념 하에 움직인다는 말이야. 무제한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광기 앞에서 재화의 사용 가치 따위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단다.

P.158

'소외'의 역할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정체성을 파괴하고, 그에게서 자유 의지와 자유롭게 생각하고 저항할 역량을 빼앗는 거야. 요컨대 각 개인을 상업적인 기능만으로 축소 시키는 거지.

P. 161

이 할아버지는 민중의 소극성, 즉 자본주의자 계층의 거짓말에도 기꺼이 복종하는 그 소극성에 분노하는 거란다.

P.170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리고 너의 세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파괴이며 그것의 극복이란다. 보다 인간적인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자들이 누리는 특혜와 무소불위의 권력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져버려야 하지. 마치 과거에 귀족들의 특혜와 권력이 그렇게 되었듯이 말이야.

완전히 다른 것, 유토피아에 대한 욕구가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단다.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가치의 지평이야.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우리의 행동 규범을 만들어가야 해.

P.176

조라야, 다시 한 번 거듭 말하거니와 자본주의 체제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평화로운 가운데 개혁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려야만 한다고.

P.184

전혀 모른단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세대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를 희망할 수 없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런 전망을 하는 내 마음속엔 하나의 확신이 있지. 개개인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믿음 말이다. 나의 소망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말한 확신을 자양분으로 삼는단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절대 좀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가야할 길이 있음을 강력하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밝은 눈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지.

그런데, 이 책이 시공사에서 나왔다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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