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현대사 -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
김동철.김문성 지음 / 책갈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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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87년 6월항쟁 34주년입니다.
6월 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지만 6월항쟁은 어느 날 갑자기 분출한 항쟁은 아니었습니다. 6월 항쟁은 그 전의 크고 작은 투쟁들이 누적돼 온 결과였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은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은 정치적·조직적으로 단단해졌습니다. 전두환 독재 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노동계급은 끈질기게 저항했고 학생운동도 점차 성장하며 시위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결국 전두환은 대중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1983년 유화조처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화조처는 도리어 투쟁할 자신감을 높였습니다. 학생들은 전국적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증가했습니다. 그런 상황은 1985년 2월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다시 노동자와 학생들의 저항 정서를 더 고조시켰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유화조처가 먹히지 않고 오히려 저항이 더 거세지자 다시 탄압을 강화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도 발생한 것입니다.
한편 80년대 경제호황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정권의 핵심부와 연결된 부패문제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1986년 필리핀에서 대중적 저항으로 독재자 마르코스가 쫓겨난 것도 남한 대중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중운동이 독재자를 굴복시키다

6월 10일 거리에서는 60년 4월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경찰은 무장해제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이 아예 진압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6월 18일과 26일에는 6월 10일보다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 투쟁을 실제 전진시킨 것은 주로 학생과 노동자 등 거리의 대중이었습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6월항쟁 기간 내내 동요하며 일관되게 투쟁을 이끌고 나갈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결국 대중운동의 전진 속에서 전두환 독재 정권은 굴복했습니다.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받아들여졌습니다.
투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6월항쟁은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제기됐고 6월항쟁의 성과도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7~9월 사이에 벌어진 파업은 1987년 이전 20년 동안 발생한 전체 파업건수를 능가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능동성과 자신감은 빛을 발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6월항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6월항쟁을 ‘계승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1987년 당시 동요하는 야당과 달리 청년 학생과 노동자들이 거리와 작업장에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6월항쟁의 성과가 반동으로 파괴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6월항쟁과 뒤이은 7~9월 노동자 투쟁은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 쟁취뿐 아니라 자유와 해방을 향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었습니다. 6월 항쟁은 오늘날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자본주의 사회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기억하고 배워야 할 역사인 것입니다. 6월항쟁을 명확하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추천합니다.

👉[기사] 항쟁에 참가한 사회주의자에게서 듣는 1987년 6월 항쟁: “6월 항쟁은 우리의 역사로 삼아야 할 위대한 계급의 기억” https://wspaper.org/must-read/19894
👉 [기사] 1987년 6월 항쟁 30주년: 교훈과 오늘날의 의미 https://wspaper.org/article/18782
👉 [책] 《최근 한국 현대사》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됐냐고? 궁금한 청년들 주목! https://stu.workerssolidarity.org/a/8121
👉 [영화] 새 세대도 1987년 저항의 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1987〉 https://wspaper.org/article/1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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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이후 경제는 살아날까?
https://wspaper.org/m/25703

다음은 5월 9일(현지 시각)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주최한 ‘맑시즘 온라인 2021’에서 열린 같은 제목의 토론회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와 SWP 중앙위원이자 혁명적 좌파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인 조셉 추나라가 한 강연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 ] 안의 내용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녹취를 해 준 한가은 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이클 로버츠 — ‘반짝’ 회복인가, 지속적 회복인가, 누구의 회복인가?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고 서비스 산업 등에서 고용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 해도 자본주의가 새로 활기를 얻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에 찾아온 ‘광란의 20년대’ 같은 대호황이 온다고 기대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다른 모든 조건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능성 큰 시나리오는 정체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즉, 낮은 성장률, 낮은 물가상승률, 더딘 고용 증가, 낮은 임금이 계속되고 코로나19 직전 상황과 진정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조셉 추나라 — 삼중 위기와 자본주의의 장기적 변화

그런데 이러면 수익성 낮은 투자가 정리되지 않고, 부채 부담이 체제 전반에 쌓이게 된다.

요컨대, 같은 패턴이 되풀이될 것이다. 경기가 침체하고, 좀비 기업이 양산되고, 자산 거품이 일고, 금융이 불안정해지고, 부채가 늘어나며, 자본이 노동자들을 더한층 쥐어짜 불평등이 심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진정한 대안은 고삐 풀린 이윤 추구가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필요에 기초한 새로운 경제를 쟁취하기 위한 우리 편의 투쟁뿐이다.

출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유튜브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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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
https://wspaper.org/m/25702

이 글은 6월 4일 노동자연대가 연 온라인 토론회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이다.

파시즘의 독특함

본론에 앞서 다른 종류의 극우와 구별되는 파시즘의 독특함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만큼 개념에 혼란이 많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극우의 일종이지만 그것과 구별되는 특수한 종류의 극우로 중하층 중간계급에 기반한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첫째, 파시즘 운동은 통상의 극우와 사회적 기반 면에서 차이가 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을, 즉 영세 상공인이나 전문직 등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때문에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극도로 모순된다.

둘째, 실천과 사회적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군부독재를 제외하면) 여느 극우 정치인들이 의회제 안에서 극우 정책 채택을 목표로 한다면, 파시즘은 의회제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고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모조리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시즘은 이를 통해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셋째, 형태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령 극우 정치인들은 우파 엘리트 정당을 통해 활동하고 우익 군사 쿠데타의 경우에도 군 장성들만이 관여하는(사병을 명령으로 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파시즘은 집권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도 그런 운동에서 생겨난다.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이 부상하게 된 배경은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경제 위기다.

2008년 금융 공황은 그전 수십 년 동안 득세해 온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여 줬는데, 각국 지배자들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과 기업들은 살리고 그 대가를 서민과 노동계급에게 떠넘겼다.

나라마다 구체적 양상은 다르지만, 10년의 궤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위기의 발생 → 중도 좌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긴축 추진 → 저항과 반란의 분출 → 정치적 급진화와 양극화 → 좌파 개혁주의가 성장하거나 우파가 집권하던 곳에서는 중도좌파가 반사이익을 얻음 → 운동의 패배, 좌파 개혁주의나 중도좌파의 실패(또는 배신) → 극우와 파시즘의 성장.

오늘날 극우의 특징: 고전적 파시즘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즉,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그 때문에 생겨난 대중적 울분과 좌절감을 먹고 자라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또, 그렇게 자라면서 공식정치의 지형을 더욱 오른쪽으로 옮기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1920~1930년대와 달리 지금은 계급투쟁이 강력하지 않고, 그래서 좌파 일반과 혁명적 좌파가 약한 상황에서 극우가 성장한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이 때문인지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노동계급의 저항과 혁명 그리고 좌파에 반대하는 반(反)혁명적 요소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선전에서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이 둘째 차이점이다.

셋째 차이점은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서는 그 선조들과 비교해 선거에 출마해 지지를 얻는 방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도 ‘우리는 선거로 집권한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치당은 수십만 명 규모의 돌격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숨기지 않았고 그 힘을 거리에서 사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과 뒤이은 혁명 물결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정치 폭력이 난무했다. 특히 참전 경험 때문에 폭력 사용이 익숙한 인자들이 많았다. 고전적 파시즘 운동은 바로 그런 인자들에서 초기 간부를 구했다.

넷째 차이점은 오늘날의 극우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만에서 수혜를 입고 있지만 뚜렷한 경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생산이 상당히 국제화돼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물론 유럽의 극우는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을 주장하고, 미국의 트럼프는 주로는 중국과, 그리고 심지어는 동맹들과도 관세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 외에는 불신받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무솔리니는 집권 후 국가자본주의로 선회했고, 히틀러도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히틀러는 자신을 오랫동안 후원했던 기업을 몰수해서 국유화해 버리기도 했다.

셋째 차이점과 넷째 차이점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 우파와 극우, 파시즘 간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흐려 보인다.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거리를 두려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주류 우파의 우선회가 극우·파시즘에게 성장의 토양을 제공하는 식의 상호작용, 극우·파시즘의 지도자들과 기층 운동의 상호작용은 진정한 파시즘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가 파시스트가 아닌데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극우와 파시스트를 한껏 고무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지지 기반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미국의 백인 하층 노동계급이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라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트럼프의 계급적 기반은 미국의 “룸펜 자본가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과 달리 주로 미국 국내 시장에서 영업하는 자본가들이다. 지난해 중반에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의 25퍼센트가 요양병원에서 나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미국 요양병원 체인 기업이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 세력이었다.

1월 6일 의사당을 습격했던 무리들도 대체로는 유복한 전문직들이었다. 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들의 40퍼센트는 기업 경영주이거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였고, 60퍼센트는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을 탈세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것은 수동적 지지이고 상대 후보가 너무 별볼일없는 등의 매개 요소들이 많이 작용한다. 트럼프가 많은 표를 얻은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수동적 투표 행위와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회세력에 기반을 두고 반트럼프주의 운동(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을 구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주장한 공동전선이다.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서구의 극우가 인종차별과 이슬람혐오를 주력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서구에서는 그에 맞서는 게 중요할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며 대중의 삶을 파괴해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할 토양을 마련해 온 중도파와는 단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도파와 연계하는 것이 선거에서는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어도(심지어 입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둘째는 혁명적 좌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과 실패 경험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선거와 투쟁의 관계 문제다. 모든 선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선거적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것에 종속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른바 ‘정치’로 대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노동계급 운동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목표들을 달성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좌파가 있어야 공동전선도 효과적일 수 있다. 갈수록 혁명적 좌파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 등의 집권은 그 나라 국민의 우경화를 보여 주는가?

올해 4월 한국의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했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이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 배신이 불러 온 환멸과 분노가 굴절되게 표현된 결과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트럼프가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것도 그 사회가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트럼프 집권 직후에 성차별에 반대하는 대중적 시위가 벌어졌고, 2020년에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전임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반사이익을 얻어 집권했다.

프랑스는 좌파가 꽤 강력한데도 파시즘이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황의 불가피성보다는 좌파의 주관적 약점이 더 두드러진다. 첫째는 프랑스 좌파들의 종파적 태도와 공동전선 전통의 부재다. 예를 들어, 2009년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창당은 큰 성공을 거뒀다. NPA는 혁명적 좌파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중심이 돼, 활동적인 반자본주의자들을 끌어들이며 탄생했다. 기존에 LCR의 당원이 2000명이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의 창당대회 때 당원은 9000명이었다.

한편, 사회당에서 좌파적으로 이탈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 장뤽 멜랑숑과 공산당이 중심이 된 좌파전선도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고 있었다. 좌파전선의 정치는 전체로 보아 좌파적 개혁주의였다. NPA는 좌파전선과의 협력이나 공동 활동을 거부했다. 사회당 정부의 긴축과 마린 르펜의 성장에 맞서 공동으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밖에도 프랑스 좌파와 노동조합들은 노동절 집회도 따로 개최하는 등 협력을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

둘째는 이슬람혐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법률로 금지하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슬람혐오가 인종차별의 일종이고 이에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결과인데, 이는 세속주의(라이시테)와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도 소수이지만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는 혁명적 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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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로사 해결 외면하는 정부와 사용자: 택배 노동자 투쟁 정당하다
https://wspaper.org/m/25713

지난 1월의 1차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충원을 미적거렸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파업 돌입 직전까지 가 일부나마 이행하게 한 바 있다. 일부 터미널에서는 1차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현장 투쟁을 벌여 분류 인력을 받아 내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보여 준 이런 투쟁 잠재력을 이번 투쟁에서 적극 발휘해야 실질적인 조건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지 여론도 나쁘지 않다.

다시 시작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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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과 여러 상품을 택배로 배송받은 처지에서 파업에 따른 불편을 감수할 것입니다.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긴다면, 택배노동자들의 일할 맛이 더 나서 안전하게 상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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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에서의 기억


아픈 기억이 많아 잊으려 했는데, 최근 화산 폭발 소식을 들으며, 이 상황이 콩고 주민들에게 끼칠 영향 등을 생각하니 다시 그곳의 일들이 걱정과 함께 떠오른다.

지친 심신으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밴쿠버 남쪽 화이트락에서 약간 평안하게, 그리고 적당히? 봉사하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살고 있었다. 

한국에는 이명박의 폭정이 있었고, 염려하고 기도했었다.

조국은 어려운데, 나름 평안을 누리고 사는 것이 죄스럽고 무거워지던 즈음, 친구가 찾아와서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직접 가서 보고 판단을 하자 해서, 밴쿠버-서울-홍콩-요하네스버그-루붐바시-콜레주-키산카라 등을 거쳐서 아마도 키산푸라라고 불리는 코발트와 구리를 채굴하는 광산마을에 도착했다.

광산 입구에 물과 함께 쌓여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과 거기서 뒹굴며 무엇인가를 먹고 있던 돼지들. 호텔 간판을 따라 들어가 보니, 값싼 비닐로 사방을 가리고 하늘은 뚫려 있던 호텔방. 많은 이질적인 상황이 지속되던 중, 광산 후문 근처에서 팔이 하나만 있는 장애 여성이 불편한 몸으로 마대 자루 속 뭔가를 강물에서 씻고 있었고, 근처에 메케한 담배를 피우던 자는 한 손에 코발트 중량 체크를 하는 GUN을 들고 있었다. 

광산에서 코발트를 채취하면, 좋은 광물의 경우, 3~7% 정도 코발트 비중이 나오는데, 수작업으로 마대 자루에 광물을 넣고 흐르는 물에서 계속 흔들어 씻으면 중량이 가벼운 물질은 물에 씻겨가, 그 작업을 길게 할수록 코발트 비중이 올라간다고 했다.(많은 양은 기계식 세척기를 이용한다.) 여기서 모아진 마대들을 건조시켜 1톤 자루에 넣고, 수십 톤 용량의 덤프에 실어 잠비아 국경, 인도인들이 운영하는 거대한 황산 저수조로 이동하고, 수일간 아주 독한 산으로 세척해 코발트 비중을 20% 중반으로 올려 탄자니아 등을 거쳐 중국 상해 남부 도시에서 재가공하고, 국내기업의 몇 차례 공정이 추가되면 테슬라 등의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로 바뀌게 된다.

다시 담배 피우던 자의 GUN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아무리 노동자가 강물에 세척을 오래한다 해도, 비중이 높아지지 않도록,(비중이 높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거의 최저로 체크되도록 야바위 짓을 해두었다. 여러 가지 열악하고 기만적인 상황을 보고서, 아! 아프리카 광산마을에 와있으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밴쿠버로 돌아가 가족들의 반대를, 국내에 들어와 형제들과 친구들의 반대를 뒤로한 채, 천당 직전의 소위 999당이라 불리는 벤쿠버에서 어쩌면 인간 세계 중 가장 열악한 삶의 장소로 들어갔다.

우선 현지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미국인과 협의해서 광산 입구에 두 개의 컨테이너를 구했고, 의사를 채용해 병원을 개설했고, 매달 2,500불 정도의 약을 사서 무료 진료와 무료 처방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당액을 들여서 광산을 인수하고, 인수 반대를 하는 노동자들과 협상을 해서 체불임금과 고용승계 등을 해결하고 광산 재가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전기차 등의 대용량 배터리 소요가 적었고, 핸드폰 등 충전해서 사용하는 형식의 2차 전지 소재로 쓰이던 시절이어서 런던 광물시장 등의 코발트 국제 시세는 낮았다. 광물공사와 자원개발 기업들이 몇 차례 현장을 다녀갔고, 광산의 평가금액이 크게 올라가니 어려움이 찾아왔다. 언제나 돈 되는 자리와 돈 있는 현장은 또 다른 아픔이 온다. 콩고 남단 키산푸라 광산도 그랬다. 무능하고 낭만적이던 사장은 돈과 건강 잃고, 크게 망가진 상태로 그 흔한 표현,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인류 조상의 출현지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언어와 감정과 습관이 있다. 헌데,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 비스마르크 등이 편의적으로 국경을 분할해서 열강의 식민지로 각국에게 분배한다. 광복 후 한반도의 인위적 분단이 그랬듯이, 인위적 국경 분할이 아프리카 현대사에 숱한 전쟁의 촉발점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는 비용 지급이 필요치 않을 정도의 값싼 노동력이 있고,(광산에서 3달러를 받는 1일 노동이 있다 하면 교사는 아이들의 수업을 포기하고 광산에 간다.) 자원과 생태가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홍콩을 출발해서 아프리카를 가던 비행기는 만석이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는 텅 비었던 장면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듯하다. 유럽이 그리고 미국이 지금은 중국이 더 깊숙한 오지 더 낮은 바닥 시장까지 점해가고 있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유일신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첼시 소속의 드록바라는 아프리카 출신의 선수였다. 드록바가 출전하면 아프리카는 숨을 멈춘다. 드록바가 골을 넣으면 온 마을, 온 도시가 괴성과 장단과 경적을 울리며 춤춘다. 그 조심스럽고 소박한 큰 눈에 두려움을 담고 살던 이들이 미친 듯 열광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공감도 되고, 두렵기도 했었다. 

여성 장애 노동자의 코발트 비중을 체크하던 GUN은 문명인가? 수탈의 도구인가? 우리가 쓰는 핸드폰을 비롯한 재충전해 쓰는 편리한 도구들은 그들의 눈물과 땀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콩고민주공화국 루붐바시 공항에 내리면, 광산에서 채굴된 코발트를 잠비아 국경의 인도인 소유의 황산 세척장으로 옮기는 덤프트럭 회사의 영국군 출신 관계자들이 나와서 르완다에 인접한 북동부 고마 인근의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커피를 끓여 주곤 했었다. 콩고를 재입국할 때는 두려웠지만, 고마의 커피가 주는 천상의 맛은 마약처럼 두려움을 떨치게 했다.

지금 그 고마 인근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많은 주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픔 위에 아픔이 더해진 이들을 염려하고 기도한다.

길목인, 여는 글을 숙제로 안고 있다가 콩고의 화산 폭발 기사를 보고 아프리카 시절의 단상을 쓰려고 기억 소환을 위해 콩고, 코발트 등을 검색해 보니, 코발트 시세는 비트코인 보다 더 올랐고, 세계 1위인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 코발트 광산 지분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아픔을 겪어서 그런지, 가족과 형제와 공동체가 있는 곳이 좋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아픔을 적지 않은 기간 목도했고 그 아픔이 아른거린다. 세상은 어디든지 각양의 아픔을 안고 구르는 것 같다. 

모두에게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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