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모순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만드는 결과, 뮬란이 맞섰던 여러 소수민족 역시 ‘중국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오홍레이와 같은 일부 중국 지식인들은 평범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쓴 <절반의 중국사>(김선자 옮김/ 메디치 펴냄/)에서 고대의 북방 유목민족들이 세운 나라들인 몽골제국과 그 외에 소수민족이 세운 요, 금, 청 등을 ‘자랑스런 중화민족’의 역사로서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의 독립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역사 해석이 한족 영웅들의 역할을 ‘비하’한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영화 보이콧 운동이 소수민족 문제 해결과 홍콩 항쟁 참가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마르크스주의”가 인도와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마르크스는 물론, 스칸디나비아 노동자계급 운동의 단결을 도모하고자, 노르웨이 독립을 막으려는 스웨덴 지배계급에 맞서서 노르웨이 독립을 지지한 스웨덴 노동자계급 운동을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레닌이 발전시킨 “마르크스주의”하고도 관련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http://www.gilmokin.org/board_QbBH35/12373

9월에 쓴 글(아래 참조)을 사회적 협동조합 길목에 기고했습니다.

[북플] 영화 <뮬란>과 중국 소수민족 문제
최근에 중국 남북조시대 때 북방 유목민족에 맞선 한족 여성의 야사로 중국과 대만에서 드라마로도 널리 제작된 <화목란(화무란)>가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영화제작사 ‘월터 디즈니’(메카시즘이 한창이던 시절, 훗날 대통령이 되는 레이건과 함께 헐리우드의 진보적인 영화 배우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자... 계속읽기
https://bookple.aladin.co.kr/~r/feed/44815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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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9일 현재 28번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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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몸무게 재보니 69kg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걸어다니고, 공원 운동기구 이용하다 보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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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9-29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했군요? ㄷㄷ

김재원 2020-09-29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음과 운동 부족으로 73kg 정도였다가 4월부터 산책과 버스나 지하철을 잘 안 타고 이동하고. 공원 운동기구를 이용하다 보니 살이 많이 빠졌네요.

NamGiKim 2020-09-29 18:52   좋아요 1 | URL
훌륭합니다. 👍👍
 

공유합니다

[북플] (이 글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반전운동에 나섰던 리영희 교수의 연설문입니다.)
평화 국가의 위상이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시각, 며칠 동안 계속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모처럼 갖지 못했던 귀중한 이 기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박관용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경고하고 아울러 간곡히 부탁하겠습니... 계속읽기
https://bookple.aladin.co.kr/~r/feed/4492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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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차승일 옮김 / 책갈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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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992년 로스앤젤레스: 인종 폭동이 아니라 계급 반란

여러 면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로스엔젤레스 반란에는 여러 인종이 참여했다. - P101

민주당 캘리포니아 지부의 지도자이고 주의회 의장이고 흑인(101쪽)인 월리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 "(중략) 미국 사람 역사상 처음으로 온갖 시위와 폭력 행위와 범죄에, 무엇보다 약탈에 여러 인종이 가담했다." 반란 초기에 체포된 시위대 5000명 중 52퍼센트는 라틴아메리카계였고, 10퍼센트는 백인이었다. 38퍼센트만이 흑인이었다. - P102

이 반란에 여러 인종이 참여한 것은 레이거노믹스와 1990년에 시작한 경기 침체의 침체의 영향이었다(레이거노믹스는 1980년에 레이건 정부와 부시 정부가 펼친 경제 정책으로, 부와 소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이전시키려 한 체계적 시도였다. (중략) 한때 호황을 겪던 캘리포니인 경제는 1990년 침체에서 특히나 큰 타격을 입었다.) - P102

그런데도 로스엔젤레스 반란을 다루는 언론 보도는 하나같이 약탈자들과 한국인 상인들의 대결에 주목했다. 이 갈등은 미국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여러 인종으로 이뤄진 사회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쉽게 이용됐다. - P103

마이클 데이비스는 아시아계 상인을 일컬어, "가난한 라틴아메리카계와 흑인의 켜켜이 쌓인 불만을 한 몸에 받는 피뢰침"이라고 부른다.
- P107

데이비스는 반란이 시작된 4월 29일의 사흘 전에 휴전협정을 맺은 유명한 흑인 폭력배 크립스와 블러즈가 의도적 정치 전략의 일환으로 로스엔젤레스 중남부의 한인 상점들을 공격한 것일 수 있다고 시사한다(이곳 한인 상점은 반란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90퍼센트가 파괴됐다).(108쪽) - P107

그 문제의 원흉은 캘리포니아주 남부 경제를 지배하는 국내외 대기업인데, 그에 대한 분노가 자본과 노동 대중 사이에 낀 중개인 계층으로 향한 것이다.(109쪽) - P108

이 문제는 단지 로스엔젤레스 반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 P109

때로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로스엔젤레스 한인 상인처럼 중개인 구실을 맡기도 한다.(영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아시아계 상인이 그런 구실을 한다.)(110쪽) - P109

그런 갈등이 일어나면 공격이 주적을 비껴가게 된다. 인종이 아니라 계급을 출발점으로 삼는 전략만이 차별받는 집단의 단결에 필수적인 토대를 놓을 수 있다. - P110

한인 상인들의 곤경을 다룬 언론 보도 일부는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었다. 첫째, 한인 상인들과 갈등을 겪은 것은 흑인들이라기보다는 로스엔젤레스의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사회학 교수이자 언론인인] 피터 퀑이 지적했듯이, "(중략) 가장 심각한 피해는 로스앤젤레스 중남부의 북쪽에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곳은 가난한 라틴아메리카계가 많이 거주하는 지석이다."
게다가 한인 상인들은 로스엔젤레스의 계급 구조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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