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차승일 옮김 / 책갈피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장 1992년 로스앤젤레스: 인종 폭동이 아니라 계급 반란

여러 면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로스엔젤레스 반란에는 여러 인종이 참여했다. - P101

민주당 캘리포니아 지부의 지도자이고 주의회 의장이고 흑인(101쪽)인 월리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 "(중략) 미국 사람 역사상 처음으로 온갖 시위와 폭력 행위와 범죄에, 무엇보다 약탈에 여러 인종이 가담했다." 반란 초기에 체포된 시위대 5000명 중 52퍼센트는 라틴아메리카계였고, 10퍼센트는 백인이었다. 38퍼센트만이 흑인이었다. - P102

이 반란에 여러 인종이 참여한 것은 레이거노믹스와 1990년에 시작한 경기 침체의 침체의 영향이었다(레이거노믹스는 1980년에 레이건 정부와 부시 정부가 펼친 경제 정책으로, 부와 소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이전시키려 한 체계적 시도였다. (중략) 한때 호황을 겪던 캘리포니인 경제는 1990년 침체에서 특히나 큰 타격을 입었다.) - P102

그런데도 로스엔젤레스 반란을 다루는 언론 보도는 하나같이 약탈자들과 한국인 상인들의 대결에 주목했다. 이 갈등은 미국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여러 인종으로 이뤄진 사회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쉽게 이용됐다. - P103

마이클 데이비스는 아시아계 상인을 일컬어, "가난한 라틴아메리카계와 흑인의 켜켜이 쌓인 불만을 한 몸에 받는 피뢰침"이라고 부른다.
- P107

데이비스는 반란이 시작된 4월 29일의 사흘 전에 휴전협정을 맺은 유명한 흑인 폭력배 크립스와 블러즈가 의도적 정치 전략의 일환으로 로스엔젤레스 중남부의 한인 상점들을 공격한 것일 수 있다고 시사한다(이곳 한인 상점은 반란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90퍼센트가 파괴됐다).(108쪽) - P107

그 문제의 원흉은 캘리포니아주 남부 경제를 지배하는 국내외 대기업인데, 그에 대한 분노가 자본과 노동 대중 사이에 낀 중개인 계층으로 향한 것이다.(109쪽) - P108

이 문제는 단지 로스엔젤레스 반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 P109

때로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로스엔젤레스 한인 상인처럼 중개인 구실을 맡기도 한다.(영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아시아계 상인이 그런 구실을 한다.)(110쪽) - P109

그런 갈등이 일어나면 공격이 주적을 비껴가게 된다. 인종이 아니라 계급을 출발점으로 삼는 전략만이 차별받는 집단의 단결에 필수적인 토대를 놓을 수 있다. - P110

한인 상인들의 곤경을 다룬 언론 보도 일부는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었다. 첫째, 한인 상인들과 갈등을 겪은 것은 흑인들이라기보다는 로스엔젤레스의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사회학 교수이자 언론인인] 피터 퀑이 지적했듯이, "(중략) 가장 심각한 피해는 로스앤젤레스 중남부의 북쪽에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곳은 가난한 라틴아메리카계가 많이 거주하는 지석이다."
게다가 한인 상인들은 로스엔젤레스의 계급 구조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