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의 책 소개 : 제3세계의 붉은 별 | 비자이 프라샤드 저, 원영수 역 | 두번째테제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1991년 소련 해체와 소련 다음으로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로 자임하던 중국의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 그래서 소련과 중국 등을 대안으로서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던 우리 한국의 운동가들 중에서도 ‘사회주의 담론’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담론이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을 대신한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의 종교 갈등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은 설령 자본주의에 맞서는 혁명에 반대할 지라도, 자본주의의 고유의 문제점인 이윤지상주의가 낳는 빈부격차와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대립은 여전했다. 특히 공산주의의 대안으로서 옛 동구권과 중국에서 실시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옛 공산당원이었던 기업가들과 이들과 연관된 정치인들에게 새로운 돈벌이를 가져다주었을망정, 공산주의 시절에 “하향평준화”이나마 보장했던 사회보장제도조차 없애거나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멸감을 더욱 더 일으켜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2009년에 국립 경상대학교의 정성진 교수와 정진상 교수 등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상대 대학원 정치경제학과가 세워지기도 했다.

인도의 비자이 프리사드도 미국 트리니티대학교 남아시아 역사학 교수였다가 현재 인도에서 출판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쓴 『제3세계의 붉은 별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3세계”로 불리는 여러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비록 이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역자인 원영수는 러시아 혁명이 식민지 조선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훗날 인도의 지도자가 되는 네루가 1927년에 자신의 조국인 인도와 마찬가지로 농민국가인 소련의 빈곤이 생각보다 적고, 구두닦이 아버지를 둔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인 스탈린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혁명 러시아의 지도자란 점에 놀랐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토착화 정책’으로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현지 소수민족 언어를 발전시킬 때 인도의 문자해독률은 영국에게 식민 지배를 받은 2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12퍼센트에 머무른 점을 지적한다.(66-68쪽)

이렇듯,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는 기존의 러시아 제국이 펼친 제국주의 정책을 완전히 청산하고, 피지배 소수민족 자결권을 분명히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문맹 타파 등 교육 문제, 낙태 합법화와 이혼의 자유 등의 여성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러시아 제국이 지배하던 중앙아시아인 ‘투르케스탄(투르크인들의 땅)’은 볼셰비키의 이러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지역이었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 중에는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동시에,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볼셰비키는 이들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대러시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지 투르크인 소수민족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이슬람 근대화 운동인 자디드 운동이나 투르크인들의 단결을 주장하는 범투르크주의를 받아들였던 중앙아시아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를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러시아인의 대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근대적 잔재를 없애고 근대화하기 위해 활동했다.(73-80쪽)

그리고 볼셰비키는 서방뿐만 아니라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잘 이끌기 위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만들었고, 동시에 교육기관인 동방노력자대학을 설립했다. 그 결과 러시아 동방노력자대학에서 공부한 베트남인 호치민이 프랑스 공산당 창립에 기여하고, 인도인 로이가 멕시코 공산당의 창건자가 되는 등 서방 식민지인 제3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펼친 활동도 자세히 설명한다.(83-91쪽)

그런데 이 책은 여러 장점이 있음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먼저 레닌 사후 러시아의 지도자가 된 스탈린은 트로츠키와 부하린 등 자신의 반대파들을 암살하거나 러시아에서 추방했다. 훗날 어떤 이는 “레닌조차 스탈린이 권력을 확고히 잡았던 시기에도 살아있었다면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때 소련의 중앙아시아 공화국 지도자들조차 대부분 스탈린의 민족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라는 이유로 대규모로 처형당하고, 레닌 시기에 보장된 이슬람교 교육과 샤리아(종교 법정)조차 폐지하면서, 이슬람교 성직자들에 대한 탄압이 거세졌다. 그리고 이슬람의 전근대적 관습 타파를 이유로 베일 착용 금지운동인 ‘후줌’을 무리하게 조직해서 이슬람 사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122쪽)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머물던 제3세계 공산주의자들조차 대규모로 학살, 유배를 당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한 공산주의자들을 소련의 국방수비대로 만들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 터키 등 공산주의를 두려워한 지도자들이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자신들의 목표가 성공한 후에 그들을 도운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기도 했다.(93-98쪽) 게다가 스탈린이 잠시나마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 때문에,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던 인도의 일부 공산주의자들을 환멸감에 빠져서 일본의 지원을 받아서 “인도 해방군”을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스탈린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고, 별로 비판적이지도 않다. 일부 주민들은 중국 신장으로 도망가는 일을 초래하고, 소수민족에 대해 편견을 가진 러시아인들을 우대했기에 러시아화이기도 했던 중앙아시아 지역의 현지화 전략도 유목민 등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시킨 근대화운동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후줌도 반발을 산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여성인권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규정하며 스탈린을 방어한다.

그런데 저자의 이러한 입장은 저자 자신이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154-155쪽)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저자는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훨씬 더 극명하게 표현되는 매판성의 특징을 갖는다. 그들은 외국 제국주의와 연결 속에서 살아가고 성장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며, 그들의 지원이 없으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93쪽)는 『러시아 혁명사』의 구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식민지의 민족 부르주아지는 본능적으로 식민 지배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반드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계급적 배신은 민족운동 내에서 저지해야 한다.”(94)라고 주장한다. 레닌도 트로츠키와 마찬가지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이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함께 할 때조차 노동자운동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점을 고려했다.

그런데 저자는 트로츠키가 한 말과 달리 스탈린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게다가 트로츠키는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레닌이 성공시켰던 러시아 혁명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스탈린을 비판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황당하다.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스탈린의 인도네시아 혁명 전략에 비판적이던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 탄 말라카가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로 기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투쟁의 결말을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할 일이 충분하다.”(101쪽)라는 모호한 답변을 소개한다. 그리고 스리랑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하면 제3세계에서 아주 작은 영향력을 가진 트로츠키주의와 달리 소련은 제3세계 운동에 중요한 영감과 필요한 자원을 제공했다(101쪽)며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나는 이조차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트로츠키주의는 스탈린이 변질시킨 러시아 혁명의 이상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소련을 지지한 공산주의자(스탈린주의자)들과 서방 제국주의 모두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에는 가장 큰 미국 못지않게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베트남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남베트남을 점령하려는 영국군에 맞서는 봉기까지 조직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현상유지를 원했던 스탈린은 남베트남에서의 반영 봉기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이 봉기를 이끌었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학살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반식민 민족 국가들(비동맹운동을 형성한 국가들)과 이후에 쿠바 혁명을 비판하면서 제3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서 그들 자신을 소외시킨다.”(101쪽)고 비판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서방 제국주의의 반식민지였던 중국,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는 민족해방혁명이 일어났다. 비록 영국의 종교에 의한 분할지배 전략이 성공한 것은 안타깝지만, 인도 역시 독립할 수 있었다. 저자의 생각과 달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족해방운동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제3세계 지도자들은 더 이상 식민지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민족경제 건설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탄압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과거의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행한 침략행위도 반복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티베트, 신장을 점령했다면, 인도의 네루 역시 비록 영주가 힌두교도였지만, 무슬림 인구가 많은 카슈미르를 점령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그리고 잠시나마 중국과 친하게 지낼 때는 중국의 티베트 점령을 용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고, 중국이 영국이 1914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때 영국의 맥마흔이 제안한 국경선인 ‘맥마흔 노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의 중국-인도 국경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노동자운동의 국제적 연대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오히려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트로츠키가 죽기 전에 소련이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서 방어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에 대해 갖는 미련 때문에, 저자와 마찬가지로 제3세계 공산주의자들의 민족국가 건설과 인도와 중국의 핵보유를 무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게 더 문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위에서 지적한 점을 유의한다면, 이 책이 적은 분량으로도 러시아혁명이 제3세계에 미친 영향을 생동감있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은 물론 인도 등 여러 나라가 영향을 받고 있고, 이를 치료할 백신조차 선진국들이 먼저 제공받으면서 제3세계 민중들이 소외되는 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은 더욱 유효한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소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는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던 때였으며, 러시아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는 국내외의 반혁명 세력에 맞서 싸우는 와중에도 스페인 독감을 막기 위한 보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종교 간의 갈등이 줄어들기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에 망명해 있던 인도인들이 레닌의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66쪽)시켰는데, 이를 본 레닌이 한 답변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노동자, 농민 공화국이 선포한, 외국, 토착 자본가의 착취로부터 피억압 민족의 자결과 해방 원칙이 자유를 위해 영웅적인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진보적 인도인 사이에서 그렇게 열렬한 반응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다. 노동 민중의 조직과 규율, 그들의 인내와 세계 노동 민중과의 연대는 궁극적으로 승리를 담보한다. 우리는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의 긴밀한 동맹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 동맹이 동방의 모든 노력자들에게 확대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인도, 중국, 조선, 일본, 페르시아, 터키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해방이란 공동의 대의를 향해 함께 행진할 때에야 비로소, 오직 그럴 때에만 착취자에 대한 결정적 승리가 확보될 것이다. 자유 아시아 만세!(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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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썼을 당시 상하이 저널리스트인 미국인 부부가 신장의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신장을 여행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신장에 많은 민족을 소개하고, 위구르어가 카자흐어하고도 비슷하고, 또한 한국어, 일본어하고도 어순이 비슷하고, 발음법도 소개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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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았다. 우유와 섞은 콜드브루 라떼는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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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com/watch?v=6Kw1QLal1_M&feature=share

소련 친스탈린주의 군부 쿠데타 실패 후 발트 3국의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모스크바에서도 러시아 소비에트 최고회의 의장을 지낸 스베들로프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을 보도한 KBS 뉴스.(우즈베키스탄에 존재하던 마르크스 동상과 레닌 동상도 철거되어 그 자리에는 티무르 동상, 국가의 어머니상이 세워졌다.)

29년 전 소련 해체는 세계적으로 영향이 큰 사건이었다. 한국에서도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던 NL과 PD 등 많은 스탈린주의자 운동가들이 운동을 그만두게 하고, 일부는 지금의 ‘국민의 힘‘ 등 우파 정당에 가게 할 정도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소련 해체를 계기로 그 전에는 ˝미제의 첩자˝로 오해를 받던 트로츠키주의자들 중 소련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던 ‘국제사회주의자‘가 조직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만약, 소련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우즈베키스탄인이지만, 우즈베크어보다 소련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잘하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우즈베크어 같은 지역 언어를 억지로 배워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초대 대통령을 수십년 간 지내다가 자진사임해서 ˝엘비스(터키의 ‘아타튀르크‘처럼 카자흐어로 ‘국부‘라는 뜻)˝가 된 나자르바예프도 자신의 내각 회의를 러시아어로 주재할 정도로 러시아어에 능숙했는데, 이후에 카자흐 민족주의를 의식해서 모국어인 카자흐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대통령 등 관료의 자질로 넣어서 장기집권을 모색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구잘 같은 배우도 러시아인인지 우즈베키스탄인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순수한 러시아인, 즉 슬라브족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을 받았을 수는 있겠지만... 고르바초프도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으로 출마하려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피자헛 광고나 루이비통 광고에 출현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로 알았던 체제가 실제로는 공산당 관료가 소련이란 ˝주식회사˝의 이사회로서 자본주의를 이끌던 자라는 게 명백히 드러날 수 있었다. 특히 옛 공산당원들이 이런저런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거나 자본가가 되어서 여전히 지배계급으로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소수민족 국가, 특히 스탈린과 히틀러의 밀약으로 강제점령당한 아픔을 겪은 발트 3국도 독립할 수 있었다. 발트 3국이 비록 러시아 혁명으로 독립한 후 독일이나 폴란드 등 제국주의와 반혁명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독립을 유지했기에 현지 공산당원들도 발트3국의 독립(민족자결)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몽골인들이 레닌이 이끌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대의 도움을 받아서 중화민국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과 군벌, 러시아 백군 잔당을 무찔러서 세운 몽골처럼 소련에 ‘공식 소속‘되지 않고 우호관계를 맺는 국가로 남기를 원했지만(물론 몽골은 사실상 스탈린 집권 이후에는 소련의 위성국이었지만...), 스탈린이 히틀러와의 밀약 이후 발트 3국을 강제 점령하고, 강제적인 ˝국민투표˝로 소련에 편입시켰기 때문에, 발트3국 주민들은 러시아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그래서 독립운동도 격렬하게 일어났고, 슬라브지역 3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소련을 대체하는 국가로 발의한 ‘독립국가연합‘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물론 발트 3국은 현재 신자유주의의 온상이고, 유럽연합 주요 국가로 노동력이 유출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심하기에 ‘헬트 3국‘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만큼 소련과 스탈린이 레닌조차 지지하지 않았을 강제적인 군사공격(게다가 히틀러하고도 손잡고!!!!)으로 점령한 것이기에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나마 레닌 동상이 수모를 겪지 않는 나라는 몽골이었다. 몽골에서도 칭기즈칸이란 이름을 모스크바의 한 호텔로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반소항쟁이 일어나서 많은 소련 지도자 동상들이 철거되었지만, 레닌 동상만은 무사했다고 한다. 이유는 레닌의 할머니가 칼미크인(서몽골에서 러시아 볼가강으로 이주한 몽골계 오이라트 부족의 일원으로 불교를 믿지만, 원래 칭기즈칸 가문이 주도하던 몽골 부족하고는 경쟁관계였다. 칼미크 공화국은 지금도 러시아 연방 공화국 안에 존재하며, ˝티베트 불교˝를 믿는 가장 서쪽 지역이다.)이기 때문에, ˝같은 민족의 피˝를 가진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1991년 소련 해체의 원인과 그 의의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적으로 분석한 책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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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지인이 발제하다가 몇가지 오역이 있어서 참고하시라고 공유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은 고한은 왠지 쿨리를 번역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쿨리는 고된 노동하는 중국인 이주노동자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40쪽 두번째 문단
"자유주의적 질서의 본질인 노동의 소외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극복한다는 것"
-> "자유주의적 질서의 본질인 노동의 소외와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 소외를 극복한다는 것"
- P40

"하인들이나 농업 노동자들 ... 과 달리, 고한 노동자들은"
-> "하인들이나 농업 노동자들 ... 과 달리, 착취공장(sweatshop) 노동자들은"
- P75

마찬가지로 76쪽 위에서 두번째 줄의 "고한 사회주의" 또한 "착취공장 사회주의"로 바꿔야될 것 같은데, 어감 문제 때문에 부득이하게 심신이 고되다는 의미의 "고한"을 쓴 것 같습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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