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마포 한강근처에서 달리기 운동한 김에 1만 보를 걷기 위해 주변 걷다가 달리고 있다.

책읽기(독)와 걷기(보)를 주중에 5천, 주말(토, 일)에 3천보 이상 달성하면 받을 수 있은 스탬프로 알라딘에서 파는 책과 커피와 여러 학용품을 살 수 있는 마일리지로 바꾸는 것 외에 여러 앱의 걷기로 얻는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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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캄포 에르모소 허니 스파이스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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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커피도 잘 마시겠습니다. 책 읽을 때나 방송 볼 때 마시는 커피가 정말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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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 실현을 통한 계급투쟁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승리˝ 혹은 ˝계급투쟁 중 어느 쪽도 승리 못했기에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 같이 멸망하는 결과˝ 중 하나가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진정 현상유지야말로 ˝공상˝이다.


[속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내일 오후 1시 시작 조율중˝<교도>
https://m.yna.co.kr/view/AKR20230823101500073?input=fb&fbclid=IwAR0eLIHRrcD3GqxI4mk7YIFpgVxnCqDiuIoOg1IjNpYYW1yCND_cydxXb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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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민방위 훈련 공습경보 발령. 가까운 대피소나 지하 시설로 대피하시고, 통제구간의 운행차량은 도로 오른쪽에 정차 후 라디오를 청취하시기 바랍니다.

[행정안전부] 민방위 훈련 경계경보 발령. 현 시간부로 차량통제가 해제되고,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동이 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행정안전부] 민방위 훈련경보 해제. 국민 여러분께서는 일상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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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강경우익화 경향과 대북 강경정책의 한 모습. 오세훈이 의도적으로 북의 위성 발사에 ˝대피 오발령˝을 선포하더니 오늘은 아예 공식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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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 정수일 회고록
정수일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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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2023년 7월 신문(이 링크를 접속하면 기사 전문을 볼 수 있다: http://www.kscf.kr/home/board_slID46/6603)에 기고한 글을 약간 수정해서 올리고자 한다.  


KSCF 7월 신문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가 정율성과 ‘무함마드 깐수’ 정수일 

 대한제국 말기부터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거나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한반도를 떠나서 중국에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중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 남은 사람들(과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재중동포의 다수를 이룹니다. 

 이들 중에는 초창기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흔한 상식처럼 중국공산당을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원래는 중국공산당이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1927년 1차 중국혁명이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에게 분쇄된 뒤로 중국공산당은 반(半)식민지 중국의 해방 즉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좌파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모했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공산당은 공산당 관료들의 정당이 됐고 ‘사회주의’ 이념은 그들을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소수민족 당원 중 비중이 높았던 재중동포 당원들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재중동포들은 연변에 내몽골자치구와 같은 ‘성급 행정구역’인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연변조선족자치구는 재중동포 비율이 2%에 불과한 둔화현이 편입되면서, 3년 만에 ‘주州’로 격하되었지만, 재중동포들은 이를 자신들의 ‘국가’처럼 여겼습니다. 

 재중동포 중국공산당원 중 대표적 인물은 광주 태생의 정율성(1914 또는 1918~1976)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군가 ‘인민해방군가(원제: 팔로군행진곡)’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해방 후와 한국 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 중국에선 여전히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고 중국 어르신들도 ‘대한민국’보다 ‘남조선’이란 단어가 더 익숙합니다.)에 돌아가서 노래를 짓는 등, 여러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사회주의 국가 간 연대”로 여겼겠지요. 그러나 정율성의 조선 지원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조선노동당 내 중국공산당에 친화적이었던 연안파가 숙청당한 것도 원인이지만, 중국의 총리 저우언라이가 그에게 국적을 가질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 될지 ‘조선(북한) 공민’이 될지 고민하던 정율성은 중국 국적을 선택했고 중국으로 귀환해야 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중국공산당은 스탈린이 소련공산당의 권력을 장악한 1928년 이후 소련의 경제·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탄압하고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억압한 정책들을 거의 똑같이 펼쳤습니다. 

 중국공산당은 더 나아가 소수민족의 명목상 ‘독립할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1966~1976년 문화대혁명 당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정율성 등 많은 재중동포 공산당원들은 ‘(중국 전체가 아닌 소수민족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의) 지방민족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배척당하거나 투옥되거나 조선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정율성도 ‘인민해방군가’를 지은 작곡가란 점 외에는 거의 잊힌 듯합니다.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과 교수 오니시 히로시가 주최한 ‘마르크스경제학 여름학교’에 참가했을 때 만났던 중국인 대학생들도 정율성이 중국공산당원이었고 조선의 해방을 위해 중국 혁명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글을 마치기 전에 한때 ‘북한 간첩 무함마드 깐수’ 교수로 알려졌던 정수일(1934~ ) 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한 출신 정율성과 달리, 정수일은 연변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에서 태어난 부모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이 강했고, 고향인 연변조선족자치구의 건설을 자신의 국가 건설로 여겨 기뻐했습니다. 

 그는 중국 외교부 관리로서 처음으로 아랍에 간 국비유학생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대표적 아랍 전문가로 세상에 알려질 수도 있었을 정수일은 뜻밖에도 조선 공민이 됐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문화대혁명’ 때문이었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소수민족의 알량한 자치권조차 철저히 억압당하는 것을 본 정수일은 비록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자신의 조국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알려진 서류상 레바논인 “무함마드 깐수”로 위장해 남한에 왔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은 회고록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arte, 2022)를 보시면 생생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정부는 문화대혁명 때처럼 소수민족에게 노골적인 한족(漢族)우월주의 정책을 펼치진 않습니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민족정체성보다 ‘중국어(漢語) 교육’ 등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국 관영매체인 〈CCTV〉에서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시진핑 주석을 찬양하는 중국 소수민족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수민족들이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불만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편, 과거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을 포함하는 미국 중심의 서방 제국주의는 중국 제국주의의 성장과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탄압을 비난과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방 자신도 너무 제국주의적이라서 이것은 대단히 위선적일 뿐입니다.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미·중 패권경쟁이 더 격해질 경우 세계는 더 위험해질 것이고 우리는 정율성과 정수일과 같은 이들의 비극을 또 다시 어쩌면 더 크게 겪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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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다시 공유하게 된 계기가 된 기사 

 보훈장관 "광주에 中영웅 정율성 공원, 전면 철회돼야" 

 그는 "(정율성은)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민족을 저버리고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당연히 독립 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다"며 "'중국영웅' 또는 '북한영웅'인 그 사람을 위한 기념공원이라니, 북한의 애국 열사능이라도 만들겠따는 것입니까"라고 적었다. 

 그는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라고 반문했다.

기사 전문은 이 링크로 접속하면 볼 수 있다. 

https://www.msn.com/ko-kr/news/politics/%EB%B3%B4%ED%9B%88%EC%9E%A5%EA%B4%80-%EA%B4%91%EC%A3%BC%EC%97%90-%E4%B8%AD%EC%98%81%EC%9B%85-%EC%A0%95%EC%9C%A8%EC%84%B1-%EA%B3%B5%EC%9B%90-%EC%A0%84%EB%A9%B4-%EC%B2%A0%ED%9A%8C%EB%8F%BC%EC%95%BC/ar-AA1fACJj?ocid=socialshare&cvid=c8c98f1fa7e74d8db626126dfd885d63&e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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