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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악마들 -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평점 :
다 읽었다. 중국정부가 외국인 탐험가와 학자들이 유물 발굴하고 해외로 유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면서(대신 중국정부가 모두 관리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유물의 훼손 및 해외 유출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이 끝이다.
해외의 왕과 박물관이 ˝야만적인˝ 중국인들로부터 유물을 ˝보호˝하겠다는 순수한 동기이든, 자국의 해외 침략을 위한 길 알기 위한 ˝정치적˝ 동기이든, 신장위구르에 찾아갔던 학자/탐험가 중에는 러시아에서 혁명가로서 활동하다가 감옥과 시베리아 유형 갔었고, 탐험 중에도 유물을 자국으로 가져가는 것을 자제했던 올덴베르크와 의화단 사건 때 의화단의 깃발을 뺐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지나치게 오만하다는 성격으로 ˝적을 많이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뛰어난 중국어와 고대 아시아어 실력으로 인해 유물 탐사 후 ˝중국학계의 아버지˝라고 불린 프랑스 중국학자 펠리오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전시되지 않은 유물이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유물을 중국에서 반출한 것으로 인해 대영박물관에서조차 가장 초라한 중앙아시아 전시실에 그의 유물이 전시되고, 그가 발견했다는 언급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후세에 ˝유물 약탈자˝로 비판받고 잊혀진 헝가리계 영국인 스타인(그래도 전 재산을 영국과 헝가리인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을 위한 기금은 조성하는 좋은 일은 했다.)과
최초로 신장위구르지역을 탐험한 스웨덴인(동시에 유대인이지만 나치 편 들면서 옛 영광은 뒤로 하고 철저히 잊혀진 채 쓸쓸하게 죽어간) 헤딘, 베제클리크의 3미터 이상의 벽화를 통째로 훔쳐서 박물관 벽에 붙여놨다가 제2차세계대전 미군 폭격으로 완전 파괴되어 이전에 만들어진 사진과 도면으로만 볼 수 있고,
일부 유물은 소련군에게 약탈당하는 비극을 경험하기 전에 죽은 독일인 르콕, 지리학자이자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불교종단의 대표로서 성지순례에 대한 호기심 혹은 침략준비인지 알 수 없는 의도로 신장위구르지역을 탐험해서 많은 유물을 획득했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물들을 일본, 조선(덕분에 남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타니가 남긴 신장위구르 유물 전시실이 있다. 한국전쟁 중에도 큰 파괴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만주(제2차세계대전 중 소련이 가져가고 행방불명)에 처분해야 했던 오타니 백작 등
끝이 안 좋았던 이야기를 보면서 문화재가 후세에도 잘 전해지고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위해서라도 제1차세계대전때처럼 국가 간 군사적 긴장이 강해지고 있는 현재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에 반대하고 다른 세상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때 단체여행 가면서 갔던 지역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