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민족(Uyghur Nation)》 영문서적을 단어 찾아가면서 읽고 있다. 본문 중 100쪽을 넘게 읽었다. 청의 재정복 후에 신장이 중국 본토보다 이슬람이 강한 아랍과 터키, 러시아와의 관계가 깊어진 이유를 다루고 있다.

신장 북부인 쿨자에 러시아 카잔(레닌이 형의 전과를 이유로 퇴학당한 카잔 대학이 있는 곳이며, 오늘날 러시아연방의 소수민족 공화국 중 가장 큰 타타르스탄 공화국 수도이다. 레닌도 타타르족 계열 부모를 두어서 푸틴 같은 순수한 러시아인하고 조금 다르게 생기긴 했다.)에서 이슬람 근대화운동인 자디드 운동에 영향을 받은 러시아식 이름을 가진 타타르족 상인들이 들어와서 영국이나 러시아 영사 심지어, 청 관리와 친분을 쌓고, 회계학을 가르치는 신식 이슬람 학교(기존의 이슬람 학교 마드라사와는 달라서 현지 보수적인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다.)를 세우고, 신장 남부인 가난한 카슈가르에서 더 발전한 러시아에 일하러 갔다.

또한, 러시아가 카자흐 초원과 페르가나 분지와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 개통도 중요했다. 여기에 러시아 재정장관이 자국을 통과하는 상품을 무관세로 수송조치를 취하면서, 기존의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중국 본토에서 신장으로 상품을 보내는 것보다 상하이 등에서 배에 상품을 싣고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조지아 바투미에 하역시켜 철도를 통해 신장으로 수출하는 게 더 이득이 되었다. 심지어 중국인 관료들도 신장을 갈 때 러시아 철도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앞으로 자세히 읽어야 하겠지만...) 신해 혁명이 일어나서 청 제국이 몰락하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은 위구르족 공산주의자들도 출현하면서 신장은 더욱 중국 본토와의 괴리가 심해졌다.

청의 재정복 이후 청을 피해 러시아에 정착한 위구르족 이야기도 자세하다. 1905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타란치(1949년 이전에 신장 북부에 살던 위구르족들을 가리키던 말.)인들이 스스로의 민족성을 주장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지금은 러시아보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에 더 많은 수출을 하는 시점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정말 어떤 교수가 지적한대로 중국 신장은 정말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복잡한 지역인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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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0-02-15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사진 속 군중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특별한 이벤트 같은데 궁금하네요. ^^ 전공이신가봐요

김재원 2020-02-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석사논문 주제가 신장 위구르족 관련 내용이었거든요. 사진은 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