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 - 군대에 부는 혁명의 바람, 낭시 군사반란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4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04 1790

군대에서 부는 혁명의 바람, 낭시 군사반란

여문책

주명철 지음

 

 책 하나 읽는데 이렇게 큰 결심을 하고 읽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3권을 읽어서 인지 기대가 되면서 루이 16세의 정착기, 신분제 붕괴, 고등법원 페지를 읽으며 다음권에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 1790년 우리나라는 뭐했지 생각해보니 정조, 순조때가 아닐까 싶다. 어린나에 즉위한 순조는 정순황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을때이다. 프랑스랑 비교를 하다보니 우리나라가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기분 나쁘려고 했지만 역사란 내가 좌지우지 할수 없으니 비교는 불가하다.


1790년 민중들은 끝임없이 들고 일어났고, 지방도시나 농촌에는 빵값이나 생활필수품 때문에 종교문제도 빼놓을수 없고, 왕당파와 혁명지지자가 충돌하고 정신없는 한해임은 틀림없다. 나라밖 북유럽은 전쟁중이다. 러시아군대는 폴란드 국경을 노렸다. 폴라든 의회는 군대를 조직하려 했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고, 농민은 자유를 요구하고 도시의 부르주아들은 자기네 지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안이든 밖이든 정신이 없는 1790년이다. 급기야 결투로써 모든걸 결정하려는 내용은 웃을수도 안웃을수 없은 촌극이 아닐까 싶다. 브루이예의 몇가지 원칙을 보자면 다른 이를 대린 자의 공민권을 박탈한다. 결투금지법은 항상 엄격하게 효력을 유지한다. 법을 무시하고 결투를 제안하는 사람은 결코 명예를 누릴 수 없는 사람이다.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명예를 잃었다고 할수 없다. 진정한 명예는 법에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생각하는 옛날은 옛날인가 보다.


"민주 군대는 있어도 군대 안의 민주주의는 없다" 군대를 갔다오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울수 있다. 군대는 수직관계라는 말을 한다. 천지개벽을 해도 수평관계가 있을수 없는 곳이 바로 군대라고 들었다. 낭시는 남쪽으로 흐르다 모젤 강과 합류하는 라 뫼르트 강변 합류지점에서 약 10킬로미터 상류 쪽에 있는 도시다. "군사위원회가 없으면 우리는 오직 장교들의 지배를 받을 뿐이다", "우리는 병사들의 잘못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드누 장군이 병사들에 대해 시정부에 끊임없이 불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정부가 중재에 나서도 아무런 소용없는 상황에서 지휘관이나 친구도 없이 고린된 병사들,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요? 결연히 반항하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낭시사태에 대한 생각들을 표현한것이라 볼수있다. 병사들의 돈문제 또한 군사반란의 동기가운데 하나이다. 8월 30일 낭시의 하루를 보면 "부이예 장군이 30일 오전 군대를 동원해서 접근한다는 소식이 낭시에 퍼졌을때, 어떤 공권력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 뒤부터 부이예 장군이 낭시에 입성할 때까지 주둔군 병사들이 도 지도부와 시정부를 점령하고 혹독하게 탄압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이 생각이 나면서 피 위에 세워진 나라, 피에 의한 혁명이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