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 왕 위의 여자 - 왕권을 뒤흔든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 4인을 말하다
김수지 지음, 권태균 사진 / 인문서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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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왕 위의 여자 

 인문서원

김수지 지음

 

여자로써 최고의 권력의 자리 대비, 아이러니 하게 남편인 왕이 죽은 뒤에서야 정치적으로 전면 개입할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권과 신권이 강렬하게 부딪칠때 태풍의 핵으로 대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들 예종이 죽도록 방치한 비정한 어머니 정희왕후 윤씨, 예종이 개혁을 시도 하려 하지만 때때마다 막아서는 윤씨이다.

예종이 죽은후에도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다음의 왕 성종을 지목했다. 예종 사후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은데 피부의 변색이

있었는데도 아팠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실록의 기록도 미미하다.

단종의 미안한 마음때문인지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를 거두어 기른다. 윤씨는 내세에 자신이 지옥불에

빠질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금을 탕감하거나 내전에 불상을 들여 놓고 치성을 들었다고 한다. 계유정난의 사육신들의

가족들을  방면도 했다. 이것으로 과연 면죄부가 될까 궁금해진다. 세조의 비로 세상에 남부러울것 없이 세상의 한획을 그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성종은 지아비를 먼저 보내고 홀로 보내는 여인 셋을 상전을 모셔야 했다. 성종의 모 인수대비 한씨는 세조의 며느리로 남편이

자신이 임신중에 19살 나이로 죽었다. 이것을 빌미로 성종을 휘어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나이 열일곱에 동궁를 모셨는데, 4년 사이에 아침에는 양전을 모시고 저물어서야 궁에 들어오니 일찍이 하루도 온전하게

우리 왕을 모시지 못하였으며, 때마침 우리 왕이 편치 않으시어서 다른 곳에서 거처를 옮겨셨는데, 내가 시질(병간호)을 하고

싶었으나 주상을 회임하였으므로, 슬픔을 어이 다 말할수 있으랴!....'  (성종실록)

별다른 힘이 없었던 한씨는 자신의 윗대의 끈으로 명나라 친정 고모 공신부인 한씨를 통해 힘을 얻어 낸다. 그 후 명나라의

억지스러운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조정의 큰 골치덩어리가 되었다.

'내훈' 은 한씨가 성종 6년에 여성을 위한 수신 교양서이다. 유교적 부녀자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고전을

엮을 것이지만 무조건 남성에게 순종적으로 따르기만 한다는 책도 아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아는것도 많다는 뜻이다. 한씨는

글도 알고 책도 많이 읽은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빠른 머리회전이 있을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영조의 두번에 15살 어린 색시 정순왕후 김씨 이다. 영조는 혈통은 있지만 가난한 집안의 딸이 새 왕비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대로 전개가 되지 않았다.  드라마 이산에서 보아왔던 인물이라서 일까 제일 이해하기 쉬운 인물이었다.

김씨는 결혼후 3년만에 사도세자를 죽인다.  정조가 있을 때는 쥐죽은듯 있다가 정조의 죽음이후에는 순조를 수렴청정하기

이르렀다. 정조의 병에도 경면주사라른 것을 태워 수은 중독에 이르게 했다고 할수 있다. 제대로 된 환기가 정조를 죽게 만든

것이다. 아쉽다. 또 아쉽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필요없지만 만약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김씨의 시대의 막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순왕후 김씨는 자신의 친정가문, 노론 벽파 정권의 공고한 집권을 위해

정치 전면에 나서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핏줄 하나 없는 구중궁궐속의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서 얼만 많은 피가 필요

했을까 생각해 본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 김씨. 정조의 사람보는 안목이 무척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김조순의 딸로써 몸 맞추기 전술로 김씨는

대궐의 안주인이 된다. 안동김씨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김씨는 순조가 죽고 난후 손자인 헌종(8세)을

즉위시켰다. 당연히 전례에 따라 수렴청정을 행했다. 그 후 철종까지 수렴청정을 하였으니 안동김씨 일가의 60년 행복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강화도령 이원범이 철종이 된사연은 가장 어리고 미혼이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둔것이다.

헌종의 죽음에도 의혹은 넘쳐난다. 대내(대비 김씨)에서 입진했다. 김씨가 주는 약을 먹고 있다고 실록에 쓰여 있다. 내의원이

아닌 대내에서 약을 먹었다는 것만으로 의혹을 살만하지만 22살의 헌종이 하루에만 죽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할수 없다.

의관들의 책임을 묻는 것조차 없었다는 것은 김씨가 손을 썼다는 것을 알수 있다. 또 철종또한 안동김씨 사위로 만들어 버린다.

 

여자로 태어나 아버지말을 듣다가 결혼후 남편말에 순종하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말을 듣는다고 했던가 그런데 조선의 대비를

보면은 딸로 태어나 세자빈, 그리고 왕비, 그리고 대비를 거쳐 최고의 권력을 움켜줄수 있었다. 왕비의 재산또한 개인적으로

관리할수 있으니 뒷돈 대기도 좋았을 것이면 세금또한 없다. 그러니 힘이 있을수 밖에 없다. 몇십년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렁이에서

용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대비 그녀들은 진정 행복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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