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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장애재활클리닉
한차현 지음 / 박하 / 2014년 5월
평점 :
슬픔장애재활 클리닉
박하
한차현 장편소설
자살이라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말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것이 '배고파죽겠다'
'웃겨죽겠다' 등 죽겠다는 말이 아주 쉽다.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최고치를 찍는듯한 느낌이 든다.
죽음이라는것을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이 항상 주변을 맴도는 듯한 자살유전자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단어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랑하는 이를 갑자기 읽었을때 그 슬픔 그 허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어느것이
맞다 아니다 할수는 없다.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남자 차연, 자살을 희망하는 이의
마지막을 동행하는 그녀 원형이 장례식장에서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살자의 동행녀 원형이 네일아트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손톱손질을 한다기보다는 손을 잡아준다는 기분을
느껴고 싶어 찾아오는것은 아닐까 말한다. 손님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좋고 손님의 기분이 별로이면 나의 기분도
참체되는 감정은 느낀다. 자살한 여자의 네일아트를 하고 난후에는 더욱더 말이다. 그러니 자살로 죽은이가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많은 느낌이 전달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형의 직업은 죽은이가 있는 이를 애도와 위안을 해주는 애위사이다. 약간의 사기꾼같은 느낌은 들지만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방법이 틀렸다고는 할수 없다. 또다른 직업을 꿈꾸며 열심히 경험을
쌓고 있다. 슬픔장애재활 클리닉이 바로 그것이다. 참 맘에 드는 단어의 조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다음이라서
일까 하나하나 따로 봐도 그렇고 다 같이 합쳐 봐도 맘에 든다.
자살유전자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 주변에 죽음이 많지 않았고 있었더라고 노후로 인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에 빈자리를 느낀적이 많지 않다. 다행히도 자살을 택한 사람도 없기에 더욱더 공감력이 높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뉴스나 현상을 살펴보면은 유전또는 분위기가 있기는 한것 같다. 어딘가 불안전하고 약간의
공허함 분위기랄까 좀 힘들면 그만하지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쉽게 결정하는것 같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은 슬프지 않다. 남은 사람이 슬플 뿐이다'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은 차연, 혼자 떠나않게 와롭지 않게 지켜봐주는 원형, 자살을 원하고 기어코
그길을 찾으려는 이연.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남은 사람의 슬픔도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