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의 유서
김은주.세바스티앙 팔레티 지음, 문은실 옮김 / 씨앤아이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열한 살의 유서

씨앤아이북스

세바스티앙 팔레티. 김은주 공저

문은실 옮김

'이제 만나러 갑니다' 라는 프로그램을 즐겁는 애청자이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한에 관련된

책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남한의 몇몇사람이 살기 힘들어 북한으로 월북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기가막히는 일이 있을가 싶습니다.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한 남한에서

북한의 실생활을 몰라서 이런 일을 저질렀나 싶어서 놀라웠습니다.

열한살의 유서, 김은주씨는 티브이에서 얼굴을 본적이 있습니다. 티브이에서 봤으니 잘 안다면 잘 안다고

할수 있습니다. 아오지 탄광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를 똑 부러지게 말하던 대찬처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모습이 글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어서 맨뒷장의 사진을 보기전에도 충분히 예상한 만했습니다.

함경북도 은덕에서 서울까지 9년간의 무국적자로 떠돌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아픕니다. 그저 들어본것과 글로써만 읽은 나도 이렇게 막막한데 막상의 당사자들은 얼마나

기가막히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까 싶습니다. 차가운 강물을 건너고 돈에 팔려 아이까지 낳아야 했던

엄마, 열한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덩치가 작기만 아이,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게 다던 언니, 중간 중간

기적같은 손길들이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런사람들이 없었다면 살아 있지를 못했을 것이다.

중간에 다시 북송이 되었어도 그곳에서 다시 있기는 힘들었다. 이미 사망처리가 되어 있었고 다시 굶어

죽기만을 기다릴수도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깊숙히 상하이까지 들어 왔지만 항상 불안에 떨수 밖에 없었다.

중국의 공안에게 쫒겼던 기억 때문이다. 발전된 도시속에 있으면서 남한에 실생활의 모습을 보면서 은주씨는

남한으로 가야 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남한도 공짜로 가는 것은 아이었다. 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고 물론 책임이나 위험은 부담은 본인이

지어야 만 했다. 하느님이 도우셨는지 부처님이 도우셨는지 몽골로 다행이 들어왔고 몽골군인에게 투항한후

한국대사관으로 그리고 인천공항으로 그리고 하나원그리고 서울의 작은 아파트까지 입주하게 되었다.

편안한 시간을 보낼것 같지만 북한에 남겨둔 아빠의 산소, 중국의 엄마가 낳은 남동생, 한국에 같이 오지

않겠다던 언니의 걱정으로 두발 뻣고 잘수 없었다. 중국의 남동생에게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고 만나기도

했지만 너무 오랜시간 떨어져 있어서서 어색하기만 했고 새아버지하는 농부에게 돈을 주어서야만 웃음을

볼수 있었다. 언니는 은주씨의 오랜설득끝에 남한으로 들어와서 지금 같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뒷장의 사진들을 보면서 은주씨가 무거운 삶의 짐을 벗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갑'에서 밝은 모습을 다시 보고 싶네요.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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