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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김호준 지음 / 주류성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주류성
김호준 지음
이름도 대기 힘든 나라로 강제이주하게 된 역사를 기자의 눈으로 쓴 책입니다.
고려인 사회는 민족의 이름에서 한국과 조선을 배제하고 고려인이라고 말한다. 남한도 북한이
아니라는 고려인의 고민을 보여준다. 해외동포들을 보면은 조선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다른 고려인이라고 표현을 해서 놀라웠다.
조선의 연해주 이주는지신허에 최초로 고려인 마을이 들어선 1863년설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한명에서 가족에서 또는 마을전체가 아주하기도 했다. 연해주를 가면은 잘살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차별은 있었다. 세부류로 나뉘는데 1부류는 조세, 노역, 군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상투와 댕기를
자르게 했다. 2부류는 매년 러시아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다. 비자발급비용이 두어달월급만큼 든다.
3부류는 여권과 비자없이 불법적으로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상황인데도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난 이유는 조선에서 일제의 수탈로 먹고 살길을 읽은 사람과 연해주는 쌀 생산의 급격한 증가가
외부 노동력의 유입을 필요로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나름 기틀을 잡고 있었던 고려인들을 소련공산당은 강제이주를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친척집에
있던 사람들까지 단1명까지 놓치지 않고 말이다. 그 속의 잔인한 진실은 소련 내 모든 고려인을 추방
대상으로 시키도록 되어 있으며 고려인을 일본스카이로 몰기도 하고, 이주자에게 사유재산을 가지고
간다고 했지만 최소한의 식량및 옷가지밖게 가지고 갈수 없었고 부동산같은 재산들의 보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주민들의 기차를 검은 상자라 불리웠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또 최종장소를 말해주지 않고
또 그때 상황에 따라 변경되어서 가족간의 생이별로 이어졌다. 내려진 장소는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갈대밭이었다. 그래서 땅굴파고 살수밖에 없었다.
"잉기까지 오는데 한 달 넘어 걸렸지. 짐승이 실는 기차에 한 바곤(객차)에 네 가족씩 탔지.
춥지. 배고프지 해서 애들은 죽고, 노인들도 마이죽었지. 기차가 스면 부모들은 죽은 자슥들을
땅에 묻고... 또 기차 타고 갔지. 어디매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지. ... 처매 이기는 전부 깔밭
(갈대밭)이랬지. 그래 손으로 호매로 밭을 매고 물길 내고... 갈로 집을 지었지. 정말 짐승이처럼
살았지. ... 인잔 일없소(괜찬소)"
강제이주를 당한 이후에도 제한을 받았다. 국경지역으로 이주를 금지당했고, 도주 방지를 위해 기차에서
먼 곳으로 이주했고, 관리하기 쉽도록 천가구 이하로 제한했다. 고려어를 배우지도 못하게 했다. 도망
보다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고려인의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고본질(여러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을 말하여 농업을 기본으로 했다) 이라는 공동경작으로 양파나 수박을 농사
지었다. 집을 떠나 가족들을 보지 못하기는 하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투자비의 3-10배까지 벌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고려인의 역사는 공연장에서도 지명에서도 화폭에서도 모습을 감추었다.
고려인의 기구한 이주인생은 한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에서 부터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에서 1953년 이후 교육이나 직업저인 이유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 재이주이다. 그 이후는 1991년 소련붕괴 후 약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의 기로 접어들때이다.
대부분 러시아 행 재이주로 결말이다.
"나의 부친은 (원동의) 하바로프스크 시에 묻혀 있다. 어머니는 (러시아) 크림 주 엠파트라 시에,
외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미르자 촌에, 친할아버지는 연해주 수하놉카 촌에, 외할머니는
타슈켄트 주 사마르스코예 촌에, 그리고 친할머니는 카자흐스탄의 침켄트 시에, 형님은 연해주
크라스키노 촌에 안치돼 있다. 그러니 이 고인들을 누가 모셔서 성묘를 할 것인가. 기가 막힐 일이다.
악마의 나라에서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몰아낸것도 아닌데 당연히 살아도 되는 내 나라에서 세계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살아야 하는 나그네 인생이 안쓰러웠다. 적응했다고 말하면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고려인들 언어나 문화는 러시아향이 나지만 마음은 그때의 조선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와 조선의 문화가 공존하는 그곳에 화투라는 문화가 끈질기게 남아 있다는 것을 보고서 재미있었다
정체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한민족이라고 절반이상이 응답했다는 글을 읽고서 몸은 편하게 읽었지만 마음만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모른는 친천들일 그곳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또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방안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