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Paik - 6.25 전쟁의 파워 리더 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6.25 전쟁의 파워리더 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저
책밭

책을 받아보고 책 겉표지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평소에 구입을 하면 번거롭고 자꾸 벌어지고 해서 겉표지를 대부분 버리는 나로써는 좀 놀랐다. 백선엽의 대한 사진자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매스컴에 백선엽에 대한 말도 말고 탈도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말들이 오고가는지 내가 읽어 주리라 생각을 했다.
목차가 나오는 그곳에 목차 밑에 나오는 작은 문구가 이 책의 핵심을 보여준다.
백선엽은 평양 부림 도서관 단골손님이었다. 그곳에서 신문 역사 문학을 공부하고 더불어 영어공부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 중국, 일본을 다녀오면서 인간 백선엽으로서 다져졌다.
그러던 중 비행사 박승환의 서신연락으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을 했다. 군인으로서의 첫발을 디딘셈이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백선엽의 안전과 생사를 점치기 어려워졌다. 그는 서울로 와 군사영어학교를 나와 부산 5연대 장교로 입성했다. 그곳은 가가각색의 군복과 용어로 완전 개판 5분전 같은 곳이었다. 물론 다른 곳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곳에는 그는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창고지기 같은 업무를 맡으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 봤던 그는 여순반란사건이나 숙군처리는 그를 한발 앞서게 했다.
그는 큰 전투 없이 지내온 그는 학습자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알아볼 수 있는 고문관 하우스만의 대답이었다.

P152 “백선엽은 매우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친하게 지내는 최남근의 죄익연루와 처형과정에서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박정희와 관련해서는 매우 인간적인 자세를 보였다. 내가 한번은 백선엽에게 ‘왜 당신은 잘 알던 친구인 최남근의 사형을 방관하고, 잘 모르는 박정희는 살려줬냐’고 물었적이 있다. 그때 백선엽은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나느 그것을 지켰을 뿐이다’라고 말해 그가 공적인 일을 처리할때는 매우 단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보면 그는 아주 무서운 인물이다”

그의 싸움방법은 기초 쌓기(경찰과 신뢰 쌓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민심 얻기(주민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였다. 그리하여 빨치산 토벌을 성공한다.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처절한 전쟁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백선엽은 불안가화 무력감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뼈속까지 군인이었다. 지연전, 다부동혈투,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1.4후퇴, 지평리 전투 그리고 휴전 회담까지의 그는 빠지는 곳이 없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 육군 참모총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백선엽이 4성장군이 될수 있었던건은 미국의 무한신뢰가 바탕이 되어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그가 신뢰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력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미국의 눈에도 보였던 것이다.
책의 중반이 넘어도 가족이야기가 없어서 결혼을 안한줄 알았다. 부인과 딸이 있었지만 그는 가족은 뒷전이었다. 지금도 부인은 구박아닌 구박을 한다고 하지만 그는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다시 그곳에 나가 싸울 것이다. 그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다. 단지 휴전중일뿐이다. 내가 남편에게 즐겨듣던 군대이야기 아니었다. 이건 피와 땀이 흐르는 혈투 즉 전쟁이었다. 우리는 지금 안전 불감증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흥미롭게 이 책을 읽었다. 옆에 남편이 같이 읽지는 못했다. 남편에게는
“지금은 육이오가 났어 지금 조치원까지 내려왔어” 하며 중계를 하며 읽었다. 백선엽이 대해서 궁금해하며 읽어보고 싶다고 하더니 지금은 읽고 있는 중이다.

비무장지대는 세계최대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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