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영국인, 베델 다문화 인물시리즈 9
한유섭 지음, 허새롬 그림 / 작가와비평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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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물시리즈 10.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영국인, 베델

 

 

 

  

 

 

지은이 : 한유섭

그린이 : 허새롬

펴낸곳 : 작가와비평

발행일 : 2020년 8월 30일 1판1쇄

도서가 : 12,000원

 

 

 

  

 

 

다문화 인물시리즈 아홉번째는 베델입니다. 베델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매일신보>를 발간하여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죠. 1872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hell)은 16세에 부모를 따라 일본 고베로 이주하면서 무역업에 종사하였다 합니다. 외향적인 성격인 베델은 32세가 되던 1904년에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 제의를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조선에 입국하게 됩니다만 특파원을 곧 그만두고 같은해 영문판 4면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와 한글판 2면인 '대한매일신보'이 합쳐진 신문을 창간합니다. 이듬해에는 두개의 언어 지면을 국한문판 신문과 영문판 신문으로 분리하여 두개의 신문을 각각 발행하였다 하구요.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강탈'과 '시일야방성대곡', '고종의 밀서 사진' 등 일제의 침략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와 논설을 신문에 실어 일제를 곤혹스럽게 하였답니다. 당시 일본은 영일동맹을 체결한 상황이었기에 영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대한매일신보'를 다른 조선인들이 운영하는 신문들처럼 탄압하기가 어려워 대신 영국측에 베델을 처벌해달라 요구하였고, 영국측에서도 더이상 버티기 어렵게 되자 베델을 재판에 회부하였으며 베델은 재판 결과 6개월 근신형 판결을 받았답니다. 베델은 근신기간 동안 신중한 논조로 신문을 발행하다가 근신기간이 만료되자마자 다시 격렬하게 일제 통감부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이에 일제는 베델을 추방시키기 위한 공작을 적극 추진하여 1908년 두번째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재판 결과 3주일 금고형과 복역후 6개월간 근신 서약을 하라고 판결납니다.  

 

 

  

 

 

하지만 베델은 1909년 5월 1일 37살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사인은 심장병(심근비대증)이었다는데 재판과 상하이에서의 금고형 양기탁 재판 때 국채보상의연금 문제로 조사받은 일등으로 건강을 크게 해친 것이 주 원인이라 하네요. 시신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정되었고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 비문을 작성하였는데 일제는 묘비의 비문을 깎아내버리는 만행을 저질르죠. 현재는 1964년 전국 언론인들의 성금을 모아 깎인 비문을 복원한 작은 비석이 원 비석과 함께 세워져 있답니다.  

 

 

 

 

 

베델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유언은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이었답니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한 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죠, 이와 같은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베델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했답니다. 베델 사후에는 베델의 비서 영국인 알프레드 만함이 사장직을 이어받아 대한매일신보는 유지되었지만 영국과 일본의 공작에 의해 신문사는 700파운드에 일본에게 팔리게 되고 한일합방 이후에는 '대한' 제호를 떼어낸 '매일신보'로 조선총독부 기관지가 됩니다. 해방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이어졌다고 하구요.


20세기 초반 일제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던 '대한매일신보'를 운영한 영국 언론인 베델. 아무런 연고도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 그렇게 헌신하였다는게 보통 사람의 시각으론 의아스럽기까지 합니다. 그가 걸어온 과정들을 살펴보면 조선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네요. 그의 급작스런 죽음니 의문스럽긴 하지만 그의 조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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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사랑한 일본장수, 김충선 다문화 인물시리즈 7
노자은 지음, 이은혜 그림 / 작가와비평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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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물시리즈 07.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지은이 : 노자은

그린이 : 이은혜

펴낸곳 : 작가와비평

발행일 : 2020년 8월 30일 1판1쇄

도서가 : 12,000원

 

 

 

  

 

 

다문화 인물시리즈 일곱번째 인물은 김충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 같아 보이지만 이 분은 임진왜란 당시 귀순한 일본인 장수로 귀순 후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참전하여 많은 군공을 쌓으신 분입니다. 책은 쌍둥이 자매가 부모님과 함께 녹동서원을 방문하여 김충선과 그와 관련있는 인물들을 꿈속에서 만나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 되어가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이 도서후기에서는 그러한 동화적인 내용들은 생략하고 책에 언급되어진 김충선에 대한 역사이야기 위주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1571년 생인 김충선(金忠善, 사야가(沙也加))은 22세가 되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선봉장으로 조선에 내침하였으나 곧바로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서 귀순한 분입니다. 이후 조선군에 배속되어 경주, 울산 등지에서 왜군을 막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하구요. 귀순 이후 의병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고 조총 제작법을 전수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조선에게 있어서는 고마운 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만 일본측 입장에서 본다면 배신자로 여겨졌겠지요. 그러기에 김충선(사야가)에 대한 일본측 기록은 전무하여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그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측 기록으로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모하당집(募夏堂集) 외에는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데 그 마저도 귀순하기 전 일본에서의 행적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네요. 모하당집은 1798년 김충선의 6대손 김한조에 의해 간행된 시문집으로 여기에는 귀순 이후의 행적과 시문 등이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입을 막아내는 전공으로 가선대부를 제수받았고 정유재란 때에는 뛰어난 전공을 인정받아 김해 김씨 성과 이름 충선을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여진족의 침입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 때에도 참전하여 많은 군공을 세웠기에 삼란공신(三亂功臣)으로 불리웠다 하구요. 1642년 우록마을(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세상을 떠난 김충선은 후손들과 지방 유림들에 의해 1794년 녹동서원이 준공되면서 위패가 봉안되었는데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재건되었고 1971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증축되었답니다. 1600년 인동 장씨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한 김충선은 모하당문집을 통해 자손들에게 영달을 탐하지 말고 효제,충신,예의,염치를 가풍으로 삼아 자자손손 계속 전할 것을 당부하였다 합니다.

 

 

 

 

 

책에 따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조총부대를 준비시켜면서 그 선봉장으로 사야가를 내세웠는데 사야가는 전쟁에 찬성하지 않았기에 그의 가족들을 볼모로 잡으면서 사야가에게 출병하여 군사들을 이끌 것을 협박했다고 했지만 사야가는 그러한 명령을 받았을  조선으로 귀화할 결심을 한 상태였고 실제 그렇게 했다는데요. 이 내용,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귀순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좀 떨어져 보입니다.. 그렇지만 임란 당시 김충선 장군이 많은 공을 세웠다는 것은 난중일기에서도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네요. 

 

 

 

 

 

이처럼 우리나라에 귀화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꽤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문화 인물시리즈에 나왔던 허황옥,이용상,장순룡,박연,이지란이 그와 같은 사람들이겠지요. 현대에 들어서도 중국출신의 탁구선수 당예서, 러시아출신의 축구선수 신의손, 독일출신의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한 이참, 미국출신의 하일(로버트 할리), 필리핀출신의 여성국회위원 이자스민 등 유명한 귀화인들 심심찮게 볼 수 있네요. 

그러고 보니까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의 빅토르 안(안현수)이나 가수 스티브 유(유승준)처럼 외국 국적을 취득한 역귀화인도 있습니다.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텐데 그들처럼 외국에 귀화한 사람들도 일본이 김충선과 그 가족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을 폄하하고 배척하는건 지양해야 할 것 입니다. 단, 그들이 귀화하게 된 이유가 도의상 비난 받을 내용이 아닌 경우에만 그래야 할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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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박사의 저울 면역력 - 위기의 순간, 면역 갑옷이 이긴다
박민수 지음 / 피톤치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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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기] '박민수 박사의 저울면역력'

-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의 방어막, 면역력 -

 

 

 

  

 

 

지은이 : 박민수

펴낸곳 : 피톤치드

발행일 : 2020년 9월 1일 1판1쇄

도서가 : 18,500원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 하여 실내체육시설은 아예 영업을 못하게 되고 음식점과 주점, 카페도 저녁 9시 이후에는 실내영업이 금지되는 등 방역 조치들이 일상 생활 자체를 어렵게 하니까 말이죠. 더우기 전염성이 강해진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였다니 감염 예방 활동 또한 무척 신경 쓰이는게 지금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 무더운 날씨에 긴 출퇴근 시간 내내 마스크 착용한 채로 오가고 있구요. 

원래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감 바이러스의 한 종류라지만 이렇게까지 인류를 공포에 몰아 넣을줄 그 누가 알았을까요.. 하긴,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과 깨끗이 손씻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서 감기환자가 급감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는 하네요.

 

이번 도서후기는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의 방어막이라 하는 면역력에 대한 책이 대상입니다. <박민수박사의 저울면역력>이란 책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면역 강화'가 아니라 '면역 균형'이 중요하다는게 주 내용인 책인데요. 100세 시대라는 요즘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의학지식들을 간추려 담았다 합니다. 상식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도 많이 나오지만 의외인 내용들도 솔찮게 수록되어 있었어요.

 

저자는 의사이지만 X튜브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현재 통합적 건강주치의를 지향하는 의원의 원장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는데 저자 소개란에 기재된 경력들을 살펴보니 전임의, 개발기획이사, 강사, 집필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더군요. 실버버튼을 받았다니 상당히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분인가 봅니다.

 

  

 

 

책은 서문이라 할 <프롤로그. 저울면역력, 심신의 평형과 건강한 장수>로 시작되어 본문 총 7부, <1부. 면역의 균형이 건강의 알파와 오메가>, <2부. 면역력 저울을 재는 10가지 방법>, <3부. 면역력을 높여 조기에 암을 진압하라>, <4부. 대상포진과 알레르기 비염은 치료법이 다르다>, <5부. 혈관이 잘 통해야 면역력이 사통팔달한다>, <6부. 호르몬 균형이 면역력 저울을 피드백한다>, <7부. 장내세균숲과 면역력을 살리는 레인보우 식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알레르기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4부에 관심이 많이 갔었어요.

 

 

 

 

저자는 면역력이 강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면역력이 지나치게 많아도 발병하는게 있다네요. 그게 바로 알레르기 질환과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 질환이랍니다. 이것이 1부의 첫 내용이었는데 시작부터가 놀라움이었죠. 

아직까지 자가면역질환의 발병원인은 대부분 거의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소인, 스트레스, 호르몬 이상, 부적절한 생활 습관이 주요 원인인 것은 판명되었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부족하게 되면 암 발병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합니다. 

결국 면역력이란게 자기 몸을 공격할 정도로 넘쳐서도 안되지만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발병될 정도로 떨어져서도 안된다는 것이죠. 핵심은 밸런스, 균형과 조화라는건데 그래서 책 제목에 저울면역력이란 말이 들어갔나 봅니다.^^

 

다음과 같은 증상들이 발생하면 면역력 상태를 의심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나면 면역력에 이상이 생겼다는 거라는군요. 내용을 보면 건강 관련 서적이라면 거의 다 언급되어지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눈길이 가면서 면역력 지수 체크를 하게 되네요.^^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 질환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낫는다고들 합니다. 사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질환이 일상생활에서 주는 고통은 상당합니다. 숨쉬기 어려워지는 천식이나 참을 수 없을만큼 가려움을 동반하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사람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책에 따름 법정스님도 평생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몹시 고통받았었다고 합니다. 스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신 것도 천식으로 인해 폐에 지속적으로 염증 반응이 일어나서 그런 것이라 본다네요. 이처럼 저자는 알레르기나 자가면역 질환은 보통 만성적인 염증을 동반한다고 하는데 놀라운건 이 질환들을 계속 방치하면 우울증이나 치매와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럴 수도 있었나요? 이 또한 처음 듣는 얘긴데 아무튼,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 미연에 예방하고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답니다. 그럴려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원인들을 피하는게 가장 좋은 상책이라네요.. 흐흠.. 이걸 보니 금연부터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알레르기 질환은 히스타민 작용이 만성적으로 과도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통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여 증상을 완화시킨답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으로 계속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거나 다른 신체증상으로 전환, 또는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군요. 참고로 히스타민은 외부 자극원에 대해 신체가 신속하게 방어하는 과정에서 분비되는 유기물질로 강력한 혈관 확장 작용과 기관지, 위장 등 내장근육을 급격히 수축시켜 외부 물질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책에는 면역력 강화로 암을 예방한다라던지 호르몬과 면역력 균형과의 관계, 활성산소와 혈관 건강, 장내세균과 면역력과의 상관 관계 등 면역력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들도 여기에 언급하면 좋겠지만 스포일러 비난이 걱정되기에 여기서 정리하겠습니다. 궁금하심 서점에 가셔서 내용 직접 살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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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진족 사람, 이지란 다문화 인물시리즈 5
박현진 지음, 이은혜 그림 / 작가와비평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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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물시리즈 05. 영원한 여진족 사람, 이지란

 

 

 


 

 

 

글 : 박현진

그림 : 이은혜

펴낸곳 : 작가와비평

발행일 : 2020년 8월 10일 1판1쇄

도서가 : 12,000원

 

 

 

 

 

 

다문화 인물시리즈 다섯번째는 이지란으로 여진족 사람이었지만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두터운 친분과 함께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분입니다. 여진족이라 하면 후금을 건국하여 명나라를 멸하고 청나라로 중원을 장악하면서 만주족이라 개칭했던 바로 그 민족을 말하죠. 그 기원도 오래되어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 한나라 때는 읍루, 남북조시대에는 물길, 수/당나라 때는 말갈로 불리웠다가 송나라 때에 들어서 여진이라 불리웠던, 고구려, 발해의 영토이던 송화강 흑룡강 하류지역에 근거를 두었던 민족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이지란은 북청 출신으로 원래 본명이 퉁 쿠룬 투란 티무르(木兒)인데 남송의 장군 악비의 6대손이라 합니다. 함경도 출신의 이성계를 만나 그와 의형제를 맺게 되면서 조선 건국을 도와 개국공신으로 봉해졌다죠. 책에는 그의 외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워 마치 여자와 같았다고 역사 기록에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초상화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죠. 아마도 그 당시 미인의 기준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기에 그런게 아닌가 싶네요.^^

 

 

 

 

 

 

이지란은 두번에 걸쳐 개명이 있었다 합니다. 그와 의형제를 맺은 이성계는 그가 고려 사회에 편입되길 바래서 자신의 성을 내리면서 이두란(李豆蘭)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이후 조선 개국 후 개국공신으로 봉해지면서 이지란(李之蘭)이란 이름을 다시 내려주었답니다. 책에서는  이에 대해 이성계가 이지란과 그의 영향 아래 있던 여진족들이 조선에 흡수되기를 바래 두번이나 이름을 내려준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구요. 이지란이 죽기 전 태종(이방원)에게 올린 글을 보면 그가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는데 이지란은 죽을 때까지 자신은 동북면 여진족 출신이며, 조선을 자신의 나라가 아닌 타국으로 인식했었고 자신이 최후에 묻힐 고향은 조선이 아닌 본토(本土), 동북면이라 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이지란을 통해 다문화 정책 개념으로 두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종의 용광로'라 번역되는 '멜팅 팟(Melting Pot)'과 '모자이크 사회'라고 불리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 그것이죠. 멜팅 팟은 여러 인종과 문화 등이 하나로 융합되고 동화되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사회를 의미하고 샐러드 보울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지란은 전형적인 샐러드 보울, 모자이크사회와도 같다고 볼 수 있겠죠.

 

 

 

 

 

책은 현대 다문화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지란을 통해 생각해 볼 여지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미국과 같이 용광로 정책이 적절한지 아니면 샐러드 보울과 같이 각기 다른 다문화적 요소를 서로 인정하면서 사회를 유지해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어느 하나만을 고집한다는 건 지금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사회에선 맞지 않겠죠. 나찌 독일이 주창했던 게르만 순수혈통이나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일체 정책처럼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 수록된 이지란의 이야기는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과 더불어 함께 사는 다문화 사회는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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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이슬람 귀화인, 장순룡 다문화 인물시리즈 3
김형종 지음, 이은혜 그림 / 작가와비평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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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물시리즈 03. 고려 시대의 이슬람 귀화인, 장순룡

 

 

 

 

 

 

글 : 김형종

그림 : 이은혜

펴낸곳 : 작가와비평

발행일 : 2020년 7월 15일 1판1쇄

도서가 : 12,000원

 

 

 

  

 

 

다문화 인물시리즈 세번째는 고려말 위구르 계통의 색목인(회회인)이었으나 고려에 들어와 귀화한 장순룡(張舜龍)입니다. 이 분은 원나라 제국공주가 고려에 들어올 때 사속인으로 공주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 들어왔는데 이후 고려에 귀화하여 초명은 장삼가(張三哥)였었고 이후 장순룡으로 개명하여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는 분입니다. 원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이슬람교를 믿는 유목민족인 회회인(回回人)였다는데 귀화하면서 낭장에 임명되고 이후 진급을 거듭하여 장군에 이르렀는데 이때 장순룡으로 개명하였다네요.

충렬왕 때에는 원나라의 칙명으로 선무장군 진변관군총관 정동행중서성도진무에 임명되었는데 충렬왕은 아들 충선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장순룡의 집에서 지냈을 정도로 신망이 깊었다고 합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당시 권신은 조인규와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투었고, 같은 사속인이었던 차신, 인후와 더불어 권세를 다투고 사치함을 서로 경쟁하여 화초 모양 담(장가장)을 쌓는 등 그 화려함이 극에 달했으며, 이웃집을 빼앗고자 무뢰배를 동원하여 집을 부수는 등 행패가 극심했었다네요..


 

 

 

 

책에 따름 고려말기 제국공주를 따라 온 색목인들 중에는 위구르 계통이 많았다는데 이들은 고려 개경에 상점을 차리고 큰 규모의 집단을 이루어 무역을 했으며 이슬람 사원까지 세웠다고 하는군요. '쌍화점'이란 고려가요에 '회회(回回)아비'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서민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존재였다네요.

 

 

 

 

 

무슬림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고려가 처음은 아니랍니다. 삼국유사에 따름 처용이 9세기경 동해바다에서 나타났으며 눈과 코가 크고 건장한 체격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신라는 당나라에서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이 많은 활동을 하며 교류를 하던 시기였기에 당의 수도 장안에서 많은 무슬림들과 다양한 접촉을 하였을 것이고 신라에도 이슬람 문화가 많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답니다. 실제 왕릉에서 출토된 유리잔이나 황금보검처럼 아랍의 산출물과 괘릉의 무인석상과 같이 중동지방 인물을 모델로 제작된 듯한 석상처럼 그 흔적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하구요.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과 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다문화 가정이 있었다는 얘기이고 지금은 외모상으로 전혀 귀화인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토착화되어 우리 민족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죠. 아이들에게도 뭔가 깨닫게 해줄 수 있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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