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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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위를 여러개의 포탄들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섬광처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 "쾅"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그 굉음이 울릴 때마다 천지가 뒤흔들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목격한 전쟁. 미국 방송채널인 CNN화면을 통해 본 전쟁은 이미 전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과격한 한 편의 쇼처럼 변해버렸다. 과연 전쟁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어나는 것일까?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남성이지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너무나 명확한 답이라서 진부하기까지 한 그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현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아시아 서쪽 끝 어딘가에 있을 그 조그만 나라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9.11 테러가 일어난 그 쯤이었다. 비행기 두대가 세계무역빌딩으로 날아들고 건물과 비행기 모두가 산산조각이 나던 그 때, 나는 자연히 전쟁을 떠올렸다. 무고한 인명을 숨지게 하고, 그들의 많은 가족들을 평생동안 온전한 행복을 경험할 수 없게 한 오사마 빈 라덴.  미국에서 일어난 큰 사건은 중동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중동인들을 악마로, 혹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저 그 테러범들과 같은 종교를 믿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픔을 바라보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미국인들이 그토록이나 증오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미국의 언어로 소설을 썼다.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절대 적일것만 같은 두 국가 사이에 양발을 걸치고 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 그는 자신이 태어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테러범들의 국가라는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스르로 잔인한 현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계에 알리고 있다.

 

어떻게 일어난 전쟁인지도 모르고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아이들과 여성, 이들이 바로 할레드 호세이니가 다루고자 한 인물이다.  처녀작인 [연을 쫓는 아이]를 통해 전쟁이 어린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크고 질긴 암흑을 드리우고 대를 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여성들의 고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전쟁과 폭력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여인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두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 이 둘은 너무나도 닮은 인생을 살아간다.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을하다 그 집의 주인의 애를 가진 어머니에게서 난 마리암. 그녀는 비록 타인들에게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 가족에 누가되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한시도 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목을 매어 자살하고 믿었던 아버지마저 그녀를 외면한다. 그리고 쫓기듯 고향을 떠나 카불에서  늙은 구두장이 라시드와 꾸린 가정. 그 곳에서 그녀는 꿈꾸었던 가족의 따뜻한 정도, 남편의 따뜻한 사랑도 얻지 못한다.  강간과도 같은 남편과의 관계, 아이를 잃고 매일같이 온몸으로 떨어지던 남편의 폭력. 그녀는 그렇게 자아를 잃어간다.

 

그렇게 마리암이 남편의 모진 매를 견디며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던 그때, 마리암의 이웃에서 라일라가 태어난다.  두 오빠가 전장으로 떠나고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어머니는 방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렸다. 하지만 라일라는 따뜻한 아버지와 타리크가 있기에 그녀는 행복했다. 하지만 전쟁은 라일라에게서 그 모두를 빼어갔다. 그리고 타리크는 가족을 따라 카불을 떠났다.두 오빠의 죽음과 집 위로 날아든 포탄은 그녀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라일라는 라시드의 후처가 되었다.

남편을 뺏긴 여자와 남편을 뺏은 여자. 마리암과 라일라는 처음엔 서로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비록 자신을 때리고 학대하는 남편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마리암은 라일라를 적대시했다. 하지만 라일라가 아지자를 낳고 두 여자는 마치 모녀처럼 가까워진다.

 

절망의 끝에서 빛을 보다

 

두 여자가 한 집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라일라는 라시드가 그렇게 원하던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의 학대는 수그러들줄 몰랐다. 남편의 학대가 심해지는 것 만큼이나 카불의 상황도 좋아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졌고, 마리암네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내다팔고, 나중엔 아지자마저 고아원에 맡겨야했다. 

 

세상은 바뀌었다. 여자들은 남성보호자 없이는 길거리에 나설 수 없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 전부를 무르카로 꽁꽁 숨켜야했다. 전쟁은 모두에게 가혹했으나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도망을 꿰하기도 했지만, 경찰들은 그녀들이 남편에게 죽도록 맞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남편에게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남편의 모진매와 궁핍한 생활보다 더 라일라를 참을 수 없게 했던 것은 라시드의 추악한 거짓말이었다. 라일라를 후처로 들이기 위해 사람을 사서 거짓말을 한 라시드. 라일라는 그 사실을 알고 라시드에게 대들었고, 라시드는 곧 라일라를 죽일듯 보였다. 그래서 마리암은 라시드를 죽인다.

 

남편의 폭력에 맞섰던 마리암이 처형당하는 덕분에 라일라는 정인과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시절 꿈꾸었던 그런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라일라는 마리암의 흔적을 찾아 마리암의 고향으로 간다. 그곳에서 라일라는 마리암의 오랜 고통을 해소해 줄 그것과 마주친다.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행위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트렸다. 최소한의 자유마저 억압당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 그녀들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지나가고, 그렇게 학대받던 여린 영혼들이 자아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다. 마리암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라일라는 자신의 딸이 잠기 맡겨졌던 고아원에 기부를 한다.  라일라는 자신을 위해 마리암이 희생했음을, 자신의 발밑에는 마리암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것을 다짐한다.

 

전쟁의 화마가 사그라드는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여성들이 라일라처럼 살아갈 것이다.  다시 휜가운을 입고 환자를 치료하고,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전쟁이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의 살아남은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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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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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작가, 이외수

 

 한국에서 문인(文人)이라는 직책은 꽤나 독특한 힘을 가진다. 오랜세월에 걸쳐서 단단하고 견고해진 유교문화에 익숙해진 탓일까? "문학은 죽었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해버린 21세기 한국에서 문인은, 작가는 이미 죽어버린 문학과는 다르게 지식인으로서 존경을 받는다.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 작가는 흔히 권위주의적 이거나 아니면, 보수적이거나 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세간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이외수.

 

 이외수는 이문열같은 작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1946년생인 그는 올해로 만 62세가 되었다.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되는 그는 우리가 '작가'하면 떠올리는 보수주의적이라거나 권위주의적 이라는 이미지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흡사 도인을 연상시키는 그의 외모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화제가 되었고, 그는 이제 tv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자신의 작품과는 별개로 유명인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아주 친근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중에게 성큼 다가온 이외수, 그를 더욱 친근하게 만든데에 [하악하악]이라는 이 책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DC를 하고, 야동을 보는 꽃노털

 

 언제가부터 이외수가 인터넷을 한다는 소리가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이외수가 디씨(디시인사이드)까지 진출했다는 소릴 들었다. 어머나!!! 이외수는 본인의 이름을 당당히 아이디로 내걸고 DC갤러들의 칭송을 받으며, 당당히 인증까지 남겼다고 한다. 이런~

 

60을 넘긴 노인이 인터넷을 하다니, 것도 DC까지 진출을? 이건 정말 뉴스감이다. 그리고 [하악하악]은 그러한 이외수의 인터넷활동기의 일부를 담아낸 책이다.

 

 그는 책에서 인터넷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함은 물론이며, 세상에 그 무섭다는 악플러들을 비꼬며 훈계한다. 그리고 자신을 자칭 꽃노털이라 칭하며, 은근 자신의 미모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 그 무거운 틀을 벗고 대중 앞으로

 

 [하악하악]은 이외수가 대중에게 더욱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 어느 작가가 자신이 야동을 보고 인터넷을 익혔다고 대중앞에 당당히 선언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느 작가가 인터넷용어와 속어를 그렇듯이 자연스레 구사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이외수의 이러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과연 그는 왜 작가의 무게감을 그렇게 가볍게 내동댕이친 것일까? 이는 어쩌면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돌출행동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죽어간다는' 그 한국문학을 살리고, 한국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를 고심하다 가식을 훌훌버리고 자연인 이외수로서의 모습을 대중에게 내보이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모두 대중에게 가까워지기 위함이라고...


[하악하악]에 담긴 이야기, 그가 하고싶은 이야기

 

 [하악하악]은 260개의 이야기가 총 5장으로 구분되어 실려있다. 주제는 다양하다. 악플러들에 대한 조롱, 속담의 재구성, 자신의 일상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짤막짤막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라고 해서, 비속어가 섞여있다고 해서 그 글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단 한 줄의 글이지만 깊게 생각해볼 거리를 독자에게 제시하여 준다는 점에서 그의 40년 작가 내공이 절대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냥 가볍게, '이 사람은 뭔가?'라는 호기심으로 가볍게 들고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이어지는 다른 호기심으로 그의 다른 작품-가령 [괴물]이나 [벽오금학도]같은- 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이외수가 그렇게 원하는 한국문학의 부활, 그가 인터넷으로 뛰어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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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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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왜 떠나는가

 

나도 가끔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끈적하게 온몸으로 내려앉는 요즘과 같은 때에는 여행생각이 더 간절하다. 이 답답하고 지루한 공간을 벗어나 누구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남들의 시선에 맞추어 고정되어 온 내 삶의 리듬과 결계를 깨부시는 그런 일탈을 해보고싶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의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관광객의 목적은 관광일뿐, 여행은 될 수 없다.

 세상이 참 많이 바빠지고, 야멸차졌다. 때문일까? 하나 둘 씩..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행을 떠나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왜. 여행을 떠나시나요?". 나에게 돌아온 답은 너무나 당연해서 지루하고, 멋도 없는 말 하나였다. "나를 찾기 위해서요."

 너무 진부하고 지루한, 단물이 다빠져버린 껌같은 그말이 사실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찾기위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반기를 든 채, 현재의 자신에서 멀리 떨어져 보기로 용기를 내는 사람.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의 저자 , 테오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누구나 가슴속에 "역마살"하나쯤은 있는 거에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멋지게 떠나고 싶어한다. 방구들을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보다 더 좋아하는 나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속에 '역마살'이라는 '살'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토정비결에 나타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건 그냥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행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당신의 소금사막에..]의 저자 테오는 인생에 '역마살'이 아주 또렷히 새겨져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에 이어, 중국과 일본은 알아도 한국은 모르는 그 미지의 공간, 볼리비아로 떠났으니 말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뿌리라는 그것이 희미해지는 공간으로 떠나 주변을 둘러보고, 깨달음을 얻고, 타인에게서 가르침을 얻은 그는 자신의 역마살을 세상에 자랑스레 내보이는 듯 하다.

 

깨달음으로 다가온 사람들

 

 테오는 볼리비아로 가서 많은 인생들과 조우했다. 과자와 껌을 팔며, 다음에도 자기를 찾아와 물건을 사달라던 할머니, 닌텐도게임기는 커녕 컴퓨터라는 물건도 한번 보지 못하고 양만 지키며 살아야하는 여자아이, 나란히 장에서 물건을 팔던 꼬마 자매.

 세속의 눈으로 그들의 삶은 지루하고 따분하며, 힘겹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테오는 그들과 더듬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를 통해 세속의 눈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을 위한 것보다 '우리'를 위한 것이 더욱 좋다... 테오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은 우리도 익히 들어 알고있지만, 바쁘게 내 욕심을 챙기며 사느라 잊어버린 것들이었다.

 

비가 내린 소금사막, 당신은 무엇을 만났나요?

 

 들어가기 어렵다는 볼리비아 국경에서 한참을 지나, 테오는 누런 모래 대신에 하얀 소금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소금사막에 도착한다.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비에 맞은 소금이 녹아내려 하늘이 지상으로 연장되는 장관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테오는 누구도 묵어가지 않으려한다는 짠맛나는 소금호텔에서 일박을 한다.

 우르르 다들 몰려와서 시끌벅쩍 떠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대다가 시간이 되면 우르르 다들 떠나버리는 유우니 사막. 그곳을 지키는 호텔 지배인과 욕심을 모르는 소금장수.

 다른 것에는 상관없이, 자신과 자연이 정한 법칙과 임무에 충실한 그들과 함께보낸 그 하루.  그 하루는 아마도 테오에게 있어서 '정화'를 의미할 것이다. 비단 깨끗한 공기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싸구려 '정화'가 아닌,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혹은 세속에 찌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런 영혼의 '정화'말이다.

 

아마도 당신이, 혹은 내가 그 곳에 가게된다면 무엇을 만날지 모르겠다. 비가 오기 전과 후가 너무나 다른 유우니의 모습처럼, 우리가 만날 그 무언가도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에게 다가올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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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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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 긴 여운

 

무던히도 지루했던 그 날 오후, 나는 소위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힐러리 스웽크라는 걸출한 배우가 나오는 [프리덤 라이터스]. 사실 이 영화가 원작을 가지고 있다는 것 쯤은 옛날에 알고 있었다. 책 이름을 먼저 접했고, 읽을까 말까 약간의 고민을 했었지만, 읽어야만 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어느새 잊혀져 있었다.

영화의 플레이버튼을 누르고, 나는 그 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속에 푸욱 빠져버렸다. 영화를 보자마자, '갱스터 파라다이스'가 귓가에 흐르는 듯한 환청을 느꼈다. 미셀 파이퍼와 힐러리 스웽크, [위험한 아이들]과 [프리덤 라이터스]. 이 둘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뻔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나았다. 그들을.. 프리덤 라이터들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들만의 전쟁터, 그들은 이미 전사였다

 

전 세게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LA흑인폭동. 그 무렵 아주 어린 아이였던 나도 바다 건너 저멀리 미국이란 곳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큰 사건은 미국이란 다문화공간에 만연해있던, 하지만 쉬쉬 숨겨왔던 인종차별주의 문제를 세상으로 터뜨려 보여주었다.

 

우리의 프리덤 라이터들도, 아직 어린 십대의 소년 소녀였지만 그 인종차별의 그늘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동양계, 히스페닉계, 흑인, 백인... 피부색으로 패를 갈라 서로 으르렁대며 누구하나 서로에게 다가가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기에 아주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들의 혈족들을 지키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학교 건물안에 경찰이 들어와있는 모습이 쉬이 상상되는가? 어린 아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권총을 들고 등하교하는 모습은? 그것도 아니면 약에 절어 헤롱대는 십대 어린아이의 모습은?

 

미국이란 큰 땅덩어리 안에서, 피부색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아온 아이들은 그들만의 전쟁터에서 그들만의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전사'라 불렀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하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전의를 불태워야하는.. 전사.

학생이라면 누구를 가리지 않고 사랑과 교육으로 감싸안아야 할 공간, 학교. 그곳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 사방이 꽉 막힌 그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학교밖의 전쟁을 그대로 이어나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 아이들이란..." 시선과 싸워나가야 했다.

순종은 밥 말아먹은지 오래고 모범생은 따돌림과 경멸, 우스꽝스러운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냥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뿐이다. 꿈? 그런건 없다. 왜냐구?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운명적인 만남, 변화.. 그리고 ...

 

죽음 아니면 삶. 이 두가지로도 버거운 삶을 간신히 버텨나가던 아이들에게 풋내기 여선생이 다가온다.

실습을 갓 마치고 이제 교직에 첫 발을 내딛은 그 풋내기 여교사는 스스로를 움츠러트리고 온 몸에 신경을 곤두세운 아이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이 조그만 만남 하나가 아이들과 여교사,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다들 자기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다. 안그렇겠는가? 아버지가 눈 앞에서 체포되고, 14살 어린나이에 낙태를 해야했으며, 누군가는 누명을 쓰고 징역살이를 해야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어두운 삶 속에서 풋내기 여선생은 아이들에게 조그만 빛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글을 썼고, 처음으로 책을 읽었으며, 처음으로 남의 고통을 이해하겠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변해갔다. 조그마하고 나약하지만 자신들의 힘을 모아 세상에 대고 외쳤다. 폭력과 전쟁이 얼마나 흉측스러운 그림자를 길게느리우는지를,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파해야하는지를 말이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집안에서 처음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아이는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죽기전에 자신이 할 수 없었던 모든 일 들을 해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통해 내가, 세상이 이 만큼이나 변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가끔은 편견에서 벗어나 괴짜스러운 시선으로, 혹은 세간에서는 멍청한 짓이라 할지라도 소신을 가지고 시도하면 언제난 결과는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기적을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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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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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빵 굽는 타자기 인가.

 

독특한 제목이다.. 싶었다. 폴 오스터에 대해서 잘 몰랐던 그 무렵, 나는 [빵 굽는 타자기]를 그저 도서관에서 스쳐 지나치는 하나의 독특한 제목으로만 생각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손을 뻗어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볼 용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제목만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었다.

 

혹시 배를 곯고있는 한 젊은이에게 빵을 만들어주는 타자기가 생긴 이야기인가? 아니면 정말 빵을 구울 수 있는 타자기를 발명한 한 사내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 일까?

누군가 들여다보지도, 검열하지도 않는 내 머릿 속에서 자유로운 상상은 나래를 펴고 계속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책을 그냥지나치던 그 순간으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빵 굽는 타자기]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왜 [빵 굽는 타자기]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폴 오스터, 글은 왜 쓰는가?

 

미국이나 한국이나,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그래서 글을 쓰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과 그리고 이미 등단한 기성작가들을 곁에서 보고 접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들중에 소위 잘 나간다는 작가는 없었다. 먹고 살기 어려움에 대한 고충을 웃음거리로 승화시키던 그들의 결론은 "글써서 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작가, 혹은 에세이스트, 자유기고가는 그냥 돈벌기 힘든 직업군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를, 혹은 글쓰는 직업을 선망하는 사람은 아직 철이 덜 든, 혹은 시대감각이 없는, 또는 용감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폴 오스터도 그 용감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폴 오스터는 운명적으로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운명에 순응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중산층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약간은 곱게도 자랐을 듯한 그가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업으로" 글을 쓴다는 과정으로 발돋움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옮겨담은 책이 바로 이 [빵 굽는 타자기]이다.

 

이제 조금 감이 오는가? 이 책의 제목이 왜 [빵 굽는 타자기]인지 .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서로 다른 성향의 부모님의 갈등과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결론을 지켜보며 자랐다. 그리고 군 징집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소신있게 학교?로 여행을 떠났다.

의도치 않게 유명인과 친분을 쌓기도 했고, 굉장한 소신을 가진 사업가 밑에서 허드렛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게 배를 타고 항해를 하기도 했다.


 

폴 오스터에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돈'과 관련된 일이었다.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되기위해 그는 정말로 험난하고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그 덕택일까?

그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폴 오스터는 현재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엄청나게 먼 한국이라는 곳에서 일군의 팬 층을 형성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책을 번역, 출간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빵 굽는 타자기]

 

다시 돌아와서 제목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우연하게 폴 오스터가 타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게 말하면 매니아, 나쁘게 말하면 오타쿠.


 

폴 오스터는 타자기에 관한 에세이 책을 출간할 만큼 타자기에 지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왜 빵을 굽는 타자기인지.. 책을 덥고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작품을 타자기로 타이핑하는 그에게 있어서, 온전히 글로 먹고살던, 그리고 지금도 글로 먹고사는 그에게 있어 타자기는 단순한 타자기가 아니었다. 타자기는 밥벌이를 해주는 고마운 대상이었다. 그리고 밥벌이 그 자체였다.

 

[빵 굽는 타자기]란 바로 그 밥벌이에 대한 고마움과 예전의 그 고난과 시련의 그 시간을 위트있게 , 폴 오스터답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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