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한 만남, 긴 여운

 

무던히도 지루했던 그 날 오후, 나는 소위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힐러리 스웽크라는 걸출한 배우가 나오는 [프리덤 라이터스]. 사실 이 영화가 원작을 가지고 있다는 것 쯤은 옛날에 알고 있었다. 책 이름을 먼저 접했고, 읽을까 말까 약간의 고민을 했었지만, 읽어야만 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어느새 잊혀져 있었다.

영화의 플레이버튼을 누르고, 나는 그 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속에 푸욱 빠져버렸다. 영화를 보자마자, '갱스터 파라다이스'가 귓가에 흐르는 듯한 환청을 느꼈다. 미셀 파이퍼와 힐러리 스웽크, [위험한 아이들]과 [프리덤 라이터스]. 이 둘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뻔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나았다. 그들을.. 프리덤 라이터들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들만의 전쟁터, 그들은 이미 전사였다

 

전 세게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LA흑인폭동. 그 무렵 아주 어린 아이였던 나도 바다 건너 저멀리 미국이란 곳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큰 사건은 미국이란 다문화공간에 만연해있던, 하지만 쉬쉬 숨겨왔던 인종차별주의 문제를 세상으로 터뜨려 보여주었다.

 

우리의 프리덤 라이터들도, 아직 어린 십대의 소년 소녀였지만 그 인종차별의 그늘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동양계, 히스페닉계, 흑인, 백인... 피부색으로 패를 갈라 서로 으르렁대며 누구하나 서로에게 다가가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기에 아주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들의 혈족들을 지키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학교 건물안에 경찰이 들어와있는 모습이 쉬이 상상되는가? 어린 아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권총을 들고 등하교하는 모습은? 그것도 아니면 약에 절어 헤롱대는 십대 어린아이의 모습은?

 

미국이란 큰 땅덩어리 안에서, 피부색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아온 아이들은 그들만의 전쟁터에서 그들만의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전사'라 불렀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하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전의를 불태워야하는.. 전사.

학생이라면 누구를 가리지 않고 사랑과 교육으로 감싸안아야 할 공간, 학교. 그곳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 사방이 꽉 막힌 그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학교밖의 전쟁을 그대로 이어나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 아이들이란..." 시선과 싸워나가야 했다.

순종은 밥 말아먹은지 오래고 모범생은 따돌림과 경멸, 우스꽝스러운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냥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뿐이다. 꿈? 그런건 없다. 왜냐구?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운명적인 만남, 변화.. 그리고 ...

 

죽음 아니면 삶. 이 두가지로도 버거운 삶을 간신히 버텨나가던 아이들에게 풋내기 여선생이 다가온다.

실습을 갓 마치고 이제 교직에 첫 발을 내딛은 그 풋내기 여교사는 스스로를 움츠러트리고 온 몸에 신경을 곤두세운 아이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이 조그만 만남 하나가 아이들과 여교사,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다들 자기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다. 안그렇겠는가? 아버지가 눈 앞에서 체포되고, 14살 어린나이에 낙태를 해야했으며, 누군가는 누명을 쓰고 징역살이를 해야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어두운 삶 속에서 풋내기 여선생은 아이들에게 조그만 빛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글을 썼고, 처음으로 책을 읽었으며, 처음으로 남의 고통을 이해하겠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변해갔다. 조그마하고 나약하지만 자신들의 힘을 모아 세상에 대고 외쳤다. 폭력과 전쟁이 얼마나 흉측스러운 그림자를 길게느리우는지를,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파해야하는지를 말이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집안에서 처음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아이는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죽기전에 자신이 할 수 없었던 모든 일 들을 해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통해 내가, 세상이 이 만큼이나 변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가끔은 편견에서 벗어나 괴짜스러운 시선으로, 혹은 세간에서는 멍청한 짓이라 할지라도 소신을 가지고 시도하면 언제난 결과는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기적을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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