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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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범죄소설 작가 "톰 프랭클린(Tom Franklin)"이 2010년에 발표한 작품 "미시시피 미시시피(Crooked Letter, Crooked Letter)"입니다. 이 작품은 LA 타임즈에서 '올해의 미스터리'로 뽑았고, '에드거' 상, '앤서니' 상, '배리' 상, '해밋' 상 등의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1년 '골드 대거'를 수상했습니다.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 ‘샤봇’에서 한 여대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래리 오트"를 의심합니다. "래리"는 20여년 전 한 소녀의 실종 사건 용의자였다가 확증이 없어서 혐의를 벗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괴한으로 부터 "래리"가 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지고,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 경찰 "사일러스"가 이 사건을 조사합니다. "래리""사일러스"는 어린 시절 짧지만 특별했던 우정을 나눈 친구였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었습니다.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마을의 외톨이였던 "래리"를 외면했던 "사일러스"는 다시 "래리"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린 시절이란 저런 것일까? 빠르게 달리는 버스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 같은 것?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어떤 모습인지 알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것? 그렇다면 성년기는? 멈춰 서려고 속도를 줄이는 버스 같은 것일까? 남자 나이 마흔이면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 지쳐버려 칡덩굴보다도 느리게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1970년 대 후반, 소년으로 만난 "래리""사일러스"는 모든게 서로 달랐습니다. 피부색 부터 성격, 좋아하는 것까지. 정책이 바뀌면서 학군을 옮기게 된 "래리"는 흑인이 더 많은 학교로 전학가게 되었고 그는 백인뿐 아니라 흑인 학생들에게 까지도 조롱꺼리 였습니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뿐 이었고 마초 성향이 짙은 아버지는 그런 나약하고 소심한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유약한 아들을 위해 언제나 "래리"만을 위한 단 한명의 친구를 보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타난 흑인 소년 "사일러스""래리"에게 특별한 친구였고,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혀서 서로 멀어지게 되었어도 언제나 애뜻하게 생각하는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소녀 "신디"가 실종되면서 그의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래리"와 데이트를 나갔던 "신디"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용의자로 지목된 "래리"는 확증이 없어 풀려났지만 모두가 그를 "괴물 래리"로 부르고, 아버지의 정비소엔 손님이 점점 줄어듭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군에 입대하지만 음주운전으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래리"는 단 한명의 손님도 없는 아버지의 정비소를 운영하며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괴물로 취급받으며 외톨이로 살면서도 "래리"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저 바라는 건 아버지를 이어서 하는 정비소에 뜨내기 손님이라도 한명 와주는 것 뿐 입니다.
시카고에서 엄마와 함께 도망치듯 떠나 엄마의 고향으로 온 "사일러스"는 언제나 자신이 엄마의 인생에 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인이었던 엄마는 흑인이지만 인종을 가리지 않고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미인이었습니다. 자신만 없다면 엄마의 인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심에서 자라 시골로 온 "사일러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땅 주인 아들과 친해집니다. 총 쏘는걸 가르쳐 주고 낚시하는 법도 가르쳐주는 "래리"와 몰래 숲에서 노는 게 좋았습니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자신에게 "래리"가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 해주는 게 좋습니다. "래리"와 사이가 멀어져 서로 다른 길로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래리"가 신경 쓰였습니다. 야구 선수로 인기가 높아지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지만 따돌림 당하는 착한 바보 "래리"가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래리""사일러스"가 친구였던 걸 몰랐고,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바라만 봤습니다. "래리"가 살인 용의자가 되어 망가져 갈때도. 그리고 20여년 만에 경찰이 되어 마을로 돌아와 여전히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래리"를 외면했습니다. 또 다른 소녀가 실종되고 다시 "래리"가 용의자로 몰리면서 "사일러스"는 수사에 참여하며 그동안 외면했던 "래리"의 불행했던 인생의 흔적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감추어진 비밀들을 통해 뒤틀려버린 친구의 인생을 바꾸어 주고 싶어 합니다.

지나간 날들 위로 한 해 한 해가 새로이 쌓여가지만, 그 옛날은 아직도 그 안에 있다. 나무의 가장 처음에 생겨난 가장 단단한 나이테처럼, 험한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가장 깊은 곳 어둠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톱이 비명을 지르며 파고 들어오면 나무는 쓰러지고 나이테는 태양에 그대로 드러나며, 수액이 반짝이고 그루터기는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추리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허물은 작품들을 흔히들 '문학적 스릴러'나 '문학적 추리소설'로 부르는데 사실 저는 '문학적'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소설들을 상하로 나누어 등급을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 표현력이 현저히 낮은 저로선 이 작품에 '문학적 범죄소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인종이 달랐던 두 남자의 오랜 인연과 비밀, 구원, 화해를 다룬 "미시시피 미시시피"는 단순히 미스터리나 범죄 문학이란 장르로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를 구축하는 20여년을 걸쳐 사라진 두 소녀의 사건은 어쩌면 작가가 쓰고 싶던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에 지나지 않나란 생각 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작가는 사건의 실상과 범인의 정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교묘하게 끌어들여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지만, 한순간 인생이 뒤틀려 버려 오랫동안 고통 받던 남자와 그를 외면하며 죄책감을 느끼던 또 다른 남자의 속죄와 화해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더 오래 가슴에 남을 정도로 큰 축을 차지 하기 때문 입니다.

혀에서는 구리 맛이 났다. 한기가 들고 졸리며 심하게 목이 말랐다. 엄마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숲 속에 서 있는 신디 워커도. 벽에 기대선 남자는 어느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래리를 노려보는 가면의 구멍 속에서 눈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이상하게도 래리는 그를 용서하고 싶어졌다. 괴물은 모두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급스러운 문장과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배경이 되는 미시시피의 특징들을 잘 뽑아 서술한 묘사 등 모두 훌륭하지만 범죄 사건이 불러온 후폭풍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가 "톰 프랭클린"은 근거 없는 의심과 낙인 그리고 침묵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주려는 듯 살인자로 낙인 찍혀 철저히 고립되어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상을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며 그 남자의 삶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오래전에 스스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버렸을 정도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래리"는 답답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덤덤하게 모든 걸 받아들입니다. 또 다른 소녀의 실종 사건을 듣고 자신이 제1의 용의자가 될 거란 것도 당연해 합니다. 그런 "래리"의 인생에 의도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옛친구 "사일러스"가 그들이 함께 공유했던 짧았던 추억들과 나락으로 떨어진 "래리"의 삶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그동안 숨겨졌던 비밀들과 진실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 작가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래리는 이제부터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이것으로 잃어버린 25년이란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보통 범죄소설들을 읽으며 감동이나 여운을 느끼는건 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톰 프랭클린"은 자신의 세 번째 장편 소설에서 재미와 여운, 감동을 모두 담아냈습니다. 인종차별, 따돌림, 의심, 침묵, 화해, 살인이란 그리 특별할거 없는 소재들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 정도면 '골드 대거'를 수상하는데 전혀 이상할게 없을 정도입니다. 유독 그해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 유력 추리문학 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도 '골드 대거'만 수상했지만 “미시시피 미시시피”는 좋은 소설을 다 읽고 맥주 한잔을 하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M, I, crooked letter, crooked letter, I, crooked letter, crooked letter, I, humpback, humpback, I. (엠, 아이, 꼬부랑글자, 꼬부랑글자, 아이, 꼬부랑글자, 꼬부랑글자, 아이, 곱사등, 곱사등, 아이) - 남부 지방 어린이들이 미시시피(Mississippi)의 철자를 외우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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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1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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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대표적인 범죄 소설 상인 '글래스 키'상에 2009년도 최종 후보로 오르면서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한 덴마크 스릴러 "슈트케이스 속의 소년(Drengen i Kufferten / The Boy In The Suitcase)"입니다. 아동 문학 소설가인 "레네 코베르뵐(Lene Kaaberbøl)"과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아그네테 프리스(Agnete Friis)"가 공동 집필한 이 작품은 적십자에서 활동하는 간호사 "니나 보르" 삼부작 중 첫 편 입니다.

적십자 캠프에서 일하는 "니나 보르"는 간호 학교때 부터 친구였던 "카린"의 부탁으로 코펜하겐 기차역 보관함에서 슈트케이스를 찾아서 지하 주차장으로 옮깁니다. 슈트케이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열어본 "니나"는 그 안에서 발가 벗겨진 남자 아이를 발견합니다. 처음엔 죽은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본 "니나"는 아이를 차 안으로 옮기고 어리둥절 한채 보관함으로 다시 돌아 갑니다. 그곳에서 분노에 휩싸여 난동을 피우는 덩치 큰 남자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아이가 들어 있던 슈트케이스와 관련이 있는 남자라는걸 알게 됩니다. 한 편,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시가타"는 자신의 아들 "미카스"와 놀이터로 놀러간 이후 기억을 잃어버리고 병원에서 깨어납니다. 팔은 부러졌고 기억은 없는 "시가타"는 술을 마시지 않는 자신이 만취 후 계단에서 굴러서 쓰러진채 병원으로 실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안함을 느끼며 아들 "미카스"의 행방을 찾습니다.

그중에는 부모가 돈을 받고 팔아서 주인에게 구걸하고 도둑질하는 훈련을 받은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동유럽 출신들이 그랬다. 거리에서 잡혀 난민 센터에 가게 되면 도망칠 기회가 보이는 즉시 도망가라는 지시를 받은 아이들 이었다. (중략) 그러나 주인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한 목적만으로 덴마크에 끌려온, 이 세상에 자기 편이라곤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체로 캠프의 아이들 중 70퍼센트는 사라졌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슈트케이스 속에서 아이를 발견하는 적십자 캠프 간호사 "니나 보르"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 "니나 보르"를 포함한 네 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이를 납치하라고 사주한 듯한 남자, 사주를 받고 아이를 납치한 남자, 아이를 잃어버린 싱글맘 그리고 아이가 든 슈트케이스를 발견한 간호사. 이기심, 돈, 모성애, 사명감 등 서로 다른 목적이지만 어떻게든 이 사건에 연결되어 있는 네 명의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지면서 클라이막스로 달려갑니다. 처음부터 대충 사건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짐작을 하게 하는 설정이지만 어떻게 일이 꼬이게 되어서 간단해 보이던 납치 사건이 엉망이 되었는지 차근 차근 꽤 괜찮은 솜씨로 세부사항들을 잘 맞추어 나갑니다. 너무 과하지 않은 여성 작가들 특유의 섬세함 역시 적당해서 이야기에 매끄럽게 몰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소녀다운 다정함과 아직 망아지 같은 어색함이 남아 있는 어린 소녀와 매달 섹스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온전한 권리라고 여기는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남자들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남자들끼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 여자 자신의 선택이니 괜찮다고 할까? 돈을 좀 벌고 새 삶을 시작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할까? 위해하시기도 하지.

기본적으로 스릴러인 이 작품 속 이야기의 배경엔 '덴마크'로 들어오는 주변 후진국들 출신의 불법 체류자나 난민들이 연관된 사회 문제가 깊숙히 깔려 있습니다. 특히 중심 인물 네 명 중 두명은 잘 사는 나라 '덴마크' 인들 이고 나머지 둘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 '리투아니아' 사람들로 설정해서 팔려오거나 납치되어 들어오는 동유럽 출신의 아이들과 여자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더 힘을 실어줍니다. 그러니 적십자 캠프에서 일하는 간호사인 "니나 보르"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두 작가들의 영리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니나"는 언뜻 보기엔 오지랖 넓은 캐릭터라고 보여질 수 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에 심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캐릭터입니다. 두 아이와 남편을 둔 주부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과거에 가정을 놔둔채 도망치듯 '라이베리아', '잠비아' 등으로 떠나 구호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다행이 이젠 심리 치료사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아서 덴마크 적십자 캠프에서 일을 하며 몰래 네트워크를 통해 불법 체류자들을 돕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아직도 가족들 속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 합니다. 그러다 오랜 친구의 부탁으로 보관함에서 찾은 슈트케이스, 그 속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말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한 그녀는 다시 사명감과 모성애에 불타고, 덴마크 경찰이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기에 스스로 아이를 구하기로 결심하면서 사건의 중심에 서게됩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마주하게 됩니다.

짜증 나게도 그녀는 자기 입술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숨을 죽여 초를 읽고 있었다. 맙소사. 정말 미친 짓 아닌가? 미쳤다. 넋이 나갔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너무 미쳐서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닐까?)

'글래스 키'상 뿐만 아니라 미국의 '배리'상 최종 후보에도 오른 "슈트케이스 속의 소년"는 범죄 소설을 처음 쓰는 두 명의 작가들이 쓴 데뷔작 치곤 꽤 깔끔하고 정교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유럽 연합내의 국가간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배경으로 평범하지만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간호사가 만들어 내는 서스펜스와 스릴은 꽤 수준급입니다. 물론 데뷔작이니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니나 보르" 삼부작 중 나머지 두 권인 "Invisible Murder", "Death of a Nightingale"도 곧 상반기 안에 나오는듯 싶습니다. 삼부작 모두 적십자 캠프 간호사라는 주인공의 직업에 관련된 사건들이 중심이 되는듯 보입니다. 데뷔작 보다 얼마나 더 발전했는지 후속작들도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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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사슬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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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리 차일드"의 떠돌이 영웅 "잭 리처"시리즈의 열다섯번째 작품이자 얼마 전에 나왔던 "61시간" 바로 다음 작품인 "악의 사슬(Worth Dying For)"입니다.

네브라스카의 아주 외진 마을에 우연히 도착한 "잭 리처"는 넓은 평야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모텔에 들어갑니다. 방을 잡고 바에 들른 "잭 리처"는 옆자리에 의사로 추정되는 술취한 남자가 자신을 찾는 환자를 두려워하며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봅니다. 술 취한 의사를 설득해 환자에게 동행한 "잭 리처"는 폭력에 심하게 상한 얼굴의 여인을 마주하게 됩니다. 남편에게 맞아서 코피가 나는 여인은 그 마을을 지배하는 "던컨"일가의 며느리 "일리노어"였습니다. "잭 리처"는 이 마을을 조용히 지나갈 수가 없다는걸 느낍니다.

사우스다코타에서의 사건 후유증으로 부상을 당한 "잭 리처"는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차가 내려준 네브라스카에 서있습니다. 버지니아로 향하던 그는 네브라스카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모텔에 방을 잡습니다. 바에서 만난 술취한 의사는 한 여인이 다급하게 찾는 전화를 모른채 하려하고 "잭 리처"는 그를 끌고 전화를 건 여인에게 찾아갑니다. 피가 잘 멈추지 않는 "일리노어"라는 여인은 남편한테 맞아서 의사를 찾았고 그런 그녀를 치료해주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그 의사가 그녀의 전화를 거부하려고 한 것임을 안 "잭 리처"는 그녀의 남편 "세스 던컨"을 찾아가서 코를 뭉게버립니다. 그렇게 네브라스카의 작은 마을을 지배하는 "던컨" 일가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잭 리처"는 이 마을에서 25년전 사라진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난 이미 부자야"
"그래 보이지않는데?"
"난 내게 필요한 걸 모두 갖고있다. 그게 바로 부자라는 단어의 올바른 뜻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미국 전역을 떠도는 거구의 남자 "잭 리처"가 도착한 곳은 네브라스카의 아주 작은 어느 마을 입니다. 인구밀도가 너무 낮아서 집들이 몇십키로씩 떨어져있는 당구대 위의 체스판 같은 마을. 주로 농업으로 꾸려가는 마을은 농작물의 모든 운송을 독점한 운송사업을 하는 "던컨"일가가 왕처럼 군림하고 있습니다. "제이콥 던컨"과 그의 두 동생 그리고 아들 "세스 던컨". 마을에선 이들을 거역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고 그 마을의 유일한 의사도 그 중 한명입니다. 우연히 가정폭력으로 뭉게진 여인의 얼굴을 본 "잭 리처"는 그저 모른채하며 하룻밤만 지내고 버지니아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던컨"일가를 건드립니다. 또 다른 비밀스런 사업을 벌리던 "던컨"일가는 자신들의 윗선인 라스베가스의 범죄조직에 "잭 리처"가 방해물임을 알리고 그 조직의 실력자들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조용했던 마을에 태풍이 몰아치게 됩니다. 결국 불법적인 돈의 먹이사슬에 얽혀있는 다른 조직들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조직원들을 내려 보내면서 "잭 리처", "던컨"일가와 똘마니들 그리고 먹이사슬의 고리를 줄여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조직원들이 얽히면서 클라이막스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잭 리처"는 살인병기입니다. 자신에게 싸움을 걸면 앞날이 창창한 어설픈 젊은이라도 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가 떨어지면 여유를 부리며 한마디씩하거나 관용을 베푸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덤벼든 상대가 전의를 상실하고 두번 다시 그에게 덤빌 생각도 못하게 인대를 끊어놓거나 관절이나 팔목을 부수어버립니다. 그에게 있어서 법이란 자신만의 규칙이 유일합니다. 어설픈 자비따윈 없습니다. 악인들이 더욱 압도적인 상대에게 순시간에 쓰러지는걸 보고 싶어서 작가 "리 차일드"가 창조한 캐릭터 "잭 리처"는 똑똑한 수사관이기 까지 합니다.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다른이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놓치지 않았는지 생각하며 본능적이고 능률적으로 행동합니다. 물론 자동차나 휴대폰 그리고 세상에서 유행하는 트렌드엔 상당히 취약한 촌티나는 구식 남자이기도 합니다.

"내일 여기 사람들은 세그룹으로 분류될 겁니다.
죽은자들, 얼굴을 들지 못하는 자들, 그리고 부끄럽지않는 자들.
사장님은 세번째 그룹의 한 사람이 되어야해요..."


이번 작품은 그 동안의 "잭 리처" 시리즈 중 가장 잔인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무대는 넓은 벌판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폭력의 수위는 좀 높습니다. 액션 묘사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작가 특유의 반복과 운율은 여전하고 차분한 이야기 진행 중 중요한 순간에 묘사하는 몇초 단위의 상황들은 더욱 긴장감을 높이고 최고급 스릴러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선한 사람들에겐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악인에겐 가차없는 응징을 하는 "잭 리처"의 행동은 더욱 큰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거기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의 범죄조직간의 오해와 그 오해로 인한 그들의 행동으로 발생하는 이야기의 꼬임 또한 상당한 재미를 줍니다.

모든 "잭 리처"시리즈가 상당히 재미있지만 전 이상하게 이 시리즈는 배경이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같은 대도시가 아닌 조그마한 시골 마을일때 더 큰 재미를 느끼는것 같습니다. 조그마한 왕국에 떠돌이가 흘러 들어와서 그 왕국을 지배하는 악한 권력자를 처단하고 왕국에 평화를 주는 것 같은 이야기가 너무 좋습니다. 너무 바빠서 영화 "잭 리처"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개봉시기에 맞추어 소설이 나와 또 다른 만족을 맛봤습니다. 다음으로는 열여섯째 작품 "The Affair"와 가장 최신작 "A Wanted Man"이 올해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The Affair"는 첫번째 작품 "추적자"의 전 이야기 즉 군대시절의 이야기를 그린 프리퀼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됩니다. 뭐 이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제 글따위엔 상관없이 바로 구입하셨을거고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분들이나 영화가 별로 였지만 "잭 리처"에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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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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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얼마 전 뽑은 '헐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 TOP10'에 오른, 제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의 대표 시리즈 "켄지 & 제나로"시리즈 6번째 작품이자 시리즈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 "문라이트 마일(Moonlight Mile)"입니다.

드디어 "켄지"에게 가족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내내 사랑했던 여자이자 오랬동안 자신의 파트너였던 "제나로" 그리고 둘의 딸 "가브리엘라 (개비)". 하지만 지금 그의 현실은 가족을 위해 정규직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조만간 파산할지도 모를 위기에 쳐해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인에게 전화를 받습니다. "켄지"에게 있어서 아직까지도 죄책감이 들게 하는 사건 _실종되어서 찾아주었던_의 주인공인 한 소녀의 이모 "베아트리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조카 "아만다"가 다시 실종되었다고 "켄지"에게 말합니다.

23살 부터 사립탐정 일을 했던 "켄지"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파트너 "제나로"와 결혼을 해서 딸 "개비"와 함께 물질적으로 힘들지라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보험회사나 탐정사무소를 전전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켄지"는 정규직이 될 기회를 얻기위해 사방팔방 뛰어 다닙니다. 그 회사들은 "켄지"의 경력과 수사능력을 인정하지만 맘에 들지않는 고객에게 그가 취하는 삐딱한 태도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보험료같은 세금들과 생활비 따위에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에 점점 자괴감만 커지는 "켄지"에겐 "제나로""개비" 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 그에게 12년 전 부터 그에게 자신의 선택이 만든 죄책감으로 인해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긴 소녀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보스턴 경찰들을 적으로 만들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과 이별을 경험하고 정말 좋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냈었습니다. 12년전 납치되었던 4살짜리 여자아이 "아만다"...그녀가 또 다시 실종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민과 "제나로"의 설득으로 그는 다시 그 소녀 "아만다"를 찾아 나서고 5년간 대학원을 다니면서 탐정일을 쉬었던 "제나로"도 다시 잠시나마 탐정 일에 복귀를 합니다. 어쩌면 이번에 또 다시 찾아낸다면 12년 전 자신의 선택했던 모든 결과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불행과 상처들이 씻겨 나갈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기대감을 가지고 말입니다. 

"12년 전 내 판단은 틀렸다. 4400일이 지나는 동안 난 매일 그 사실을 확신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판단은 옳았다. 아만다를 납치범들에게 남겨 두었다면, 아무리 잘 돌봐준다 해도 납치범들 뿐이다. 그녀를 되찾은 후 4400일 동안 이 이론 역시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럼, 뭐가 남는 거지?
아직도 내가 잘못했다고 믿는 아내."


어쩌면 스릴러 소설 속 주인공 중 가장 심리적으로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판단에 자주 고뇌하는 캐릭터일지도 모르는 "패트릭 켄지"는 이젠 마흔줄을 넘어 이 일을 하기엔 늙었고 더 소심해지고 더 겁이 많아졌습니다. 그 앞에 닥쳐오는 폭력의 순간은 그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대신 온몸이 떨리는 공포를 주게 되었고 위험한 순간 폭력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누구보다 당차고 용감하고 대담했던_오히려 "켄지"보다는 더욱 더_ "제나로"도 그녀 또래의 다른 여자들이 요가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사격장에서 사격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예전 직업을 그리워 하지만 그 위대하다는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가정과 딸이 우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아만다"의 실종 소식은 한동안 그들이 모른척 해버렸던 풀지못한 숙제를 다시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줍니다. 엄마같지도 않은 엄마 "헬렌"에게서 12년 동안 자란 "아만다"는 의외로 똑똑하고 영민한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냉철하고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소녀가 되었습니다. "아만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과연 "켄지"의 선택 때문이었을까요?

"왜 돌려 보냈냐고요."
"그건 상황 윤리냐 사회적 윤리냐의 문제야. 내가 사회적 윤리를 택한거겠지."
"고맙군요."

"가라, 아이야, 가라"의 결말에서 "켄지"의 선택은 그의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제나로"에게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에게도 당황스럽고 잔혹한 선택이었습니다. 그게 "켄지"의 말처럼 상황 윤리와 사회적 윤리 사이에서 사회적 윤리를 택한 것이라는 이유에도 말이죠. 더구나 어릴적 부터 아버지에게 너무 많은 학대를 당해서 증오했던 아버지가 임종 직전에 내민 손마저 잡아주지 않았던 그였기에 더욱 그의 선택에 의아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가 "데니스 루헤인"은 10년 만에 다시 "켄지" "제나로"를 불러들이면서 결국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아만다" 사건의 이야기로 마무리 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끝을 맺는 다면 많이 찜찜했을 겁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 그의 선택이 잘 못 되었던 잘한 선택이었건 다시 한번 집고 넘어가야 했을 겁니다.

이번 작품은 "켄지"의 이야기 입니다. 이젠 탐정 일을 하기엔 너무 나약해져 버리고 늙어버린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 하지 마세요. 그의 입담과 말장난은 여전하니까요. 대신 "제나로"와 너무나 멋진 그들의 친구이자 살인병기 "부바"는 주변인에 머무릅니다. 사실 이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지만 나름 시리즈의 마무리로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데니스 루헤인" "가라, 아이야, 가라"를 다 써낸 순간부터 피날레는 다시 이 이야기를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시리즈의 마무리로는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도 끝내주게 매력적인 "제나로"와 새로운 사업을 벌인 살인병기 "부바" 그리고 "부바"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어린천사 "개비" 등... 역시나 "데니스 루헤인"은 생생한 캐릭터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말하면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데니스 루헤인""마이클 코넬리"라고 대답할 겁니다. 이 둘은 어쩌면 많이 상반된 스타일의 작가입니다. 진중하고 묵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마이클 코넬리"와 달리 "데니스 루헤인"은 거친 단어를 사용하지만 생생하고 발칙한 단어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특히나 캐릭터간의 대화를 쓰는건 최고라고 생각 될 정도로 끝내줍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것 마다 이렇게 좋게 평가받는 작가는 거의 첨보는거 같습니다. 물론 많은 소설을 내진 않았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미스틱 리버"로 에드거를 탔어야 한다고 아직도 저는 생각하는데 결국 외면 받더니 이제야 "운명의 날" 후속작 "Live By Night"로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Gone Baby Gone(가라, 아이야, 가라)"또 다시 "벤 애플렉"이 차기 연출작으로 선택해서 바로 제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보스턴 출신이라 서로 잘 맞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미스틱 리버"지만 애착이 많이 가는건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였습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후속작이 나왔는데 그게 시리즈 마지막이라니 너무 아쉽습니다. 물론 "리버스"시리즈를 끝내고서 올해 다시 부활 시킨 "이언 랜킨" 처럼 다시 "켄지 & 제나로"시리즈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히 "켄지""제나로""부바"와 딸 "개비"의 손을 잡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너무 훈훈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조용히 책장을 덮으면서 그들을 위한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커튼콜을 향해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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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사계절 : 한겨울의 제물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Four Seasons Murder 1
몬스 칼렌토프트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영국 타임즈에서 뽑은 "최고의 북유럽 스릴러 Top 10"에 뽑힌 스웨덴 작가 "몬스 칼렌토프트(Mons Kallentoft)"의 여형사 "말린 포르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중 첫 편 "한겨울의 제물(Midwinter Blood/Midvinter Blod)"입니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스웨덴에서만 30만부가 팔렸고 시리즈 전체 150만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스웨덴의 부촌 '린세핑', 영하 50도의 한겨울 외스트예타 평원 한복판에 있는 나무에 한 남자가 메달려 죽어있는게 발견됩니다. 그 남자는 심한 화상과 자상 등 고문을 당한 많은 흔적을 남긴 채로 죽었고 온몸의 피부는 온전치 못한 상태였습니다. 30대 초반의 여형사 "말린 포르스"는 자신의 파트너 "세케"와 함께 이 끔찍한 시체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공이 밖으로 나오면 주어서 던져주려고 하염없이 축구장 밖에서 기다리던 남자, 정신적 장애로 인해 동네 불량 소년들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무시 받았던 거구의 남자 "벵트 안데르손"은 심한 고문의 상처로 피부가 많이 훼손된 채 '외스트예타' 평원 한복판에 있는 큰 나무에 걸려 있는 채로 발견됩니다. 살아있을땐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던 "벵트"는 죽어버린 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이 사건을 수사해야하는 '린세핑' 경찰들...그중 30대 싱글맘인 여형사 "말린 포르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19살 철부지 시절 임신과 결혼을 경험하고 이젠 이혼을 해서 14살 사춘기 딸을 홀로 키우는 그녀는 살이 찢어질듯한 스웨덴의 엄청난 추위 속에서 "벵트 안데르손"을 죽인 범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제대로된 단서는 나오지 않고 피해자를 괴롭혔던 불량 청소년들, 북유럽 신화의 제물의식에 심취한 사람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과자 출신의 거친 삼형제과 그들의 엄마 등 한 남자의 죽음 뒤에 숨겨진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밝혀냅니다.

살인사건과 형사들의 이야기가 중심인 이 소설은 영화 시나리오를 읽듯 술술 읽히는 타입의 스릴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조용히 담담하게 흘러갑니다.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일인칭과 삼인칭을 넘나들고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작가가 이야기를 옆에서 말해주는 듯한 문체는 상당히 독특해서 초반 적응이 좀 힘들기까지 합니다. 거기다 자극적인 소재의 요즘 스릴러와 다르게 어찌 보면 좀 정적인 이야기라고 생각 들 정도의 내용에 아마도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 사람들도 꽤 있을듯 합니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의 어두운 이면, 가정폭력, 아동학대와 이민자차별, 그리고 삐뚤어진 부모가 키워낸 부적응자들 등 상당히 수준높고 그냥 흘려버리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 녹아있습니다. 실제로 예전 북유럽 스타일의 스릴러 소설의 계보를 잘 이어가면서 문학적 특성을 잘 살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린 포슘"이나 "헤닝 만켈", "하칸 네써" 같은 계열이라고 생각하시면 될듯 합니다. 특히나 가장 독특한건 죽은 자의 영혼이 계속 떠돌며 독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겐 들리지 않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에겐 안타깝고 슬픈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속삭입니다.

이 위에 매달려 있는건 그런대로 괜찮다.
전망이 아주 근사한데다 얼어붙은 내 몸뚱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기분이 좋다.
지금 난 온갖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온을 맛보고 있다.
전에는 한 번도 꿈꿔보지 못했던 그런 평온이다.
난 새의 목소리와 새의 눈을 얻었다.
그리고 전에는 한 번도 꿈꿀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 되었다.


작가 "몬스 칼렌토프트"는 원래 순문학 작가였습니다. 데뷔작으로 스웨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주길 원했고 약간의 금전적 어려움으로 장르문학을 쓰기로 결심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테마로 한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를 썼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이제 그의 소설은 전세계 30개국에서 출판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차적으로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가 줄줄이 나왔습니다. "여름의 죽음", "가을 소나타", "봄처럼" 순으로 나왔습니다. 상당히 독특하고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문체의 북유럽 범죄 소설에 관심이 가신다면 이 작품 "살인의 사계절 : 한겨울의 제물"이 괜찮은 선택이 되실겁니다. 근데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은 북유럽 스타일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빠른 전개에 술술 읽히는 작품을 생각하시고 구입하시는 분들은  읽기 꽤 곤혹스러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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