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의 범죄소설 작가 "톰 프랭클린(Tom Franklin)"이 2010년에 발표한 작품 "미시시피 미시시피(Crooked Letter, Crooked Letter)"입니다. 이 작품은 LA 타임즈에서 '올해의 미스터리'로 뽑았고, '에드거' 상, '앤서니' 상, '배리' 상, '해밋' 상 등의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1년 '골드 대거'를 수상했습니다.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 ‘샤봇’에서 한 여대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래리 오트"를 의심합니다. "래리"는 20여년 전 한 소녀의 실종 사건 용의자였다가 확증이 없어서 혐의를 벗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괴한으로 부터 "래리"가 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지고,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 경찰 "사일러스"가 이 사건을 조사합니다. "래리""사일러스"는 어린 시절 짧지만 특별했던 우정을 나눈 친구였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었습니다.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마을의 외톨이였던 "래리"를 외면했던 "사일러스"는 다시 "래리"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린 시절이란 저런 것일까? 빠르게 달리는 버스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 같은 것?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어떤 모습인지 알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것? 그렇다면 성년기는? 멈춰 서려고 속도를 줄이는 버스 같은 것일까? 남자 나이 마흔이면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 지쳐버려 칡덩굴보다도 느리게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1970년 대 후반, 소년으로 만난 "래리""사일러스"는 모든게 서로 달랐습니다. 피부색 부터 성격, 좋아하는 것까지. 정책이 바뀌면서 학군을 옮기게 된 "래리"는 흑인이 더 많은 학교로 전학가게 되었고 그는 백인뿐 아니라 흑인 학생들에게 까지도 조롱꺼리 였습니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뿐 이었고 마초 성향이 짙은 아버지는 그런 나약하고 소심한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유약한 아들을 위해 언제나 "래리"만을 위한 단 한명의 친구를 보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타난 흑인 소년 "사일러스""래리"에게 특별한 친구였고,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혀서 서로 멀어지게 되었어도 언제나 애뜻하게 생각하는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소녀 "신디"가 실종되면서 그의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래리"와 데이트를 나갔던 "신디"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용의자로 지목된 "래리"는 확증이 없어 풀려났지만 모두가 그를 "괴물 래리"로 부르고, 아버지의 정비소엔 손님이 점점 줄어듭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군에 입대하지만 음주운전으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래리"는 단 한명의 손님도 없는 아버지의 정비소를 운영하며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괴물로 취급받으며 외톨이로 살면서도 "래리"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저 바라는 건 아버지를 이어서 하는 정비소에 뜨내기 손님이라도 한명 와주는 것 뿐 입니다.
시카고에서 엄마와 함께 도망치듯 떠나 엄마의 고향으로 온 "사일러스"는 언제나 자신이 엄마의 인생에 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인이었던 엄마는 흑인이지만 인종을 가리지 않고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미인이었습니다. 자신만 없다면 엄마의 인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심에서 자라 시골로 온 "사일러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땅 주인 아들과 친해집니다. 총 쏘는걸 가르쳐 주고 낚시하는 법도 가르쳐주는 "래리"와 몰래 숲에서 노는 게 좋았습니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자신에게 "래리"가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 해주는 게 좋습니다. "래리"와 사이가 멀어져 서로 다른 길로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래리"가 신경 쓰였습니다. 야구 선수로 인기가 높아지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지만 따돌림 당하는 착한 바보 "래리"가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래리""사일러스"가 친구였던 걸 몰랐고,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바라만 봤습니다. "래리"가 살인 용의자가 되어 망가져 갈때도. 그리고 20여년 만에 경찰이 되어 마을로 돌아와 여전히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래리"를 외면했습니다. 또 다른 소녀가 실종되고 다시 "래리"가 용의자로 몰리면서 "사일러스"는 수사에 참여하며 그동안 외면했던 "래리"의 불행했던 인생의 흔적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감추어진 비밀들을 통해 뒤틀려버린 친구의 인생을 바꾸어 주고 싶어 합니다.

지나간 날들 위로 한 해 한 해가 새로이 쌓여가지만, 그 옛날은 아직도 그 안에 있다. 나무의 가장 처음에 생겨난 가장 단단한 나이테처럼, 험한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가장 깊은 곳 어둠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톱이 비명을 지르며 파고 들어오면 나무는 쓰러지고 나이테는 태양에 그대로 드러나며, 수액이 반짝이고 그루터기는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추리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허물은 작품들을 흔히들 '문학적 스릴러'나 '문학적 추리소설'로 부르는데 사실 저는 '문학적'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소설들을 상하로 나누어 등급을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 표현력이 현저히 낮은 저로선 이 작품에 '문학적 범죄소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인종이 달랐던 두 남자의 오랜 인연과 비밀, 구원, 화해를 다룬 "미시시피 미시시피"는 단순히 미스터리나 범죄 문학이란 장르로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를 구축하는 20여년을 걸쳐 사라진 두 소녀의 사건은 어쩌면 작가가 쓰고 싶던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에 지나지 않나란 생각 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작가는 사건의 실상과 범인의 정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교묘하게 끌어들여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지만, 한순간 인생이 뒤틀려 버려 오랫동안 고통 받던 남자와 그를 외면하며 죄책감을 느끼던 또 다른 남자의 속죄와 화해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더 오래 가슴에 남을 정도로 큰 축을 차지 하기 때문 입니다.

혀에서는 구리 맛이 났다. 한기가 들고 졸리며 심하게 목이 말랐다. 엄마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숲 속에 서 있는 신디 워커도. 벽에 기대선 남자는 어느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래리를 노려보는 가면의 구멍 속에서 눈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이상하게도 래리는 그를 용서하고 싶어졌다. 괴물은 모두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급스러운 문장과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배경이 되는 미시시피의 특징들을 잘 뽑아 서술한 묘사 등 모두 훌륭하지만 범죄 사건이 불러온 후폭풍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가 "톰 프랭클린"은 근거 없는 의심과 낙인 그리고 침묵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주려는 듯 살인자로 낙인 찍혀 철저히 고립되어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상을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며 그 남자의 삶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오래전에 스스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버렸을 정도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래리"는 답답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덤덤하게 모든 걸 받아들입니다. 또 다른 소녀의 실종 사건을 듣고 자신이 제1의 용의자가 될 거란 것도 당연해 합니다. 그런 "래리"의 인생에 의도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옛친구 "사일러스"가 그들이 함께 공유했던 짧았던 추억들과 나락으로 떨어진 "래리"의 삶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그동안 숨겨졌던 비밀들과 진실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 작가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래리는 이제부터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이것으로 잃어버린 25년이란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보통 범죄소설들을 읽으며 감동이나 여운을 느끼는건 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톰 프랭클린"은 자신의 세 번째 장편 소설에서 재미와 여운, 감동을 모두 담아냈습니다. 인종차별, 따돌림, 의심, 침묵, 화해, 살인이란 그리 특별할거 없는 소재들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 정도면 '골드 대거'를 수상하는데 전혀 이상할게 없을 정도입니다. 유독 그해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 유력 추리문학 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도 '골드 대거'만 수상했지만 “미시시피 미시시피”는 좋은 소설을 다 읽고 맥주 한잔을 하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M, I, crooked letter, crooked letter, I, crooked letter, crooked letter, I, humpback, humpback, I. (엠, 아이, 꼬부랑글자, 꼬부랑글자, 아이, 꼬부랑글자, 꼬부랑글자, 아이, 곱사등, 곱사등, 아이) - 남부 지방 어린이들이 미시시피(Mississippi)의 철자를 외우는 요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