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라이 카오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레너드 로젠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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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수의 베스트셀러 교육 서적을 써냈던 작가 "레너드 로젠(Leonard Rosen)"이 늦은 나이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올 크라이 카오스(All Cry Chaos)"입니다. 이 작품은 '에드거', '앤서니' 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고 '매커비티'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폭탄이 터져서 꼭대기 층이 모두 날아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인터폴의 베테랑 형사 "앙리 푸앵카레"는 곧장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폭발에는 로켓연료가 사용되었고, 폭발로 인한 사상자는 단 한명. 폭발이 일어난 방의 투숙객 "제임스 펜스터" 입니다. 그는 며칠 뒤 세계무역기구 회의(WTO)에서 강연이 예정되어 있던 하버드대 수학교수였고, "앙리 푸앵카레"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한 가지를 증명했다. 앙리 푸앵카레는 신앙을 갈망하며 신비와 아름다움에 감동받지만 신앙을 가질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는 너무도 철저하게 과학자였다. 인과관계의 망으로 뒤얽힌 세상의 수사관.

인터폴의 베테랑 형사 "앙리 푸앵카레"는 2년간 추적했던 학살범 "스티포 바노비치"를 체포한 후,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 회의의 보안을 총괄하는 임무를 부여 받고 암스테르담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로켓 추진에 사용되는 '과염소산암모늄'에 의한 폭발이 일어나 호텔 꼭대기 층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대낮에 벌어졌기에 다른 투숙객들은 전부 외출한 상태였고 폭발이 발생한 방의 투숙객인 "제임스 펜스터" 하버드대 교수만이 사망합니다. 30세의 수학 천재인 "제임스 펜스터"가 세계무역기구 회의에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는 사실과 폭발에 로켓연료가 사용되었다는 사실로 인터폴은 "푸앵카레"에게 수사를 맡깁니다. "푸앵카레"는 천재 수학학자인 "펜스터"가 연구했던 '프랙털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단서를 추적하고 그의 조교, 전 약혼녀, 같이 연구를 했던 '원주민자유전선'의 리더이자 경제학자 등 수학학자의 주변인들과도 만나지만 점점 더 풀기 힘든 수수께끼들만 쌓여갑니다. 이와 동시에 "바노비치""푸앵카레"의 가족들을 노리고 암살자들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푸앵카레"는 인생 최대의 혼란에 빠집니다.

"자네 증조부님은 애초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사건을 조사하는 광산 기술자였어. 무너진 광산에 들어가 요인을 추론해서 보고서를 썼지. 그래서 훗날 국립고등광산대학의 총수사관인 동시에 세계 수학의 총아가 되었고. 카오스이론. 상대성이론. 위상기하학. 그분은 생업으로 광산을 캤고 자네도 캐고 있어. 다른 광산일 뿐이지. 자넨 가업을 이어받았어. 아버님은 모르셨지만 쥘 앙리 푸앵카레는 자랑스러워 하셨을꺼야."

전설적인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e)"의 증손자인 "앙리 푸앵카레"는 인터폴에서 30년을 근무한 베테랑 형사입니다. 답답하리만치 원칙을 고수하지만 뛰어난 직관과 엄청난 끈기는 그를 인터폴의 전설적인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부정맥 때문에 심장박동에 문제를 겪지만 화가인 부인과 건축가인 아들 그리고 며느리와 세 명의 손자, 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며 은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천재 수학자의 죽음이 다가옵니다. 수학 학자의 죽음에는 그가 집착하며 연구했던 '프랙털 이론'이 언제나 따라 다닙니다. 20대 중반에 이미 하버드대 정교수가 된 "제임스 펜스터"는 우리 주변과 자연에서 보이는 '프랙털' 현상들을 연구했습니다. 큰 잎맥과 작은 잎맥이 거의 동일한 구조를 보여주는 식물의 잎, 우주에서 바라본 뻗어나간 산맥 구조, 인간의 혈관의 구조 등 주위에서 보이는 수많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프랙털 이론'을 이용해서 새로운 방정식을 연구했습니다. 가족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푸앵카레"는 이 사건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느끼며 수사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평탄하게 마지막을 향해갈 것만 같은 "푸앵카레"의 인생은 혼돈에 빠지고, 밖의 세상 또한 '휴거 전도단'이 예수의 재림을 부르짖으며 자행하는 폭탄 테러와 퍼트리는 루머들로 최악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모르시겠어요? 선택하느냐 마는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세상이니까. 그 세상이 우연히도 어떤 규칙에 따라 유지되는 거죠. 처음에 저는 그런 규칙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모든게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린 더 이상 믿음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 더 이상 증거 없는 종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예수나 부처에 대한 논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수와 부처가 본 것은 펜스터 박사님이 본 것에서 수학을 배제한 것뿐이니까요."

"올 크라이 카오스"는 카오스 이론, 프랙털 이론, 국제 경제와 종교 문제를 엮어서 만든 상당히 지적이고 심오한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특히나 작가 "레너드 로젠"은 '프랙털 이론'을 바탕으로 금속의 원자구조, 식물을 포함한 자연, 인간의 몸 등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는 질서와 무질서 그리고 그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으로 순환되고 
있음에 많은 부분을 할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산 정상을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노회한 형사 "앙리 푸앵카레"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인간의 삶 역시도 이런 법칙으로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한사람의 인생의 무질서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긴장을 발생시켜 무질서 상태가 되어 혼돈에 빠지고, 언제가 될지 혹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삶에 질서가 찾아온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탄했던 인생에 찾아온 비극이 남긴 상처가 사라지진 않지만 결국 무뎌져서 다시 삶을 지속하며 살아가게 되는 우리 인생 역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질서와 무질서로 순환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써놓으니 상당히 난해해 보이는데 작가는 어려워 보이는 이론들을 아주 쉽게 설명해줍니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계속 자극시키며, 진중하고 분위기 있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슈, 정말 놀랍네요. 왜 그렇게 슬퍼하세요?"
착한 여자아이를 보고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삶이 너무 달콤해서."
아이는 그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
"무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남자는 또다시 흐느끼며 말했다
"나도 그렇단다."

논픽션 작가였던 "레너드 로젠"은 늦은 나이에 발표한 소설 "올 크라이 카오스"로 많은 것을 성취했습니다. 단지 많은 유력 문학상들에 후보로 올라가고 상을 탔다고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연륜을 통해서 얻은 많은 깨달음들을 흥미로운 이론과 잘 짜여진 플롯 안에 설득력 있게 녹여서 이 작품을 데뷔작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품격있는 미스터리 작품으로 완성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살인과 폭력, 삐뚤어진 신념, 음모들로 발생하는 혼돈 그리고 그 혼돈으로 인해 인생에 찾아오는 비극적인 슬픔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삶에 언젠가는 희망이 다시 찾아온다는 걸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미국에선 주인공 "앙리 푸앵카레"의 젊은 시절을 다룬 후속작인 "The Tenth Witness"가 나왔습니다. 이 작품이 잘 되서 프리퀄인 후속작도 국내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볍지 않은 미스터리/스릴러 작품들을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 "올 크라이 카오스"가 아주 좋은 선택이 될겁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식물에서 보이는 프랙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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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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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토머스 H. 쿡(Thomas H. Cook)"의 2012년도 작품 "줄리언 웰즈의 죄(The Crime Of Julian Wells)"입니다. 이 작품은 "제3의 사나이""디미트리오스의 관" 등 고전 스파이 소설들을 작가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존경과 애정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중년의 작가 "줄리언 웰즈"는 집필을 위한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호수로 나가 배위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줄리언"과 친구였던 "필립 앤더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 했다는 후회와 그동안 친구가 힘들어 했던 징후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겨워 하던 "필립" "줄리언"이 죽기 직전까지 '아르헨티나' 지도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언젠가 줄리언은 해결되지 않은 범죄보다 더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없다고 썼지만, 의문이 풀리며 드러난 진실도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발견한 진실도 그러했다.

 

인간들이 자행해온 잔인한 범죄와 학살, 고문 등에 집착하며 그런 이야기들에 관해 책을 썼던 작가 "줄리언"은 러시아의 유명한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6년간 러시아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옵니다. 며칠 후 그는 배를 타고 집 앞 호수로 나가 손목을 긋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하며 많은 것을 공유했던 "필립"은 친구 "줄리언"의 자살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줄리언"이 오랫동안 너무 잔인하고 어두운 이야기에 집착하다 진이 빠져버려 자살했다고 말하지만 "필립"은 쉽게 납득하지 못합니다. 밝고 자신만만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젊은 시절의 친구를 알기에 자꾸 친구가 자살한 이유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줄리언"이 죽기 직전까지 '아르헨티나' 지도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필립"은 오래전 자신과 "줄리언"이 '아르헨티나'에서 겪은 사건을 떠올립니다. 한 여인의 실종. 그리고 실종사건을 계기로 바뀌어 버린 "줄리언". 당시 군사정권 말기의 '아르헨티나'는 '길을 잃은 국가' 였고 수많은 납치와 고문, 살인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둘의 관광 가이드였던 여인 "마리솔"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줄리언"은 그녀의 행방에 오랫동안 집착을 했었습니다. 국무성에 지원서를 내놓고 언젠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꾸며 활기찼던 "줄리언"은 그 사건 이후로 완전히 변해버렸고, 잔인한 이야기에 집착하며 세상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필립""줄리언"의 유품을 정리하러 프랑스로 가면서 "줄리언"이 썼던 작품들과 함께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갑니다.

 

"단지 줄리언 오빠가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
"근데 무슨 죄로?"
"그게 문제다, 그렇지?"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줄리언 웰즈의 죄." 그녀가 덧붙였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학 비평가인 "필립"이 친구였던 작가 "줄리언"을 자살로 몰게 한 원인을 찾아가는 이 작품 "줄리언 웰즈의 죄"는 한마디로 어떠한 소설이다 라고 말하기 힘든 독특한 작품입니다. 친구의 자살의 원인을 찾기 위해 친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평범해 보이는 구성 이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속임수, 고문, 살인, 학살 등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자행해온 범죄들입니다. 목차의 제목 자체도 소설 속 인물 "줄리언"이 쓴 작품들의 제목으로 되어있어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반인류적인 범죄들이 벌어졌던 곳으로 가서 그 참상을 같이 마주하게 됩니다. 피의 백작부인이라 불렸던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성이 있던 '짜흐띠쩨', 한 시간 동안 프랑스 인 642명이 학살당한 '오라두르', 소설 "차일드 44"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안드레이 치카틸로"가 연쇄 살인을 저지른 '러시아' 등을 거쳐 "필립""줄리언"의 젊은 시절 첫 해외 여행지였던 '아르헨티나'로 돌아옵니다. "필립"은 그동안 떠올리던 기억 속의 이야기들이 전혀 다른 걸 의미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씩 "줄리언"이 저지른 죄의 의미를 알아갑니다. 그리고 마주하기 힘든 진실 또한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람들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지 같은 사람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란다."

 

작가 "토머스 H. 쿡"은 평범한 우리 삶에 우연히 끼어드는 사건이 불러오는 비극과 그로 인한 파멸을 다루는데 있어서 정말 독보적인 작가입니다. 반대로 그 비극을 다루는 문장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가끔 이런 글 솜씨로 연애편지를 쓴다면 웬만한 여자는 다 반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문장으로 비극을 다루기에 그 비극이 더욱 우울하며 애처로운 느낌을 준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인지 이 작가는 참 신기한 작가입니다. 작품을 읽을 때마다 사람을 저 밑바닥 어두운 곳까지 끌고 내려갑니다. 그게 잔인하고 역겨운 묘사나 전개 때문이 아니라 비극을 구성하는 문장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애잔함과 작품을 관통하는 애수에 젖은 우울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복선들이 정말 정교합니다. 결말까지 읽고 나서 그전에 그냥 넘겼던 대사나 묘사들을 상기하며 감탄을 했습니다. 정말로 기억이 어느 순간 지뢰가 곳곳에 뿌려진 해변이 되고,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그 모래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인간이 죄책감을 느끼는 건 처음 채찍을 휘두르기 전이 아니라 휘두르고 나서래." 마을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를 향해 걸어가면서 줄리언이 말했다. 그러고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정작 중요한 건 채찍질을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아니겠어? 죄책감은 사치야, 필립."

 

고전 스파이 소설들에 경의를 보이며 오마주를 바치는 "줄리언 웰즈의 죄"는 여전히 "토머스 H. 쿡"의 다른 소설들처럼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론 단순한 인간의 본성, 그런 인간들의 삶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어처구니없는 우연 그리고 그 우연의 원인을 제공한 생각지 못한 행동, 그 모든 게 엮여서 발생되는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갑자기 찾아오는 변화을 두려워하는 우리네 인생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하게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 삶의 수레바퀴가 매일 변함없이 반복되길 바라고 삶이 힘든 사람들도 행운을 바라기 보다는 지금 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더 바라는 걸 보면 말입니다.
언제나 품위 있고 우아한 범죄소설들을 써내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 "토머스 H. 쿡"은 호불호가 좀 갈립니다.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는 분들에게 더욱 그렇더군요. 하지만 그동안 "토머스 H. 쿡"의 소설들을 읽고 만족하셨다면 이번에도 분명히 만족하실 겁니다. 이 작가는 정말로 특별한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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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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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2013년도에 출간한 "조이랜드(JoyLand)"입니다. 작년 아마존이 '올해의 미스터리'에 1위로 뽑은 이 작품은 40,50년대 페이퍼백 스타일의 범죄소설만을 출간하는 "Hard Case Crime"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그리고 "조이랜드" "Hard Case Crime"에서 출간된 작품들 중 국내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소개된 작품입니다.

1973년 여름, 스물한 살의 대학생 "데빈 존스"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헤븐 베이'에 있는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일을 하게됩니다. 면접을 본 날 "조이랜드"안의 점쟁이 부인에게 자신에 관해 이상한 소리를 듣고 하숙집 주인 "숍로"아줌마에게서 4년 전에 공원 유령의 집 안에서 젊은 여성이 죽은 이야기를 들어 찜찜했지만, '천국과 가까운 일터!'라는 문구에 이미 매료된 "데빈"은 일을 하기로 합니다. "조이랜드"안에서의 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데빈"에게 잘 맞았고 일을 하면서 그는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맞는 좋은 친구도 생깁니다. 그러던 어느날 "데빈"은 점쟁이 아줌마가 말하던 그가 곧 만나게 된다는 두명의 아이 중 한 소녀의 목숨을 구하게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데빈"의 인생에 휠체어를 탄 소년 "마이크"가 들어오게 됩니다.

 

스물한 살짜리에게 인생은 도로 지도이다. 스물다섯이나 그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야 자기가 지도를 거꾸로 보아 왔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마흔 살이 되어야 완전히 확신하게 된다. 예순 살쯤 되면 정말이지 완전히 길을 잃고 만다.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빈 존스"는 2년간 사귀던 여자친구 "웬디"와의 관계에 불안감을 느끼던 1973년 여름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일을 하기로 합니다.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점쟁이에게서 두 아이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앞날에 그림자가 들이워져있다는 말을 들은 "데빈"은 찜찜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겨버립니다. 거기다 "조이랜드"안 유령의 집에서 여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과 거기에 얽힌 한 여자가 살해당한 이야기까지 듣게 됩니다. 하지만 "데빈" "조이랜드"에서 일을 하면서 인생 최고의 여름을 보내게 됩니다. 여자친구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가 컸지만 새롭게 사귀게 된 "톰" "에린"의 위로와 격려 속에 자신이 진정 즐겁게 일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느날 점쟁이가 묘사했던 한 소녀의 목숨을 구하게 된 "데빈" "조이랜드"의 유명인이 됩니다. 그무렵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 본 유령의 집에서 유일하게 "톰"만이 여자 유령을 목격하게 됩니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모두가 학교로 돌아가는 와중에 "조이랜드"에서 1년 동안 일을 더 하기로 결심한 "데빈"은 휠체어에 앉은 병약해 보이는 소년 "마이크"와 소년의 엄마 "애니"를 알게됩니다. 그리고 "마이크"가 심안(心眼) 능력이 있고 "조이랜드"에 있는 유령의 집에 머무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문학적 열정을 가진 스물한 살짜리 숫총각이었다. 내게는 청바지 세 벌과 짧은 팬츠 네 벌, 괜찮은 라디오가 부착된 포드 고물차, 이따금 찾아오는 자살 충동, 그리고 실연의 아픔이 있었다. 꽤나 달콤하지 않나?

 

육십대가 된 주인공 "데빈 존스"가 스물한 살때 "조이랜드"에서 보냈던 1973년을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있는 이 작품 "조이랜드"는 간간히 등장하는 유령이나 심안(心眼) 등 초자연현상과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미스터리가 중심축 입니다만 성장소설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첫사랑의 상처가 인생의 끝 같이 느껴지던 섬세하고 예민한 청년 "데빈"이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평생 우정을 나누게될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첫경험을 하게 되고,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고 소중했던 사람의 죽음을 겪으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토록 아팠던 첫사랑의 상처는 그저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으로 변해버리고 앞으로 겪어야할 많은 이야기들이 앞에 놓여있다는걸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어갑니다.
"스티븐 킹"은 이런 이야기를 마치 난로가 앞에 앉아서 맥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같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힘을 뺀듯한 그의 글들은 정말로 편안하고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소설 중반까지 특별한 사건 없이 주인공이 "조이랜드"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부분들은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내용들인데도 별다른 기교나 장황한 문장들을 구사하지 않고도 계속 책을 읽게 만드는 "스티븐 킹"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쓰는 "스티븐 킹"의 모습을 몇 번 상상해봤습니다. 너무나도 편안히 맥주를 마시며 미소지은 얼굴로 타자기를 두드리며 즐겁게 글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 언제나 "스티븐 킹"의 이런 작품들을 좋아했었습니다. 거창하고 독특한 설정의 대작보단 이렇게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들을. 전 "스티븐 킹"이 억지로 쥐어짜지 않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조이랜드"는 요 몇년 사이 나온 "스티븐 킹" 작품들 중 가장 좋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감히 "스티븐 킹"이 쓴 기묘한 이야기와 연쇄살인이 가미된 노스텔지아적인 성장소설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소설이 시작하기도 전에 얼마전 세상을 떠난 범죄소설의 대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라는 글귀를 읽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이 작품에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거기다 읽는 내내 얼마전에 읽은 "미시시피 미시시피"의 이야기까지 오버랩되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자의 아버지도 변할 수야 있겠죠. 하지만 난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해요. 젊은 남녀는 성장하지만 늙은 남녀는 그냥 더 늙어가고 더 신념이 확고해질 뿐이거든. 특히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심하죠."

 

이 작품 "조이랜드" "Hard Case Crime"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Hard Case Crime"은 펄프(Pulp)시대인 40, 50년대 나왔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소설들을 오리지날 커버 아트를 만들어서 페이퍼 백 형식으로 내는 출판사입니다. 오래된 작품들을 다시 출간하거나 "로렌스 블록",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켄 브루언" 등 기존 작가들이 컨셉에 맞게 쓴 신작들을 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작품들의 커버는 상당히 훌륭합니다. 언젠가 국내에도 나오겠지 했는데 나오게된 그 첫 작품이 "스티븐 킹" "조이랜드"라니...

"스티븐 킹"이 쓴 작품들 중 규모도 작은 편이고 평범해보이는 소재들이 녹아 있지만 "조이랜드"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미소 짓게 만드는 이야기, 긴장감 있는 이야기, 풋풋한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담겨져 있습니다. 감동과 미스터리, 초자연현상과 성장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흔한 요소들을 섞어서 작지만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스티븐 킹"에게 다시 한번 놀란 작품이었습니다. 
'디즈니랜드' 같은 대규모 놀이공원이 아닌 "조이랜드"는 일년에 한번 여름에만 문을 엽니다. 그러니 즐거움을 파는 "조이랜드"에는 일년 내내 계속 머무를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영원히 이십대에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한여름의 무더위에 땀을 흘리지만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조이랜드"는 우리들의 이십대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곧 인생에 가을과 겨울이 온다는 것을 망각한 채 무모하지만 열정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했던 찬란한 20대.

<"Hard Case Crime" 커버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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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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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북유럽 범죄 소설 작가가 아닐까 생각하는 "요 네스뵈(Jo Nesbø)""해리 홀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Nemesis / Sorgenfri)"입니다. 이 작품은 흔히 '오슬로 3부작' 이라고 불리는 (전 혼자 멋대로 '엘렌, 프린스 3부작'으로 부릅니다.) "레드 브레스트""The Devil's Star" 사이의 중간 작품으로 2010년 '에드거 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작품입니다. "요 네스뵈"의 방한에 맞추어 데뷔작 "박쥐"와 동시에 출간 되었습니다. 원래 이 작품만 나올 예정이었는데 두 권을 동시에 출간해주다니 출판사에 무한히 감사드릴 뿐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합니다. 범인은 꼼꼼하게 모든 걸 계산한 듯 행동하면서 돈을 털어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 와중에 은행 여직원이 총에 맞아서 죽게 되고 "해리 홀레"는 시간이 관건인 은행털이 도중 도망가기도 바쁜 범인이 왜 쓸데없이 직원을 죽였는지 신경이 쓰입니다. 그 와중에 은행강도를 수사하던 "해리 홀레"는 잠깐 사귀었던 전 애인의 연락을 받게 되고 그녀의 초대에 응합니다. 다음날 지독한 숙취에 고통스러워하며 깨어난 "해리 홀레"는 전날 밤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줄곧 이 결말을 행해 달려왔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내 계획에는 어긋나는 일이다. 내 계획은 더 나은 결말이었다. 더 타당한 결말.

 

한창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세상이 떠들썩 했던 2002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1분 정도의 시간동안 완벽하고 냉철하게 돈을 털어간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합니다. 범인은 돈을 넘겨주는 은행장이 돈을 건네는데 단지 몇 초 늦었다는 이유로 은행 여직원을 총으로 쏘고 도망을 갑니다. 수사를 위해 강도 수사과 팀에 합류한 강력반 반장 "해리 홀레"는 1초라도 아까운 순간에 은행강도가 왜 쓸데없이 사람을 죽였는지 궁금해 합니다. 한편, 오래전 6주 정도 사귀었던 전 애인 "안나"의 연락을 받고 그녀의 집에 간 "해리 홀레"는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집에서 깨어납니다. 혼란스러운 "해리 홀레"에게 자살사건 현장에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현장에 간 "해리"는 그곳이 어제 자신이 있었던 "안나"의 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명백히 자살로 보이는 "안나"의 죽음. 하지만 "해리 홀레"는 그 전날 있었던 일이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고 핸드폰까지 잃어버려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해리""안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지도 모를 흔적들을 발견합니다.

 

"주위를 둘러봐, 인간은 앙심을 품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복수와 응징. 그거야말로 학창 시절에 얻어맞고 다니던 땅꼬마가 훗날 억만장자가 되는 원동력이지.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은행강도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를 봐. 우리 경찰이야 말로 차갑고 이성적인 응징으로 위장한 이 사회의 불타오르는 복수 아니겠어? 그게 우리 직업이라고."

 

제멋대로인 성격과 반골기질 거기다 '레드 브레스트' 사건과 '오스트레일리아' 사건 해결로 오슬로 경찰청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해리 홀레"는 전 파트너이자 얼마 안되는 친구였던 "엘렌"의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싶어 합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파트너의 죽음에 집착 하는 "해리 홀레"에게 경찰청에서는 할 수 없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면 다시 "엘렌"의 사건을 조사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은행강도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도록 합니다. 거기다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은 모두 기억할 정도로 '방추상회'가 특별히 발달한 여형사 "베아테 뢴"까지 지원 해줍니다. 그 와중에 전 애인의 자살 사건이 미묘하게 "해리 홀레"의 목을 죄여오면서 "해리"는 전대미문의 은행강도 사건과 전 애인의 자살로 보이는 살인사건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고분분투 합니다. 하지만 사건 수사 도중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안나"의 죽음에 "해리 홀레"가 연관이 있다는 증거들까지 발견되면서 경찰 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는 "해리 홀레"는 자신이 덫에 걸렸음을 알게 됩니다. 경찰청에 친구보다 적이 훨씬 더 많은 "해리 홀레"는 복수가 불러온 참극들을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돌파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숨 돌릴 틈 없이 달려갑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에 있어서 영원불멸의 소재들 중 하나인 '복수'를 테마로 세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는 "네메시스"는 '일류 작가'가 써낸 '일류 스릴러'라고 단언할 만한 작품입니다. 게다가 이제껏 읽은 "요 네스뵈"의 작품들 중 '미스터리'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고 훌륭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초반부터 은행 여직원이 죽은 은행강도 사건, 타살로 의심되는 전 애인의 자살 사건 그리고 전작 "레드 브레스트"에서 이어지는 파트너 "엘렌"의 죽음...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 세 사건이 교묘하게 엮이면서 결말까지 단숨에 내달립니다. 세심하고 정교하게 구축한 플롯과 매력적인 캐릭터들, 훌륭한 복선, 여러 종류의 복수와 응징에 대한 심도 깊고 상투적이지 않은 이야기들, 황홀하게 조율한 긴장감의 텐션, 다음 작품을 사지 않고선 못 배기게 만드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대단하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이 작품 속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해리 홀레"는 복수가 부른 비극을 조사하며 자신 스스로가 복수의 대상이 되는데, 이 난관을 해쳐나가는 동안 "해리 홀레"란 캐릭터의 매력이 폭발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해리 홀레"의 원맨쇼를 구경하다 보면 하자투성이인 이 친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새롭게 등장한 "베아테"나, 언제나 "해리 홀레"를 신뢰하는 후배 "할보르센", 전설적인 은행강도인 집시 "라스콜", "프린스" 등 다른 캐릭터들의 매력도 상당합니다만 다 읽고 나니 "해리 홀레" 밖에 남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복수도 자살의 흔한 동기라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누군가의 탓이고, 그러니 자살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거지. 베르톨 그리머도 자살했다네. 아내를 죽인 후에 말이야. 아내가 바람을 피웠거든. 복수, 복수, 복수. 인간만이 복수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아나?"


진짜 스릴러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요 네스뵈"가 작심해서 쓴 이 작품 "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은 정말로 제대로 된 스릴러입니다. 이 작품이 재미없다고 느끼신다면 제가 더 이상 무엇을 추천해드려야 할지 당황스러울 겁니다. 물론 저랑 취향이 많이 다른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정도 작품이면 보편적으로 상당한 재미를 지닌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엘렌"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프린스"와의 마지막을 뒤로 넘겨서 다음 작품 "The Devil's Star / Marekors"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도록 만들게 한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얼마를 기다려야 다음 "해리 홀레" 시리즈를 만나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해외에선 "요 네스뵈"의 새로운 작품 소식들이 계속 끊이지 않습니다. 스탠드 언론 "The Son"을 올해 출간할 예정이고, "Tom Johansen"란 필명으로 이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판권을 산 "Blood on Snow", "Blood On Snow 2 : More Blood On The Water" 2부작과 "The Kidnapping"을 쓰기로 발표했으며, "세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릴러 소설, 대체 역사 스릴러 드라마 제작 등 아마 몇 년간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하는 작가가 될 듯 합니다. 아무튼 작가의 방한과 데뷔작 "박쥐" 그리고 이 작품 "네메시스"의  동시 출간으로 올 한해는 "요 네스뵈" 팬들에게 잊지 못할 한해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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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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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요 네스뵈(Jo Nesbø)"가 1997년도에 발표한 데뷔작 "박쥐(The Bat / Flaggermusmannen)"입니다. "요 네스뵈"가 밴드 'Di Derre' 활동을 하던 도중 오스트레일리아로 휴가를 떠나서 6개월 동안 써낸 이 작품은 북유럽 최고의 범죄문학 상인 '글라스 키'을 수상하며 세상에 "해리 홀레"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게 됩니다.

 

노르웨이의 경찰 "해리 홀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해당한 노르웨이 여성의 살인사건 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시드니에 도착합니다. 낯선 땅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사를 하게 된 "해리 홀레"는 현지 경찰 "앤드류 켄싱턴"의 도움과 조언으로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수사팀에 합류합니다. 피해자 몸에서 발견된 각성제 성분을 단서로 그녀의 애인을 유력 용의자로 조사를 하지만 그 어떤 결정적인 단서도 나오지 않고, 수사팀은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폭력은 코카콜라와 성경 같아. 고전이지."

 

워킹비자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 온 젊은 노르웨이 여성이 강간당한 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은 곧 다가올 올림픽을 의식해서 외국인이 살해당한 이 사건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노르웨이와 공조수사를 진행합니다. 시드니에 도착한 "해리 홀레"는 낯선 타국에서 자국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현지 경찰 "앤드류"와 같이 행동하며 수사팀과 공동으로 수사를 시작합니다.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마약상이 유력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마약과 관련된 살인사건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수사팀은 피해자가 한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지만 "해리 홀레"는 이 사건의 수사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방인인 자신의 신분에 한계를 느낀" 해리 홀레"는 조만간 노르웨이로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앞에 이 사건이 '잠재적' 연쇄살인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납니다.

 

"전부 얼간이들이야, 홀리. 우린 얼간이야. 태생이 멍청해서 그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지. (...) 일단 경찰이 돼서 참호 속으로 기어들어 가면 빠져나올 길이 없거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은 순간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거야. 우린 죽는 날까지 공상적 박애주의자로 살아갈 운명이고 또 실패할 운명이야."

 

짐 빔을 즐겨 마시고 카멜을 피우는 빼빼마른 190 센치미터의 장신 형사 "해리 홀레"가 일 년만에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30대 초반의 젊고 풋풋한 모습으로. "해리 홀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무대는 독특하게도 자국인 노르웨이가 아닌 그 반대편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입니다. 말이 공조수사이지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이 관광객 유치에 지장이 있을지도 몰라 부른 형식적인 참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의 성(性)인 '홀레'를 '홀(Hole)'이 아닌 '홀리(Holy)'로 부르는데 그나마 감사해 하는 "해리 홀레"는 타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애버리진' 현지 경찰 "앤드류"가 이끄는 데로 다니며 수사를 하다가 이 사건이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소설 중반까지 사건 수사의 주변인에 머물던 "해리 홀레"는 의도치 않게 수사의 중심으로 밀려들어 갑니다. 어쩌면 이 작품 속 "해리 홀레"는 운 나쁘게 타국으로 보내져 겪지 말았어야 할 일들에 휩싸여 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반골 기질이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순수해 보이는 "해리 홀레"는 낯선 땅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흔들어 놓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앞으로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또 다른 슬픈 이야기의 시작을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비극의 주인공이 될 운명어었던 겁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해리. 오스트레일리아 백인들도 혹여 말실수할까 봐 병적으로 조심해요. 참 모순이죠. 무엇보다도 우리 종족의 자부심을 뭉개놓고 정작 그게 없어지자 그걸 깔아뭉개버릴까 벌벌 떨다니."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박쥐"를 타이틀로 하는 이 작품백인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애버리진' 사람들과 그들의 신화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땅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자신들에 관한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들 때문에 더욱 비참해지는 '애버리진'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과는 다르게 호주 내에서 '애버리진'들의 범죄율높아만 가고, 뒤늦게 보상이라도 해주려는듯 한 백인들의 정책들은 때로는 너무 잔인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 정책들은 "앤드류"로 대변되는 일명 '도둑맞은 세대'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요 네스뵈"는 이런 '애버리진'의 이야기들을 소설 속에 상당 부분 할애하면서 타국에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해리 홀레" 첫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다 읽고 나니 왜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이 작품을 썼는지 나름 이해가 됐습니다. 이 작품 "박쥐"를 끌고 가는 캐릭터들은 대부분이 원주민 '애버리진', 동성애자, 외국인 등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 네스뵈"는 그들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방인인 노르웨이 경찰 "해리 홀레"를 화자로 내세워 비주류들의 이야기가 중심인 범죄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좋아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흥분되는 일입니다. 이번 경우엔 책의 순수한 재미와는 별개로_첫 작품이 좀 늦게 나와서_ 후속 작품들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해리 홀레"가 유명해진 사건을 드디어 읽게 된다는 기대감까지 더해져서 더 흥분되었습니다. (영.미권에서도 "박쥐"와 두 번째 작품 "Cockroaches"는 가장 늦게 번역되었습니다. 아마도 배경이 노르웨이가 아니라서 인듯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성직자, 게이 등 여러 설정들을 고민했었다던 "요 네스뵈"는 결국 많은 범죄소설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탠다드한 알콜 중독과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외톨이인 캐릭터로 "해리 홀레"를 창조하지만 성공적인 캐릭터로 성장시킵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듣고 고분고분하고 연애에 서툰 소설 속의 젊은 "해리 홀레"가 낯설고 신기하며 풋풋해 보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 알콜 중독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중독이 심각한 "해리"가 자신에게 벌을 주기위해 금주를 하게 된 사연, 그러다 다시 알콜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평생 안고 살아야할 상처를 겪는 작품 속의 그를 보니, 앞으로 펼쳐질 앞날 역시 밝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읽는 내내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높은 연봉의 증권 중개인으로 생활하다 노르웨이 최다 앨범 판매 기록을 세울 정도로 잘 나가는 밴드의 리더가 되고, 휴가차 떠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에세이를 써달라고 부탁한 출판사 직원에게 6개월 뒤에 멋대로 범죄 소설을 던져준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요 네스뵈"는 전형적으로 많은 재주를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재주 모두를 성공적으로 밥벌이에 이용하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첫 데뷔작인 이 작품 "박쥐"는 '글라스 키'를 수상하며 작품의 퀄리티를 인정받았지만 기존의 작품들 보다는 덜 다듬어진 부분이 간간히 눈에 띄어 날것의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뷔작을 이정도로 써냈다면 타고난 이야기꾼 인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저 진심으로 부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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