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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노르웨이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요 네스뵈(Jo Nesbø)"가 1997년도에 발표한 데뷔작 "박쥐(The
Bat / Flaggermusmannen)"입니다. "요 네스뵈"가 밴드 'Di Derre'
활동을 하던 도중 오스트레일리아로 휴가를 떠나서 6개월 동안 써낸 이 작품은 북유럽 최고의 범죄문학 상인 '글라스 키'을 수상하며 세상에
"해리 홀레"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게 됩니다.
노르웨이의 경찰 "해리 홀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해당한 노르웨이 여성의 살인사건 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시드니에 도착합니다. 낯선 땅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사를 하게 된 "해리 홀레"는 현지 경찰
"앤드류 켄싱턴"의 도움과 조언으로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수사팀에 합류합니다. 피해자 몸에서 발견된 각성제
성분을 단서로 그녀의
애인을 유력 용의자로 조사를 하지만 그 어떤 결정적인 단서도 나오지 않고, 수사팀은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폭력은 코카콜라와 성경 같아. 고전이지."
워킹비자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 온 젊은 노르웨이 여성이 강간당한 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은 곧 다가올 올림픽을 의식해서
외국인이 살해당한 이 사건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노르웨이와 공조수사를 진행합니다. 시드니에 도착한 "해리
홀레"는 낯선 타국에서 자국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현지 경찰 "앤드류"와 같이 행동하며 수사팀과
공동으로 수사를 시작합니다.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마약상이 유력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마약과 관련된 살인사건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수사팀은 피해자가
한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지만 "해리 홀레"는 이 사건의 수사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방인인 자신의 신분에 한계를 느낀" 해리 홀레"는 조만간 노르웨이로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앞에 이
사건이 '잠재적' 연쇄살인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납니다.
"전부 얼간이들이야, 홀리. 우린 얼간이야. 태생이 멍청해서 그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지. (...) 일단 경찰이 돼서 참호
속으로 기어들어 가면 빠져나올 길이 없거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은 순간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거야. 우린 죽는 날까지 공상적
박애주의자로 살아갈 운명이고 또 실패할 운명이야."
짐 빔을 즐겨 마시고 카멜을 피우는 빼빼마른 190 센치미터의 장신 형사 "해리 홀레"가
일 년만에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30대 초반의 젊고 풋풋한 모습으로. "해리 홀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무대는
독특하게도 자국인 노르웨이가 아닌 그 반대편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입니다. 말이 공조수사이지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이 관광객 유치에 지장이 있을지도
몰라 부른 형식적인 참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의 성(性)인 '홀레'를 '홀(Hole)'이 아닌 '홀리(Holy)'로 부르는데 그나마 감사해
하는 "해리 홀레"는 타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애버리진' 현지 경찰 "앤드류"가 이끄는 데로 다니며 수사를 하다가 이 사건이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소설 중반까지 사건 수사의 주변인에 머물던 "해리 홀레"는 의도치 않게 수사의 중심으로 밀려들어 갑니다. 어쩌면
이 작품 속 "해리 홀레"는 운 나쁘게 타국으로 보내져 겪지 말았어야 할 일들에 휩싸여 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반골 기질이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순수해 보이는 "해리 홀레"는 낯선 땅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흔들어 놓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앞으로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또 다른 슬픈 이야기의 시작을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비극의 주인공이 될 운명어었던 겁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해리. 오스트레일리아 백인들도 혹여 말실수할까 봐 병적으로 조심해요. 참 모순이죠. 무엇보다도 우리 종족의 자부심을 뭉개놓고
정작 그게 없어지자 그걸 깔아뭉개버릴까 벌벌 떨다니."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박쥐"를 타이틀로 하는 이 작품은
백인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애버리진' 사람들과 그들의 신화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땅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자신들에 관한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들 때문에 더욱 비참해지는 '애버리진'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과는 다르게 호주 내에서 '애버리진'들의 범죄율은
높아만 가고, 뒤늦게 보상이라도 해주려는듯 한 백인들의 정책들은 때로는 너무 잔인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 정책들은
"앤드류"로 대변되는 일명 '도둑맞은 세대'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요 네스뵈"는
이런 '애버리진'의 이야기들을 소설 속에 상당 부분 할애하면서 타국에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해리 홀레" 첫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다 읽고 나니 왜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이 작품을 썼는지 나름 이해가 됐습니다. 이 작품
"박쥐"를 끌고 가는 캐릭터들은 대부분이 원주민 '애버리진', 동성애자, 외국인 등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 네스뵈"는 그들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방인인 노르웨이 경찰 "해리
홀레"를 화자로 내세워 비주류들의 이야기가 중심인 범죄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좋아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흥분되는 일입니다. 이번 경우엔 책의 순수한 재미와는 별개로_첫 작품이 좀 늦게 나와서_ 후속 작품들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해리 홀레"가 유명해진 사건을 드디어 읽게 된다는 기대감까지 더해져서 더 흥분되었습니다.
(영.미권에서도 "박쥐"와 두 번째 작품 "Cockroaches"는 가장 늦게
번역되었습니다. 아마도 배경이 노르웨이가 아니라서 인듯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성직자, 게이 등 여러 설정들을
고민했었다던 "요 네스뵈"는 결국 많은 범죄소설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탠다드한 알콜 중독과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외톨이인 캐릭터로 "해리 홀레"를 창조하지만 성공적인 캐릭터로 성장시킵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듣고
고분고분하고 연애에 서툰 소설 속의 젊은 "해리 홀레"가 낯설고 신기하며 풋풋해 보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 알콜
중독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중독이 심각한 "해리"가 자신에게 벌을 주기위해 금주를 하게 된 사연, 그러다 다시 알콜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평생 안고 살아야할 상처를 겪는 작품 속의 그를 보니, 앞으로 펼쳐질 앞날 역시 밝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읽는 내내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높은 연봉의 증권 중개인으로 생활하다 노르웨이 최다 앨범 판매 기록을 세울 정도로 잘 나가는 밴드의 리더가 되고, 휴가차
떠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에세이를 써달라고 부탁한 출판사 직원에게 6개월 뒤에 제멋대로
범죄 소설을 던져준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요 네스뵈"는 전형적으로 많은 재주를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재주 모두를 성공적으로 밥벌이에 이용하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첫 데뷔작인 이 작품
"박쥐"는 '글라스 키'를 수상하며 작품의 퀄리티를 인정받았지만 기존의 작품들 보다는 덜 다듬어진 부분이 간간히
눈에 띄어 날것의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뷔작을 이정도로 써냈다면 타고난 이야기꾼 인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저 진심으로 부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