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이야기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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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즈 페니(Louise Penny)"가 2009년에 발표한 작품 "냉혹한 이야기(The Brutal Telling)"입니다. 이 작품은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으로 시리즈 네 번째 작품 "The Murder Stone / A Rule Against Murder"의 무대를 휴양지의 한 호텔로 옮긴 후, 다시 가상의 공간 스리 파인즈(Three Pines)를 이야기의 무대로 설정합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가장 잔인한 달"에 이어 이 작품 역시 '애거서' 상을 수상했을뿐 아니라 '앤서니' 상까지 거머쥐며 "루이즈 페니"는 자신이 명실상부한 코지 미스터리계의 강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9월을 맞이하게 된 스리 파인즈에 시체가 발견됩니다. 발견된 곳은 마을 중심부에 있는 '비스트로'의 안이었고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시체의 신원을 알지 못합니다. 오래된 옷과 덥수룩한 외모로 인해 그저 노숙자일거 같다는 추측만 할뿐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스리 파인즈를 찾은 살인수사반 반장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시신의 신원 조차 알아내지 못하며 사건 수사에 난항을 겪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죽은 남자는 머리 뒤에 정확한 일격 맞아 죽었고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았다는 것 뿐입니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찾아오는 9월의 첫 주 스리 파인즈는 노동절 휴일로 바쁘기만 합니다. 방학을 맞아 찾아온 아이들과 휴가차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마지막 휴일을 즐기고 다시 돌아갈 준비가 한창인 아침 마을에서 다시 시체가 발견됩니다. 이 사건은 여느때와 달리 두 가지 점에서 마을의 화제가 됩니다. 첫째, 외부인의 방문이 그리 흔하지 않은 스리 파인스에서 피해자의 신원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 둘째,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스리 파인즈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사교장인 "올리비에""가브리"의 '비스트로'라는 점입니다. 근 일 년 만에 다시 스리 파인즈를 찾은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시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애를 먹습니다. 단지 시체의 외관으로 볼 때 노숙자라고 짐작만 할 뿐. "보부아르""라코스트""가마슈" 경감의 수사팀은 시체의 신원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왜 살인이 '비스트로' 안에서 일어 났는지, 무엇 때문에 살인이 일어 났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은 다시 용의 선상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애인 "가브리"와 함께 '비엔비'와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올리비에"가 가장 위험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그들을 제외하면 비스트로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가마슈에게는 북적북적하게 느껴졌다. 이미 입 밖으로 나온 거짓말과 진행 중인 거짓말과 앞으로 하게 될 거짓말로.

가상의 공간 스리 파인즈에서의 이야기들은 세 번째 작품 "가장 잔인한 달"에서 일단락을 맺었습니다. 비극으로 만들어진 상처들을 서로를 치유하며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이상적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욱 결속 다집니다. 하지만 비스트로에 신원 미상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스리 파인즈는 또 다른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동안의 살인사건과 달리 이번엔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장소이자 사교의 중심부였던 '비스트로'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전과는 그 크기가 다릅니다.. 더욱이 옛 해들리 저택은 도시에서 온 부유한 부부에 의해서 스파와 호텔로 개조 되어가면서 레스토랑이자 골동품 가게인 '비스트로'와 숙박업소인 '비엔비'는 예전과 같은 호황을 장담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수사를 위해 스리 파인즈를 방문 할 때면 언제나 '비스트로'와 '비엔비'를 이용하던 "가마슈" 경감도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거기다 몇 년 동안의 방문으로 친분을 쌓아왔던 "올리비에""가브리"가 사건의 중심에 놓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마슈" 경감은 정 때문에 수사를 그르칠 수사관이 아닙니다. 다른 때와 달리 수사의 초기 단계인 시체의 신원 파악에서 부터 애를 먹지만 진실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단지 진실이 비밀과 거짓말, 속임수에 가려져 안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차분히 수사를 진행합니다. 거기엔 "올리비에"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들도 포함됩니다.

그는 어떤 탐험가라도 아는 사실처럼 절벽을 걷는 행위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길을 잃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에 휘둘리고 있었다. 결국 살인 사건 수사의 답은 언제나 엄청나게 단순했다. 사실과 증거, 거짓말, 수사관의 오해 사이에 가려져 있을 뿐, 답은 항상 그 자리에 명백하게 있었다.

'질투'라는 감정이 중심이었던 "가장 잔인한 달"에 이어서 이번 작품 "냉혹한 이야기"는 시리즈 내내 유쾌한 감초 역할을 할 것 같던 스탠다드하고 친숙했던 게이 커플을 사건 안으로 몰아 넣으며 '이야기', '말'의 영향력을 소설의 중심에 놓습니다. 설화, 거짓말, 책 속의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 간의 대화 등 수많은 이야기와 말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얼마나 위력이 큰지를 소설 속에서 보여줍니다. 사람들 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삶이 바뀔 정도의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며 그 위력이 비극으로 바뀔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주제 안에 "루이즈 페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전 미스터리의 요소들을 빼곡하게 채워 넣습니다. 숨겨졌던 보물들, 암호, 전설, 이기심을 포함한 여러 공동체들의 특성들 까지 "루이즈 페니"는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한껏 넓게 펼칩니다. 정말 훌륭한 작가입니다. 그리고 고전에 대한 작가의 집착이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힘을 얻어 "루이즈 페니"만의 스타일이 완성되어 가는 듯 느껴집니다.

그들은 뒤로, 과거로 움직여야 했다. 범죄가 시작되고 살인자가 시작된 곳으로. 살인자는 아마도 모든 이에게 오래전에 잊힌 사건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살인자는 곪기 시작했다.

스리 파인즈에서 일어난 이전의 사건들이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들과 이번 "냉혹한 이야기"가 남긴 상처는 그 깊이가 다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생채기가 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시리즈를 이어오면서 작가 "루이즈 페니"가 차근차근 구축한 주변 캐릭터들의 이야기 덕분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로 약간의 지루함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결국 이런 이야기들까지 모아져 이번 작품에서 뿜어지는 슬픔의 정서는 더욱 극대화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작가가 미리 계산한 것이라면 일어나서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녀는 솟아올랐지만 정중하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네.

그동안의 작품들과 달리 "냉혹한 이야기"에서는 모든 미스터리가 확실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증거와 '어쩌면'과 '왜'가 인도하는 길들이 완벽하게 일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선한 형사 캐릭터이며 유능한 "가마슈" 경감이 느끼는 찜찜함에 공감하는 순간, 독자들은 다음 작품이자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도 평을 받는 "Bury Your Dead"를 손꼽아 기다리게 됩니다. 다행히도 곧 출간된다고 하니 그 기다림은 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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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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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과 행동과학 전문가 출신의 이탈리아 작가 "도나토 카리시(Donato Carrisi)"의 네 번째 작품 "이름 없는 자(L’ipotesi del Male)"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참여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집필한 데뷔작인 "속삭이는 자"의 후속 작품으로 여형사 "밀라 바스케스"가 '림보'라고 부르는 연방경찰서 실종전담반에 들어간 이후부터 7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경찰서 긴급상황실로 한 소년이 전화를 합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일가족을 전부 죽였다고 말하는 그 소년은 경찰들이 빨리 자신의 집으로 와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강력범죄 전담반은 현장을 확인한 후, 실종전담반의 "밀라 바스케스" 형사를 부릅니다. 막내 아들을 제외한 일가족 네 명이 살해당한 현장을 살펴본 "밀라"는 곧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살인자가 17년 전 실종된 회계사 "로저 벨린" 이었던 것 입니다. 17년 간 실종자 명단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일가족을 살해한 이 사건을 조사하던 "밀라""로저 벨린"이 남긴 단서를 토대로 또 다른 살인사건 현장을 찾아내고 그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또 다른 실종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탈리아를 충격에 빠트렸던 '속삭이는 자'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밀라 바스케스"는 승진 기회를 잡지만 그녀는 고립된 부서인 실종전담반인 '림보'로의 자리이동을 원했습니다. '속삭이는 자' 사건은 "밀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겼기에 더 이상 살인사건과 연관 없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림보'를 택한 겁니다. 그리고 원래 "밀라"는 실종자를 찾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속삭이는 자'사건에 투입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나타난 실종자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각 살인 사건들은 또 다른 살인 사건으로 향하는 단서를 남기고, 이 사건들이 이미 오래 전에 시작 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자고로 형사들은 수사과정에서 온갖 끔찍한 일들을 겪지만 사걸을 해결하면서 속에 담은 걸 털어내는 법이잖아. 그런데 림보에서 일하는 우리는 도둑이나 살인범을 추격하지는 않거든. 우리의 적은 그냥 떠도는 공기와 그림자가 만들어놓은 썰렁한 빈자리야.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그 빈자리가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을 빨아먹기만 하고 뱉어내지는 않는 블랙홀 같은 빈자리. 
뱉어내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잖아.


카톨릭에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세례를 받기 전의 어린 영혼이 머무르는 장소를 뜻하는 '림보'로 불리우는 실종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긴 "밀라" 형사는 어쩌면 '속삭이는 자'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 악을 부추겨서 살인을 저지르던 '속삭이는 자' 때문에 내적인 상처뿐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한 "밀라" 형사는 더 이상 강력범죄와 연관되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 때문에 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실종자들을 찾는 업무를 하던 "밀라"는 다시 강력범죄 수사에 투입됩니다. 실종자들이었던 살인자들은 마치 "밀라" 형사를 점점 사건의 중심부로 부르는 듯 대놓고 다음 사건의 단서를 심어놓고, 이 사건들이 20년 전 언론과 여론이 짜맞춘 음모에 떠밀려 경찰이 어쩔 수 없이 수사했던 일련의 실종사건들과의 연관성도 드러납니다. 20년전 사건을 조사하던 강력반 형사였지만 이젠 심문담당으로 경찰청 내에서 외톨이인 "베리쉬" 형사와 함께 예전 실종 사건들과 접점을 찾으며 사건을 조사하며 누군가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서 살인을 하도록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치 '속삭이는 자' 처럼 사람들의 심리와 정신을 교묘히 조정해 자신이 직접적인 살인의 주체가 되지 않는 무서운 존재 "카이루스""밀라" 형사와 "베리쉬" 형사의 상처에 까지 마수를 뻗습니다.

악의 논리가 다시 한 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선이 악으로 변하고 그렇게 변한 악이 다시 선으로 이어져 다시 한 번 악으로 연결되는 삶과 죽음의 영속적인 순환.

삶이 힘들고 괴로워 정신적으로 약해질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외롭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더 자주, 쉽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누군가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사라지게 해주겠다고. 새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지만 나중에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 그렇게 실종자들을 조종하는 존재 "카이루스"를 쫓는 이 작품은 '속삭이는 자'의 후속작 답게 역시나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무서운 존재가 등장합니다. 어쩌면 직접 칼과 총을 휘두르는 싸이코패스 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존재를 쫓아야만 하는 수사관들은 더 위험한 악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과도 싸우며 사건의 실체에 다가 갑니다. 그리고 곧 자신들이 실체에 다가가는게 아니라 유도하는 대로 따라 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들도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둘이 도착한 곳이 선과 악이 모호해지는 경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때, 독자들도 역시 '헉'소리 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에서만 250만부를 팔아 치우며 기록을 세우고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린 데뷔작 "속삭이는 자"의 후속작인 "이름 없는 자" 역시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장점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쉴 세 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고 범죄학 전문가다운 범죄와 범죄자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 넣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지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독자들이 안도할 때 쯤 등장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함께 다시 앞의 이야기들을 복기하게 만들고, 그러는 사이 미심쩍고 이해가지 않던 부분들은 스스로 꼼꼼히 메워집니다.
이 작품을 읽으시려는 분들은 꼭 "속삭이는 자"를 읽어보시고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 스스로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전작을 읽어 보셔야만 이 작품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왜 "속삭이는 자"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인지도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아마 이 이후의 이야기도 나올 것 같습니다. 아니, 안 나올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이 작품 "이름 없는 자"를 다 읽고난 독자들이 작가에게 이 다음 이야기를 빨리 내달라고 독촉할게 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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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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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콩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의 형사 "카미유 베르호벤"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카미유(Sacrifices / Camille)"입니다. 이 작품과 외전격인 "로지와 존"이 동시에 나오면서 그전에 출간된 삼부작 중 두 편이 새로운 표지로 바뀌고 첫 작품 "능숙한 솜씨"는 영미권에서 출간된 타이틀 "이렌"으로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이미 전작들을 샀던 입장에선 조금 짜증나지만 이제 사실 분들은 통일된 디자인과 제목으로 시리즈들을 소장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의 새로운 연인인 "안 포레스티에"가 우연히 보석상 강도 사건에 휘말려서 심한 폭행을 당합니다.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심하게 폭행당한 "안"의 모습에 "카미유" 반장은 자신이 보석상 강도사건을 맡으려고 합니다. 살인사건이 아닌 강도 사건은 "카미유" 반장의 소관이 아니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사를 지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이 입원한 병원에 보석상을 털었던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사실이 밝혀 지면서 "카미유"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평상시와 달리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반장을 보며 "루이"를 포함한 동료 경찰들은 의아해 하지만 "카미유" 반장의 실력을 알기에 묵묵히 따릅니다. 하지만 의문의 범인은 "안"을 점점 위협하고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는 "카미유"는 개인적으로도 위기를 맞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건 때문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체험을 겪는다면 그 사건은 나머지 삶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몇 달 전, 카미유는 "역사의 가속"이라는 책에 대한 리뷰 기사에서 그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예기치 못한 순간 당신의 신경계를 감전시킬 만큼 결정적인 사건. 당신은 그것을 곧바로 스스로에게 닥친 여느 상황들과 분리하려 할 것이다.

몇 년 전, 사랑하는 부인 "이렌"을 잃은 "카미유 바르호벤" 반장은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데 꽤 많은 시간을 흘려 보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카미유" 반장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이혼한 적이 있는 "안 포레스티에"와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 둘은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샹젤리제의 보석상 강도사건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안"은 강도들에게 잔인한 폭행을 당합니다. 폭행으로도 모자라 강도들은 도주하는 순간에도 "안"에게 총을 쏘기까지 합니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안"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채 병원으로 후송되고, 그 광경을 나중에 CCTV로 직접 보게된 "카미유" 반장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자신이 직접 이 강도 사건을 수사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과 "안"과의 관계를 숨기고 허구의 끄나풀까지 만들어내면서 사건 수사를 맡은 "카미유" 반장과 수사팀은 비슷한 수법으로 보석상을 털었던 동유럽 출신의 갱단 두목인 "빈센트 하프너"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의 뒤를 쫓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이 입원한 병원에 강도들 중 한명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몰래 들어온 사실을 알게 된 "카미유" 반장은 또 다시 사랑하는 여자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분노에 점점 더 그 답지 않게 수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범인들은 "안"의 생명을 계속 위협하고 경찰 내부에서는 "카미유"의 수상한 행동들이 조금씩 "카미유" 자신의 목을 졸라 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가 상관에게 거듭해온 거짓말들의 총합은 이제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카미유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직결된 그녀의 안위 여부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지금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다는 사실이다.

아내 "이렌"의 죽음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던 사랑의 상처는 "카미유"에겐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설적이던 "카미유"의 수사팀도 해체가 되었습니다. "카미유" 주변에 남아 있는 건 수사팀의 일원인 형사 "루이"와 고양이 뿐이었습니다. 50대에 머리까지 벗겨진 자신에겐 더 이상은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저 나이나 머리숱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임신 중에 연신 담배를 피워댔던 골초 어머니 덕분에 145cm까지 밖에 자라지 못한 자신의 신장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기치 못한 사랑이 다시 찾아오지만 그 여인 또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보석상을 털기 직전 우연히 마주치게 된 그녀를 끈질기게 노리는 강도들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또 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이렌" 처럼 잃을 수 없는 "카미유"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불안감과 초초함, 분노가 이성을 지배하면서 "카미유"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럴수록 연인을 향한 위협은 강도가 더욱 강해집니다. 결국 단순한 강도 사건이 개인적인 사건으로 변해가면서 "카미유" 반장의 마지막 이야기가 완성되어 갑니다.

이로써 가뜩이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상황이 훨씬 가중되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안을 위해서는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면 부담이 늘어나는 것쯤이야 상관없다. 세계를 두 어깨에 걸머져야 한다 해도 괜찮다. 만약 자신의 키가 보통 남자 정도였다면 이 부담이 한결 덜하게 느껴졌을까?

역사상 최단신 탐정 "카미유 바르호벤" 삼부작의 마지막인 이 작품 "카미유"는 삼부작의 마무리 답게 오로지 "카미유" 반장 한 명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장애와 재능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카미유" 반장은 신경질 적이고 깐깐한 성격까지 갖춘 덕분에 사교적이지도 못합니다. 너무도 작은 키 때문에 결혼 따위는 생각도 안했던 그에게 축복처럼 아름다운 여인 "이렌"이 나타나 그의 부인이 되고 곧 이은 임신은 "카미유"의 인생이 보통 사람들 처럼 평탄해질듯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사고로 "이렌"은 죽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더욱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던 "카미유"는 생각지도 못한 두 번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사랑 역시 위태로워 지고 또 다시 비극을 겪고 싶지 않은 "카미유"는 필사의 노력을 합니다. "이렌"을 잊지 못하고 그녀와는 달랐던 "안"과의 관계에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카미유""안"을 향한 위협을 통해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통제불능에 상태로 만들며 자신이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음을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이틀도 안되서 세 번이나 가해지는 "안"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위협은 이야기를 또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카미유"의 마지막 역시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카미유는 고개를 천장으로 치켜든다. 그러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 눈물 너머로 이렌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언제까지라도 그녀만은 늙지 않을 것 같다. 점점 늙어가는 자신과는 반대로 그녀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싱그럽게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카미유""안", 범인 그리고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반복되며 진행되는 이 작품 역시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고풍스럽지만 건조한 문체와 시적인 은유들은 확실히 그동안 보아오던 영미권 스릴러들 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또 다른 유명 추리 작가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들과도 확연히 다른 맛이 느껴 집니다. "피에르 르메트르"식 하드 보일드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듯합니다. 실제로 읽다 보면 작가는 자유자재로 시점을 넘나들며 적당한 미끼와 의도적 생략으로 탄탄하게 짜여진 플롯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반전도 반전이지만 반전을 사용하는 의도 역시 독자를 그저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서서히 구축한 플롯을 든든하게 받치는 한 축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합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이 좀 약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클라이막스를 그렇게 담담하고 건조하게 쓴 덕분에 오히려 "카미유"라는 캐릭터의 고독과 상실, 슬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결론은 훌륭한 범죄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과 희생에 관한 슬픈 이야기이도 합니다. 이 작품은 꼭 첫 작품인 "능숙한 솜씨"_아니 이젠 "이렌"이겠군요_와 "알렉스", "로지와 존"을 읽고 나서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첫 작품만 이라도 읽고 나서 읽으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좀 반감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로써 "카미유 베르호벤" 삼부작이 끝났네요. 덕분에 또 한명의 훌륭한 작가의 이름을 머리에 각인 시키게 됐습니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가 자신의 첫 순수 문학 작품인 "Au revoir la-haut"로 '콩쿠르' 상을 수상하면서 '추리소설과 대중소설에서 익힌 글쓰기 기법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고 하더군요. '콩쿠르' 상을 수상했단 소식을 듣고 저도 상당히 기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거 같습니다. 근데 반면에 더 이상 스릴러 안 써 줄까봐 걱정도 됩니다. 다시 "피에르 르메트르"의 새로운 스릴러를 기다리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카미유, 카미유베르호벤, 피에르르메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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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와 존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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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의 형사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 중 외전격 작품인 "로지와 존(Les Grands Moyens / Rosy & John)"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2011년에 이북으로 먼저 나오고 2012년 삼부작이 완료된 후, 2013년에 다시 종이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깐 내용상으로는 두 번째 작품 "알렉스"와 세 번째 작품 "카미유"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파리 시내에서 큰 폭발이 일어납니다. 많은 피해가 발생한 폭탄 테러는 프랑스를 혼란에 빠트립니다. 그리고 곧 자신이 폭탄 테러를 저지른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존"이라는 청년이 경찰서로 찾아옵니다. 스스로를 "장"이라고 부르는 "존"은 자신이 여섯 개의 폭탄을 파리 곳곳에 숨겨놓았다고 주장합니다. "존"은 살인죄로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어머니 "로지"를 석방 시켜주면 폭탄이 숨겨진 위치를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누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와 마주치면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발을 디디고 있던 빙판에 균열이 생기면,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엉겁결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보통 결정적인 사태가 발생하기까지는 불과 10여 초도 걸리지 않는다.

파리 18구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폭탄이 터진 곳이 시내 한복판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의료진과 경찰들이 부상자 운반과 조사를 위해 모여들고, 정부는 폭탄 테러의 주동자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 와중에 경찰서로 자신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청년이 찾아옵니다. "장"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존"이라는 그 청년은 "카미유 바르호벤" 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카미유" 반장에게 자신이 여섯 개의 폭탄을 더 숨겨놓았다고 주장합니다. 폭탄들은 하루에 한 개씩 터진다는 말과 함께 숨겨진 폭탄들의 위치를 알고 싶으면 살인죄로 여덟 달째 복역 중인 자신의 어머니 "로지"를 석방하고 자신과 어머니를 호주로 보내달라고 요구 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장의 주장이 사실인지 혹은 헛소리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현재 시점에서 유일한 대응책은 9시가 될 때까지 멀거니 기다려보는 일뿐이다. 정말이지 피 말리는 노릇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다시 경찰에 복귀한 뒤 "알렉스"라는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을 수사한 "카미유"는 폭탄 테러범의 면담 요청에 일단은 이 폭탄 테러 사건의 수사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카미유" 반장은 말도 어눌하고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는 "존"이라는 청년의 말에 믿음이 안갑니다. 거기다 "존"이 풀어달라는 어머니 "로지"는 바로 "존"의 여자 친구를 살해한 죄로 복역 중입니다. 하지만 목격자의 지목과 폭탄에 대한 자세한 "존"의 설명은 그가 폭탄 테러를 저지른 범인임이 확실해 보이게 합니다. "카미유"는 어르고 달래도 보고 협박을 하며 강하게 밀어 부쳐도 보지만 "존"은 전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시간은 점점 다음 폭탄이 터질 시간대에 다가가고 "카미유"는 일단 "존""로지"를 대면시켜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대면한 두 모자의 모습에서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촉박한 시간 속에 "존""로지" 사이의 비밀들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우린 서로 사랑했지.
그때가 참 좋았어, 로지와 존은.
하지만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그리고 산다는 건......
-로지와 존- 질베르 베코(Gilbert Becaud)

프랑스의 유명가수 "질베르 베코(Gilbert Becaud)"가 1964년 발표한 노래 "Rosy & John"에서 따온 "로지""존" 모자의 기묘하고 뒤틀린 관계와 그 관계에서 비롯된 비극을 그리는 이 작품 "로지와 존"은 상당히 속도감 있는 작품입니다. 22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에, 삼일 간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챕터 역시도 상당히 짧게 끊고 군더더기를 걷어낸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 챕터들을 구성하여 체감 상 더 빠르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시리즈의 주인공 "카미유 바르호벤" 반장은 이 작품에서 주변인이자 관찰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존""로지" 모자의 비극적인 인생의 목격자가 됩니다.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알렉스"에서도 비슷한 위치였는데 이작품에선 더 외부로 빠지면서 주변에 머무릅니다. 그러고 보니 "알렉스"와 이 작품 "로지와 존"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중심인물 "존"을 또 다른 "알렉스"로 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작품들을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가의 고풍스럽고 비범한 글 솜씨를 익히 알고 계실 듯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건조한 전지적 태도는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 특유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완성시킵니다. 이번에 외전 "로지와 존"과 삼부작 마지막 작품 "카미유"가 동시에 나왔는데, 이 작품을 먼저 읽고 "카미유"로 연결해서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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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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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스티븐 킹"의 2013년도 작품 "닥터 슬립(Doctor Sleep)"입니다. 이 작품은 REDRUM이라는 단어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1977년에 발표한 걸작 "샤이닝"의 후속작 입니다. 오버룩 호텔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꼬마 "대니얼 토런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스티븐 킹"에게 다시 한번 '브람 스토커' 상을 안겨줬습니다.

어린시절 오버룩 호텔의 비극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남은 "대니얼(대니 또는 댄)"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머물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술을 멀리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의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게 된 "대니"를 사람들은 "닥터 슬립"이라고 부릅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자신의 샤이닝으로 평온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부터 "대니"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던 소녀 "아브라"에게 도움을 요청받습니다. "대니""아브라"를 도와주기로 합니다. 남들과 다른 소녀 "아브라"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건 "대니" 자신이 유일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눈다운 눈이 처음으로 내리기 시작했지.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 낡은 호텔 현관에 서 있었어. 아버지를 가운데에 두고 어머니가 저쪽, 내가 이쪽, 이렇게. 아버지가 우리를 어깨동무하고 있었지. 그때만 해도 괜찮았어.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술을 안 마셨거든. 처음에는 눈이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내렸는데, 바람이 점점 세게 부니까 옆으로 날려서 현관 양쪽 옆면을 때리고 어디에 쌓였는가 하면......

끔찍한 악몽을 겪은 기억과 유령들은 그날 전소되었던 오버룩 호텔과 함께 모두 사라진 듯 보였고 살아남은 어머니와 "대니"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니"의 인생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냈습니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바로 샤이닝이라는 빌어먹을 이상한 능력 때문입니다. 자꾸만 찾아오는 오버룩의 유령들, 멋대로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 곧 죽을 사람들 얼굴 위에 보이는 파리떼들... 어린 "대니"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능력이었습니다. 오버룩 호텔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도와준 "딕" 아저씨에게 샤이닝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며 나름 노력을 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같은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리고, 어머니가 죽은 뒤로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닙니다. 하지만 프레이저의 티니타운에 정착을 하면서 알콜 중독자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며 술도 끊고,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며 "닥터 슬립"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 샤이닝을 통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주기에 생긴 별명입니다. 그리고 "대니"가 티니타운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샤이닝 능력으로 접촉을 해오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아브라". 태어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심상치 않은 능력으로 부모를 놀래킨 "아브라"의 샤이닝은 "대니"의 샤이닝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아직 샤이닝을 스스로 조절을 못하는 "아브라"는 원치 않는 장면도 보게 되고 원치 않은 것도 알게 됩니다. 거기에는 샤이닝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소년이 이상한 집단에게 납치되어 고문당하며 죽는 모습도 포합됩니다. "아브라"는 곧 그 집단들이 스스로를 "트루 낫(True Knot)"이라고 부르며 자신과 죽은 소년같이 샤이닝 능력을 지닌 어린 아이들을 죽여 정기를 흡수해서 살아간다는 사실과 다음 타겟이 엄청난 샤이닝을 지닌 "아브라"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제 "아브라"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대니"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며 "대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대니""아브라"는 힘을 합쳐 "트루 낫"에 대항하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게 돌고 돌기 때문이지. 그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숙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오거든. 나한테 자물쇠 상자를 주면서 딕이 그랬잖아. 학생이 준비되어 있으면 선생님이 등장하는 법이라고. 내가 아무한테라도 뭘 가르칠 깜냥이 되는 건 아니야. 술을 안 마시면 취할 일도 없다는, 그런 거라면 모를까.

소설로도 영화로도, 물론 "스티븐 킹" 형님은 아직까지 영화에 불만이 많아 보입니다만_걸작으로 추앙받는 "샤이닝"의 후속작이 36년만에 나왔습니다. 샤이닝을 지닌 사람들과 그들의 정기를 먹고 사는 "트루 낫"의 대결이 중심인 "닥터 슬립"은 전작 "샤이닝"과는 다르게 스릴러 형식을 취한 작품입니다. 호러보다는 서스펜스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단순히 초능력자와 그들을 노리는 집단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 굳이 "샤이닝" 후속작으로 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래전 오버룩 호텔에서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을 죽일뻔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마흔이 넘도록 "대니"를 지배하고 절대로 닮지 않고 싶었지만 결국 아버지 처럼 알콜 중독자가 된 "대니"는 저주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능력을 남들을 위해서만 씁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고 느끼던 "대니"는 자신과 비슷한 한 소녀를 도우면서 오랫동안 그저 외면만 했던 과거의 상처들과 다시 대면하고 그것을 극복해나아 가면서 "아브라" 뿐만 아니라 "대니" 자신 스스로를 과거의 망령들에게서 구하게 됩니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통제되지 못하는 힘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대니""아브라"의 모습들은 언뜻 영화 "엑스맨:데오퓨"가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만,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가는 과정들에서 나타나는 "스티븐 킹"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샤이닝이라는 초능력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인간들의 가장 선한 감정인 '공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하면 스포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스티븐 킹" 스스로 이 작품이 왜 "샤이닝" 후속작품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훌륭하고 완벽한 방식으로 입증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문득 궁금해지는 부분들 전부를 완벽하게 채워가는 솜씨 역시 더욱 능숙해 졌음은 물론입니다.

그로서는 이게 최선이었고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천천히 그녀가 눈을 떴다. 처음에는 멍했지만 차츰 의식을 회복했다. 댄은 이런 과정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의식 회복의 기적. 의식이 어디 있다가 돌아오고 떠나면 어디로 가는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죽음도 탄생 못지않은 기적이었다.

오버룩 호텔에서 "대니"와 어머니를 구해준 "딕" 아저씨의 할머니가 밝게 반짝 빛난다고 해서 붙여준 샤이닝이란 이름의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에서는 너무나 불행하고 슬픈 능력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대니"는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면서 말할 기력조차 없이 죽음에 다가가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밝혀주는 수단으로 샤이닝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대니"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너무 슬퍼하지 않습니다. 신은 믿지 않지만 분명 샤이닝으로 영혼을 보았고 저 멀리 어딘가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대니"는 자신에게 내린 저주의 능력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마지막 잠을 잘 수 있게하는 수단으로 쓰여질 때 만큼은 샤이닝이라는 이름처럼 한없이 찬란하게 반짝인다는걸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잠만 자면 돼."
(가지 마.)
"안 가." 댄이 말했다. "여기 있어. 당신이 잠들 때까지 여기 있을 거야."
이제 그는 두 손으로 칼링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잠들 때까지."

언제 부터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11/22/63"부터 "조이랜드" 그리고 이번 "닥터 슬립"까지의 "스티븐 킹"은 예전보다 더욱 따뜻해졌습니다. 후반부엔 몇 번이나 울컥 하게하는 장면들 때문에 혼났습니다. 억지스럽지 않은 짧지만 여운을 남기는 감동은 사실 "닥터 슬립"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어쨌든 시간이 지날 수 록 "스티븐 킹"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된 게 점점 글을 더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이런 능력이 샤이닝 같은 능력보다 훨씬 축복 받은 능력 같습니다.
소설만 읽으셨던, 영화만 보셨던 오버룩 호텔 사건 이후의 진정한 "토런스" 가족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꼭 읽기를 권합니다. "스티븐 킹"이 왜 세계 최고의 이야기 꾼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게 되실테니 말입니다. 사실 새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확인하게 되니깐 이런 말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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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4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 할아버지가 11.22 이후 확실히 스타일이 달라지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낯설다고 하는데 전 이 말랑말랑한 게 꽤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 이왕 읽은 김에 엇그제 샤이닝을 다시 읽었더니 이야. 이거 진짜 좋더군요.....

다크차일드 2015-02-26 04:37   좋아요 0 | URL
우왓! 댓글 달린적이 없어서 댓글이 달린 줄 이제 알았네요. 죄송합니다.
킹 형님 변하셨어요... 근데 더 좋은 쪽으로 변하셔서...^^;
그래서 올해 국네에 나올 킹 형님 최초의 하드보일드 ˝미스터 메르세데스˝도 엄청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