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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ㅣ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평점 :

2013년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콩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의 형사 "카미유 베르호벤"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카미유(Sacrifices / Camille)"입니다. 이 작품과 외전격인 "로지와
존"이 동시에 나오면서 그전에 출간된 삼부작 중 두 편이 새로운 표지로 바뀌고 첫 작품 "능숙한
솜씨"는 영미권에서 출간된 타이틀 "이렌"으로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이미 전작들을 샀던 입장에선
조금 짜증나지만 이제 사실 분들은 통일된 디자인과 제목으로 시리즈들을 소장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의 새로운 연인인 "안 포레스티에"가 우연히 보석상 강도 사건에
휘말려서 심한 폭행을 당합니다.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심하게 폭행당한 "안"의 모습에
"카미유" 반장은 자신이 보석상 강도사건을 맡으려고 합니다. 살인사건이 아닌 강도 사건은
"카미유" 반장의 소관이 아니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수사를 지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이 입원한 병원에 보석상을 털었던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사실이 밝혀 지면서
"카미유"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평상시와 달리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반장을 보며
"루이"를 포함한 동료 경찰들은 의아해 하지만 "카미유" 반장의 실력을 알기에
묵묵히 따릅니다. 하지만 의문의 범인은 "안"을 점점 위협하고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는
"카미유"는 개인적으로도 위기를 맞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건 때문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체험을 겪는다면 그 사건은 나머지 삶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몇 달
전, 카미유는 "역사의 가속"이라는 책에 대한 리뷰 기사에서 그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예기치 못한 순간 당신의 신경계를 감전시킬 만큼
결정적인 사건. 당신은 그것을 곧바로 스스로에게 닥친 여느 상황들과 분리하려 할
것이다.
몇
년 전, 사랑하는 부인 "이렌"을 잃은 "카미유 바르호벤" 반장은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데 꽤 많은 시간을 흘려 보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카미유" 반장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이혼한 적이 있는 "안 포레스티에"와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 둘은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샹젤리제의 보석상 강도사건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안"은 강도들에게 잔인한 폭행을 당합니다. 폭행으로도
모자라 강도들은 도주하는 순간에도 "안"에게 총을 쏘기까지 합니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안"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채 병원으로 후송되고, 그 광경을 나중에 CCTV로 직접 보게된
"카미유" 반장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자신이 직접 이 강도 사건을 수사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과
"안"과의 관계를 숨기고 허구의 끄나풀까지 만들어내면서 사건 수사를 맡은 "카미유"
반장과 수사팀은 비슷한 수법으로 보석상을 털었던 동유럽 출신의 갱단 두목인 "빈센트 하프너"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의 뒤를 쫓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이 입원한 병원에 강도들 중 한명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몰래 들어온
사실을 알게 된 "카미유" 반장은 또 다시 사랑하는 여자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분노에 점점 더 그 답지
않게 수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범인들은 "안"의 생명을 계속 위협하고 경찰 내부에서는
"카미유"의 수상한 행동들이 조금씩 "카미유" 자신의 목을 졸라 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가 상관에게 거듭해온 거짓말들의 총합은 이제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카미유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직결된 그녀의 안위 여부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지금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다는
사실이다.
아내
"이렌"의 죽음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던 사랑의 상처는 "카미유"에겐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설적이던 "카미유"의 수사팀도 해체가
되었습니다. "카미유" 주변에 남아 있는 건 수사팀의 일원인 형사 "루이"와 고양이
뿐이었습니다. 50대에 머리까지 벗겨진 자신에겐 더 이상은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저 나이나 머리숱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임신 중에 연신 담배를 피워댔던 골초 어머니 덕분에 145cm까지 밖에 자라지 못한 자신의 신장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기치 못한
사랑이 다시 찾아오지만 그 여인 또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보석상을 털기 직전 우연히 마주치게 된 그녀를 끈질기게 노리는 강도들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또 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이렌" 처럼 잃을 수 없는 "카미유"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불안감과 초초함, 분노가 이성을 지배하면서 "카미유"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럴수록 연인을 향한 위협은 강도가 더욱 강해집니다. 결국 단순한 강도 사건이 개인적인 사건으로 변해가면서
"카미유" 반장의 마지막 이야기가 완성되어 갑니다.
이로써 가뜩이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상황이 훨씬 가중되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안을 위해서는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면 부담이
늘어나는 것쯤이야 상관없다. 세계를 두 어깨에 걸머져야 한다 해도 괜찮다. 만약 자신의 키가 보통 남자 정도였다면 이 부담이 한결 덜하게
느껴졌을까?
역사상
최단신 탐정 "카미유 바르호벤" 삼부작의 마지막인 이 작품 "카미유"는 삼부작의
마무리 답게 오로지 "카미유" 반장 한 명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장애와 재능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카미유" 반장은 신경질 적이고 깐깐한 성격까지 갖춘 덕분에 사교적이지도 못합니다. 너무도 작은 키 때문에 결혼
따위는 생각도 안했던 그에게 축복처럼 아름다운 여인 "이렌"이 나타나 그의 부인이 되고 곧 이은 임신은
"카미유"의 인생이 보통 사람들 처럼 평탄해질듯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사고로
"이렌"은 죽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더욱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던
"카미유"는 생각지도 못한 두 번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사랑 역시 위태로워 지고 또 다시
비극을 겪고 싶지 않은 "카미유"는 필사의 노력을 합니다. "이렌"을 잊지 못하고
그녀와는 달랐던 "안"과의 관계에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카미유"는
"안"을 향한 위협을 통해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통제불능에 상태로 만들며 자신이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음을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이틀도 안되서 세 번이나 가해지는 "안"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위협은 이야기를 또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카미유"의 마지막 역시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카미유는 고개를 천장으로 치켜든다. 그러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 눈물 너머로 이렌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언제까지라도 그녀만은 늙지 않을 것 같다. 점점 늙어가는 자신과는 반대로 그녀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싱그럽게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카미유"와
"안", 범인 그리고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반복되며 진행되는 이 작품 역시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고풍스럽지만 건조한 문체와 시적인 은유들은 확실히 그동안 보아오던 영미권 스릴러들 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또 다른 유명 추리 작가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들과도 확연히
다른 맛이 느껴 집니다. "피에르 르메트르"식 하드 보일드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듯합니다. 실제로 읽다
보면 작가는 자유자재로 시점을 넘나들며 적당한 미끼와 의도적 생략으로 탄탄하게 짜여진 플롯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반전도 반전이지만 반전을
사용하는 의도 역시 독자를 그저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서서히 구축한 플롯을 든든하게 받치는 한 축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합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이 좀 약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클라이막스를 그렇게 담담하고 건조하게 쓴 덕분에
오히려 "카미유"라는 캐릭터의 고독과 상실, 슬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결론은
훌륭한 범죄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과 희생에 관한 슬픈 이야기이도 합니다. 이 작품은 꼭 첫 작품인 "능숙한
솜씨"_아니 이젠 "이렌"이겠군요_와 "알렉스",
"로지와 존"을 읽고 나서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첫 작품만 이라도 읽고 나서 읽으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좀 반감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로써
"카미유 베르호벤" 삼부작이 끝났네요. 덕분에 또 한명의 훌륭한 작가의 이름을 머리에 각인 시키게 됐습니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가 자신의 첫 순수 문학 작품인 "Au revoir
la-haut"로 '콩쿠르' 상을 수상하면서 '추리소설과 대중소설에서 익힌 글쓰기 기법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고 하더군요. '콩쿠르' 상을 수상했단 소식을 듣고 저도 상당히 기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거 같습니다. 근데 반면에 더 이상 스릴러 안 써 줄까봐 걱정도 됩니다. 다시 "피에르 르메트르"의
새로운 스릴러를 기다리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