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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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범죄학과 행동과학 전문가 출신의 이탈리아 작가 "도나토 카리시(Donato Carrisi)"의 네 번째 작품 "이름 없는 자(L’ipotesi del Male)"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참여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집필한 데뷔작인 "속삭이는 자"의 후속 작품으로 여형사 "밀라 바스케스"가 '림보'라고 부르는 연방경찰서 실종전담반에 들어간 이후부터 7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경찰서 긴급상황실로 한 소년이 전화를 합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일가족을 전부 죽였다고 말하는 그 소년은 경찰들이 빨리 자신의 집으로 와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강력범죄 전담반은 현장을 확인한 후, 실종전담반의 "밀라 바스케스" 형사를 부릅니다. 막내 아들을 제외한 일가족 네 명이 살해당한 현장을 살펴본 "밀라"는 곧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살인자가 17년 전 실종된 회계사 "로저 벨린" 이었던 것 입니다. 17년 간 실종자 명단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일가족을 살해한 이 사건을 조사하던 "밀라""로저 벨린"이 남긴 단서를 토대로 또 다른 살인사건 현장을 찾아내고 그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또 다른 실종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탈리아를 충격에 빠트렸던 '속삭이는 자'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밀라 바스케스"는 승진 기회를 잡지만 그녀는 고립된 부서인 실종전담반인 '림보'로의 자리이동을 원했습니다. '속삭이는 자' 사건은 "밀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겼기에 더 이상 살인사건과 연관 없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림보'를 택한 겁니다. 그리고 원래 "밀라"는 실종자를 찾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속삭이는 자'사건에 투입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나타난 실종자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각 살인 사건들은 또 다른 살인 사건으로 향하는 단서를 남기고, 이 사건들이 이미 오래 전에 시작 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자고로 형사들은 수사과정에서 온갖 끔찍한 일들을 겪지만 사걸을 해결하면서 속에 담은 걸 털어내는 법이잖아. 그런데 림보에서 일하는 우리는 도둑이나 살인범을 추격하지는 않거든. 우리의 적은 그냥 떠도는 공기와 그림자가 만들어놓은 썰렁한 빈자리야.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그 빈자리가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을 빨아먹기만 하고 뱉어내지는 않는 블랙홀 같은 빈자리. 
뱉어내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잖아.


카톨릭에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세례를 받기 전의 어린 영혼이 머무르는 장소를 뜻하는 '림보'로 불리우는 실종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긴 "밀라" 형사는 어쩌면 '속삭이는 자'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 악을 부추겨서 살인을 저지르던 '속삭이는 자' 때문에 내적인 상처뿐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한 "밀라" 형사는 더 이상 강력범죄와 연관되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 때문에 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실종자들을 찾는 업무를 하던 "밀라"는 다시 강력범죄 수사에 투입됩니다. 실종자들이었던 살인자들은 마치 "밀라" 형사를 점점 사건의 중심부로 부르는 듯 대놓고 다음 사건의 단서를 심어놓고, 이 사건들이 20년 전 언론과 여론이 짜맞춘 음모에 떠밀려 경찰이 어쩔 수 없이 수사했던 일련의 실종사건들과의 연관성도 드러납니다. 20년전 사건을 조사하던 강력반 형사였지만 이젠 심문담당으로 경찰청 내에서 외톨이인 "베리쉬" 형사와 함께 예전 실종 사건들과 접점을 찾으며 사건을 조사하며 누군가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서 살인을 하도록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치 '속삭이는 자' 처럼 사람들의 심리와 정신을 교묘히 조정해 자신이 직접적인 살인의 주체가 되지 않는 무서운 존재 "카이루스""밀라" 형사와 "베리쉬" 형사의 상처에 까지 마수를 뻗습니다.

악의 논리가 다시 한 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선이 악으로 변하고 그렇게 변한 악이 다시 선으로 이어져 다시 한 번 악으로 연결되는 삶과 죽음의 영속적인 순환.

삶이 힘들고 괴로워 정신적으로 약해질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외롭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더 자주, 쉽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누군가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사라지게 해주겠다고. 새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지만 나중에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 그렇게 실종자들을 조종하는 존재 "카이루스"를 쫓는 이 작품은 '속삭이는 자'의 후속작 답게 역시나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무서운 존재가 등장합니다. 어쩌면 직접 칼과 총을 휘두르는 싸이코패스 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존재를 쫓아야만 하는 수사관들은 더 위험한 악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과도 싸우며 사건의 실체에 다가 갑니다. 그리고 곧 자신들이 실체에 다가가는게 아니라 유도하는 대로 따라 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들도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둘이 도착한 곳이 선과 악이 모호해지는 경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때, 독자들도 역시 '헉'소리 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에서만 250만부를 팔아 치우며 기록을 세우고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린 데뷔작 "속삭이는 자"의 후속작인 "이름 없는 자" 역시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장점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쉴 세 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고 범죄학 전문가다운 범죄와 범죄자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 넣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지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독자들이 안도할 때 쯤 등장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함께 다시 앞의 이야기들을 복기하게 만들고, 그러는 사이 미심쩍고 이해가지 않던 부분들은 스스로 꼼꼼히 메워집니다.
이 작품을 읽으시려는 분들은 꼭 "속삭이는 자"를 읽어보시고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 스스로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전작을 읽어 보셔야만 이 작품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왜 "속삭이는 자"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인지도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아마 이 이후의 이야기도 나올 것 같습니다. 아니, 안 나올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이 작품 "이름 없는 자"를 다 읽고난 독자들이 작가에게 이 다음 이야기를 빨리 내달라고 독촉할게 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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