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8월
구판절판


유난히 덥고 길게 느껴졌던 여름의 끝자락즈음에 이 책을 인터넷 서점 신간코너에서 보게 되었다.
책 표지가 눈에 띄기도 했고 제목도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꽤 오래 머물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때맞침 그런 코드가 세계적으로 유행해서인지 요즘 '힐링'이나 '멈춤' '내려놓기'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인다.

전부터 '마이패이스'에 큰 가치를 두며 어느 면에선 내 쪼대로 살고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ㅎㅎ
'어느 면'이라고 한 건 나 역시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때론 그것이 나 자신을 옭아매는 밧줄처럼 여겨져 숨막혀 하며 말이다.

나는 영어는 잘 못하지만 'Why not?!'이라는 말을 고등학교 때부터 무척 좋아해서 책상 옆에 꽂아 놓기도 했었다. 그 생각은 대학 졸업후 뚜렷한 직장도 없이 앞으로 뭘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때에도 그리고 현재도 변함없이 내 속에 있다.

어쩌면 사춘기인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상과 주류에 대한 나름의 '내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보고 겪은 지금 오히려 그 주장은 힘을 더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유명 인사도 작가도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그래서 이 <아무것도 하지않을 권리>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며, 그동안 요구되었던 '모범답안'과도 같은 삶이 다가 아니라 남에게 폐가 되지않는한 좀더 다양하게 살아도 좋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지지를 보내는 어른(근데 나 어른 맞는거야?! 마,, 맞겠지?!ㅎㅎ)중 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 중에 독일 여성 하이데마리의 '사막의 날'이라는 것이 있다. 이건 저자의 말대로 '하루쯤 자유를 최대한 누릴 권리'이기도 하겠고, '하루를 온전히 자신에게 줄 권리'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이 '사막의 날'을 하루 온종일이 아닌 하루중 혹은 우울한 날 조금씩 실천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버킷 리스트' 혹은 '꿈의 목록'을 적고 실천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이것도 그런 것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프롤로그 중의 말이 이 책 집필의도를 말해주는 듯해서 읽기전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 책에 관해 궁금해하실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옮겨 본다.

'무위의 시간을 지나 보지 않은 사람은 기다리는 법을 모른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기에 우리는 다만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지극한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다.(중략)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실감을 안겨 주는 소중한 기회들은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하고,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내려놓는 그 순간에 찾아온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읽다보니 꼭 무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이 <소설처럼>이란 책에서 독자의 '10가지 권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 중 10번째가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않을 권리'라고 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나 역시 참 좋았다.ㅎㅎ 사실 1번부터 9번까지는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연중에 누리고 있는 권리인 것 같은데 이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않을 권리'만큼은 자의든 타의든 마음대로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나 책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읽고 나서 독후감 쓰기 싫어 그런다지만 그렇지않은 사람들은 읽은 책의 한 구절, 시의 한 구절을 노트나 다이어리에 적어 위로를 받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슬쩍 인용하기도 하고 때론 잘난척 떠들어대기도 하는 등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렇다는게 절대 아니라는 걸 전제로 두고,(실은 대부분이 책 읽는건 좋은데 쓰라고 하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떨땐 나도 읽고 서평 쓰는게 싫을 때도 있는데 쓰기 시작하니 벌써 이만큼 적고 있지 않은가.
적고싶은 말을 아직 반에 반도 못 적었는데도 말이다.
더 적으면 혹시라도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분들이 욕할 것 같아 이쯤에서 마친다.


"그냥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좋은 것이다." (25p중, 장자의 말)
그럼에도 그냥 끝맺지 못하고 한 대목 옮기고 마치는 나였던 것이다.ㅎㅎ

오늘을 '사막의 날'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도 하며 크게 해 될게 없다면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만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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