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튜울립 > 베품의 행복

이런 마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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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옥중 사색, 개정판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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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옥중사색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7년간의 수감 생활 동안 정진의 시간을 담은 명상집이다.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이후 이름없는 시인으로 수배 중 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수로 수감되어 있다가 1998년 사면되어 출소했다. 1993년 피검 중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출간했고, 1997년 이 책이 나왔다. 출소 후 그는 ‘나눔문화’라는 단체를 만들고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책 제목을 가져온 “다시”라는 시에서 참 좋은 사람은/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사람만이 희망이다 라고 외친다.

삶 자체가 혁명인 시인은 기본을 잃지 말아야한다고 외친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기본을 넘어서야 한다고. 발 밑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모두 122편의 시와 산문이 실려있는데 모든 글이 콕콕 찌르지만 (수감생활의 어려움, 여러 길을 가는 지인들에 대한 소회 등..) 특히 “세 발 까마귀”가 마음에 들어온다. 나는 이 책의 핵심으로 받아들였다.
….
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묻습니다./ 아직 사회주의자입니까?/나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예!” “아니오!”/ 당신은 쉽게 물을지 몰라도/나는 지금 온 목숨으로 대답하는 겁니다
..
삶과 인간과 현실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얻기까지/ 나는 ‘아무 주의자’도 아니고 동시에 ‘모든 주의자’입니다

굳이 당신이 요구하는 ‘….주의’ 의 사고틀로 말하라면 나는/ 비사회주의 탈자본주의 친생태주의 친여성주의라고 해두지요/ 그래서 나의 대답은 “예” “아니오”인 것입니다

시인은 흑이면서 백이고, 흑과 백 사이에서 온몸으로 밀고 나오는 세 발 까마귀의 세 번째 발이라고 외친다.

도정일 교수의 ‘책에 부침’ 글도 꼼꼼히 읽어야한다. 박노해에 대한 소개이며 분석이며,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도 박노해를 지울 수 없다…….개인 차원에서도 우리는 모두 내부적으로 제각각 몇 퍼센트씩은 그를 유배한 자이고 동시에 그의 지지자이며, 비판자이고 동조자이다.(p294)” 라고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숙연히 수긍할 밖에.

어느 누구도, 이 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요즘같이 양분된 이 상황에서는 특히. 우리는 시인이 말하듯, “다시 시작하는 발, 또 하나의 발, 우리 희망의 발”을 내딛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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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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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라는 단편소설집이 자꾸 sns 상에서 자꾸 언급되어 무슨 책이 궁금해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추리물의 대가라는 표현도 있어서인데..이 소설집에는 총 2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마지막 제비뽑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눈에 보이는 참혹함은 없다. 그런데…읽다보면 스멀스멀 기분이 나빠오고,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평범한 사람들, 평온한 일상 속에서 기분 나쁘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숨겨져있던 악마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느 한 사람이 악마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제임스 해리스라는 인물, 또는 남자노인이 악마성을 대표하기는 하지만) 선의에서 한 행동에도 선입견이 입혀져있고, 그 결과 차별적인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여자라서인지, 특히 여성들의 오지랖에 의한 악의적인 행동이 자세히 설득력있게 묘사된다. 바로 내 이웃일 수 있는, 친절해 보이는 그들이 베푸는 선의가 선을 넘는 간섭으로 옥죄어 온다. 더 기분 나빠지는 것은, 독자인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내 안에도 충분히 소설 속에 그려지는 악마성이 들어있을 거라는 느낌에서이다. 내로남불의 억지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나니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도 농촌 지역으로 가면 지극히 배타적이고, 유대인,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여전하다고 한다. 작가 셜리 잭슨은 그런 환경 속에서 (남편이 유대인) 평생 동안 편견과 차별을 증오하며 살았다고. 그나저나..’제비뽑기’가 미국 교과서에 실렸다니..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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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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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존 버거를 떠올리면 늘 따라오는 소설이라 픽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A가 X에게’ 도 험난한 상황 속의 연인 이야기더만,,이 소설 ‘결혼식 가는 길’도 그렇다.
몇년 전 우연히 함께한 남자에게서 에이즈가 옮은 니농.
한동안 모르고 지내다가, 입가의 상처가 낫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다. 그녀를 사랑하는 지노는 상관없다며 청혼한다.

이 소설은, 프랑스여자 니농과 니옹의 아버지 철도 신호수 출신 장, 체코망명자였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엄마 즈데나, 시장에서 타마타를 파는 맹인 초바나코스, 지노의 아버지 페데리코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진행된다. 니농의 상태를 알게된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 모르는 사람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욕을 하지만 니농을 아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심지어, 결혼을 반대하던 페데리코도 말한다. “그 아가씨와 결혼해라. 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한 여인과 결혼하는 거야. 고철이 곧 쓰레기는 아니다, 지노. 그 아가씨랑 결혼해.(p100)”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 강이 바다를 만나는 이탈리아 고리노) 먼길을 떠나는 장과 즈데나는 여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딸을 생각하며 절망에서 일어선다.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HIV감염자도 적절한 치료를 받고 삶을 유지할 수 있지만, 예전엔 글자 그대로 사형선고였다.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젊은 여인의 현재를 위한, 미래를 위한 이야기. 사랑으로, 오롯이 안아주는 사람들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흘러나온다.
절망에 빠져있던 니농도 사랑 안에서 떨쳐 일어선다. 살아남기로.

세상의 모든 편견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사람”을 보는가…



한줌 눈이면 훌륭하지
여름의 열기에 힘들어하는 남자의 입에는
봄바람이면 훌륭하지
항해에 나서려는 선원들에게는
홑겹 이불 하나면 그 무엇보다 훌륭하지
침대에 누운 두 연인에게는. p5

눈앞의 광경은 늘 거기에 있다. 그래서 눈이 피곤한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말과 관련된 것들이 모두 그렇듯) 멀리서 다가온다. p11

제 생각에 인생에서는요, 알게 된 무언가에 대해 의미를 주는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인 것 같아요. 아끼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이요.p126

이야기의 미래는, 소포클레스가 알고 있었듯이, 늘 현재에 있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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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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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바탕으로 한 매들린 밀러의 장편 소설 “키르케”를 읽다. 전작 “아킬레우스의 노래” 에 이어서 읽으면 좋다.
키르케는 그리스 로마 신화속에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가 태풍을 만나서 도착한 아이아이에 섬에 살고 있는 ‘마녀’ 이다. 마녀란 존재로 처음 글자로 표현되는 인물이다.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님프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난 키르케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타서 이 섬에 영원히 유배된 님프. 다른 님프와 다르게 마법을 쓸 줄 안다. 이 소설은 키르케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일, 유배된 후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이어지며 오디세우스를 만나고 그를 떠나보내고, 그의 아들 텔레고노스를 낳으면서 절정에 이른다. 신화에 기초하여,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스토리가 언급된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고 영원한 고통을 겪는 프로메테우스, 미노스의 유명한 발명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미노타우로스, 스킬라 등과 키르케의 형제들-파시파에, 페르세스, 아이에테스-과 얽힌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있다.

정말 재미있다. 오디세우스의 죽음 이후로,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 키르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작가는 충분히 있을 법한 스토리로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끌고 간다.

마녀 키르케라고 하면, 뭔가 무시무시한데, 시종일관 키르케는 사랑을 갈구하고, 다른이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따뜻한 인물(신?)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 책임을 오롯이 진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신들과 다르고, 그 때문에 피해를 입지만, 그 과정에서 키르케는 자신을 찾고,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결말로 이끈다. 열린 결말이지만, 그녀의 결정이 엉뚱하지는 않다. 그녀가 원하는 생을 살았길, 독자는(나는) 원하게 된다.

연달아 매들린 밀러의 신화기반 소설을 읽으며 차기작도 궁금해진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칼리반-톨킨의 골룸이 이에 영감을 받았다고-에 빠져있다는데, 그 책도 꼭 읽고 싶다. (쓰고 있겠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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