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에 연재하는 정재승의 사랑학을 옮겨와 본다. 물론 인간은 동물이다. 사랑도 동물의 방식을 따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동물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천박하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랑의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가 궁금할 따름이다. 왜 우리는 사랑에 그렇게도 감동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생물학적 영역 외에 어떤 문화적인 서사가 끼어들기 때문은 아닐런지.

어떻게 윤은혜외 죄민수는 사랑에 빠지는가.

너는 왜 그 남자를 사랑해?” “그 여자의 어떤 점이 좋아?” 대한민국에선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을 듣기가 쉽지 않다. 우리 학교 ‘사랑학’ 수업 시간에도 사랑에 빠진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요, 그냥 다 좋아요.”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어요.”

말로 못하겠다고? 그건 ‘동물적 이끌림’이야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문화적인 압력도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선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랑을 ‘낮은 수위의 사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절대적인 사랑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댈 수 없어야 한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자체가 그냥 좋은 ‘운명적 사랑’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댈 수 없는 것은 그 사랑이 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물학적 이끌림’ 때문이라는 고백과 다름없다.
한편에선 ‘사랑이 생물학적 이끌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고귀한 사랑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삭막한 사랑관’이라며 비판하지만,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사랑이 시작된다고 해서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진 않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만큼 사랑을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간주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 생물학적 이끌림에 반하는 동성애를 우리가 얼마나 터부시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왜 <커피프린스 1호점>에 열광하는가? 이 드라마야말로 ‘사랑이란 내가 아무리 의식적으로·문화적으로 남자라고 믿어도 몸이 이끄는 대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생물학적 사랑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며 사람들이 여기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에선 “너는 왜 그 남자를 사랑해?”라고 물으면 연인들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쉬지 않고 얘기한다. 사소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으며 한두 가지 이유론 내 사랑을 설명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인터뷰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에겐 닭살 돋는 얘기를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인들이 ‘이유가 너무 많아서’ 아예 말하지 않는 거라고?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나라 연인들과 인터뷰를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유를 대는 순간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할 듯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만 30분 동안 반복한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그럼 그건 ‘동물적인 이끌림’인 거야!
미국에서 수행된 ‘연인들과의 인터뷰’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입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다정다감해서’ ‘유머가 있어서’ ‘사려 깊어서’ ‘잘생겨서’ ‘예쁘고 섹시해서’ 등이다. 이 중 90%가 배우자의 ‘성격’에 관한 묘사였으며 이는 남녀 모두 비슷했다. 연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다.
물론 외모도 중요하다. 남자의 경우는 약 81%, 여자의 경우엔 약 44%가 외모에서도 사랑의 이유를 찾았다(역시 남자들이 더 외모를 따진다!). 지난호에서 지적했듯이, 거짓말 탐지기를 대면 여자의 수치는 44%에서 65%로 올라간다. 여자들에게도 남자의 외모는 중요하다.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미녀의 조건, 어린 나이와 매력적인 얼굴

사회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미모는 ‘스크리닝’ 구실을 한다.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면 제일 먼저 외모로 ‘사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외모가 맘에 안 들면 사귈 가능성이 있는 대상에서 제일 먼저 제외해버린다. 이때 제외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 성격까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위에서 ‘미녀와 야수’ 커플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일까? 명동이나 압구정동에 나가보시라. 다섯에 하나는 ‘여자는 윤은혜요, 남자는 죄민수’ 커플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자주 ‘미녀와 야수’ 커플을 보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여자가 처음엔 외모로 남자를 제외했다가 (같은 학교를 다닌다거나 같은 회사를 다니는 등) 어쩔 수 없이 계속 봐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의 매력적인 성격이나 지적·경제적 능력에 빠지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설문조사 결과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경우가 겨우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첫눈에 반한 사랑이 대세였다면 나오기 힘든 것이 바로 ‘미녀와 야수’ 커플이다.
야수에게 기대되는 것이 매력적인 성격과 경제적 능력이라면, 미녀의 조건은 무엇일까?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녀의 기본 조건은 어린 나이와 매력적인 얼굴, 그리고 몸매다.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성의 나이는 23∼26살. 그래서 남자 중·고등학생들은 옆집 대학생 누나나 교생 선생님에게 열광하며, 대학생들은 또래 이성 친구들과의 미팅에 열중하고, 아저씨들은 제 나이는 잊은 채 채팅방에서 20대 초반 여성을 찾아 헤매는 모양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남자들의 ‘어린 나이 선호’를 여성의 출산 능력과 연결해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수만 명의 남성에게 수천 장의 여성 사진을 보여주며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남자들이 선호하는 여성의 얼굴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귀여운 타입(baby face)과 섹시한 타입(sexy face). 다시 말해 드루 배리모어형과 앤젤리나 졸리형이다. 전자는 눈이 크고 턱과 코가 작으며 어린이를 연상시키는 해맑은 미소의 소유자인 반면, 후자는 입술이 도톰하고 눈썹이 진하고 웃음이 시원한 여성이다. 서민정이나 심은하, 윤은혜 같은 타입이 전자에 속한다면, 김혜수나 한채영 같은 얼굴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몸매. 1986년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케 박사는 희한한 질문들로 남성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얼굴은 예쁘나 몸매가 예쁘지 않은 여성과 몸매는 예쁘나 얼굴이 예쁘지 않은 여성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누굴 택하겠느냐?’ 설문 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은 ‘얼굴은 예쁘지 않더라도 몸매가 예쁜 여성’을 더 선호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예쁜 몸매의 기준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남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날씬한가 혹은 다리가 긴가가 아니라, 적당한 키와 적당한 크기의 가슴, 그리고 황금비율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이었다. 1980년대 심리학자들이 미인의 기준을 찾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온 결과, 남자들이 날씬한 여성을 선호하는 뚜렷한 징후를 찾진 못했지만 키가 너무 작거나 큰 경우에는 뚜렷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도 키는 중요한 매력 포인트라는 얘기다. 여성들은 큰 키의 남자를 선호하는 반면, 남성들은 적당한 키의 여성을 선호했다.
가슴 크기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너무 작거나 큰 가슴보다는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은 여배우들에게선 좀더 큰 가슴을 끊임없이 찾지만, 자신의 배우자에게는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엉덩이 대 허리가 0.7인 여자

‘허리 대 엉덩이 크기 비율’(waist-to-hip ratio)이 작은 여성을 남성들은 선호했다.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상대적으로 큰 여성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그 비율이 0.7 정도 될 때 남자들은 한목소리로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미스 아메리카나 플레이보이지 선정 ‘이달의 버니’들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 0.7 정도 되었으며 그 비율은 지난 6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여성의 S라인을 선호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의 외모 조건을 중시하는 것일까? 왜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외모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다음호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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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리우스님 오래간만에 오셨군요 :)
저도 0.7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아침도 운동하고 왔습니다 하하~ ^^
좋은 자료 감사드려요. 역시 한겨레 21에는 읽을거리가 많다는~

허리우스 2007-08-12 12:01   좋아요 0 | URL
음.. 비율이라고 하시니 꼭 자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 ㅡㅡ;;; 좋은 아침입니다. 아니 점심이군요.

신형주 2011-04-2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즐겁게 읽었습니다. : )
 

한겨레21에 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김소희 기자의 글이다. 레즈비언들의 어려움을 소개하는 글인데 상당히 의외의 지점이고 또 관심을 가질 만한 영역인 듯 싶어서 퍼왔다. 레즈비언은 문제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이성애주의 속에서 다른 폭력을 낳게 된다.

 

 

 

 

 

한겨레21 2007. 7월 26일.

‘아우팅’의 괴로움을 아십니까

사귀던 사람이 이별을 통고받자 스토커로 돌변하거나, 소속된 집단 안에서 폭력·협박을 당했다면? 사람들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군의 사람들에겐 그런 기회가 막혀 있다. 2차, 3차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이하 상담소)가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1년간의 상담사례 1113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성정체성 상담(33%)에 이어 교제 관계나 커뮤니티 안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한 고통(19%)이 많았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정체성을 폭로하는 ‘아우팅’, 아우팅을 매개로 한 범죄 등이 대표적이다. 나랑 헤어지면 너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며 관계를 유지하려 하거나,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이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하는 일이다.

수사 과정에서조차 “여자들끼리…”

동성애자에게 아우팅은 삶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로 ‘사회적 살인’에 해당한다.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은 이 과정에서 ‘복합적인 고통’을 겪는다. 레즈비언 커뮤니티 밖에서 성정체성을 숨기고 지내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취약한 지위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 파생된 갈등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력자나 지지 집단이 부족하다 보니, 폭력을 통해 ‘손쉽게’ 욕구를 해결하는 위험에 노출되거나 피해자가 또 다른 폭력에 기대는 일도 반복된다. 형사 절차를 밟으려면 커밍아웃이 불가피하고, 가족과 소속 집단, 언론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도 한다. 수사 과정에서 욕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아니, 여자들끼리 연애를 해요?” “요즘은 동성애가 유행인가봐, 여자들까지….”
상담소를 찾은 한 내담자는 레즈비언 커플이었다가 깨지고 채무관계에서 다툼이 일었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귄 지 얼마나 됐냐” “왜 사귀었냐” 식의 사건 경위와 관련 없는 질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 결과 신고를 꺼리거나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박은우 상담소 대표는 “폭력 상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벗어나야 하고, ‘사적 해결’은 한계가 있다”면서 “상담소에서는 내담자에게 수사기관 의뢰를 권유하고, 여성 경찰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본인이 원할 경우 사건지원팀이 동행도 한다”고 밝혔다.
성정체성과 관련한 상담 가운데에는 어린 시절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성정체성을 연관짓는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그때 그 일 이후 내가 레즈비언이 된 것 같다”면서 수치심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성애자 여성은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어도 내가 왜 남성을 좋아하나 고민하지 않지만, 레즈비언은 동성애자가 된 ‘원인’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긴 시간을 보낸다. 때론 상담 과정에서 남성 혐오와 자기 혐오를 복합적으로 표출하며 다짜고짜 “내가 레즈비언인 게 맞죠? 레즈비언이 안 될 수 없는 거죠?”라고 확인받고 싶어한다. 가부장적 정서와 이성애주의가 공고한 상황에서 이중의 고민을 떠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상담 방침은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고통 공감과 치유 방법 안내 △레즈비언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이끌림이라는 사실 알리기 △성정체성은 타인이 규정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지시키기 등이다. 자신을 ‘비정상’이라 규정하고 복합적인 고통을 겪던 레즈비언들은 상담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른 ‘자기 긍정’을 하기도 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이 그만큼 깊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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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3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오 마이 섹스> 쓰시는 김소희 기자 글 이잖아요.
제가 왕팬이죠 ㅎㅎ
제 페이퍼에도 이 칼럼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도 있어요
아유 반가워라~
 

독특한 시각이라서 한번 옮겨와보았다. 아프카니스탄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의 성리학을 주목하는 일본 학자의 글이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번창한 이유를 무당이라는 무교에서 찾는 이들이 있다. 유동식과 최준식이 그러하다. 열정적이며 기복신앙적 모습이 무당의 굿행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본학자는 오히려 조선시대 성리학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토대로 작용했다고 본다. 근거 제시는 미약하지만 독특한 시각이다.

 

 

 

 

 

<호사카 유지/세종대교수·일본학〉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00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인 4~5명 중 한 사람은 기독교신도인 셈이다. 나는 한국에 왜 이렇게 기독교신도가 많은지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동양의 나라 중에서 기독교가 한국만큼 성장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의 기독교인구는 100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6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기독교인구는 100만명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신도계 신흥종교가 번창하는 일본에서는 일본식 신들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현재 기독교의 본고장인 서양 각국에서는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한국의 교회는 젊은층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서구권의 교회가 한국 교회를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공산권이 붕괴되기 전에 한국 교회들은 구소련, 중국, 동구권 등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국가에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했었다.

현재도 그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공산권이 붕괴된 현재, 많은 한국 교회의 선교대상국이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이다. 공산권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약 70년으로 붕괴됐듯이 언젠가 이슬람권도 순식간에 기독교 국가가 된다고 믿는 한국 교회가 많다. 북한은 공산국가가 되기 전에는 한국보다 교회의 숫자가 많았을 정도로 기독교가 번창해 있었다. 그러므로 남북을 막론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정신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기독교 발전의 정신적 기반은 역시 역사적인 것, 즉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한 성리학의 영향으로 본다. 성리학의 이기(理氣)론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대한 깊은 이론이고, 심성론이나 예학은 선하고 착한 인간을 만드는 성리학의 방법론이다. 성선설에 입각하여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현시키려고 한 성리학은 한국 땅에 기독교를 정착시키는 역사적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부모에 대한 효심과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효심과 충성심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성리학은 이슬람교와도 통하는 면을 갖고 있다. 제사를 지낼 때 한국인이 조상에게 올리는 큰 절과 이슬람교도가 성지를 향해 행하는 경배의 형태는 매우 비슷하다. 불교에서도 한국인들은 부처님을 향해 정성어린 큰 절을 몇 번이나 올린다. 조상이나 신앙의 대상을 향해 큰 절을 올린다는 점에서 이슬람교와 한국 성리학, 그리고 한국의 불교가 그 신앙심의 표현에 있어 통한다. 게다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라는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신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신이기도 함을 뜻한다. 흔히 말하듯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형제종교인 셈이다. 이슬람교의 성전 ‘코란’에는 성경과 대단히 흡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과 중동국가들의 우호적 관계를 다지기 위해 세계의 종교와 통하는 한국 성리학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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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 연재하고 있는 정재승의 사랑 이야기이다. 과학자가 본 사랑이 되겠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여자들도 남자들의 외모를 상당히 따진다는 것. 특히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고 성공을 이룬 여성들은 더욱 그러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잘 생긴 사람은 연애 상대로는 좋지만 결혼 상대로는 피한다는 것이다. 바람을 피우고 가정 살림에 소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를 대비하여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를 선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는데 그 이유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와 사회적 성공 욕구가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인가. 아무튼 외국의 사례들은 여성들도 남성들이 여자를 택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표현은 유머감각이 있는 남자를 선호한다는 것인데, 유머감각이 남자들의 정신적 능력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음.... 독특했다. 정신적 능력을 중시한다. 여자는 지적인 능력을 가진 남자도 좋아한다.

돈보다 꽃미남 ------  정재승

 

얼마 전 영국에선 남자의 키가 1인치(2.54cm) 클수록 스피드 데이트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이 5%씩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스피드 데이트란 참가비를 낸 많은 수의 남녀가 10분 정도씩 대화를 나누면서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는 서구형 집단 미팅을 말한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연구자들이 남녀 3600명이 참가한 스피드 데이트 84회를 분석한 결과, 남자는 키가 클수록 여성들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참가자가 전체 평균 나이보다 한 살씩 많아질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4%씩 감소한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젊은 남성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남성들에겐 과체중이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더라는 것도 중요한 결과였다.

한 살 많아지면 매력은 4& 감소

이처럼 매력남과 매력녀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사회심리학자들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매력남(혹은 매력녀)의 조건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낭만적 사랑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여성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남성의 무엇일까? 여성들은 그다지 남성의 외모를 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85%가 여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은 60% 정도가 남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설문을 거짓말 탐지기를 설치한 상황에서 하겠다고 일러주면 그 수치가 80% 가까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도 남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해서 설문에서 거짓 대답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의 외모는 단연 키다. 위에서 소개한 연구 결과처럼 키가 크면 소개팅에서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78∼185cm의 남성들이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들 중에는 남성의 얼굴보다 키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매력남의 조건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지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요즘, 그런 경향은 전세계적으로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심리학자 피오나 무어는 18∼35살의 여성 1851명에게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친절함, 유머감각, 관계에 대한 헌신도, 육체적 매력 등 13개 특징을 제시하면서 어떤 속성을 지닌 남성을 선호하는지 물었다. 동시에 여성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도 표기하라고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보다 외모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다고 평가한 여성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이 결과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했던 많은 설문에서 여성들이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꼽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구자인 피오나 무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그것이 장기적 파트너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성 평등이 강화될수록 여성들도 짝을 선택할 때 남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꽃미남’ 현상도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적 자립도나 성공 욕구가 낮은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경제적 부를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좋아

인기가 많다는 것도 남성에게 큰 매력 포인트다. 영국 애버딘대학의 심리학자 벤 존스과 그 동료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호감을 갖는 남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벤 존스 박사팀은 여성들(28명, 평균연령 24살)에게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네 명의 남성 사진을 보여준 뒤, 매력 정도에 따른 ‘평점’을 매기도록 했다. 그 다음 같은 남성들이 다른 여성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는데, 영상 속의 여성들은 세 가지 표정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 지루한 표정, 무표정한 얼굴이 그것. 비디오를 본 뒤에는 여성들의 평가가 달라졌다. 웃는 여성들의 시선을 받았던 남성들에게 선호도가 15%가량 높아졌던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좋아하는, 말하자면 ‘인기남’에게 더욱 큰 호감을 느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그저 잘생긴 외모의 인기남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공중위생학 연구팀은 ‘여성은 결혼 상대로 남성적 외모보다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남자다운’ 인상을 풍기는 남성은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결혼 상대라는 인상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설문을 통해 알아냈다.
연구팀은 미국 남녀 대학생 약 850명을 상대로 컴퓨터로 다양한 외모의 남녀 합성사진을 보여주었다. 설문 결과 여성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턱이 각져서 튼튼하게 보이는 남성 얼굴에 대해 ‘이런 남성은 주로 단기간 교제하기 적합한 상대이며 결혼하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반면 얼굴이 둥글어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입술이 약간 두터운 ‘여성적’ 얼굴의 남성은 결혼 뒤 ‘좋은 아버지’나 ‘좋은 남편’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장기적 배우자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성이 단기적으로 남성을 만날 때는 남성적 외모 같은 유전적 잠재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결혼 등 협력이 중요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육아 능력까지 고려해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완벽한 외모에 사회적 지위까지 높은 남자들이 의외로 신랑감으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센트럴 랭카셔대 연구진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신랑감 자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가짜 소개팅 광고를 냈는데, 이때 참가한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평가를 받은 남자와 보통 남자, 매력 없는 남자 등 세 부류였고, 영국 국립통계청의 직업 분류상 상(기업 이사, 건축가)·중(교사, 여행사 직원)·하(웨이터, 우편집배원)로 구분되는 각종 직업을 내걸었다. 이 광고를 186명의 여성에게 보여주고 장기적인 파트너로 누가 매력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잘생긴 남성은 모든 직업군에서 못생긴 남성보다 선호됐지만,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용모도 뛰어난 남성들은 예상과 달리 가장 가난한 남성들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놀랍게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그룹은 보통의 외모와 수수한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때론 키보다 중요한 유머감각

연구진은 ‘여성이 매력적이면서도 성공한 남성을 피하는 것은 이들이 장차 바람을 피우거나 둘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가족을 위해 그다지 헌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잘난 남자를 피하고, 바람을 피우거나 자신을 떠날 가능성이 적은 남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성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남성의 매력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머감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필립주립대와 캐나다 온타리오 맥마스터대의 공동 연구팀은 <진화와 인간 행동> 최근호에서 여성은 농담을 잘하는 남성을 파트너로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유머감각은 때론 외모나 키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유머감각이 그 사람의 정신적 능력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신호로 파악되기 때문인 것 같다. 늘 유머를 잃지 않으며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발휘할 줄 아는 남성만큼 매력적인 남성도 없다.
요약하자면, 현대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남성은 큰 키에 멋진 외모,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가정적이고 유머감각을 겸비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남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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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몇꼭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재밌는 글이에요.
한겨레 가서 찾아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허리우스 2007-07-2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감사. 서재가 굉장히 섹시함니다 ^^
 

이거 여기 알라딘의 거성이신 로쟈님이 계신데 로쟈님 흉내를 내는 것 같아 민망스럽다. 그래도 나에게 필요한 기사들을 퍼와 도서 목록을 만들어본다. 실현되어야하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독서계획이다. 도킨스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의 리뷰이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김영사·2만5000원


21세기 대명천지는 종교에 관한 한 중세의 암흑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인종청소라는 말을 탄생시킨 보스니아 내전은 종교의 분할선을 따라 원한과 복수의 화염을 피워 올렸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이웃사람들이 다음날 원수가 돼 서로 죽이고 죽임당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한복판 쌍둥이 빌딩이 주저앉았다. 현대판 십자군전쟁이 뒤따랐다. 9·11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이 불바다로 변했고, 이라크가 생지옥으로 변했다. 전쟁은 끝날 줄 모른다. 침략전쟁은 내전으로 뒤엉켜 종파간 골육상쟁이 온나라를 피로 물들였다.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반인간적 악행이다. 종교를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저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어떤 지식인도 건드리기 어려운 껄끄러운 주제에 대해 과감한 발언을 했다. 발언을 한 정도가 아니고 아예 탄핵문을 썼다. 지난해 출간돼 영미권을 강타한 <만들어진 신>(원제 ‘신이라는 망상’)이 과학자의 양심을 걸고 맹신의 폐해를 폭로하는 장문의 고발장이다. 진화생물학의 최고 권위자답게 지은이는 이 고발장에서 종교가 논리적으로든 과학적으로든 성립 불가능한 것임을 입증한다. 글머리에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힌 그는 이 책의 전편에 걸쳐서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이 ‘신이 있다고 믿는 것’보다 왜 더 바람직한지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자신의 우월성을 자랑하려는 차원의 설명은 아니다. 그는 이 책이 특히 미국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광신의 지경에까지 이른 이 나라의 몽매 상황이 21세기의 재앙을 불어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모든 종교를 다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라는 태곳적 부족장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세 종교, 곧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날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기독교가 비판의 주요 대상이 된다. 기독교를 필두로 한 세 종교가 믿는 신은 유일신이고 인격신이며 창조신이다. 수염 달린 할아버지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해 주재한다는 믿음은 합리적 정신의 소유자에겐 ‘망상’으로 치부될 일이지만, 미국에서라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미국은 인류의 과학적 성과인 진화론이 창조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나라다. “현재 미국에서 무신론자의 지위는 50년 전 동성애자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무신론자임을 밝힌 사람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이 나라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이성의 빛으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절박한 문제가 된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기독교 원리 위에 세워진 나라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미국의 국부들은 절대 다수가 종교적 아집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구분하는 세속주의 신봉자들이었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최상의 것은 종교가 없는 세계일 것”이라고 했고,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기독교는 여태껏 인간이 갈고닦은 체계 중 가장 비뚤어진 체계”라고 말했다. “오늘날 종교적 광신주의가 미국에서 마구 날뛰는 모습을 미국의 국부들이 보았다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대에 걸쳐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 집안이 이 미국적 광신주의의 두드러진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무신론자인 미국 시민도 동등한 시민권과 애국심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버지 부시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오. 이곳은 신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됐다. 아들 부시의 광신은 요크셔의 살인마 피터 섯클리프의 광신을 닮았다. “섯클리프는 여자들을 죽이라는 예수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었다고 했다. 아들 부시는 신으로부터 이라크를 침공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한마디 덧붙인다 “딱하게도 신은 그곳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계시는 내려주지 않았다.”

지은이는 기독교의 광신적 행태가 <성서>의 뒷받침을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구약 성서>의 야훼는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다.” 그 신은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는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등장한다. 기독교 광신주의자들의 행태는 거의 모두 이 신을 빼닮았다.

그런데도 신을 믿어야 하는가? 많은 신앙인들이 종교가 있기 때문에, 신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도덕이 있고 정의가 설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선하게 살려고 애쓰겠는가?’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지은이는 이런 질문이야말로 인간을 저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거대한 감시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니다.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을 오히려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도 한다는 점을 지은이는 블레즈 파스칼을 인용해 이야기한다.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만약 십계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계명을 충실히 지킨다면, 그런 기독교인은 탈레반을 비난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 있던 높이 45미터의 바미얀 불상들을 폭파시킨 탈레반의 어처구니없는 문화 파괴 행위를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강직한 신앙심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지은이는 무신론도 얼마든지 도덕과 윤리와 양심을 세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신이 있다는 확신 속에서 그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수한 만행을 생각하면, 그의 주장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이정도는 얼른 읽어주어야 한다. ㅠㅠ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 논쟁 불붙인 지식계 대중스타



리처드 도킨스는 활동 중인 생물학자 가운데 최고의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6년 펴낸 <이기적 유전자>로 과학계를 넘어 지식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생존 기계다. 곧 우리는 로봇 운반자들이다.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자동인형으로 묘사한 이 책은 그에게 대중적 명성을 안겨줌과 동시에 그를 엄청난 오해와 논란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었다. 인간을 유전자 단위의 비참한 수준으로 축소시키고 인간의 모든 고귀한 자질을 이기주의로 환원한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그러나 도킨스는 자신의 견해을 굽히지 않았다. 유전자는 자기를 보존하고 번식하는 이기적 목적만 지니고 있지만, 바로 그 이기적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려는 과정에서 인간의 모든 이타적 덕성들이 나타난다고 그는 설명했다. 유전자 차원의 이기주의야말로 인류적 차원의 이타주의의 원천임을 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5년 뒤 쓴 <확장된 표현형>에서 그는 유전자를 생물학을 넘어 문화의 차원으로 확장했다. ‘밈’이라고 이름붙인 ‘문화적 유전자’가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자기 진화를 거듭해 모든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의 논증이었다.

다시 5년 뒤 쓴 <눈 먼 시계공>은 이번에 나온 <만들어진 신>의 전편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세계를 설계하고 창조한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우주가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복잡한 지적 생명체까지 탄생시킬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생명을 설계한 ‘시계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찰스 다윈이 말했던 ‘자연선택’임을 그는 입증했다. 자연의 시계공은 아무런 목적도 욕망도 없이 스스로 설계하고 작동하는 ‘눈 먼 시계공’이다.

그가 지식계의 대중스타가 된 데는 1급 에세이스트의 필력도 한몫을 했다. 그의 문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에 동료 과학자들이 쓴 글을 모은 <리처드 도킨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뛰어난 문체에 대해 이 책은 증언한다. “도킨스의 문장은 운율이 아주 잘 맞았고, 사용된 용어도 아주 정확했고, 유익한 논증으로서만이 아니라 세련된 문학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조리 있게 표현돼 있었다.” 통상의 스타일리스트들이 문체에 신경쓰다 논증의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달리, 도킨스는 논리적 증명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문장을 살려냈고, 그 살아 있는 문장이 논증력을 오히려 키웠다. <만들어진 신>에서도 그가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려고 얼마나 문장을 갈고닦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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