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시각이라서 한번 옮겨와보았다. 아프카니스탄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의 성리학을 주목하는 일본 학자의 글이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번창한 이유를 무당이라는 무교에서 찾는 이들이 있다. 유동식과 최준식이 그러하다. 열정적이며 기복신앙적 모습이 무당의 굿행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본학자는 오히려 조선시대 성리학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토대로 작용했다고 본다. 근거 제시는 미약하지만 독특한 시각이다.




<호사카 유지/세종대교수·일본학〉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00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인 4~5명 중 한 사람은 기독교신도인 셈이다. 나는 한국에 왜 이렇게 기독교신도가 많은지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동양의 나라 중에서 기독교가 한국만큼 성장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의 기독교인구는 100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6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기독교인구는 100만명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신도계 신흥종교가 번창하는 일본에서는 일본식 신들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현재 기독교의 본고장인 서양 각국에서는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한국의 교회는 젊은층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서구권의 교회가 한국 교회를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공산권이 붕괴되기 전에 한국 교회들은 구소련, 중국, 동구권 등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국가에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했었다.
현재도 그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공산권이 붕괴된 현재, 많은 한국 교회의 선교대상국이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이다. 공산권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약 70년으로 붕괴됐듯이 언젠가 이슬람권도 순식간에 기독교 국가가 된다고 믿는 한국 교회가 많다. 북한은 공산국가가 되기 전에는 한국보다 교회의 숫자가 많았을 정도로 기독교가 번창해 있었다. 그러므로 남북을 막론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정신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기독교 발전의 정신적 기반은 역시 역사적인 것, 즉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한 성리학의 영향으로 본다. 성리학의 이기(理氣)론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대한 깊은 이론이고, 심성론이나 예학은 선하고 착한 인간을 만드는 성리학의 방법론이다. 성선설에 입각하여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현시키려고 한 성리학은 한국 땅에 기독교를 정착시키는 역사적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부모에 대한 효심과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효심과 충성심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성리학은 이슬람교와도 통하는 면을 갖고 있다. 제사를 지낼 때 한국인이 조상에게 올리는 큰 절과 이슬람교도가 성지를 향해 행하는 경배의 형태는 매우 비슷하다. 불교에서도 한국인들은 부처님을 향해 정성어린 큰 절을 몇 번이나 올린다. 조상이나 신앙의 대상을 향해 큰 절을 올린다는 점에서 이슬람교와 한국 성리학, 그리고 한국의 불교가 그 신앙심의 표현에 있어 통한다. 게다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라는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신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신이기도 함을 뜻한다. 흔히 말하듯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형제종교인 셈이다. 이슬람교의 성전 ‘코란’에는 성경과 대단히 흡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과 중동국가들의 우호적 관계를 다지기 위해 세계의 종교와 통하는 한국 성리학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