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쇳말 ② 증오…당선 때부터 따라붙은 정치·사법·언론 권력의 무시 그리고 퇴임 뒤의 보복,
서거 이후 막가파식 대응은 분노 점증시켜

“너무 분하다. 주위에서도 노무현을 끔찍이 싫어하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분노하고 있다.” 82학번인 서울의 한 종합병원 부과장급 교수는 기자에게 이렇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고통이 너무 크다”는 노무현의 유서 내용이 발표되던 즈음이었다. 5월23일 낮 2시께였다.

“이명박은 어떻게 할 지, 두 눈 뜨고 끝까지 지켜보겠다.” 비슷한 시간 90학번인 대기업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옆에 있던, 현직 교사인 그의 부인은 “비주류들의 상징이 결국 주류에게 짓밟혔다. 우리가 끝내 지켜주지 못한 거지”라고 말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남편은, 방송에서 봉하마을에 돌아온 노무현이 “야~ 기분 좋다”고 외치는 장면을 보자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 증오와 무시를 바탕으로 한 현실 정치세력과 사법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의 ‘노무현 죽이기’는 결국 그의 죽음으로 귀결했다. 4월30일 검찰에 출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현 정권의 ‘홍운탁월’(烘雲托月)



지방 출신. 빈농 아들. 고졸. 인권변호사. 재야정치인. 만년 야당. 그 총합이 노무현이다. 대한민국 주류는 한번도 그런 비주류가 최고의 권력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임 중은 물론, 퇴임 이후에도 집권여당과 보수언론으로 상징되는 주류들은 그를 조롱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사건이 터진 뒤에는 더 노골화했다. 검찰은 보수언론을 통해 그의 피의 사실을 매일 생중계하듯 공표했다. 어느 날은 부인 권양숙씨를 서울이 아닌 부산지방검찰청으로 불러 형식적으로 ‘예우’했다고 하다가, 어느 날은 ‘재소환’하겠다고 을렀다. 전직 대통령도 필요하면 두번 세번 부를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던 1201만4277표의 무게를 잊고 있었다(2002년 당시에는 투표권이 없었던 19살 미만의 지지자들은 제외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시당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욕당할 때 그들에게 전해진 불쾌감도 쌓여갔다. 그의 죽음 앞에 수많은 분노와 수많은 눈물이 흩날리는 이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증오와 보복’의 시스템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교체와 함께 과거 정권을 심판하고 청산하는 과정이 반복됐다”며 “그 결과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비극적 상황까지 빚었다”고 지적했다. 현 정권이 전 정권을 청산하는 이유는 뭘까.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는 동양화의 ‘홍운탁월’(烘雲托月)을 이야기했다. 동그랗게 여백을 남겨 놓고 구름을 그려 달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구름을 그려 달을 드러낸다. 최 변호사는 “전임정권의 부도덕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들을 차별화해 온 것이 그간의 정치과정의 반복이었다”며 “이번에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주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와 부정을 드러냄으로써 자신들과 차별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글자 그대로 ‘노무현 죽이기’였다.

보수언론은 재임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늘 ‘무능력과 증오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노무현 죽이기>(개마고원 펴냄)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초기의 상황이 잘 정리돼 있다. 책에 인용된 <문화일보> 2003년 6월20일치 칼럼이다. “대통령 선거 결과 대한민국은 하향평준화되었다. 월드컵 4강은 아무나 우승할 수 있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키웠다. 자기 수준의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자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위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선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과 그에게 투표한 이들을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로’ 동시에 비하했다. <조선일보> 2003년 6월23일 시론은 이렇게 말한다. “시기심이란 자기의 이득을 감소시키지 않는 타인의 행복이나 그들이 소유한 사회적 선(善)을 적대적으로 보는 심리 상태다. 이는 증오를 어머니로 해서 드러난다. 문제는 대통령 선거라는 대규모 투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런 명백한 악행인 시기심을 ‘도덕적인 의분’으로 포장한다는데 있다.” 이를 준거로 하면, 노 전 대통령은 주류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한 시기심에 가득한 존재다. 보수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강남-삼성-서울대’로 상징되는 한국의 주류들에 대한 증오심을 현실정치에 이용한다는 프레임을 만들고자 했다. 강준만 교수는 “이들의 주장에 흘러넘치는 시기와 복수의 수사학은 이 땅의 수구 기득권 세력이 노무현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의 강도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고 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퇴임 이후 자전거에 매단 수레에 손녀를 태우고 마을 주변을 달리고 있다. 그는 서민적인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나타나기를 즐겼다.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제공
 
 
 

대검찰청 중수부를 강성 라인으로 바꿔



이는 재임 기간 내내 지속됐다. 신병률 경성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조선일보>의 조선만평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만들어 온 프레임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무자격’ 일 것”이라며 “능력과 성격 등 모든 부분을 통틀어 ‘무능한 이미지’가 관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조선일보>의 ‘조선만평’이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2003년 2월25일∼2008년 2월24일)에 그를 어떤 소재와 방식으로 풍자했는지 조사해 5월16일 ‘2009년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독한’ 수사도 ‘증오감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검찰은 지난 3월 인사에서 박연차 전 회장을 수사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강성 라인으로 바꿨다. 새로 들어온 이인규 중수부장과 우병우 중수 1과장은 ‘강성’과 ‘독종’ 이미지로 유명했다. 이들은 박 전 회장을 강하게 압박해 원하는 결과를 차례로 얻어냈다.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이광재 의원 등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 그리고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균형추를 맞출 현 정권의 실세들의 혐의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물론 부인과 아들, 딸까지 ‘비리의 온상’으로 묘사됐다. 노무현은 마지막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썼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절망에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죽음으로 그 고통의 고리를 끊고자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생활 내내 검찰과 긴장을 유지했다. 그는 변호사 신분임에도 1987년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눈에 검찰은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태도를 180도 바꿀 수 있는 존재’로 보였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판사 출신의 강금실 법무장관 카드를 내세워 검찰 개혁을 주문했다.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하자 노무현은 그 유명한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다. 정면돌파였다.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남겼다.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은 사표를 냈다. 노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등을 통해 검찰권 제한을 시도했다. 위협을 느낀 대검 중수부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칼 끝을 겨눴다.

임기 중반에도 ‘대결’은 이어졌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사건으로 후임 김종빈 검찰총장이 물러 났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검찰 조직을 흔들려고 했다’는 거부감과 반감이 조직적으로 커져갔다. 검사 출신의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의 원인을 이런 ‘원한’ 탓으로 돌렸다.



 
 


» 지난 2004년 제16대 국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하자, 김근태 당시 의원(사진 왼쪽)과 정동영 당시 의원 등이 서로 껴안으며 서럽게 울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후폭풍’ 주 대상은 검찰과 보수언론


그럼 이명박 정부는 왜 검찰에게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도록 했을까? 정치권에서는 ‘촛불정국’이 더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태도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쇠고기 협상에 대해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가 안 하고 간 것을 설거지 한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핵심 당직자는 “촛불 정국을 이끈 세력들을 검토 과정에서 이른바 ‘친노 세력들’의 그 한축을 이루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며 “청와대로서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는 민주당보다 한 줌밖에 안되지만 차돌처럼 결집된 친노 세력이 먼저 정리가 필요한 대상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당직자는 “내년에 있는 지방선거에서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들이 영남에 등장하는 것을 막자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오와 무시를 바탕으로 한 현실 정치권력과 사법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의 ‘노무현 죽이기’는 결국 그의 죽음으로 귀결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결과다. 후폭풍이다. 정치 컨설팅 업체 나우리서치 이재경 대표는 “앞으로의 ‘후폭풍’은 거의 블랙홀 수준이 될 수도 있다”며 “주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했던 검찰과 그를 부도덕의 극치로 몰아간 보수언론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했다.

죽음은 한국 정치의 거대한 돌발 변수였다. 강준만 교수는 신작 <현대정치의 겉과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심정민주주의’라고 했다. 강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동력은 바로 심정이 폭발한 시위였다. 4·19혁명에서부터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는 모두 시위의 결과였다. 한국인에게 차분한 대화와 토론의 마당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런 경험도 없었다.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이라는 (열사의) 이름이 말해주듯 결정적 계기는 늘 개인의 죽음이었다. 이게 바로 ‘심정민주주의’의 불가사의한 대목이다. ”

그 심정을 폭발시키는 것이 ‘욱’ 하는 감정이다. 강 교수는 이를 ‘욱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4·19 혁명이 3·15 부정선거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마산에서 ‘부정 선거 다시 하라’, ‘발표경관 처단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데도 서울은 3·15이후 34일 동안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4월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체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욱’하는 대규모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가 없는 6월 항쟁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전임 대통령의 ‘안전한 귀가’를 보장해야


2004년 3월12일 대통령 탄핵과 그 직후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의 압승도 ‘욱’하는 기질의 폭발이 불러온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접한 이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이러다 민란 난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스스로 폭발 직전의 민심을 자각한 것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명박 정부가 모든 부담을 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 “MB(이명박 대통령)는 이번 6월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 처리를 집권 후반기를 준비하는 일종의 ‘화룡점정’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의 상황으로는 이를 강행하는 것은 ‘화약을 안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형국’이 됐다”며 “집권 후반기 전략을 사실상 다시 짜야할 상황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도 “이명박 대통령은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상실한 국정장악력을 회복해 왔는데. 이제는 사정 드라이브를 사실상 중단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며 “대통령이 검찰과 세무권력을 현실정치에 동원한 것이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남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청와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다른 당직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은 청와대의 민정과 정무 기능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많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차제에 청와대와 권력 주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에서는 ‘검찰 개혁’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당 안팎에서는 김영삼 정부 초기에 시도했던 ‘중수부 해체론’을 다시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검에도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중수부가 있을 이유가 없다며 이를 해체하려다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처벌을 위해 중수부를 동원해야 했기 때문에 존치시킨 바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비극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증오의 정치’를 중단시켜야 한다. 임혁백 교수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전임 대통령의 ‘안전한 귀가’를 보장해야 한다”며 “한국이 아프리카도 아니고 ‘죽음의 민주주의’ 패턴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안전한 귀가가 보장돼야 권력을 쉽게 내놓게 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좀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게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부터 그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후폭풍의 크기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열사의 죽음은 독재정권의 구조적인 억압의 결과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라는 정치적 구호가 나오기 쉬웠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어떤 정치적 구호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폭풍이 불 지, 그 정도가 얼마일 지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조롱하는 일부 보수세력의 태도와, ‘촛불을 막아야 한다’며 분향소 설치와 분향까지 막는 정부의 막가파식 대응이 분노를 점증시키고 있는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무덤에도 침을 뱉다


스스로 대한민국 주류를 자처하는 보수 논객 조갑제씨는 서거 당일 ‘조갑제닷컴’에 “대통령과 같은 지고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그냥 죽어도 서거라고 할 만하다”며 “그러나 현직에서 물러난 자가 검찰에 출두하여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고발 당하기 직전에 자살한 것을 두고 ‘서거’라고 하면 말이 안된다”고 적었다. 조갑제식 표현을 따르자면, 그들은 노무현의 ‘무덤에 침을 뱉’었다. 여전히 그들의 눈에는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죽음에 분노하는 ‘비주류’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비주류들의 상당수는 한국 사회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은 잊고 있다. 그들이 무시하고 무지한 만큼 비주류의 증오는 쌓인다. 그 증오를 다시 대물림할 텐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이순혁 기자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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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으로 한겨레21의 기사를 옮겨 온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열쇳말 ① 도덕… 비도덕적 인간에게는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도덕적 인간에게는 끝없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역설

 노무현. ‘도덕성’과 ‘정치개혁’을 언급하지 않고 그 이름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이름은 한국 정치사에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식 정치개혁’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했던 것이 바로 도덕성이었다.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세운 것도 도덕성이고, 숱한 정치적 위기에서 그를 구해낸 힘도 도덕성에서 비롯됐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했다. ‘노무현식 정치개혁’을 뒷받침했던 것은 그의 도덕성이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노 전 대통령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역설적으로, 검찰과 언론 그리고 여권이 지난 6개월간 집요하게 그를 공격한 부분도 역시 도덕성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600만 달러 수수 의혹이 불거졌고, 그는 이 가운데 100만 달러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구차하지만 그래도 진실이니 어쩔 수 없다며 “나는 몰랐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세상은 억대 명품 시계 수수 의혹과 자녀들의 미국 저택 매입 문제를 추가로 들춰냈다.


검찰 수사로 내려진 ‘도덕적 파산선고’


사건의 핵심인 600만 달러 수수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지 여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이대로 수사를 종결한 만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앞으로도 영영 묻힐 가능성이 높다. 대신 지난 6개월간의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그는 ‘도덕적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덕성을 강조한 정치인이 스스로 도덕주의의 덫에 걸려 몰락했다’는 것이 대다수 언론의 시각이다. 이런 식의 이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노 전 대통령 본인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이전부터 차원 높은 도덕성을 강조했다. 따지고 보면 2002년 대선에서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도 보수진영을 대표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었다. 대통령이 된 뒤인 2003년 10월 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그룹에서 1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내가 모른다고 할 수 없다”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기준을 한껏 높여놨기 때문에 스스로 도덕주의의 덫에 걸린 측면이 있다”며 “재임 기간에도 정치개혁이나 깨끗한 정치를 강조했고, 이를 중요한 업적으로 내세웠던 터라 이번에 비리 의혹에 연루됐을 때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도덕성을 강조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보면, 깨끗한 정치에 대한 열망을 담은 도덕주의 가치와 담론은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이 처음 제시했다. 비록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한 구호에 불과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가 발전을 위해 부패한 기성 정치인, 정쟁을 일삼는 정치판을 청산하겠다는 그럴듯한 목표를 내세웠다. 1980년대 초 ‘사회악 일소’를 내세웠던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와 도덕은 서로 다른 영역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등 권위주의 체제는 정부와 정치 지도자가 부패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구조였지만, 정치인과 정치 관련 부패 사건이 언론에 등장하고 검찰에 기소되는 빈도는 오히려 김대중 정부 후기로 오며 증가했다. 최장집 교수는 “권위주의 정부에 비해 민주주의 정부에서 부패가 더 창궐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증거도 없다”며 “(이런 사건이) 많아진 것은 언론의 보도와 검찰 기소의 빈도이며 부패 문제를 이슈로 한 야당의 정부 비판과 공격의 빈도”라고 지적했다. 즉, 권위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감춰져있던 부패 문제가 더 쉽게 드러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 주변의 부패 문제와 싸웠다. 조·중·동 등 수구언론과 한나라당은 특검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괴롭혔다. 참여정부 초기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과 관련해 썬앤문그룹 95억원 제공 의혹, 유전 개발 의혹, 행담도 개발 의혹, JU 로비 의혹, 바다이야기 연루 의혹 등 수많은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 대부분은 사안이 경미하거나 무혐의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법권력과 언론 영역 전반에 보수 헤게모니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은 이런 공격을 가하는 보수 독점구조에 대항하기보다 역으로 도덕주의 담론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이 지점에서 비롯됐다. 노 전 대통령 본인은 반부패와 깨끗한 정치 등의 모토를 높이 내걸고 정치개혁과 도덕주의적 이상을 동시에 달성하려 했지만, 정치개혁의 문제는 도덕주의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3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광주 경선에서 정치개혁 바람을 일으키며 중앙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도덕성은 조·중·동 등 수구언론의 집중 표적이 됐다. 사진 한겨레 자료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도덕주의적 관점으로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태도에 문제를 지적했다. 쉽게 말해 정치와 도덕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높은 도덕적 가치의 잣대로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도덕주의 담론은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노 전 대통령도 부패 문제를 과거보다 더 (부패)했냐, 덜 (부패)했냐 하는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 책임정치와 참여의 확대 등을 통해 정치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 때문에 민주주의나 정치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아직 부족해 부패가 유지되고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부패 담론의 ‘남발’은 자칫 정치 자체를 부패한 것으로, 정치인을 부패 집단으로 덧칠하는 효과가 있다. ‘정치는 썩은 것’이라는 덧칠은 당연히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부채질한다. 역시 조·중·동이 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를 낳을 수밖에 없다.


‘부패담론’이 반대파 절멸 수단으로



정치에 도덕주의를 ‘과도하게’ 개입시키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국내외 역사를 보면 도덕성 관련 의혹은 권력을 가진 쪽이 상대 진영을 절멸시키거나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가 많았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민주당은 워터게이트나 이란 콘트라 사건 등을 통해 대통령을 공격했다. 공화당 역시 자신들이 의회를 장악했을 때 화이트워터, 르윈스키 사건으로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언론의 폭로-검찰 수사-정치적 상처’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의 ‘언론-검찰-정치권’ 관계와 다르지 않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에서 “정치와 관련된 부패 문제의 핵심은 국가와 사적 영역 사이의 ‘후원’과 ‘정치적 지지’가 교환되는 관계의 해소(즉 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권의 ‘부패담론’은 막강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보수 영역으로부터 ‘반대파 절멸’의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검찰에 세 차례 구속됐지만 세 번 모두 무죄를 받은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정치인이 도덕성이란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보는 계기로 삼아야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적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논란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도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공인이기 때문에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과정을 보면 정권 차원의 보복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정상호 한양대 교수(제3섹터연구소)는 아예 정치적으로 독립된 수사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것처럼 299명 국회의원을 각각 6개월씩 샅샅이 조사해보면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정치적 보복 수사나 검찰 수사의 편파성 시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에서 독립된 수사기구가 필요하다.”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시도했던 정치개혁의 결과도 설명돼야 할 부분이다. 특히 부패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이유로 선거운동의 기간과 방법에서 대중과의 접촉면은 개혁을 할 때마다 계속 줄었다. 정치자금법은 최근 20여 년간 무려 여덟 차례 이상이나 개정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부패 문제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 정치 현실에서 주요 대선후보나 당선자에게 기업이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거의 일상화돼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예를 들어 2004년 개정된 정치관계법을 보면 후원회 운영과 후원금 모금은 물론 선거운동 방법까지 규제하고 있다”며 “문제가 있으니까 접촉 자체를 막아버리자는 것인데, 정치를 너무 이상적이고 규범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치인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역할은 팽창, 정당은 축소


결과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가 정치권에 들이댄 도덕주의 프레임의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다. 최장집 교수는 “정치 경쟁이 더욱 원색적이고 저차원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반면, 사회 저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당의 역할은 줄어드는 현상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투표자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성’을 갖지 않는 기구들, 즉 검찰이나 사적 영역에서의 언론이 점차 정치의 중심 행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이들은 “권력을 이용해 기업인들로부터 수천억원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버젓이 살아있는데 이들보다 훨씬 도덕적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죽음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워했다.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은 5월23일 늦은 밤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비도덕적 정치인에게는 도덕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도덕의 잣대를 높여놓은 도덕적 인간에게는 끝없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냐”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도덕주의의 역설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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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한스 요아스 Hans Joas

1948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같은 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막스 베버 연구소(MWK) 소장과 미국 시카고대 교수를 겸하고 있다. 미국 뉴욕 뉴스쿨(NSSR)의 테오도어-호이스-교수, 스웨덴 고등사회과학원(SCASSS)의 에른스트-카시러-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사회학회(ISA) 부회장을 맡고 있다. 프래그머티즘과 해석학, 비판사회학의 다양한 흐름들을 결합하는 사상과 학문 세계를 발전시켜 왔다. 저서로 <행위의 창조성>, <가치의 생성>, <전쟁과 근대>, <사회이론>, <전쟁의 억압> 등 10여 권을 출간했고, 이 가운데 <행위의 창조성>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사회 규칙과 규범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경우 행위자들은 새로운 행위습성과 관계 맺는 방식을 세우기 위해 분투하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행위의 창조성은 최고조에 달한다.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자로 역사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 한스 요아스
 

한스 요아스는 사회 정의와 보편적 인권, 평화와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구해온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는 클라우스 오페, 악셀 호네트 등 비판적 학자들과 함께 학문 활동을 해왔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진보 정당, 시민사회의 흐름들에 관계하면서 사회 현실에 참여해왔다.

요아스의 학문 세계는 서구의 다양한 지적·이념적 전통들을 독특하게 결합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평등과 정의라는 사회주의적 가치와 그에 상응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흐름들, 그리고 인간의 삶의 체험과 해석으로부터 생성되는 의미 세계를 이해하려는 해석학적 전통을 진지하게 수용했다. 또한 근대 독일의 정신과학과 역사학에서 발전된 역사주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소박한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사회이론을 역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발전 과정 전체를 관통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듀이·미드·제임스·퍼스 등으로 대표되는 프래그머티즘의 전통이다. 프래그머티즘은 인간 행위의 내적 복잡성과 역동적 과정을 규명하는 것을 철학과 사회과학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여기서 모든 인간은 사회구조적 환경과 문화체계 안에 놓인 존재로서, 그러나 그 자신의 지성을 통해 주어진 상황과 창조적으로 대결하는 행위자로 인식된다. 요아스는 이런 프래그머티즘의 정신이야말로 민주적 이념을 단지 정치체제의 원리로서가 아니라 철학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다고 본다.  

 

 

 

 

1970~80년대 요아스는 호네트 등과 함께 프래그머티즘,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 역사적 인간학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사회학적 행위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호네트가 헤겔 철학을 미드의 사회심리학과 결합해 인정이론을 체계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요아스는 듀이·미드의 프래그머티즘 행위이론에 기초해 마르크스주의와 생철학, 현상학의 다양한 현대적 흐름들을 결합한 ‘행위의 창조성’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은 도구적 합리성에 갇혀 있는 합리적 선택 이론이나, 인간 행위를 내면화된 사회규범의 산물로 이해하는 규범주의적 관점, 구조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인간의 의식과 행태를 결정한다고 보는 구조결정론 등이 포착할 수 없는 인간 행위의 역동성을 규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과 집단의 행위양식이 습관화(habitualization)되고, 특정 국면에서 기존의 행위 습성이 붕괴되며, 새로운 행위습성이 재건(reconstruction)되는 과정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법·제도·상징 등의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 규칙과 규범은 오직 구체적 상황 속에서 행위자들의 행위습성으로 실현되고 있는 만큼만 현실적이다. 그것이 행위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경우 기존의 행위습성은 붕괴되고, 행위자들은 새로운 행위습성과 관계 맺는 방식을 재건하기 위해 분투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행위의 창조성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하지만 옛것이 붕괴된 자리에 창조되는 것은 사회개혁일 수도 있고, 혁명이나 파시즘일 수도 있다. 따라서 창조성은 동시에 무거운 실천적 책임의식을 요구한다는 게 요아스의 주장이다.

행위의 창조성 이론은 거시적 수준에서 이른바 ‘구성이론’(constitution theories)의 관점으로 이어졌다. 이것의 핵심 주장은 사회적 규칙과 제도의 존속·변형·붕괴·창조를 철저하게 행위자들의 행위와 그들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아스의 구성이론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와 알랭 투렌, 앤서니 기든스, 랜들 콜린스 등의 사회이론과 많은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거시 사회이론의 또하나의 핵심 개념은 ‘불확정성’(contingency)이다. 이 개념에는 사회변동에 대한 요아스의 비목적론적 이론이 응축돼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역사의 전개는 사회를 구성하는 부분 요소들 각각의 고유한 동학과 그들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현대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차원들(자본주의·국민국가·국가폭력·민주주의·민족주의·문화다원주의 등)은 각각의 제도적 경로의존성과 변동의 다이내믹을 갖는데, 역사와 사회변동은 이들간의 상호작용과 결합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정성은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일체의 믿음을 배신한다. 따라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진보의 필연성을 입증하고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자로서 역사과정에 개입하는 것, 이를 통해 불확정적 역사 운행의 방향키를 돌리는 데 참여하는 일이다.

이런 실천적이고 행위중심적인 사회이론은 요아스의 역사적 문제의식과 분리될 수 없다. 요아스는 2차 대전이 종식된 직후에 태어났지만, 그가 겪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광기, 나치 체제의 만행은 평생의 사유세계에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전쟁과 파시즘이 단지 일부 악마적 집단에 의해 자행된 예외적 사건, 평화로운 현대사를 잠시 궤도 이탈한 일시적 막간극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현재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나의 부모 형제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왜 나치가, 파시스트가 되었는가. 왜 그들은 독재자를 지지하고, ‘빨갱이’를 테러하고, 홀로코스트를 묵인했는가.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았고, 그 흔적은 어떻게 또다른 테러와 전쟁을 불러왔는가. 무엇이 이 비극의 재현을 막을 수 있는가. 사회 정의와 인권, 평화와 민주주의가 생명 없는 문자와 관념이 아니라, 사람들의 박동하는 심장 속에 살아 있는 신념과 가치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런 질문들은 요아스의 삶과 사유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수세기에 걸친 현대의 서구 사상과 사회이론에서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근대의 폭력을 체계적으로 외면해온 역사였다. 현대 사상과 사회과학의 역사는 이런 문제들과 의식적으로 대면하는 것을 억압하고, 그것을 어떤 일탈적이고 병리적이며, 악마적 현상으로 기이하게 만듦으로써 사유의 주변부로 추방해왔다. 하지만 요아스는 집단적·국가적 폭력이 모더니티의 중핵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경찰폭력과 테러, 파시즘, 독재, 전쟁 같은 폭력은 범죄학이나 군사사회학이 다루는 특수 현상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제도와 문화, 일상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요소의 하나라는 얘기다.

역사의 불확정성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자라면, 그와 같은 폭력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인권과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결코 배제해선 안 된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믿고 열망하면서 역사에 대한 멜리오리즘(meliorism·세계개선론)적 개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요아스는 말한다.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 교수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한스 요아스의 지도 아래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사회학적 권력론과 폭력론, 프래그머티즘과 해석학적 방법론, 정치담론과 이데올로기, 사회운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시민>, <상징에서 동원으로>(공저)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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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기업독재·시장전체주의 넘기 위한 대안 찾아야

김상봉 선생님

가정의 달을 맞아 평안하셨는지요?

가족이라는 1차적 관계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 경제위기의 순간 더욱 절감하는 시점입니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 개별 구성원 모두에게 고루 적용되어야 할 공통의 집합가치 체계로서의 국가의 역할이 실종되면서, 개체적 존재의 최소 집합단위인 가족의 경제적 역할이 더욱 막중해지는 한국 현실입니다.

공화국과 경제는 불가분관계…구성원의 삶이 국가본질 좌우




‘경제는 시장에 맡기라’는 주장은 ‘시장지배자인 기업에 맡겨라’ ‘국가는 손을 떼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주장에 따라 국가가 기본 역할을 포기하면 시장의 지배자는 공동체 전체의 지배자가 되고, 시장의 불평등은 공화국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지난 3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영국 런던에서 시위대가 빈곤·실업대책 수립, 기후변화 대응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 |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대담주제인 ‘경제와 공화국의 관계’를 말씀 나누려니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패배와 경쟁탈락, 그리고 그로 인한 궁핍은 인간적·가족적·사회적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상황에 도달해 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는 이제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돈유일주의, 경제지상주의, 금전만능사회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결혼, 출산, 교육, 부부관계와 이혼, 질병치료, 노후대비와 같은 1차적 인간문제가 가장 먼저 포함됩니다. 소수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과 자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만인 불안시대’ ‘만인 불안상황’인 셈입니다.

경제와 공화국에 대한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저희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근대국가를 포함한 공화국의 본질은 체제의 경제문제 접근과 분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즉 공화국과 경제문제는 분리 불가능하며, 공화국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고, 어떤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체제 및 구성원들의 삶의 성격과 안정성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공화국의 ‘구체적 실체’를 말합니다. 예컨대 한국에서 강부자 정부, 경제정책 기조, 중심 수혜 및 저항계층이 연쇄고리를 갖는 건 명백한 근거가 있는 것이지요. 근대 이래 좌우 경제학의 고전들의 근본주제가 ‘정치경제’ ‘정치경제학’이었던 이유는 정치와 경제, 공화국과 경제문제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며, 구성원들의 삶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국가의 본질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고래로 통치계급 재산의 과다 여부를 체제분류 기준의 하나로 삼았던 연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와 국가의 불가분성을 명확하게 인식해, 과두정치가 빈민정치(ochlocracy)보다 더 위험하며, 중간계급으로 구성되는 정치체제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그는 국가의 어느 일부분이 불균형하게 팽창하면 혁명이 발생한다고 했죠. 중세의 교회, 군부독재의 군대, 사회주의 국가 공산당의 불균형한 과대팽창과 그로 인한 혁명과 체제붕괴를 볼 때 이는 균형·중용·중간계급을 강조하는 그의 혜안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수량적 평등이나 비례적 평등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에게는 곧 정의의 문제로 그가 말한 ‘분배적 정의’로 연결됩니다. 국가의 분배역할을 통한 불평등의 극복을 정의로 보았던 것이지요.

선생님. 지난번 한국에서의 민주공화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 헌법연원이 시장경제체제가 아니라 균등사회 건설이었음을 상세히 말씀드린 바 있었습니다. 이러한 평등·형평·공화의 개념은 좌우를 넘어 당시 모든 정치세력과 헌법초안들의 공통 합의였다는 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김구의 건국정신과 노선을 존경하는 세력조차 오늘날 그들의 평등, 분배, 국유·공유 주장과 정신은 전면 거부하지요.

재산분배 역할 상실한 한국, 공공지출·불평등 개선 최악

기실 한국에서 국가의 공적 역할을 통한 형평과 균등사회 사상은, 근대로의 여명 시점부터 명확했습니다. 전통과 근대 기로의 정점인 다산 정약용은 지도자와 공직 노릇을 제대로 수행한 자를 “재산을 고르게 마련해서 다함께 살린 자”라며 “부자의 것을 덜어내어 가난한 자에게 보태주어 그 살림을 고르게 하는 것”을 그들의 긴급임무라고 주장합니다. 즉 재산분배 역할이 국가의 근본임을 밝힌 것이지요. 핵심인 토지소유제의 경우 그는 ‘일정한 가구의 공동소유 및 협동영농’이라는 급진제도를 제안합니다. 그의 주장은 오늘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꼭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으나 바른 국가역할과 평등, 분배, 토지공동소유에 대한 선견은 주목됩니다.

저는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체제가 갖는, 인간의 기본욕구 충족기능과 긍정적 재화생산 기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근대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문명과 삶의 질의 개선을 부인해서도 안 됩니다. 우린 공산주의의 대실패를 통해 인간 욕망의 부인과 절대적 평등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시장경제 자체가 아니라 극단적인 시장만능주의, 기업제일주의, 돈유일주의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부와 기업, 보수 담론이 말하는 ‘경제문제’는 사실 체제성격과 평등을 포함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시장문제’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공동체 내의 특정 이해당사자인 ‘기업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업의 무한자유 요구를 시장자율문제로 확대하고, 또 시장문제를 국가 전체의 경제문제로 간주하는 주술에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는 시장에 맡기라”는 시장유일주의는 결국 시장지배자인 “기업에 맡겨라” “국가는 손을 떼라”는 얘기인데 그것은 국가의 공공역할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습니다. 시장 지배자를 공동체 전체의 지배자로 만들고, 시장의 불평등을 공화국의 불평등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술은 마침내 현실이 되어 정부·언론·교육·의료·종교 등 공동체의 모든 영역이 기업논리를 추수하고 대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문·방송·병원·학교·교회… 거의 모든 핵심 사회구성요소가 독립적 존재논리와 양태를 상실한 채 마치 기업질서처럼 최상위 거대 소수가 해당 영역을 과점하고 있는 과두상태로 진입해 있습니다. 그리곤 이들 사이에 기업을 정점으로 상층 과두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기업에로의 예종’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예종을 통해 공화국가가 아닌 기업국가·과두국가가 된 것이지요.

앞서 상세히 말씀드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이어 금번에 공개된 ‘2009년도 OECD 통계연보’를 보면 한국은 이미 철저한 기업국가·시장국가가 되어 기업독재나 시장전체주의의 단계로 진입해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적 공공지출과 정부역할에 의한 불평등 개선, 둘 모두 OECD 최악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적 공공지출은 OECD 평균(2006년)의 3분의 1입니다(20.5% 대 6.3%). 정부의 재분배역할에 의한 소득불평등 개선지표, 즉 지니계수 개선효과는 OECD 평균의 7분의 1입니다(0.078 대 0.011). 즉 한국은 정부에 의한 분배효과는 거의 없는 셈입니다. 실제로 소득 재분배액이 가계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6분의 1입니다(21.4% 대 3.6%). 분배에 관한 국가의 역할이 이토록 없기 때문에 개인과 가족의 시장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과 같은 심각한 양극화·소득격차·불평등 사회에서 국가역할의 부재, 또는 부자들을 위한 정부는 고래의 통찰이 주장해왔듯 공화국의 기저를 위협하는 저항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과두체제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논리를 허용하지 않는 체제나, 특정 부분이 전체 사회를 장악한 걸 독재나 전체주의라고 한다면 한국은 분명 기업독재나 시장전체주의로 근접하고 있습니다. 뉴딜 개혁을 성공시킨 루스벨트는 사회주의를 정부사회주의와 사적 사회주의(기업사회주의)로 나눈 뒤, 소수에의 경제권력 집중을 통해 다수 시민을 예종시키는 후자에 대해 전자 못지않게 단호히 거부합니다. 명령경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지요. 정부사회주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사회주의의 해체는 필수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공산독재를 피하기 위해 기업독재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 기업에 맡기라” 외치는 부자를 위한 정부 저항 불러

이제 기업독재, 시장전체주의를 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저는 세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는 국가(정부)·시장(기업)·사회(시민) 사이의 새로운 3권분립과 사회협약입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한 네 유형, 즉 국가가 시장과 사회를 모두 탄압한 유형(사회주의), 국가가 시장과 결탁해 사회를 억압한 유형(개발독재), 국가가 사회와 연합해 시장을 압박한 유형(민중주의체제), 시장·기업이 국가와 사회를 장악한 유형(기업독재·시장전체주의)을 모두 극복하고 새로운 3자균형을 위한 협약을 맺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화와 체제의 안정을 위해 상대적 평등을 위한 국가의 독립적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그것을 시장화(경쟁)와 사회화(연대)의 결합을 통한 인간화(공화국시민)의 길로 이해합니다.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체제나 사회적 시장국가, 또는 사회국가를 상정해봅니다. 반 인간화로 치닫는 시장만능주의를 보며 아렌트가 말한, 전체주의를 향한 유혹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간적 방식을 통해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고통을 완화시킬 것을 깊이 상념합니다. 그 길은 자유와 평등을 위한 사회와 정치의 확장과 국가의 공적역할 회복입니다. 아렌트는 “자유는 복수성(plurality)을 전제로 하는 정치라는 독특한 매개적 영역에서만 존재한다”면서 “정치는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상대적 평등의 관점에서, 그들의 상대적 차이에 대비(對比)해 조직한다”고 언명합니다.

둘째는 민주주의를 통한 통제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드렸던 4권분립을 통해 검찰·감사원·공정거래·금융감독기구를 완전히 분리시켜 권력과 시장의 과두화·독재화를 확실하게 견제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시민의 직접 참여와 저항입니다. 공정거래, 공정무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시민단체에의 참여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끝으로는 평등주의의 표상인 1인1표가 갖는 위력을 통해 시장의 불평등을 정치적으로 교정해내는 주체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정부·기업·시민 사회협약 필요 ‘창조적 자본주의’에 주목을

셋째는 자본주의 자체의 창조적 변혁입니다. 이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업과 자선사업의 상징적 성공을 보여준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 제안입니다. 정부-시민단체-기업의 역할분담과 연대를 통해, 기업에도 유익한 방식을 통해 극소수에 집중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이윤수혜의 대상을 빈곤계층에까지 획기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입니다. 자선이라는 개인윤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회구조 문제에 주목하는 그의 제안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선생님도 말씀하신 인간의 가치창출능력-노동-경쟁에 대한 새로운 접근입니다. 저는 조금 온건하게, 독일 메르켈 총리의 신선한 발상 이래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제안되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연봉제한의 도입을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 글로벌 기업의 임원과 직원의 임금격차는 이미 100배를 훨씬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한두 사람이 기업의 명운을 결정할 결정권한 대가로서의 초고액 연봉 수혜의 논리라면 이것은 인간의 평균적 근로가치, 재화창출능력, 기업의 집합적 의사결정… 어디에도 맞지 않는, 루스벨트가 말하는 명령체제로서의 사회주의일 뿐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기업의 몰락은 이들 고액 CEO나 임원들의 오류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발상의 근본적 전환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 어렵고 힘든 삶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대안모색에 나서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 여러 문제에 대해 말씀 나누다 보니 내용이 복잡해져 죄송한 마음입니다. 건안하시길 빌며,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연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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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본권력에 ‘시민의 평등한 참여’ 제도화 해야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의 주제는 공화국과 경제입니다만, 이 주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뜨거운 감자입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린 대로 경제가 공화국 또는 공공성과는 상극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우리의 대화를 시작하는 글에서 저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이 가정과 국가를 구별하고, 돈을 버는 일을 국가의 정치적 관심사가 아닌 가정관리에 속하는 일로 치부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확실히 낯선 이런 구별의 바탕에는 경제에 대한 관심이 본질적으로 사사로운 관심이라는 통찰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내가 베토벤의 음악을 내 지갑에 넣을 수는 없지만 돈은 혼자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는 그 자체로서 자기를 위해서도 좋고 남을 위해서도 좋은 공공적 욕구인데 반해, 돈에 대한 욕망은 철저히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적 욕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돈에 대한 욕망에는 아무런 공공성의 계기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자본에 눈이 먼 사회에서는 공공적 관심은 사라지고 사적인 욕망들이 충돌할 뿐이니, 그것이 공화국과 공공성의 무덤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공공적 소유란 ‘같이 가짐’의 의미 공산주의 ‘국가에 의한 독점’ 오류 


하지만 김선욱 선생께서 우리의 대화에 대해 지적했듯이, 경제의 반공공성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시대는 아테네나 로마와는 달리 경제적 문제가 개인은 물론 나라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축적과 증식을 위한 사회적 공동체를 회사 또는 기업이라 부른다면, 지금은 국가가 기업이요, 기업이 국가가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함석헌은 이처럼 기업화된 현대 국가를 비판하여 자주 “기업국가”라 불렀는데, 오늘날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이른바 근대적 국민국가는 고대 국가와는 달리 그 성립의 뿌리에서부터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었고, 그런 만큼 경제적 관심이 국가의 근본 관심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한번 기업국가가 되고 나면 국가의 모든 일이 그 뿌리에서부터 경제적 관심에 의해 본질적으로 규정되는 까닭에, 국가를 아예 해체하지 않고서는 경제의 문제를 국가 공동체 밖으로 밀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의 문제를 국가나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으로는 공화국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의사소통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와 공공성의 대립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들어 많은 학자들이 말해 온 공공성이란 대표적으로 원칙적으로 의사소통의 공공성이었습니다. 국가와 시민사회 내에서 어떻게 하면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공공성에 대한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시민들이 아무리 개방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토론하는 대상이 그들에게 공동으로 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토론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두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아무리 잘 토론하고 결정한다 하더라도 만약 그 아이스크림이 남의 것이라면 토론 자체가 쓸모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민의 운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국가는 과거 국가에 공공적으로 속했던 많은 일들을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공공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만들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소통의 공공성만을 말하는 것으로는 시민적 삶의 공공성을 결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참된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의 공공성에 대해 말하는 일입니다. 생각하면 20세기에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치열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공산주의자들은 소유의 공공성을 국가에 의한 소유의 독점과 같은 것이라 생각함으로써 또 다른 오류에 빠져들었습니다. 공공적 소유란 ‘서로 같이 가짐’을 뜻합니다. 이를 가리켜 소유의 서로주체성이라 부를 수 있다면, 고립된 개인에 의해 소유되던 것을 다 빼앗아 국가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개별적 홀로주체에 속하던 것을 국가라는 또 다른 홀로주체의 손에 쥐여주는 것과 같아서 참된 의미의 ‘같이 가짐’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민적 삶의 공공성을 위해서는 개인에 의한 사적 소유의 원리도 아니고 국가에 의한 독점도 아닌, 소유의 공공성의 원리를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본의 축적과 증식을 위한 사회적 공동체를 회사 또는 기업이라 부른다면, 지금은 국가가 기업이고 기업이 국가가 되어버린 시대다. 사진은 삼성·LG·SK 등 대기업의 위용을 자랑하는 첨단 사옥들(왼쪽부터), 그리고 경제적 분배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아래). 경향신문자료사진

정치 자체가 경제적 욕망에 종속경제의 정치적인 통제는 불가능
더 나아가 경제의 정치적 통제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분별한 경제적 욕망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제가 정치 외부에 있다는 전제 위에서 경제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일입니다. 국가 자체가 기업국가가 되어버린 오늘날 경제는 더 이상 정치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적 이성 자체가 경제적 욕망에 종속된 도구적 이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자 만들어 주고, 잘 살게만 해준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겠다는 것이 우리 시대 시민들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은 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경제로 둔 채 그것을 단지 정치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부질없는 몽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소유 및 경제적 권력 자체를 민주적으로 해체하고, 경제적 활동 그 자체를 공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국가가 모두 기업국가가 된 까닭은 본질에서 보자면 돈이 권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로마가 주변의 부족들을 정복해 나갈 무렵, 부유하기로 소문난 삼니움족이 로마의 장군 덴타투스를 매수하기 위해 금은보화를 들고 찾아 왔을 때, 그는 자기가 그 보물을 받고 부자로 사는 것보다, 부자들을 지배하는 삶을 택하겠노라며 그들을 쫓아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생각하면 이는 아직도 권력이 돈과 엄격히 구별되었던 시대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돈이 곧 권력입니다. 그러므로 돈의 외부에서 돈을 지배하거나 통제하겠다는 것은 허황된 발상입니다.

국가 권력이 시민에게서 나오듯기업 경영권 노동자로부터 나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권력이 유일한 권력이었던 시대에 아테네 시민들은 수백 년에 걸친 노력과 투쟁 끝에 모든 시민이 국가 권력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처럼 모든 시민이 권력에 참여하는 공동체를 폴리스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으나, 국가권력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인민의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받는 데 다시 수천 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권리는 명목상으로만 인정될 뿐 아직도 실질적으로는 소수에 의해 국가권력이 독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한 술 더 떠 이제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자본이 권력이라면, 이제 모든 시민이 자본이라는 권력에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가 기업이 된 시대기업들을 폴리스로 만들어야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인간의 세 가지 권리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로 소유권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사적으로 소유된 재산은 헤겔이 말했듯이 의지가 작용하는 외적인 영역으로서, 개인의 자유의 첫번째 외적 표현이자 실현입니다. 이로부터 자유가 신성하듯이 사유재산도 신성하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첫째 원리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나의 자유가 고립된 홀로주체의 자기형성이 아니라 너와의 만남 속에서만 온전히 생성되듯이, 소유 역시 고립된 홀로주체의 일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든 그 속에는 이미 타인의 노동과 자연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유의 권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타인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리이지, 고립된 홀로주체의 절대적 처분권일 수 없습니다. 이 근본 전제 위에서 소유의 윤리를 다시 생각하고 소유에 대한 법적 정의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둘째로 경영권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자본이 자기를 주체로서 실현한 것이 기업입니다. 그런데 자본의 사적 점유를 당연시하는 사회에서는 기업을 사적으로 지배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당연한 것도 자명한 것도 아닙니다. 경영권이 노동자로부터 소외되어 기업주에게 귀속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국가의 주권이 군주에게 속한다는 생각이 철석 같은 믿음이었으나 사실은 허황된 생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믿음입니다. 근대에 이르러 군주가 신으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고 거들먹거릴 때 시민 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권을 시민에게 되돌린 것처럼, 이제 우리는 기업이 사사로운 소유물이라며 배타적인 경영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권력은 위임받은 권력이며, 이는 경영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평범한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의 권력이 시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 역시 오로지 노동자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는 기업 그 자체를 모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폴리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가 기업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에는 이처럼 기업을 폴리스로 만듦으로써만 인간의 참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새롭게 생각해야 할 것이 노동권의 의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권이란 노동자가 기업주에게 노동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명한 진리는 아닙니다. 노동이 참된 의미에서 인간의 자기실현일 수 있으려면 노동권이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것은 자기를 상품화하고 사물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상실입니다. 오직 노동이 공동체에의 참여로서 발생할 될 때만, 그것은 서로주체성의 실현으로서 인간의 자기실현이 될 것입니다.

생각하면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모든 새로움은 낡은 눈으로 보면 허황된 것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꿈꾸지 않는다면 세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어려운 이야기는 선생님께 떠밀면서 저는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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