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의 기획 기사이다.  홍기빈의 글이다.

 "바보야! 자본주의는 똑같지 않아"

20세기 끝 무렵, 여러 선진국의 자본주의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다양한 자본주의의 변종들’은 최근 10년간 정치경제학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토론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새롭지만 낡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1960년대부터 누누이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발견’이 최근에 다시 떠오르게 된 사정의 배후에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시대적 도전, 이에 대한 서구 온건 좌파들의 고민과 대응이라는 맥락이 깔려 있다. 이러한 사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원래 다양했다


자본주의가 각 나라에서 다양한 제도적 형태를 띤다는 것은 19세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자본주의는 모든 나라의 정치·경제 질서가 엇비슷하거나 엄격하게 획일적으로 통일된 모습이기를 요구했다. 당시의 국제 규범은 모든 국가의 정부가 자국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입헌국가’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국가의 모든 재정은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고, 이를 교란할 수 있는 ‘군주’의 전횡은 입헌주의에 의거해서 원칙적으로 차단되었다. 또한 각국이 자유무역과 엄격한 국제 금본위제를 수용하면서 보호관세든 재정 및 금융 정책이든 국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19세기에 한정된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을 연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왼쪽)과 영국의 대처 전 총리(오른쪽).
이렇게 획일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을 각국에 강요하는 19세기의 지구적 질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변동에 휘말리게 되면서 엄중한 도전에 처한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에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이라고 부른 대변동 속에서 무너지게 된다. 이에 따라 각국은 자기 나라의 실정과 사회적·정치적 조건에 맞는 형태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성된 브레튼우즈체제의 세계경제 질서는 이러한 일국적 자유를 적극 지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1950~1960년대 초, 일본과 유럽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사 관계, 은행 및 금융 체제, 산업 정책과 기업 지배 등은 나라마다 달랐다. 이를 관찰해서 기록한 최초의 학문적 업적은 숀필드의 <현대 자본주의>(1965)일 것이다. 숀필드는 유럽 6개 나라의 사례를 통해 국가가 경제계획이나 기업 통제 등 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이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을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찰스 린블럼은 고전적 저서인 <정치와 시장>(1977)에서 나라마다 자본주의 조절 및 운영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과정을 이론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국제 정치경제학계에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은 ‘확립된’ 사실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최근 다시 문제가 된 이유를 살펴보자. 그 주요한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도전이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지구적 자본의 흐름과 이에 발맞춘 최소국가론(외부의 침범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치안·방범·국방 부문 이외의 사회·정치·경제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 탈규제, 시장 자유화, 복지국가의 종언 등은 다양한 자본주의가 공존했던 세계경제 질서의 토대를 허물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부인한 신자유주의

무엇보다 금융시장이 국제화되어 자본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마음껏 드나들게 되면서 ‘국가 관리하에 잘 규제되는 금융체제’란 옛이야기로 전락했다.

이렇게 지구화된 금융자본은 모든 나라의 금융이 오직 높은 수익성 하나만을 목표로 흐르게 강제했는데, 이에 따라 노사협의·사회복지·교육 등 제반 사회제도에 걸친 국가적 개입과 조절의 능력 또한 근본적으로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해 1970년대 초, 이른바 ‘케인스주의 국가의 종언’이 선언된 이후 ‘시장 지상주의’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맹렬하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에 이르면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새로운 합의가 나타난다.

“이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란 없다.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경제 제도인 시장의 자유를 극도로 허용하는 ‘우월한 자본주의’와 이를 억누르고 왜곡하는 ‘열등한 자본주의’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후자는 하루빨리 지금까지의 과오를 청산하고 자유시장을 성립시킬 수 있는 대규모의 제도적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정부와 국가가 추진하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각 국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구화의 물결을 전폭적으로 끌어안도록 개방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이 지구화에 실린 시장의 자연적 힘이 해결해줄 것이다. 요컨대 지구화를 통해서 모든 나라가 ‘하나밖에 없는 최선의 모델(one-best way)’로 수렴하게 될 것이며 또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하나밖에 없는 최선의 모델’이란 영국이나 미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경제 영역에 강력히 개입해왔음에도 이런 과거를 은근슬쩍 지워버렸다. 국제 학계마저 미국이 태초부터 자유시장이 지배해온 교과서적 자본주의 국가였던 것처럼 간주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라는 주제가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엔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마구 밀고 들어오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짙게 깔려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모니터로 시황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뉴욕 펀드 매니저.
제도는 ‘잘라서 붙일’ 수 없다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를 부활시킨 효시는 미셸 알베르의 저작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이다. 알베르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어 오히려 사회적·경제적 효율성을 해친다면서 독일 ‘라인강 자본주의’(노동자·자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의 제도적 조절을 운영원리로 삼는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경제 시스템)의 장점을 부각시켜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선구적 업적에 힘입어 ‘자본주의 다양성’이란 주제는 다시 무수한 학술 논문과 저서의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프랑스판 제도주의라 할 조절이론 학파의 브와이에 등이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기업지배구조·산업정책·금융시스템·노사관계 등 각각의 영역에서 얼마나 다양한 조절 방식이 여전히 존재하며 또 여전히 생명력과 효율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골몰했다. 유럽 사회경제학자 홀과 소스키스는 <자본주의의 변종들>에서 각 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시장에 내맡겨진 경우’와 ‘국가 중심의 조정에 무게를 두는 경우’로 크게 나눈다. 또한 특정한 제도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경제의 다른 제도들과 보완하는 관계이므로, 특정한 제도 하나만을 가지고 효율성을 따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제도든 해당 국가의 전체 사회경제 시스템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후의 논객들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더욱 공격적으로 개진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기 전의) 일본이나 다른 유럽 국가의 경우를 보면, 경제성장과 효율성 측면에서 ‘국가 중심의 조정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시장에 내맡겨진 경우’에 못지않으며 오히려 우월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구화의 물결이 닥쳐온다고 해도 각국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심화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국의 ‘경쟁력 있는’ 제도에 더욱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이런 논리들은 경제성장과 ‘효율성 높이기’라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시장근본주의엔 빠지지 않으려는, 서구의 온건 좌파들에게 중요한 정책적·이념적 영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미국식 자본주의야말로 금과옥조나 되는 양 폭력적으로 관철되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더 많이 도입되는 것이 균형을 되찾는 면에서나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점에 있어서나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에도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결점은, 다양한 ‘자본주의의 변종’들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회적·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모델이 가지고 있는 여러 좋은 제도와 관행을 마치 ‘잘라와서 붙일(cut and paste)’ 수 있는 것과 같은 환상을 심을 수 있다. 특히 스웨덴·네덜란드 등 이른바 ‘좋은 모델’을 찾아 그 제도와 관행을 여과 없이 수입하는 데 급급한 편향이 곳곳에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 점을 잘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더욱 급한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고유한 축적 메커니즘과 그 역사적 발전 경로에 대한 해명이며,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의 수입도 이러한 주체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면 훨씬 더 큰 생산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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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1) 샹탈 무페 Chantal Mouffe


샹탈 무페는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자로서 현재 영국의 웨스트민스터대 교수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무페의 관심사는 줄곧 마르크스를 반경제주의적이고 반본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계급정치학과 경제주의를 극복할 하나의 대안적 관점으로 보고,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1979)라는 편역서를 냈다. 이후 동료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저술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을 통해 해체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해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촉발했다. 대표적 저작으로 급진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 기획을 제안한 <정치적인 것의 귀환>(1993), 민주주의의 역설적 성격이 바로 민주주의 실현의 원동력임을 강조한 <민주주의의 역설>(2000), 정치적인 것이 지닌 적대적 성격의 제거 불가능성을 인정해야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2005) 등이 있다.  

 

 

 

 

무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고 본다. 그에 대한 저항과 견제는 정치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무페의 통찰이다. 
 

1987년 견고해 보였던 독재체제가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후퇴하면서, 우리에게는 불완전하나마 민주화의 시대가 열렸다. 누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더 완벽한 제도의 확립을 요구했고, 누구는 현실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경제적 권력을 소유한 자들은 민주화에 편승해 소리 없이 자신의 기득권을 넓혀나갔고,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현실 자본의 운동에 굴복하여 보수화하거나 자기 한 몸 건사하기에도 급급한 처지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자본의 자유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담론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그 모든 가치에 앞서 ‘생존의 요구’를 먼저 충족하라.”

한국인들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이름의 민주화 정부를 경험했고, 불완전했든 기만적이었든 민주화의 시대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양극화는 한층 심각해졌으며,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은 오히려 허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실용주의를 펼쳐나가길 바랐던 국민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부는 합의와 다수결, 공정성, 도덕성 등의 가치를 난도질하면서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샹탈 무페의 충고는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태를 수립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민주적 시민성, 민주적 정서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은 특히 그렇다.”(2009년 9월 4일, <한겨레>) 여기서 말하는 시민성이 법을 준수하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정치적 장에서 갈등과 적대는 불가피하며, 그것들의 표출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고 무페는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의 규칙조차 부정하는 극단적 형태의 근본주의나 파시즘이 발흥하거나, 강화·보호되어야 할 법과 제도, 인권은 위협당한다. 그 형식이 촛불집회든 공개청원이든 토론이든 적대적 투쟁이든, 집단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는 자리잡고 꽃피운다. 이것이 무페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고 급진민주주의 이론의 출발점이다.

이해관계가 상이한 계급·계층, 집단들이 존재하는 사회에 갈등과 적대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그들’과 ‘우리’의 관계가 ‘적’과 ‘친구’의 관계로 전환될 때 정치적 적대는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무페는 카를 슈미트의 통찰을 따라 이것을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라 부르며, 우리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구성하는 제거 불가능한 차원으로 본다. 무페는 합리적 합의를 통해 적대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진영이 오히려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물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법치, 인권의 보장 및 개인적 자유의 존중 등의 가치로 구성되는 자유주의 전통”과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시, 인민주권 등의 사상으로 구성되는 민주주의 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페에 따르면 이 두 전통 사이에는 필연적 연관 없이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접합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자유와 평등은 이렇게 역설적으로 접합되어 구성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투쟁을 통해서만 발전되어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현실 권력은 항상 이 둘 사이 갈등의 일시적인 안정화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무페는 경제적 합리성의 논리로 정치를 대체하려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사실상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거의 유사하게, 정치란 정치꾼들이 하는 것이며 거의 사기에 가깝거나 비효율적이며,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에 경제를 살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그것 역시 정치적 논리이다. 물론 현실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그런 인식이 증폭된 면도 있지만 말이다.

무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고 본다. 경제적 기득권층은 더 많은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이미 장악한 법과 정치의 영역을 더 많이 장악하려 하면서도, 정작 남들에게는 정치논리 배격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저항과 견제는 정치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무페의 통찰이다. 모든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관,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된 진리나 보편성 등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자유와 평등의 이상 추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인종적·경제적·성적 문제 등을 둘러싼 서로 다른 민주적 투쟁들의 접합을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무페는 기존의 자유주의자나 전통적인 계급투쟁론자와도 다른 급진민주주의자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완전한 실현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추구돼야 할 공동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이성을 가동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는 하버마스나 롤스와는 달리 데리다나 라캉, 푸코 등과 더불어 탈근대론자에 속한다. 또 사회의 다원성과 다원주의가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원성의 추구에는 아무런 한계도 없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다원주의나 합법적 차원에만 머무는 다원주의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와는 다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추구해야 할 정치적 선, 곧 ‘만인을 위한 자유와 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며, 또 이는 합법적 틀 내에서만 추구될 수는 없다는 게 무페의 생각이다.

무페는 사회주의 전통에서 중요시해왔던 경제적 평등의 이상을 민주주의 안에 들여올 것을 제안하고 그것을 민주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사회주의는 경제결정론이나 단일한 선험적 주체를 거부한다. 이 점에서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며, 사적 소유를 옹호·강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도 적대적이다.

확대되는 신자유주의의 전선에 맞서 무페는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접합을 우리의 과제로 제시한다. 지난해 가을 세계를 엄습한 경제위기는 경제와 정치는 따로 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경제 문제 해결조차도 정치 문제임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위기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온다는 점이다. 무페는 위기의 해결을 요구할 권리, 해결할 의무는 모든 인류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발전시켜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민주적 제도 및 법의 보존, 불평등 해결과 경제 발전 등 거저 얻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침묵을 지킬수록, 개인적 노력에만 머물수록 삶은 더 힘들어진다. 무페가 말하고자 하는 최소치는 바로 여기까지다.

이보경/성신여대 강사



 




 

» 이보경/성신여대 강사
 
이보경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세종대 강사를 지냈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2004)과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2007)을 번역했다. 현재 성신여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데리다의 정치 철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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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명창이 있어야 명창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명창이 없다고 불만하기 전에 먼저 귀명창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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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7> 촘스키 혁명  

 

소쉬르 얘기를 여러 차례 했으니, 오늘 하루는 겉핥기로라도 촘스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촘스키는 소쉬르 이후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라 할 만하니까요. 촘스키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꽤 일렀습니다. 출세작 <통사구조론>(Syntactic Structuresㆍ1957)이 <변형생성문법의 이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게 1966년입니다. 

뒤이어 1971년에는 <데카르트 언어학>(Cartesian Linguisticsㆍ1966)이, 1975년에는 <통사이론의 양상>(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ㆍ1965)이 한국어판을 얻었습니다. <통사이론의 양상>은 흔히 '표준이론'(standard theory)이라 부르는 촘스키 초기언어학을 응집한 책입니다. 이 책이 번역된 1975년 이후, 한국에서 '촘스키'라는 이름은 현대언어학의 최전선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여러 곳에서 그렇듯 한국에서도, 이 이름은 지식인의 양심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촘스키 소비'는 시간축을 따라가며 크게 다른 양상을 보여왔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촘스키의 한국인 독자들은 주로 영어영문학과의 영어학 전공 대학원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촘스키의 언어학 책들만 게걸스럽게 읽었습니다.

촘스키의 또 다른 영역, 다시 말해 정치비평에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어요. 지식인의 책임을 거론하며 베트남전쟁을 매섭게 비판한 촘스키의 첫 정치서 <미국의 힘과 새 지배계급>(American Power and the New Mandarins)이 나온 게 1969년이었고, 그 세 해 뒤에는 두 번째 정치서 <아시아와 전쟁 중>(At War with Asia)이 출간됐는데 말이죠.
 

정치참여적 글쓰기는 촘스키가 언어학의 제위(帝位)를 얻고 나서야 손댄 장년 이후 호사취미가 아니었습니다. 촘스키 언어학은 그 시작부터 정치학과 나란했지요. 물론 촘스키가 '혁명'을 일으킨 것은 언어학 특히 통사론에서고, 그 혁명은 주로 언어학의 다른 분야나 심리학, 논리학, 인류학, 인지과학 같은 인접과학으로 수출됐습니다. 정치학은 촘스키 혁명의 핵심인 수학모델을 수입하기엔 너무 '무른' 과학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어로 소개된 촘스키가 오직 '언어학자'였다는 사실은 그 즈음 한국사회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합니다.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인들의 '촘스키 소비'는 완연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촘스키 독자들은 일반언어학이나 영어학 세미나에 참가하는 대학원생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었습니다.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촘스키를 거론할 만큼 그는 한국에서도 대중적 지식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들 일반 독서인이 읽는 촘스키는 오직 정치비평일 뿐입니다. 그래서 언어학자 촘스키는 한국인들에게 점차 잊혀지고 있습니다. 아니 요즘의 한국 독자들 대부분에게 촘스키는 처음부터 '논객'으로, '지식인'으로 각인됐는지도 모르죠.

오늘은 '언어학자' 촘스키를 살짝 들여다봅시다. 사실 살짝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 촘스키혁명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어지간히 두툼한 텍스트로도 모자랄 텁니다. 흔히 촘스키 언어학을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변형생성문법이란 뭘까요? 그리고 그것이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구조주의 언어학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

(1)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감격스럽게도 제게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오셨어요.

(2) 존경하는 제자들이 기특하게도 선생님께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왔어요.

이 두 문장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같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죠. 전통문법에서 흔히 주부(主部)라고 부르는 부분만 살핍시다. 동사의 현재관형형('존경하는')이 명사('선생님/제자들')를 수식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명사구에 주격표지('께서/이')가 붙어 주어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정말 같은 구조를 지녔을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둘 다 현재관형형 동사(어간-'는') 뒤에 수식되는 명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입니다. 명사(구)를 'NP'로 나타내고 동사의 현재관형형을 'V-는'으로 나타내면,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둘 다 [V-는 NP]라는 구조를 지닌 NP(명사구)입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촘스키는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라고 불렀습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표면구조는 음성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이런 표면구조 '저 아래에 누워있는(underlie)' 또 하나의 구조를 가정합니다. 촘스키가 심층구조(deep structure)라고 부르는 이 층위에서는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가 서로 다릅니다. 심층구조에서 '존경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을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목적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문장)입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제자들'은 심층구조에서 '제자들이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주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입니다. 즉 심층구조에서 '선생님'은 '존경하다'의 목적어인 데 비해, '제자들'은 '존경하다'의 주어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심층구조는 의미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

서로 다른 심층구조를 지닌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이 동일한 표면구조를 지니게 되는 것은, [NP 목적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과 [NP 주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을 [V-는 NP]라는 동일한 NP(명사구)로 유도하는 규칙이 한국어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층구조에서 표면구조를 유도하는 과정을 '변형'이라 하고, 그 변형에 쓰인 규칙을 변형규칙이라 합니다.

촘스키 문법을 변형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변형규칙이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생성문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한한 규칙들의 집합(구조)을 통해서 무한한 적격(well-formed) 문장들을 생성해내는 모국어 화자의 능력에 이 이론이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적 다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해 봐야 그 다름을 '관찰'하거나 '기술'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일반언어이론은 이런 관찰적 타당성(observational adequacy)이나 기술적 타당성(descriptive adequacy)을 넘어서는 설명적 타당성(explanatory adequacy)을 지녀야 한다고 촘스키는 말합니다. 물론 자신의 변형생성문법이야말로 그런 설명적 타당성을 지녔다는 거지요.

표면구조가 다른데 심층구조는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노무현이 바보라고 생각했어"와 "나는 노무현을 바보로 생각했어"는 표면구조가 다르지만 심층구조는 같습니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죠. "I believed Roh was an idiot"와 "I believed Roh (to be) an idiot"를 견줘보면 그렇습니다. 한국어에서고 영어에서고, 이 문장의 심층구조는 앞쪽 표면구조에 가깝습니다. 그 심층구조에 인상변형(Raising transformation)이라는 규칙이 적용되면 뒤쪽 표면구조가 유도됩니다. 또 능동문과 피동문도, 동일한 심층구조가 서로 다른 표면구조로 유도된 대표적 예입니다.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초기의 표준이론에서 확대표준이론(EST), 지배결속이론(GB), 최소주의프로그램(MP) 등으로 정교화하면서 한 세대 이상 세계 언어학계를 풍미했습니다. 영어권 학계만이 아니라 서유럽, 일본, 중국, 대만, 한국 등지에서 촘스키는 거의 동시에 읽혔습니다.

촘스키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은 이론(가)들도 촘스키를 준거로 삼은 다음에야 제 좌표를 확정할 수 있었지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정치팜플렛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생성의미론(generative semantics), 동사를 중심에 놓고 표준이론의 결함을 보완하려 한 필모어(Charles Fillmore)의 격문법(case grammar), 언어학 너머 형식논리학의 전통을 계승한 몬터규(Richard Montague)의 범주문법(categorial grammar) 따위가 다 그렇습니다.

촘스키 언어학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 하나는 그 이론의 보편지향성에 있을 겁니다. 촘스키는 수많은 자연언어들의 문법이 표면구조에서는 달라도 심층구조에서는 같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두드러진 욕망 하나는 보편문법을 수립하는 것이었지요.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를, 일본어나 중국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은 언어학자들이 촘스키 이론을 자신의 가장 익숙한 언어에 적용해보고 싶어했던 것이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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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난 기사인데 요즘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고등학생때에도 상당한 자폐증에 걸렸다가 대학과 군 생활에서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회식 빠지는 김 대리, 아무리 뛰어나도 박수 쳐줄 사람 없네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자기만의 城' 쌓고 스스로 고립 


상처받기 싫어 만든 회피 수단… 혼자 행복해도 조직눈엔 '비정상'

 

 서울 A초등학교 3학년 지수(9·가명)는 교실에서 혼자 앉는다. 지수네 반은 학생 수가 홀수여서 제비뽑기로 혼자 앉을 사람을 정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지수가 자진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혼자 앉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수의 학업성적은 중상위권. 공부도 곧잘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귀찮아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정민(34·가명)씨는 혼자 점심 먹는 게 익숙하다. 마주 보고 앉는 동료에게 용건이 있을 때도 말로 하는 대신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팀장이 업무 때문에 불렀을 때를 제외하고 사무실에서 이씨의 목소리를 듣기란 힘들다. 자연히 동료들도 멀어졌다.

타인과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른바 '스따(스스로 따돌림)'가 신종 사회 현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지고 있다. 이미 사회 현상으로 굳어진 '왕따'가 타인으로부터 소외당해 비자발적으로 혼자 지내는 경우인 반면, '스따'는 자발적으로 외톨이를 선택하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그저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나홀로족'과도 다르다.

스따는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의정부초등학교 오평진 교사는 "왕따에 비해 스따 아이들의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고학년의 경우 한 반에 2~3명은 있다"며 "왕따는 심리적·육체적으로 피해를 입어 공론화되지만 스따는 다른 아이들과의 표면적인 마찰이 없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 실험실에서 3년간 생활한 뒤 대기업 연구원으로 취직한 정진민(29·가명)씨. 입사 초기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팀장에게 "조금 있다가 밥 먹을게요"라고 말했다가 '혼자 놀기 좋아하는 놈'으로 찍혔다. 그 후 정씨는 관계를 회복할 엄두가 나지 않아 동료와 거리를 두고 일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암초'로 생각했다. 아이디어는 반짝였지만 팀워크가 이뤄지지 않아 그와 일하기를 꺼렸다. 지난해 입사한 윤진현(28·가명)씨는 회식 자리에 아예 안 간다. "다른 약속이 있어서…"라고 얼버무린 뒤 그가 향하는 곳은 집. 소모적인 수다에 시간을 허비하느니 스따가 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게 생산적이라 믿는다.

2001년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LG전자·동부화재 등 대기업에 잇따라 생긴 사내 심리상담실에서는 요즘 스따 상담이 많아졌다. 8년 동안 B대기업에서 직원 상담을 맡고 있는 심리상담사 C씨는 "젊은 사원 중에 자신이 조직에 부딪혀 '실패자'로 낙인 찍히는 걸 두려워 방어 전략으로 스따를 택하는 이들이 있다. 과거엔 보기 힘들었던 유형"이라고 했다. D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과거엔 업무 능력이 가장 중요했지만 요즘은 조직 적응력을 보는 인성검사를 강화하고 있다"며 "몇 차례에 걸쳐 조직 부적응자를 솎아내지만 그래도 팀워크를 거부하는 스따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따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자아가 너무 강해 '쇄국정책'처럼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유리시키는 경우와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 싫어 스따를 회피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박진생 원장은 "과거엔 집단에 속하지 못하면 고립된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요즘엔 게임기·인터넷 등 혼자 소통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며 "굳이 에너지를 써서 친구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 환경이 스따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가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어려서부터 혼자가 익숙하고, 혼자서도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 자란 신세대에겐 혼자 노는 게 전혀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며 "스따 자신들은 지극히 행복한데 집단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의 눈이 이들을 비정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스따 자가 진단 체크 문항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데 대해 너무 과민하고 다음과 같은 증상 가운데 4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스따일 가능성이 높다.

▲비판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필요한 대인관계나 활동을 피하고 스스로 고립한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 없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창피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극히 제한된 관계 이외에는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비난받거나 거부당하는 상황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을 한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돼 있거나, 스스로 부적절하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힘들어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스스로 매력이 없다거나 열등하다고 느낀다.

▲위와 같은 감정들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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