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안에 실린 손호철 교수의 글을 옮겨와 본다. 암담한 미래를 말하고 있다. 

 

<정념과 이해(The Passions and Interests)>. 정치경제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알베르트 허쉬만의 명저 중의 하나이다. 이 책에서 허쉬만은 자본주의의 성립을 정념과 이해라는 두 개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념이란 아무런 조건이 필요 없는 우리의 꿈과 욕망 같은 것이라면 이해는 특정한 상황에 따른 관심과 이해득실을 의미하는 바, 자본주의의 성립은 이해관계가 지배적이 되면서 정념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이해에 의한 정념의 좌절의 역사라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허쉬만의 이 책 제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예상대로 원래 세종시에 예정되어 있던 9부2처 2청의 행정기관 이전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대신 국내최대 기업인 삼성을 비롯해 한화, 웅진, 롯데 증 유수기업들이 세종시에 투자를 하는 등 기업과 대학 등이 세종시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는 새로운 세종시 건설안을 발표했다.

물론 행정도시와 기업도시의 경제적 혜택을 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엄청난 투자의 규모와 혜택 등을 고려 할 때 순수한 경제적 혜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세종시의 현지민들과 충청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지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허쉬만의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이해'라는 면에서 충청에게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정부의 수정안 발표에 대해 충청의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여론조사기관 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정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적으로는 수정안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충청권의 경우 수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 17-40%에 불과한 반면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은 51-73%에 달해 수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이 아직도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충남도의회의장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충남도의회 의원, 대전시의회 의원, 충북도의회 의원 등도 다수 한나라당을 탈당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행정도시 주민보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공용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한 뒤 당초 목적과 다르게 이를 사용하면 원래 토지소유자가 환매를 요구할 수 있다는 공공용지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는 등 충청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순수한 경제적 혜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세종시의 현지민들과 충청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지 모르는데, 다시 말해 허쉬만의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이해라는 면에서 충청에게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 수 있는데, 왜 이처럼 충청은 수정안에 반발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세종시 문제가 충청민들에게 단순한 '이해'의 문제를 넘어서 '정념'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 세종시 수정문제는 충청민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해득실의 과소의 문제를 넘어서 자존심의 문제, 정부의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허쉬만이 주목한 이해에 의한 정념의 좌절과 달리 이해와 정념이 충돌하는 경우,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경우, 정념과 감성이 승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이 충청의 자존심임에도 불구하고 물량공세를 통해 행정수도를 압도하는 경제적 혜택을 주면 세종시 문제를 쉽게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계산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세종시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이다. 즉 박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 세종시 수정안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부터 원안 고수가 아니라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해 왔다. 따라서 이해(수정안)냐 정념(원안)이냐가 아니라 정념(원안)과 이해(플러스 알파)를 모두 잡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세종시와 충청민심에 관한 한 박의원은 질레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텃밭인 영남에 이어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을 MB 덕분에 확실하게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2012년 대선이 벌써부터 암울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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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글을 퍼와보았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이었는데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10. 01. 05) 무상으로 내린 폭설이 반갑다  
‘포틀래치’라는 게 있다. 북미 원주민의 말로 ‘선물’이란 뜻인데, 보통은 선물을 주면서 크게 벌인 잔치를 가리킨다. 많은 손님을 초대해 생선과 고기, 모피와 담요 따위를 나누어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과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또 더 큰 포틀래치를 열어서 자기도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다면 예의에 어긋날뿐더러 선물을 준 사람에게 예속된다는 걸 뜻하기에 과도한 잔치를 경쟁적으로 벌였다고도 한다.

선물 교환양식이긴 하지만, 포틀래치는 선물이나 교환과 구별된다. 선물은 정의상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관대한 행위이다. 반면에 교환은 반드시 뭔가를 반대급부로 기대하면서 주는 호혜적 행위이다. 포틀래치는 이 두 가지 행위의 교집합 같다. 즉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한 턱을 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받는 쪽에서도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턱을 내야만 한다. ‘자발적 의무’를 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철학자 지젝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인류학자 모스는 이 수수께끼 같은 교환방식 속에서 뭔가 신비로운 것이 순환한다고 보았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 핵심을 호혜적 교환 자체에서 찾았다.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그 상호교환의 의미라고 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까지 가세해서는 포틀래치의 핵심이 선물과 답례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라고 주장했다.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지만 대칭적인 두 행동이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누군가 선물을 받은 즉시 상대방에게 답례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선물을 거절한다는 인상을 줄 테니까. 모욕적인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포틀래치는 호혜적 교환처럼 비치면 안된다.

교환의 호혜성은 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까? 또 다른 인류학자 살린스에 의하면, 교환은 사회적 결속을 파괴하며 받은 대로 되갚는 보복의 논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각각의 선물주기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척해야 한다. 그것이 포틀래치라는 선물경제의 특징이라면, 이와 대조적인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이다. 화폐를 매개로 한 등가교환 말이다. 거기엔 관대함도 베풂의 호의도 관여하지 않는다. 선물이 주인의 행위이고 포틀래치가 주인들 사이의 행위라면, 교환은 노예에게 속하는 행위이다.

오래 전 일화가 떠오른다. 대학 1학년생이던 나는 서울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지방의 부모님께 다녀오곤 했다. 하루는 늦은 저녁 그렇게 돌아오던 길에 세탁소에 들렀다. 양복 상의에 떨어진 단추를 달기 위해서였다. 세탁소 주인이 특이한 요구라는 표정으로 바느질을 하는 동안 나는 이 품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 꽤 고민했다. ‘무상의 호의’일 수도 있는 일을 두고 “얼마예요?”라고 묻는 것은 너무 무례한 일인 듯싶었다. 결국 옷을 받아들고 엉거주춤하게 목례를 하고 나서려다가 그냥 가느냐는 타박을 받았다. 품값으로 500원을 냈다. 주변머리가 없어서 속내를 말하진 못했다. 대신 나의 짧은 생각을 자책했고, ‘서울 인심’에 대한 씁쓸함을 곱씹었다. 그런 등가교환을 통해서 그날 세탁소 주인과 나는 서로에게 노예처럼 행동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호의를 베푸는 대신에 노동을 했고 나는 고마운 마음 대신에 돈을 지불했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돈이 모든 걸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은 노예들의 세상이다. 무상으로 내린 폭설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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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글을 오랫만에 레디앙에서 퍼왔다. 박노자, 가끔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반MB 대동단결론, 맞는 길일까요?"
[연합논쟁-홍세화 선생께] "이명박 정권, 독재가 아닙니다"
 
 
 

최근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을 "고문만 없을 뿐, 독재와 다를 게 없다"고 판단하시고 현 정권을 반대하는 일체 세력, 즉 제도권 야당(민주당)과 각종 진보 정당, 단체 등의 '대동단결'을 사실상 촉구하는 홍세화 선생님의 한 글을 보고 생각에 푹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독재인가?


   
  ▲필자.


일면으로는, 대선배인 홍세화 선생님의 주장에 선뜻 반대하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국외에서 상주하는 저와 달리 영구 귀국을 선택하신 홍세화 선생님은 저보다 현장감이 훨씬 뛰어나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4대강 죽이기'와 삼성회장 살리기, 철거민 죽이기와 건설경기 살리기 등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권력의 횡포를 매일매일 보시고 당하시는 분이 "거의 독재의 수준"이라고 진단하신다면, 귀를 기울여야 할 주장은 아닐 수 없습니다.

'체감경기'라는 것은 경제학에서 하나의 '지표'로 다루어지듯이, 특정 정권의 대한 체감도 중요시해야죠.

한데, 동아시아의 정치, 사회, 특히 노사관계 등이 제가 밥벌이 삼아 가르치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민주와 독재에 대한 약간의 이론적 검토를 시도해보고 현 정권이 정말 제도권(부르주아) 야당하고라도 손잡아 반대해야 할 '독재'인지, 그리고 제도권 야당의 성격이 무엇인지 밝혀볼까 합니다. '현장'의 입장에서라기보다는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말씀입니다.

싱가포르 등 약간의 예외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세계체제에서 핵심부에 속하거나 준핵심부 나라 중에서 핵심부와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거의 모든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운영됩니다. 즉, 적어도 자본계급의 이해관계를 서로 약간 다르게 표방하는 제도권 정당 2개 이상이 경쟁하는 투명 선거를 통해야 권력에 정통성이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준핵심부에 진입한 1980년대 초반 이후로는 바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이와 같은 구조를 본격적으로 이식시켜놓았습니다.

재벌들에게 편한 정치 구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요? 일면으로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과의 손을 잡은 중산계급의 급진화된 전위(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등)의 압력도 있었지만, 더 일면으로는 대한민국 영향력 1위의 집단인 대기업들에게도 '2개의 이상 제도권 정당의 투명한 선거경쟁'이라는 구도가 나름대로 편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군부 독재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발길질이나 당하고 돈 상납을 강요 받아왔는데, 이제는 그 '투명 선거 경쟁'을 벌이는 2개 이상의 제도권 정당에게 '보험금'을 다 내며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도권 정당뿐만 아니고 검찰 등 국가의 모든 주요 기관을 그들이 대체로 어떻게 '관리'하는지, 노회찬 전 의원이 발표한 X파일을 보시면 다 알 만할 것입니다.

'군바리' 시대 같았으면 그냥 요구한 대로 주었을 뿐인데, 이제는 국가의 주요기구에서 '장학생'을 포진시키는 주체적인 행위까지 할 수 있기에 민주주의란 참 좋은 세상이죠? 뭐, 재벌 출신의 대통령까지 만들 수 있기에 이게 요순시대 내지 그 이상입니다. 갖고 있는 돈, 그리고 지불한 돈 만큼 '공평하게' 대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시대인 셈이죠.

자유민주주의를 한다고 해서 사실 저들은 못할 일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미국처럼 '테러리스트'로 지목되는 자국의 시민들까지 영장도 없이 잡아다가 몇  년간 감옥에 썩힐 수도 있고, 아프간을 침략할 수도 있고, 이제 예멘 침략 준비까지도 할 수 있죠.

이를 비판하는 세상의 촘스키들이 물론 다소 있겠지만, 그들을 잡아 고문할 하등의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말을 폭스뉴스에 열광하는 다수의 미국인들이 어차피 구조적으로 들을 수도 없고, 들었다 해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배계급 최적의 통치 형태

체코처럼 공산당이 총선에서 13%의 표를 얻는 위기의 동유럽 '민주' 국가에서 공산당 금지법을 논할 수도 있지만, 미국처럼 반체제 세력들이 대중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그런 수고도 필요없는 것이죠. 피지배자들이 철저하게 원자화된 상태에서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돼 있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제도권 거대 정당 위주의 제도적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으로서는 최적의 통치형태입니다.

피지배자들이 하나의 반체제 세력으로 뭉쳐 정말로 선거를 통해 집권해 체제를 바꾸거나 본격적으로 수정하려는 태세를 보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갑자기 파쇼정당들이 각광을 받거나 세상의 피노체트들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지만, 이는 아직은 한국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좌파 민족주의와 온건 사회주의 정당 두 개가 각각 약 4%나 1~2%의 지지를 받는 나라, 진정한 의미의 급진세력이 잘해봐야 자그마한 섹트밖에 만들 수 없는 나라에서는 각종 재벌의 장학생들이 대리 운영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적격입니다.

그러면, 이제 현 정권으로 눈을 돌립시다. 용산참사부터 아프간 재파병까지, 저 같은 사람에게 분통을 터지게끔 하는 모든 일들을 다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지만, 저들이 대한민국의 선거법 등을 어긴 일이라도 있나요? 정확하게 묻자면, 선거법을 어길 필요라도 있었나요?

답은 자명하죠. 거대여당이 지속적으로 최고의 지지를 받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진정한 주인네들에게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파괴할 필요성조차 생기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의 내용을 보면, '독재'라는 수사는 자연스레 나오지만,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제한이 아주 많은) 자유민주주의는 맞습니다.

이명박은 김대중-노무현 10년의 계승자

그 절차적 자유민주주의가 철거민부터 비정규직까지, 이 사회 피지배계급의 약자그룹을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용적으로 다른 문제죠. 물론 동계 철거가 가능한 나라는 '가난뱅이에 대한 독재'를 실시하는 나라임에 틀림없지만, 가난뱅이 중에서도 이 자본의 독재를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독재라고 하자면 정치영역의 독재가 아닌 사회영역에서의 독재에 준하는 계급적 역학관계라는 단서를 달아야 하지 않을까 라고, 홍세화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정치적인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사회적인 독재 관계가 확대재생산된다고 하면, 이 퇴치방법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지배세력의 정치적 대리인 중에서는 지금 일시적으로 수세, 약세에 처하게 된 민주당 등을 '상위 파트너'로 삼는다고 해서 과연 경찰의 장화 밑에서 밟히는 이들의 고통은 줄어들까요?

사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운동'의 세계에서는 거의 대세였습니다. 그 뒤로는 저만 해도 평소에 민노당을 지지했다가 "그래도 차악"이라고 하며 노무현을 찍은 수십 명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압니다.

즉, 여태까지 지배세력 중에서 비교적으로 '덜 나쁘게, 더 민주적으로' 보이는 정파와 연합해온 역사는 꽤 깁니다. 그 결과는? 4대강 죽이기 등의 무리한 토건업 부양은 약간 새롭지만 이번 정권의 대부분의 행동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다 그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었습니다. 파병이나 각종의 무리한 재개발부터 말씀입니다.

연합보다 대안적 정당 건설이 중요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이명박이 노무현의 정적이지만, 경제, 사회 정책의 차원에서는 많은 면에서 계승자에 가깝습니다. '차악'을 모색하는데에 이미 익숙해진 분들에게 아주 억울한 이야기일 순 있지만, 엄연히 현실입니다.

'계급'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돼온 나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계급투쟁보다 관리자에 대한 충성 경쟁이 더 자주 보이는 나라에서는 제도권 전체를 반대할 줄 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안적 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이 일은 미래에 대한 올바른 준비일 순 있죠. 지금 세계 평균보다 거의 2배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수준의 부양책으로 경제지표들이 그럭저럭 괜찮아보이지만, '출구 정책'을 시작만 한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추락 일로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출구 정책을 계속 유보한다면 일본처럼 미래가 없는 과다채무국이 될 것도 뻔합니다.

생각보다 한국 지배계급의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만 않기에, 저들에 대한 계급적 대안이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지지를 받을 날도 언젠가 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과거의 '비판적 지지'의 늪에 빠지는 것보다, 미래를 지향해보는 것은 낫지 않을까요? 물론 이는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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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探究]<34> '독창적 짝퉁' 만들어내는 현대판 '수호지의 영웅들' 

중국 최대의 유행어 '산자이(山寨)'를 아시나요? 

지금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산자이(山寨)'다. 작년 12월 3일 중국 국영 CCTV가 2분간에 걸쳐 '산자이 문화'를 소개하면서 그 이름이 공식화되었으며 중국인들은 2008년을 '산자이의 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핫이슈가 되었다.

그렇다면 '산자이 문화'란 무엇인가? 산자이 문화의 출발은 중국 남부 광뚱(廣東) 지방의 '해적판 핸드폰' 제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행위를 마치 <수호지>에 등장하는 산적패들이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산촌에 세워놓은 '산채(山寨)'에 비유하면서 이들 '산채'가 마치 독립적이고 폐쇄적이며 세상과 격리되어 있음을 상징하듯 '산자이'도 이른바 '주류'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풀뿌리' 문화와 같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선이 4개인 '아디도스'

중국에서 이른바 '산자이 문화'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산자이 현상'은 존재해왔다. 즉 해적판, 짝퉁, 표절 등의 행위가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산자이 현상'은 모방, 희화, 풍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산자이 아디다스'는 선이 3개가 아니라 4개가 되듯이, '산자이 콜라', '산자이 mp3' 등 종류와 내용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산자이 문화'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하나의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자이 현상'이 '문화현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중국인들의 모호한 문화 융합 현상이 나타난다.

2003년을 기점으로 당시 중국 남부의 광저우(廣州), 선쩐(深圳) 등지의 작은 공방들이 전자제품의 복제품 생산을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외국 유명메이커 핸드폰의 외관 복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러한 복제품들은 IT기술의 발전에 비례하여 원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서 '복제'와는 구별된 '복제+창조'의 새로운 형태의 전자제품들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러한 '산자이 현상'이 확산되자 이른바 '정품(주류문화)'에 대한 '산자이(풀뿌리문화)'의 '창신' 능력을 강조하면서 '산자이현상'이 '산자이문화'로 새롭게 진화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마침내 2008년 말부터 '산자이 문화', '산자이 기계', '산자이 공장', '산자이 유명스타'처럼 '산자이'가 홍수를 이루면서 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의 복제능력처럼 '주류문화'에 대한 변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지럽게 핀 꽃이 점차로 사람들의 눈을 미혹시키는(亂花漸欲迷人眼)'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한 예로 2007년 '산자이 핸드폰' 판매 댓수는 1억 5천만대로 전체 중국 핸드폰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산자이 현상은 시장경제에서는 필연적이다. '산자이'의 진화는 초기의 '현상'에서 '산업'으로 변하였고, '산업'이 다시 '문화'로 진화되는 중국만의 현상으로 정착되었다.
 

그렇다면 '산자이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제품'이나 '해적판' 등을 통해 주류문화를 풍자하는 대중의 새로운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산자이 문화'의 본질을 '모방성, 신속성, 대중화'로 규정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전통산업을 파괴하고 '산자이 문화'를 기초로 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산자이 문화'는 일종의 '하위문화'이자 '부차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문화 다양성'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반문화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류문화'를 보완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주류'에 대한 '풍자'가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문화로 발전했다고 해석을 내 놓기도 한다. 소자본 계층에 의해 생산되며 빈곤층에 의해 소비되는 새로운 문화가 바로 '산자이 문화'다.

사실 '산자이 현상'이 '산자이 문화'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방송매체가 제공하였다. 중국 중앙방송이 작년 '춘지에(春節)'때 방영한 '춘지에 완후이(春節晩會)'을 모방한 '산자이 춘완(山寨春晩)'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부터 '산자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작년 한 해 중국의 인터넷을 달구었던 '산자이 춘완'에 대한 관심 고조는 '주류' 프로그램의 '매년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식상 때문이었다. 베이징 근교 스징산(石景山)에 '산자이 디즈니랜드'가 버젓이 정식 영업을 하고 있으며 '산자이 류더화(山寨劉德華)', '산자이주제룬(山寨周杰倫)' '산자이 학교' 등등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산자이 현상'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금년 3월 정치협상회의 11기 2차 회의에서 정협 위원인 전 중국 중앙방송 아나운서이자 배우인 니핑(倪平)은 중국 정부가 법률과 행정 규제를 통해 '산자이 현상'을 강력한 단속할 것을 촉구하였다. 청소년과 국가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묵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산자이 현상'을 다양한 문화의 한 형태로 중국의 특수한 표현 형식이라고 주장하는 일단의 인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출판을 총괄하고 있는 류빈(劉斌) 중국신문출판총서서장은 '산자이 문화'가 대중들의 창조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한편 '산자이 현상'을 '짝퉁', 혹은 '해적판'의 의미를 넘어 '주류문화'와 '풀뿌리문화'의 대결형태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산자이 문화'가 이처럼 범람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취약한 법률의식의 전통과 관계가 있다. 중국인들의 속담에 '빨간불이라도 손잡고 건너면 무섭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불법이라도 대중이 함께 하면 괜찮다는 논리다. 더욱이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후진국이 선진국의 문화를 '베끼는' 일이 '병가의 상사'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베꼈고, 영국은 네덜란드를 베꼈으며, 미국이 영국을 베꼈고, 일본은 미국을 베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진국도 모두 이러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중국의 '베끼기'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둘째, '포용성'과 '다양성'을 용인하는 문화 전통과 관련이 있다. 중국 문화에는 저변에 '포용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흐름이 있다.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문화전통과 13억 인구와 56개 민족, 968만 평방킬로미터라는 방대한 지역, 중국인들에게 '단일성'은 오히려 어색하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산자이현상'에 대해 대체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산자이 문화'를 "민간 문화의 하나이며 다만 과거와 다른 특징은 새로운 전파수단과 새로운 매체의 형식을 빌어 전파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개혁 개방정책 실시이후 지역과 계층 간의 빈부차이에 대한 '위안'과 무관하지 않다. 산자이제품은 소득이 낮아 중저가의 제품을 선호하는 광범한 대중들의 소비패턴연관돼 있다. 예를 들면 5,000위엔이 넘는 정품을 산자이 제품일 경우 500위엔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저소득층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개혁개방의 수혜자인 '주류' 사회에 대한 '풀뿌리'들의 대체 만족감은 정치안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08년부터 시작된 '산자이 문화'는 새로운 문화 조류로 민중들의 보편적인 심리상태 즉 반 주류, 반 이데올로기, 반 엘리트주의라는 풀뿌리 의식과도 관계가 깊다. 말하자면 일반 백성들은 자신들대로 입장과 관점 및 생활방식이 있기 때문에 정부나 권위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자신이 믿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의식이다. 이 역시 개혁개방 30년이 가져온 필연적인 사상 해방 결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산자이 문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산자이 문화'는 실제로 '외국 제품' 보다는 오히려 중국 국내 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따라서 '산자이 문화'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한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산자이 문화'는 '주류문화'가 아닌 하위문화이자 부차적 문화임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산자이 문화'는 표면적으로 사회현상이지만 그 형성과 발전에는 필연성과 합리성,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주류문화에 진입하지 못한 문예작품, 문예형식들이 민간의 문화유산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산채'로 물러나서 소위 '포위망을 뚫고서' 주류문화를 모방을 통해 이를 이용하고 전복시켜야만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부차적 문화의 발양에서 분명한 것은 주류문화의 원형이 없이 발전과 붐이 조성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의 유명한 화가였던 치바이스(齊白石)의 말이 생각난다. "나를 배우는 자는 살아남지만 나를 베끼는 자는 죽는다(學我者生, 似我者死)"라는 경구를 중국인들은 잊지 말기 바란다.

 



/한인희 대진중국학과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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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레시인  기획 시사다. 중국 지식인이라. 

21세기, 중국 지식인의 위상과 곤경 

 최근 중국에서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관련 서적의 판매 부수가 갑자기 증가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는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져들면서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다. 공교롭게도 이 서적들에 관심을 보인 자들은 당대 중국의 지식인들도 아니고 관방의 공공서비스 기관도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의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중국의 보통 시민들이었다.

관방과 민간의 양대 문화 권력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관방과 인민의 양대 구도로 이분되었던 중국의 문화 권력은 그 구도가 더욱 굳어지는 느낌이다. 관방은 중화주의와 애국주의를 앞세우며 당대 중국의 문화 권력을 주도하고 있다. 관방은 일찌감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하위 이데올로기를 발굴해왔다. 90년대에는 '현대신유학'에 주목하여 관방과 대학 간의 철학적 접목을 모색하였다. 현대신유학 연구에 대한 독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20세기에 철저히 외면당했던 공자는 21세기에 화려한 부활을 맞이했다.

관방이 주도하는 문화적 주도행위에 인민의 생활공간인 '민간'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선 대대적인 공자문화 복원사업이 일어났다. 방송 매체에선 공자의 사상에 대한 연속 강의가 유행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유불도(儒佛道)에 대한 강의가 줄을 이어 방영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불교의 탈세간적 교리가 방송의 황금시간대에 선포되는 요지경 중국이다.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선 대륙의 학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이완의 저명한 대학교수까지 모셔다 강연을 듣고 있다.

관방의 주도에 대한 민간의 신속 반응은 결코 문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민감한 정치 이슈가 터져 나올 때마다 민간은 자발적으로 애국주의의 선봉에 서곤 했다. 최근 발생한 티베트 사태에 대해 프랑스가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자, 민간은 프랑스 다국적 기업인 까르푸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과의 마찰이 발생하는 시점에선 민간은 어김없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나 일본 음식점 거부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벌였다. 이러한 애국주의는 온라인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그 불똥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설정에도 옮겨 붙었다. 올림픽 성화봉송 사태나 강릉단오제에 대한 중국 누리꾼의 공격은 매우 거세고 맹목적이었다.

민간의 문화 행위는 관방에 대한 반응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자체적으로 문화를 생산하고 확대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민간의 문화 생산은 대부분 대중문화의 다양성에 기반을 두었다. 중국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급성장한 대중문화는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거대한 문화 권력으로 탈바꿈했다. 대중문화는 그 생리상 정부의 통제틀 내에서만 움직이지 않고 자체 내의 자율성과 생산성을 확대해갔다. 인터넷 블로그 문화는 표현의 자유가 통제된 중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소중한 분출구 역할을 했다. 베이징 외곽을 중심으로 형성된 창의적인 미술 전시공간은 중국 문화계의 새로운 생산기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인구에 회자하는 산자이(山寨)문화는 민간의 소외 계층이 만들어 낸 풍자와 조소의 문화 공간이다.

중국 지식인, 논쟁을 통한 자리 찾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이 깊어야 비로소 비상하듯이, 중국 지식인의 담론은 개혁개방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틀 지워지기 시작한 90년대 초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중국사회는 더욱 역동적으로 기존의 계획경제 틀로부터 체질개선을 시도했다. 그 무렵, 중국 지식인들은 '인문정신'을 주제로 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논쟁은 인문정신 위기론자의 주장에 대해 인문정신 조소론자가 대응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왕샤오밍(王曉明)으로 대표되는 인문정신 위기론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상업화되고 저속화된 중국 문화계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조롱과 욕망의 늪에 빠진 인문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문정신 조소론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논리를 폈다. 그들은 중국 사회가 이미 다원 가치의 시대로 진입했는데도, 여전히 인문정신의 우월성과 5.4식의 계몽주의 환상에 빠져 있는 인문정신 옹호론자들의 논리는 위선과 독선에 불과하다고 맹렬히 공격했다.

9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인문정신' 논쟁은 90년대 후반 동아시아가 금융위기봉착하면서 주춤하게 된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세계화(Globalization)' 담론이 급부상하였고, 이 화두를 중심으로 소위 '신자유주의' 학파와 '신좌파' 학파가 정면에 등장하였다. <두수(讀書)>라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전개된 양대 학파의 논쟁은 수많은 부수적 국소 담론과 결합하면서, 중국 사회에 지식인 담론의 전성기를 되찾아 주었다. <두수>는 발행부수가 10만부를 육박할 정도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기고자의 짧은 분량의 글쓰기와 독창적인 관점을 적극 지원하면서 그 세를 확장했다.

관방과 민간 사이, 소통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중국 사회에서 중국 지식인의 담론이 관방과 민간에 긴밀하고도 신속하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제한된 표현의 자유 속에서 행해지는 이들의 담론은 관방과 민간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민간에서 조성된 대중문화의 무한진화와 다양성 속에서 그들의 무거운 주제는 한없이 따분해 보이기도 하고, 또한 관방이 주도하는 중국특색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여러 논리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학설로 치부되고 있다. 중국에서 논의되는 '신좌파'의 사상은 중국 내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고평가된 면이 있다.

관방과 민간의 밀월 시대에 중국 지식인의 행보는 매우 독자적이고 활기차다. 그들은 비록 관방과 민간 사이에서 훌륭한 소통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담론이 직간접적으로 관방과 민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의 담론은 다수의 주목을 받을 만큼 매우 역동적이고, 지식인들 간에는 상호 소통적이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논쟁을 유발시킬 만큼 생산적이다. 이는 우리나라 학술계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사상계'가 중국의 <두수>로 그 바통을 넘겨준 형국인 셈이다. 논문식 글쓰기에 매몰된 나머지 학파 간의 논쟁과 대화가 실종되고, 연구 프로젝트에 목매어 담론의 현주소를 잃어버린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을 볼 때, 중국 지식인의 역동적인 행보는 부러움과 반성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강진석 오산대 교수. 중국문화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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