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의 역사’ 엘리트 권력 향해 던지는 짱돌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4) 라나지트 구하 Ranajit Guha


라나지트 구하는 영국에 의해 아시아 최초로 근대적인 토지제도와 교육기관이 설립된 벵골 지방에서 1923년에 태어났다. 구하는 캘커타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1946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인도 공산당을 탈당한 뒤 1959년 영국에 건너가 그곳에서 21년간 머무르면서 역사 연구를 재개하게 된다. 1982년 학술지 <서발턴 연구>를 창간하고 1983년<서발턴과 봉기>를 출간하면서 서발턴 연구를 주도했다. 1997년 <헤게모니 없는 지배>를 출간한 뒤 은퇴하여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구하는 식민주의나 민족주의 역사학이 실은 공모 관계에 있는 엘리트주의 담론들이라며 허구적 역사학들이 배제한 인도의 민중을 역사 주체로 복원하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민중의 정치 진출과 역사적 재현을 가로막아 온 엘리트주의와 권력관계의 강고한 벽을 깨뜨리려는 것이었다.



 

» 라나지트 구하
 
서발턴(subaltern·하층민) 연구가 출범했을 때, 구하는 인도에 관한 식민주의 역사학이나 민족주의 역사학이 외견상으론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서구적 근대성을 지향하고 민중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공모 관계에 있는 엘리트주의 담론들로 간주하면서 그 둘의 대립적 관계를 해체시켰다. 그에 따르면, 인도의 식민지 역사를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계몽을 통한 근대 사회로의 이행 서사로 구성하거나, 부르주아 민족주의 엘리트가 이끈 인도 민족(국가)의 자기실현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허구다.

구하는 이 허구적인 엘리트주의 역사학들에서 대상화되어 온 인도의 민중을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 낸 주체로 복원하고자 했다. 이 복원 작업을 위해 그는 그람시로부터 차용한 서발턴 개념을, 그리고 경제 결정론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우선성을 고수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인도사의 맥락에 접합시켜 포스트식민적 관점에서 서발턴의 역사를 재구축했다. 이런 구하의 기획은 1960년대 이후 역사주의와 휴머니즘적 보편 주체를 비판해 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산물이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현지의 조건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면서 근대성/식민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과 실천들을 전개해 온 ‘트리콘티넨털 마르크스주의’(Tricontinental Marxism)의 상관물이었다.

구하는 서발턴을 계급·카스트·연령·젠더·지위를 비롯한 모든 층위에서 권력관계에 종속된 상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말한다. 또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민중’(people) 전체를 서발턴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권력관계의 여러 층위에서 종속상태에 놓여 있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가리키는 민중으로서의 서발턴 개념은 고정적이고 통일적인 어떤 본질적 정체성을 전제하거나, 계급이나 민족 등 어느 하나의 범주를 특권화하지 않는다. 서발턴은 여러 범주들 사이에서 혹은 그것들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지배와 종속의 복잡하고 다중적인 관계들 안에 있는 민중이라는 의미에서 통일적이거나 본질주의적인 주체가 아니다. 이 비본질주의적 주체의 이름인 서발턴은 권력관계에서의 종속적 위치를 가리키지만, 이와 동시에 그것의 불변의 특징은 엘리트와의 차이와 지배에의 저항이다.

1783년부터 1900년까지 인도에서 발생한 110개의 농민 봉기들을 다루고 있는 <서발턴과 봉기>는 인도의 식민정부와 지배집단이 남긴 사료들에 대한 ‘징후적인’ 혹은 ‘결을 거스르는’ 독해 전략을 통해 엘리트의 지배에 대한 서발턴의 저항을 입증한 서발턴(의) 역사의 전범이자 서발턴 연구를 이론적으로 정초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 구하는 전근대 시기의 농민운동을 전(前)정치적인 것으로 본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사가인 에릭 홉스봄의 근대성 논리와 유럽중심적인 보편사 논리를 비판한다. 그는 인도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 그 자체가 서발턴 농민의 정치적 의식에 관한 이름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농민은 전근대적이거나 전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농민들은, 비록 서발턴의 부정성을 보여 주는 요소들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일정한 조직과 강령을 구비하고 있었고, 또 그들의 오랜 삶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독자적 전술을 구사하면서 근대적/식민적 권력관계에 의식적으로 대항하여 지배적 기호체계의 작동을 단절시킨 동시대의 정치적 주체였다. 서발턴 농민들은 식민주의 역사학에 의해 식민 행정의 측면에서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거나,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 민족(주의)의 서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물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구하는 서발턴 농민을 식민 행정과 민족 서사의 틀 안에 귀속되지 않는,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고유한 의식을 지닌 행위주체로 복원해 냈고, 그 농민의 봉기/의식의 구조 혹은 일반적 형식을 규명했던 것이다.

구하가 보여 준 것은 인도의 식민 역사에는 엘리트의 정치와는 구조적으로 분리되는 서발턴의 정치, 즉 식민 권력과 토착 권력에 대항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인 행위/의식을 드러낸 ‘민중의 정치’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 민중의 정치는 그 정치적 동원(動員)의 측면에서 엘리트 정치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 정치는 물론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정치와 같은 엘리트 정치들이 식민주의가 이식한 근대적 정치 제도에 의지하는 합법적이고 수직적인 동원을 보여 준 반면, 민중의 정치는 전통적인 친족 관계와 영토의식, 카스트 제도, 종교 관념 등에 의지하는 수평적 동원을, 또한 전투적이면서 자발적인 형식의 동원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비록 단속적(斷續的)이고 국지적이긴 했어도 서발턴으로서 민중의 정치 영역이 역사적으로 현존했다는 사실은 권력을 쥔 지배 엘리트들이 민중에게 헤게모니를 행사하지는 못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세 번째 저서의 제목이자 널리 알려진 ‘구하 테제’인 <헤게모니 없는 지배>(Dominance without Hegemony)이다. 그 테제에 따르면, 서발턴의 저항은 권력관계 안에서의 저항, 다시 말해 늘 지배의 심급에서 실행되는 강제와 설득의 효과 안에서의 저항이므로, 지배에 저항하는 서발턴의 정치는 엘리트 정치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 정치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엘리트 정치와 ‘이접’(離接)해 있다. 이 이접되어 있는 위치를 ‘지배 내의 외부’라고 할 수 있다면, 서발턴으로서의 민중의 정치가 표상하거나 위치하는 저항적 차이의 공간은 엘리트 정치의 ‘내부에서의 외재성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엘리트 정치가 강제하거나 동의하기를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맞서 그 정체성에 차이를 만들어 균열을 내는 장소, 엘리트 정치가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 질서를 그 내부로부터 교란시키는 장소이다. 다시 말해 그곳은 서발턴이 엘리트의 지배의 완성을 저지하는 정치적 주체로 출현하는 장소인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최근의 저서 <세계-사의 한계에 있는 역사>(History at the Limit of World-History·2002년)에서 구하는 헤겔의 제국주의적인 역사철학이 역사의 산문을 국가의 기록과 동일시함으로써 국가의 삶으로서의 역사학이라는 인습적 통념을 철학적으로 확립했고, 그 국가주의적인 역사학의 굉음으로 인해 일상의 삶 속에서 민중들이 내뱉는 신음소리와 나지막한 속삭임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네 번째 저서에 이르기까지 구하의 역사 연구 작업 전체를 관통해 온 문제의식은 근대 역사학이 국가 권력의 서사양식이자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현 체계로 작동해 온 방식을 심문하고 그것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서발턴 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역사적 재현을 가로막아 온 엘리트주의와 권력관계를 파열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김택현/성균관대 교수·사학




 




 

» 김택현/성균관대 교수·사학
 
김택현은 성균관대 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이론지 <트랜스토리아>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주요 저작으로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 <차티스트 운동, 좌절한 혁명에서 실현된 역사로> 등이 있고, 라나지트 구하의 <서발턴과 봉기> 및 로버트 영의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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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를 통한 축적’ 도시재개발서 금융위기 예견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18)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196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196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로 옮겼으며, 1987년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의 석좌교수로 있다가 1993년 다시 존스홉킨스대로 복귀했다. 2001년 뉴욕시립대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실증주의 지리학에서 출발했으나 곧 마르크스 지리학으로 전환해 <사회정의와 도시>(1973), <자본의 한계>(1982) 등을 썼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1989)을 출간했으며, 자연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정의, 자연, 차이의 지리학>(1996),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모색으로 <자본의 공간>(2001)과 <희망의 공간>(2001)을 출간했고, 현실 문제에도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신제국주의>(2003), <신자유주의>(2005), 그리고 최근에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자유의 지리학>(2009)을 출간했다.

 


 

 

 

하비는 최근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 시장의 위기로 보았다.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됐지만 중하위 계층 저임금 실수요자들의 구매력 부족과 신용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 데이비드 하비. flickr.com(ID:lsyrepublic)
 

현대 사회에서 공간은 인간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본축적을 위한 물적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서구 경제의 침체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른 공간의 재구성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융위기의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대안으로 판명되고 있다. 다른 한편,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새로운 사회공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대안적 공간이 가능한가?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타락한 유토피아주의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기보다, 진정한 유토피아적 꿈을 잃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공간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공간은 흔히 텅 빈 공간 또는 사물을 담고 있는 그릇 정도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디에도 텅 빈 공간은 없다. 공간은 사물을 비워버리면 남게 되는 그릇이 아니다. 공간은 항상 사물들과 함께하며, 사물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 마찬가지로 사물들은 공간(그리고 시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공간 속에서 (재)생성된다. 그동안 사회이론이나 철학에서 이러한 공간의 개념은 무시되거나 간과되어 왔다. 하비가 진보적 사회이론에 기여한 점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의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하비는 사회적 과정과 공간적 형태 간 관계를 변증법적 관점에서 이론화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공간과 사회는 각각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상호 관련적 관계 속에서 그 특성을 부여받게 된다. 공간이나 장소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 생산되고 재현된다. 자연환경 역시 그 자체로서 독립된 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항상 인간 생활과의 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환경을 (재)생산하면서 또한 인간의 본질과 사회 구조도 (재)구성하게 된다.


“금융위기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공간 지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 곧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된다. 하비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은 일차적으로 상품 생산-소비 과정을 통해 순환하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잉여가치를 축적해 사회적 부를 확대해 나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한 노동의 분업은 생산과 소비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고, 자본의 축적 과정을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는 한편,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부는 일정한 지역들로 집중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흔히 상품 생산의 과잉으로 과잉 축적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자본은 이러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하여 도로나 공단, 주택 등 도시 건조환경의 건설에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본은 현재보다 미래에 발생할 수익을 앞당겨 현가화(예로, 토지의 지대나 은행의 이자와 같이)하여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용체계의 발달과 금융자본의 지나친 확대로 인해 부동산시장의 거품과 세계적 금융 공황을 포함한 새로운 위기 국면이 도래한다.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 등과 같이 건조환경의 재편성과 이를 통한 축적 과정(하비는 이를 ‘확대재생산에 의한 축적’과 구분하여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한다)은 금융자본의 확대로 초래될 위기를 일시적으로 해소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환경의 재편과 ‘탈취에 의한 축적’은 지역 불균등 발전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면서, 결국 제국주의의 팽창과 제국들 간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

현 단계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특히 1970년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와 탈규제와 같이 사적 소유의 확대와 자유시장의 확산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실제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의 성장은 회복되기보다 오히려 위축되었고, 개별 국가 내에서도 복지 지출의 축소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하비에 의하면,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이로 인한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시장의 위기로 이해된다. 곧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건조환경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되었지만, 실제 중하위 계층의 실수요자들은 저임금에 따른 구매력 부족과 이로 인한 신용의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희망의 공간으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특히 신자유주의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흔히 모더니즘,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운동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하비에 의하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 간에는 차별성보다는 연속성이 더 두드러지며,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경제적 현실과의 직면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재현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서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전환 및 시공간적 변화, 자본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적 압축’ 과정 및 이의 재현이 이루어졌다. 하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하에서 강조되고 있는 장소의 정체성과 ‘차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들은 공간의 구성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결합할 때만 의의를 가진다.

하비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공간에 관한 철학적 의미와 역사적 발전 과정을 우선 다소 추상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사회적 및 환경적 정의를 이론화하고자 하는 한편, 지리적 상상력 또는 ‘공간적 유희로서의 유토피아’를 사회적 관계, 도덕적 질서, 정치경제체제 등에 관하여 흥미로운 사고를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 수단으로 강조한다. 다른 한편, 좀더 구체적으로 하비는 과거의 노동운동보다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다양한 자유와 권리의 개념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정한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쟁에서 그가 강조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은 도시 공간에서 사회적 잉여의 생산, 이용 및 분배에 대한 통제권의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최병두 교수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지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영국 리즈대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대구대 지리교육과에 재직하면서, 자본주의 도시공간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공간과 환경>, <환경갈등과 불평등>, <근대적 공간의 한계>,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 등이 있으며, 데이비드 하비가 쓴 <사회정의와 도시>,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마누엘 카스텔의 <정보도시>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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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음’ 세계는? 패권이동 지도를 그리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3) 조반니 아리기 Giovanni Arrighi

조반니 아리기는 193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1960년 밀라노 보코니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짐바브웨의 로디지아대에서 강의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만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1979년 월러스틴, 테런스 홉킨스와 함께 미국 빙엄턴대의 페르낭브로델센터에 자리를 잡고 세계체계 분석에 주력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를 다룬 <장기 20세기-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시대의 기원>(그린비)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길)가 국내에 번역돼 있다. 그의 세계체계 분석은 월러스틴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지만, 최근 경제권력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한다. 지난 6월18일 볼티모어의 자택에서 지병인 암으로 숨졌다.

 


 

 

아리기는 자본주의의 변천의 동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지금 미국의 시기에는 선별 지역을 심층적으로 포섭하고 다수 지역을 배제한 채 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이 없으면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탓에 결국엔 새로운 카오스가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 조반니 아리기
 
앞서 오랜 조짐을 보이다 2008년도에 본격적으로 폭발한 세계 경제위기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질문들이 줄지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기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인가? 위기는 왜 미국발 금융위기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위기에 대한 세계 각 지역의 대응과 충격파는 왜 상이한가? 이 위기하에 각 지역의 사회운동은 어떤 대응들을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는가?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현 상황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 마르크스적 질문과 탐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일시적 불균형 때문에 생기고 피해갈 수도 있는 ‘위험’(risk)의 문제로가 아니라, 내적·구조적 속성에서 나오는 진정한 ‘위기’(crisis)로 연구한 것은 마르크스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위기의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전개되었던 자본주의 위기들, 예를 들어 19세기 말의 위기, 1930년대의 위기, 1970년대의 위기와 비교하여 현재 위기가 갖는 함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이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사고와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며, 조반니 아리기의 중요성이 발견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무엇보다 ‘역사적 경향’을 통해 설명되었는데, 그 의미는 위기가 항상 그 위기를 상쇄하려는 반작용의 동학과 동시에 작용하며, 역사적으로 상이한 각 시기에 위기의 구체적 동학은 매우 상이한 역사적 해석을 통해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역사적 자본주의 내에서 이런 위기와 위기의 해소는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적 동학의 등장, 새로운 축적 영역의 형성, 다수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계서제(階序制)의 동학, 계급 간 힘관계의 변화, 금융으로의 전환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리기의 논의의 출발점인 19세기 말~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를 살펴보자. 아리기는 19세기 말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는 독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국가독점자본주의’ 모델로 환원해 설명할 수 없고, 19세기 자유무역 제국주의라 할 수 있는 영국 중심 경제질서의 쇠퇴와, 20세기 법인자본주의에 기반한 초국적 기업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미국 주도 세계 자본주의의 등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리고 이는 식민주의의 위기와 노동 계급의 등장이 가져온 영향력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리기는 월러스틴과 더불어 시작된 ‘세계체계 분석’의 넓은 틀 안에서 작업을 전개하였는데, 세계체계 분석의 강점 중 하나는 근대세계를 하나의 동일한 ‘근대’라는 시간 속에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근대성의 요소론이 빠지기 쉬운 근대화론의 함의와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자본주의를 중심-주변이라는 공간적 불평등을 수반하는 세계경제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자본주의가 설명해야 할 각 시기 안에서는 늘 쟁점이 남아 있었는데, 아리기는 세계체계 분석에 대해 제기된 대부분의 논쟁을 ‘비논쟁’으로 규정하면서 월러스틴에 대한 내적 비판을 통해 쟁점들을 좀더 분명히 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쟁점은 근대 세계체계 등장에 대한 역사-정세적 설명방식, 자본주의 고유의 동학으로 자본주의라는 시간대 속에서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상이한 시간대의 동학을 설명하는 문제, 세계 헤게모니의 교체를 내적 동학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 각 세계 헤게모니 시기의 역사적 자본주의가 갖는 차별성,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평가 등 핵심적 논점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노력은 무엇보다 <장기 20세기>에 집중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는 세계체계 분석이 제시하는 자본주의 장기추세에 대한 설명이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에 기반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경험주의적 설명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 간 체계의 모순적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천의 동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로부터 헤게모니의 등장을 실물적 팽창과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분하고, 금융적 팽창과 더불어 시작되는 신호적 위기, 그리고 금융적 팽창 아래서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촉발되고, 그 정도가 격화되면서 초래하는 최종적 위기 및 그에 따른 체계의 카오스라는 설명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 논리는 네그리의 비판을 반박하며 아리기가 강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역사가 늘 같은 논리의 반복일 뿐이라는 ‘동일성의 영원회귀’가 아니다. 아리기는 헤게모니의 역사적 시기 아래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상이한 구조적 특성을 띠게 되는지, 그것이 내적 속성과 지리적 배치, 계급적 배치에 이르는 모든 면에서 어떻게 상이한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어떤 새로운 모순 구조가 형성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 함의를 우리는 지금의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위기가 갖는 특이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자본 수익성 위기에서 시작된 하나의 과정의 끝인 셈인데, 아리기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이 수익성 위기를 금융적 팽창을 통해 반전시키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기술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체계적 축적체계의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금융적 팽창은 1990년대 미국 ‘신경제’처럼 짧은 경이적 순간인 ‘벨 에포크’를 동반할 뿐, 오히려 체계 전반의 교란을 키워 위기는 점점 더 체계 전체로 확산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19세기 말~20세기 초와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에서 다르다. 그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가 새로운 헤게모니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순환을 쉽게 되풀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특징들에는 세계의 금융과 군사력이 여전히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발전주의 체제가 폐기됨에 따라 배제된 주변부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부담을 다른 지역으로 전가하거나 노동에 부담을 전가하는 이외에 기술적 동학의 측면에서 이윤율을 다시 상승시킬 계기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19세기 세계 끝까지 팽창했던 영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가 이 팽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더 큰 모순을 잉태해갔던 것과 달리, 지금 미국의 시기에는 끝없는 팽창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재편을 통해 선별 지역을 심층적으로 포섭하고 다수 지역을 배제한 채 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배제된 지역에 대한 통제 불가능성을 확대시켜, 헤게모니 국가로선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엔 새로운 체계의 카오스가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아리기는 다소 암울한 아나키적 상황이 펼쳐지거나 중국을 중심으로 비교적 균등한 교역이 펼쳐지는 두 가지 전망 사이에서 동요해 온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그의 다소 과도한 낙관은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선 유보적인 관망으로 다시 돌아서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6월 그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72살로 사망하였지만, 그가 남긴 쟁점들은 향후 계속될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의 한가운데 위치할 것으로 보인다.

백승욱/중앙대 교수·사회학



 




 

» 백승욱/중앙대 교수·사회학
 
백승욱은 중국의 노동문제를 ‘단위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빙엄튼대 페르낭브로델센터 객원연구원과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2008), <자본주의 역사 강의>(2006),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2005)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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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퍼온다. 

한겨레 시리즈이다. 

‘제3세계 읽기의 윤리’ 지식인의 화두로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5) 가야트리 스피박 Gayatri C. Spivak


가야트리 차크라보 르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1942년에 인도 콜카타(캘커타)에서 태어나 1959년 캘커타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영문학 석사(1962)와 박사학위(1967)를 받았다. 1991년부터 뉴욕의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76년에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영역함으로써 서구 문단에 등단했으며, 첫 번째 저서 <다른 세상에서>(1987) 이후 20여년에 걸쳐 <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1993),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1999), <분과학문의 종말>(2003), <다른 여러 아시아들>(2008)과 같은 역작들을 출간했다. 지구화에 대항하는 글로벌 남반구(global South) 운동의 일환으로서 벵골 아동 교육에 투신중이다.

 


 

 

스피박은 지식인이 탐색 대상을 전유함으로써 지배 자본의 이해관계와 공모하게 되는 결과를 끈질기게 파헤친다. 20세기 말을 지배한 각종 포스트 담론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성·계급·인종적 약자들을 대변하기에 앞서 토착민의 관점에서 그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식민화의 행보를 가로막는 지식인 이데올로기



 

» 가야트리 스피박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지식인들이 생산하는 이론과 사상이 과연 공평무사한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론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물음은 진보적이라는 포스트식민주의를 비롯한 각종 포스트주의들이 전 지구적 자본의 재배치와 맺는 관계라는 의제와 이어진다. 그동안 이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은 채 묵인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주의적 폭력구조들에서부터 비켜선 투명한 존재라는 지식인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스피박은 탐색자라는 지식인의 위치가 탐색 대상을 전유함으로써 지배 자본의 이해관계와 공모하게 되는 결과를 끈질기게 파헤친다. 그 태도는 자신의 이론이라고 회피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인도(India)적인 것을, 벵골적인 것을 서구 문단에 소개하는 ‘정보원’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20세기 말부터 각종 포스트 이론들에 의해 강력하게 유포된 차이·이질성·욕망·문화 담론들 대다수가 자본의 전지구화에 따른 새로운 국제 분업 현실을 간과한다. 사실 그러한 현실 속의 제3세계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서구 문단에 제대로 들리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도 각종 포스트주의 이론들에서는 제3세계 주체의 주체성이 너무 손쉽게 설정된다. 그렇게 제3세계 주체에 대한 오도된 지식은 결과적으로 제1세계의 이해관계를 도와준다. 그래서 소위 ‘포스트식민’ 담론과 탈식민화 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타자를 인정하는 척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지워버리는 (남성)포스트(식민) 담론의 맹활약 속에서 탈식민화를 지향하는 이론 작업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스피박은 이론을 생산하고 사상을 유포하는 포스트식민 시대 지식인들이 성·계급·인종적으로 하위에 있는 서발턴들(subalterns)의 차이를 그저 예찬하거나 대변하려고 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지식인들은 지구화 시대 엘리트로서의 특권을 체계적으로 ‘깨닫고 벗어나야’(unlearn) 한다. 그렇지만 북반구의 백인 및 유색 엘리트 남녀들, 남반구의 유색 엘리트 남녀들 중에서 상당히 윤리적인 이론가조차도 이미 연루되어 있기 마련인 거대한 ‘교육기계’의 자장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지식의 기술과 권력의 전략 사이에 ‘외부’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반구건 북반구건, 성·계급·인종에 따른 개별 이론가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면서 투명한 존재로서의 지식인 되기를 거부하는 자기비판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자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포스트식민 정보원으로서 존재하기 십상이다.





포스트식민 정보원에서 토착정보원의 관점으로

전지구화 시대 지식인들이 서구 이론과 사상을 또다시 살찌우는 포스트식민 정보원으로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피박에게 포스트식민 정보원은 1990년대 이후 미국 문화연구를 미국 메트로폴리탄 에스닉(ethnic) 문화연구, 급진적 메트로폴리탄 다문화주의 연구, 미국 학계의 문화적 혹은 엘리트 포스트식민주의 연구로 집결되게 하는 주요 형상이다. 스피박은 미국 문화연구 진영에서 말하는 ‘문화’란 발전을 위한 알리바이, 전 지구의 금융화에 유리한 알리바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원래 ‘문화적인 것이 갖는 환원될 수 없는 이질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동일성에 영원히 붙잡힌 채 남아 있기보다 타자성을 환기하는 토착정보원의 (불)가능한 관점”에서 작업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서 (불)가능이라는 이중 어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며, 토착정보원들이란 문화텍스트들에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들로서, 지식의 원천이자 대상이다. 삭제되고 지워진 이들의 관점을 재각인하기 위해서는 선택받은 글로벌 엘리트의 그럴듯한 세계시민주의와, 강제된 글로벌 하층계급의 무자비한 일상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의 지평을 갖지 못한 채 스스로 서발턴 행세를 하며 자신들의 담론 권력을 챙기려 드는 엘리트 포스트식민적 문화연구로 인해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초과 착취되는 남반구 토착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스피박은 바로 이 현실을 사라지지 않게 붙들 토착정보원의 (불)가능한 관점에서 우리 시대의 문화를 읽어내고 가르치며 행동할 때 잠정적이지만 분명히 더 나은 대안이 부상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 다문화주의 미국 대학에서 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스피박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읽어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교육실천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스피박은 토착정보원들을 여러 결들에서 미묘하게 배제하는 지배적 문화담론의 여정을 추적해 나가는 읽기의 윤리를, 또 가르치기의 윤리를 주장한다. 여기서 읽기, 가르치기란 인식론적이고 담론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윤리적인 필수사항이며 ‘비판’이다.


성·계급·인종에 민감한 독법으로 아시아 문화 읽기

스피박은 그러한 비판적 독해의 맥락에서 포스트식민 이론이 아시아 지역들과 맺는 관계를 탐구하고 아시아 문화들을 새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포스트식민성은 정황적인 것이라 지역·국가·대륙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띤다. 서구 중심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주의 경쟁에 맞서는 핵심적인 지정학적 공간으로서 아시아의 문화에 집중하는 읽기는 새로운 대륙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스피박이 제안하는 아시아 문화 읽기에서 ‘아시아’는 아시아 지역들의 일방주의나 초국가적 디아스포라 헤게모니와 함께, 서구도 빗금 치는 비판적인 문화정치적 공간을 함축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란 한마디로 젠더화되고 인종화된 서발턴들의 대항집단성이 부상하는 공간이다.

스피박에게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과제는 비가시화되기 쉬운 제3세계 혹은 남반구에 속하는 아시아의 하위문화들을 주변부 범주가 아니라 일반적 범주로서 다루며 그것들이 지닌 특이한 사유·인식·가치·관점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읽기는 성·계급·인종이라는 주체성 형성의 핵심요소들에 민감하고 복합적인 인식을 갖고 실행된다. 이렇게 실천되는 새로운 독해는 지금의 지구화에 대항하는 능력의 저장소를 찾아나가는 전략인 셈이다.

그러한 지평에서 아시아의 하위문화들을 비교하며 함께 읽는 작업들은 북반구에서 소비되는 영어 번역물에 내재된 영어 일방주의를 벗어나 국제적이며 다언어적인 문화 영역들을,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통한 다른 윤리를 열어줄 것이다.

지구화 시대 아시아 국가들과 지역들 사이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젠더화되고 인종화된 서발턴들은 점점 더 고립되면서 더 가혹한 착취와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이들에게 지구-지역적으로(glocally) 움직여 나가는 데 필요한 초국가적이면서 비교문화적인 사유가 배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변성은 더 이상 억압의 장소만이 아니라 저항의 거점이 되어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을 구현하는 창조적 지점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 실천 가운데 출현중인 대항집단성을 읽어내기 위해 그들과 만나는 장을 만들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이며 대화를 실천하는 읽기의 윤리를 새로이 가다듬을 때다.

태혜숙/대구가톨릭대 교수·영문학



 




 

» 태혜숙/대구가톨릭대 교수·영문학
 
태혜숙은 이화여대 영문과 및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구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지구지역 행동 네트워크>의 설립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주요 저작으로 <한국의 탈식민 페미니즘과 지식생산>(2004), <대항 지구화와 아시아 여성주의>(2008), <다인종 다문화 시대의 미국문화 읽기>(2009)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다른 세상에서>(2003), <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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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프레시안의 김종배의 글을 옮겨 온다.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다. 먼저 도덕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정책들과 잇슈화는 기둥 없이 지붕 얹으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노무현 명패를 달고 다시 대중의 마음을 가져보겠다는 욕심이 아니던가. 

  

 

 

 

 

1.

지난해 7월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엄에서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평가한 건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추모 분위기가 가라앉은 다음에,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객석 앞줄에 앉아있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난해 11월이었습니다. 진보매체 4개사가 합동으로 기획ㆍ방송한 '진보개혁 연대의 길' 토론회에 나온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에게 말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놓고 패널들과 길고 날선 토론을 벌이기에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적자를 자처하는 국민참여당 창당세력이 자발적으로 대대적인 평가토론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천호선 최고위원은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어제 창당했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 그 당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세웠습니다. 이재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으로 살아가자"고 했고,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 그 분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 자리에서 새 출발을 한다"고 했습니다.

2.

국민참여당이 계승하고자 하는 '노무현 정신'은 뭘까요? 이재정 대표의 말처럼 "모두 이익을 추구할 때 홀로 올바름을 추구한" 정신일까요?

이것은 대답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넓게 봐도, 아무리 호의적으로 봐도 이재정 대표가 언급한 '노무현 정신'은 '인간 노무현' 또는 '정치인 노무현'의 정신이지 '대통령 노무현'의 정신은 아닙니다.

유시민 전 장관이 다짐한 '노무현 부활' 또한 대답이 되지 못합니다. 그가 언급한 '부활'이 단순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응당 '계승과 혁신'이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남긴 족적에서 계승해야 할 것과 혁신해야 할 것을 찾아 '노무현 가치'를 재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참여당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시하지 않습니다. 국민참여당을 통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거쳐야 할 '노무현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개인들'이 회고조로 내놓은 평가(더 엄밀히 말하면 소회)는 있을지언정 노무현 계승세력을 자처하는 국민참여당이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내놓은 평가는 아직 없습니다.

3.

'진보의 미래'를 읽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진보의 가치와 노선을 새로 짜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기록된 책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진보의 미래'를 정독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단초적인 문제의식은 발견했지만 대안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책은 물음표로 시작했을 뿐 느낌표는 찍지 않았습니다.

일면적인 평가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단초적인 문제의식에 체계적인 대안의 씨앗이 담겨있는지 모릅니다. 남은 사람에게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계기를 부여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참여당에 대한 평가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 앞서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야 할 국민참여당이 여전히 물음표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뉴 민주당 플랜'이란 걸 통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노무현 정부) 정책'으로 비판한 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진보정당이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응답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또는 개혁당에서 실험했던 정당운영원리를 내세우고, 민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강령적 가치를 내세울 뿐입니다. 그래서 자초합니다.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성 질문을 자초합니다.

4.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진보의 미래'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한 그들의 창당은 온전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기둥을 세우기도 전에 지붕을 얹으려 했다고, '노무현 정신'을 리모델링하기보다는 '노무현' 문패를 닦으려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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