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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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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휴대폰의 전원을 꺼 버리듯 그렇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다면? 내 앞에 놓인 미래에 밝은 부분 보다 어두운 부분이 많아 보이고 더군다나 지금 당장 내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 무겁다면 이런 생각을 할 법하다. 게다가 주변에 날 지탱해 줄 사람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더더욱.

 

 

그러나 이 작품 속 백은 좀 다르다. 당장 내 앞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없다는 점은 같으나, 백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것은 백 앞에 닥친 그 어떤 상황적·개인적 이유도 아니다. 작가는 끝끝내 백이 자살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이유를 흑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일 뿐이라며 삶의 무용성을 말하는 백은 지능을 가진 생명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무엇보다도 삶의 무용성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고로 자살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다. 심지어 백은 친한 사람도 없고, 그에게 가족이란 죽어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다. 그렇다면 백의 자살을 막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 걸까.

 

 

결국 코맥 매카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백인이 마지막에 몰아치듯 내뱉은 말들이었을 것이다. 극도로 비관적인 백이 하는 말은 신에 대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흑과 대비되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주장으로 비친다. 읽는 이들이 신앙을 강요하는 흑보다 백의 비관성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향해 가는 모든 삶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흑이 신에 대한 믿음,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백을 설득하는 것보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지만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라는 점을 백에게 납득시켰다면 백은 떠나지 않았을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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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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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은 기억을 깨운다. 평소 공부하는 환경을 시험 보는 장소와 유사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소가 기억을 인출하는데 효과적인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학 이론을 차치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 쯤 어린 시절에 자주 방문했던 곳에서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옛 추억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추억과 향수를 테마로 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인공 제로의 전성기(?)를 되살리는 데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 자체였던 것도 이러한 기억의 특성을 반영한다. ……후략


   2015년에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글쓰기를 하겠다 다짐하고는 『지평』에 대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서평을 작성했었다. 하지만 내게 이 소설은 이런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쓰고자 마음 먹었다.


   1월의 다른 신간이었던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으면서는 등장인물의 모순적인 행동을 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과 매치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지평』을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지평』은 『플래너리 오코너』를 비롯한 다른 소설과는 달리 지적 만족감으로 혼자 뿌듯해하며 읽은 것도, 휘몰아치는 스토리에 푹 빠져 뒷 내용을 좇듯이 읽어내려간 것도 아니었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읽으며 추억에 잠기듯, 내가 겪은 적 없는 일과 본 적 없는 인물(심지어는 실존하지도 않는 인물)에 대한 회상에 빠졌다. 내 과거, 내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기억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우리 모두가 옛 일을 추억할 때면 늘상 그렇듯, 특정 사건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도 아주 가는 실로 연결된 다른 생각으로 삼천포 빠지듯하는 이 소설의 전개가 이런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감정이입하기 보다 꿈 속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듯 몽롱한 기분에 빠져 둥둥 뜬 기분으로 읽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상상되는 장면들은 다른 때와는 달리 뿌연 연기 속에 어렴풋하게 그려졌고 읽다가 나만의 추억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한 것도 수차례였다. 


   그간 읽으면서 나를 각성시키고 분노하게 만드는 책들에 희열을 느끼고 그런 책들을 일부러 찾아 읽어왔는데 이와는 다른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도 내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속에 빠져든다기 보다는 지금 읽는 이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뻔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고전소설이거나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는 사회과학·인문학 관련 도서가 아니고서는 책을 읽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취업준비생이지만 가끔은 이런 책을 읽는 행복을 누려야 겠다. 지식의 축적이 책을 읽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주말 오전에 햇살을 받으며 침대 위에 앉아 반쯤 몽롱한 기운으로 읽어내려가는 소설의 즐거움. 그저 사람들의 투표로 뽑힌 것 뿐인데 이번 1월의 신간으로 선정된 책 두 권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하다. 다음 주말엔 파트릭 모디아노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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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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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말 중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는 다름이 따로 있다는 점에서 다름역시 차별의 산물이다



나와 남을 다르다고 규정짓는 기준은 확정적이고 절대 불변하는 만고의 진리가 아니다. 차이의 기준은 언제나 모호하고 시대적, 장소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기에 다름을 인정하는 것 역시 차별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별을 지양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 속 합리주의자들이 결코 정의롭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줄리언(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이나 레이버(이발사)는 인종차별을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 주위의 다른 인종차별자들과 다름없이 피부색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레이버는 조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편을 들 것이라 단정하고, 조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조지가 이해할 수 있는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 애쓴다. 줄리언이 깜둥이 친구를 사귀는 데 실패한 것도 당연하다(p556). 줄리언의 어머니는 백인으로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배척했고, 줄리언은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 친분을 가지려 했다. 결국 이들에게 흑인은 자신의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나와는 다른’ 존재이자 도구일 뿐이다.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中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의 소설 속 인물들이 상대에 따라필요에 따라 다름을 강조하기도, ‘같음을 강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농장의 주인인 매킨타이어 부인(추방자)은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 혹은 백인 추방자를 소작농으로 한데 묶어 이야기하다가도(“나한테 있는 건 온통 허섭스레기뿐이야!” p276) 백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위협이 가해지면 그들 간의 계급적 차이를 강조한다(“그 검둥이가 유럽 출신 백인 여자를 아내로 삼는 건 절대 안 돼.” p302). 그리고 이렇듯 백인이라는 계급으로 묶이던 추방자는 국가라는 프레임이 가동하게 되면 흑인 노동자들에게 마저 소외당한다(“(란드남자요폴은 여기하고는 달라요일하는 방식이 달라요.” p293, “판사님은 익숙한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죠.” p295 이 두 문장 모두 '폴 남자'와 함께 일하는 흑인 노인 애스터가 한 말로 모르는 악마는 '폴 남자'를 의미한다.)반면 같은 소작농임에도 쇼틀리 부부는 그들이 매킨타이어 부인과 '같고' 흑인 및 추방자와는 '다른' 미국국적의 백인이라는 인식을 가진다. 이렇게 플래너리 오코너가 다루는 인물들은 상층계급과의 같음’, 그리고 하층계급(혹은 본인의 기준에서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분류되는 사람들)과의 다름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같음을 강조하고 다름을 부각시키는가.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자존심을 지켜온 것은 아니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다름'을 찾는 차별화가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그러나 '같음'을 찾아 연대한다면 자본주의의 문제를 보완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인생이란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이라지만 내가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그들 역시 나만큼이나 소중한, 나와 다를 바 없는존재이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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