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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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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은 기억을 깨운다. 평소 공부하는 환경을 시험 보는 장소와 유사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소가 기억을 인출하는데 효과적인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학 이론을 차치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 쯤 어린 시절에 자주 방문했던 곳에서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옛 추억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추억과 향수를 테마로 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인공 제로의 전성기(?)를 되살리는 데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 자체였던 것도 이러한 기억의 특성을 반영한다. ……후략


   2015년에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글쓰기를 하겠다 다짐하고는 『지평』에 대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서평을 작성했었다. 하지만 내게 이 소설은 이런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쓰고자 마음 먹었다.


   1월의 다른 신간이었던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으면서는 등장인물의 모순적인 행동을 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과 매치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지평』을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지평』은 『플래너리 오코너』를 비롯한 다른 소설과는 달리 지적 만족감으로 혼자 뿌듯해하며 읽은 것도, 휘몰아치는 스토리에 푹 빠져 뒷 내용을 좇듯이 읽어내려간 것도 아니었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읽으며 추억에 잠기듯, 내가 겪은 적 없는 일과 본 적 없는 인물(심지어는 실존하지도 않는 인물)에 대한 회상에 빠졌다. 내 과거, 내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기억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우리 모두가 옛 일을 추억할 때면 늘상 그렇듯, 특정 사건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도 아주 가는 실로 연결된 다른 생각으로 삼천포 빠지듯하는 이 소설의 전개가 이런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감정이입하기 보다 꿈 속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듯 몽롱한 기분에 빠져 둥둥 뜬 기분으로 읽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상상되는 장면들은 다른 때와는 달리 뿌연 연기 속에 어렴풋하게 그려졌고 읽다가 나만의 추억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한 것도 수차례였다. 


   그간 읽으면서 나를 각성시키고 분노하게 만드는 책들에 희열을 느끼고 그런 책들을 일부러 찾아 읽어왔는데 이와는 다른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도 내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속에 빠져든다기 보다는 지금 읽는 이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뻔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고전소설이거나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는 사회과학·인문학 관련 도서가 아니고서는 책을 읽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취업준비생이지만 가끔은 이런 책을 읽는 행복을 누려야 겠다. 지식의 축적이 책을 읽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주말 오전에 햇살을 받으며 침대 위에 앉아 반쯤 몽롱한 기운으로 읽어내려가는 소설의 즐거움. 그저 사람들의 투표로 뽑힌 것 뿐인데 이번 1월의 신간으로 선정된 책 두 권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하다. 다음 주말엔 파트릭 모디아노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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