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나의 이야기 1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이 말은 나의 의지에 의하여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여덟살이 되면 국민학교에 들어가야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교회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일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리어 다니게 된 교회. 그곳에서 이야기하는 ‘주님의 은총(恩寵)’이 어린 나에게는 번쩍이는 ‘은총(銀銃)’으로 들렸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루한 설교시간이 끝난 후 교회선생님이 주던 맛있는 사탕과 과자는  탈콤한 유혹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교회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성장하였고, 동네어린이와 노는 것보다,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그렇게 해서 나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거의를, 그리고 대학교 시절의 절반쯤을 교회에 투자(?)하였다.  

 

   그러다가 나에게 두가지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괴짜전도사(그는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성실한 - 괴짜가 더이상 아닌 - 선교생활을 하고 있다)와 나의 직접적인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전두환 전(前)대통령(그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과 나의 간접적,시대적 만남이었다.

   우선 괴짜 전도사와 나의 만남. 교회청년부시절 자칭 해방신학자라는 지휘자 겸 전도사가 내가 다니던 교회에 왔다. 그는 단연 청년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나 역시 그에게 지적으로 매료되었다. 나는 그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포탄처럼 쏘아댔으나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늘 같은 것이었다: 너 자신의 눈으로 성서를 읽어라!

 

   20년이 넘도록 교회를 다닌 사람에게 성서를 읽어보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마운)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속는 셈치고 다시 한번 읽기로 결심했다, 아무런 선입견없이 ‘나 자신의 눈으로’.(자신의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나는 성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예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수많은 논리적 모순을 발견하였고, 모순을 발견한 이상 어떠한 권위도 성서에 부여할 수 없었다. 신의 손에 의하여 쓰여졌다고 믿어왔던 성서가 인간의 손으로, 다양한 해석관점의 차이에 따라 쓰여진 문서의 다발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만남. 내가 성장해서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은 전두환 집권시절 이었고, 세상은 안밖으로 뒤숭숭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을 발표하고 얼마 안있어 사회불안을 이유로 다시 호헌을 주장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행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시내 곳곳을 메웠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발표한 호헌선언은 나에게도 분노의 꺼리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교회는 그 와중에서도 커다란 태풍의 눈처럼 잠잠했고, 정치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을 지켰다. 그곳에는 죽음과 같은 안식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가 대통령이 되길 장래소망란에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귀중한 꿈에 비해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파렴치한 대통령과 침묵하는 교회. 젊은 한 시절 내가 겪어야만 했던 한 시대의 모습은 이처럼 나에게 충격과 비참함으로 직조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내 의지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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