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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의 <현(絃)의 노래>(생각의 나무)를 읽다. 이 책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와 묘한 화음을 형성한다. <칼의 노래>가 무인(이순신)의 실존과 전쟁의 이야기라면, <현의 노래>는 예술가(우륵)의 실존과 전쟁의 이야기이다. 쇠(金)와 금(琴). 칼과 악기. 전쟁과 예술의 세계이다. <칼의 노래>가 전쟁에 대한 명상이라면, <현의 노래>는 예술에 대한 명상이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기실 우륵의 입을 빌어 말하는 김훈의 예술론이다. 소설의 곳곳에서 단문의 형태로 김훈은 자신의 예술론을 펼치고 있다. 보자.
- 니문아, 내가 비록 여러 고을들의 소리를 챙겨서 금(琴)에 담았다고 하나, 소리는 본래 나라가 없는 것이다.(224쪽)
- 가야는 지옥이다. 신라는 더 깊고 더 뜨거운 지옥일 것이다. 그리로 가야 살 수 있다. 때가 거의 되었다. 니문아, 금을 들고 더 깊은 지옥으로 가자(226쪽)
- 너의 소리가 그리도 절묘하냐?
- 나의 소리가 아니라, 본래 스스로 흘러가는 소리요.
- 소리는 주인이 없는 것이냐?
- 소리는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고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 아마도 그러할 것이오.(260쪽)
- 니문아, 내가 죽거든 저 열두 줄을 신라로 보내라.
니문이 섬뜩 고개를 들었다.
- 어찌 하필 신라로……
- 악기란 아수라의 것이다. 금을 신라로 보내라. 거기가 아마도 금의 자리이다.(282쪽)
예술은 주인이 없다. 누가 지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경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은 아수라의 것이다. 현실이 비참하면 할수록 예술은 그곳에 있어야한다. 칼이 도륙한 그곳을 금(琴)으로 어루만지며 살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깝다. 김훈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가 보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이 글은 세상의 한 움큼이라도 어루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