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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문구 - 이문구 문학 일기초 동료작가들이 본 인간 이문구
이문구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시절 가장 곤혹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단연 일기쓰기가 될 것이다. 매번 방학이 되면 방학생활이라는 책자와 함께 과제로 주어지는 것이 일기쓰기였다. 그리고 그 일기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은 제출과제용이었다. 방학기간 내내 놀다가 개학을 며칠 남겨놓고 거의 한달치를 창작해야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일기쓰기는 즐거움이나 자아성찰의 매개가 아니라 고통 그 자체였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제출하는 일기과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기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일기쓰기를 원초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해야할 일기가 남에게 공개되었다고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를 쓰지 못했다. 설령 썼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들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검열의 과정을 밟아야했다. 자신이 자신에게조차 진실해질 수 없을 때, 일기쓰기는 그 의미를 잃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남의 일기를 읽고 있다. 작고하신 이문구 선생의 일기문과 주변지인의 이문구선생에 대한 회상으로 꾸며져 있는 [그리운 이문구](중앙 M&B)를 읽고 있는 중이다. 나같이 생면부지의 사람이 당신의 일기를 읽고 있다면 이문구 선생은 어떠한 생각이 드실까?
물론 일기문이라고 해서 모두 자신이라는 일인(一人) 독자만을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손쉽게 자신의 내면과 주관을 드러내면서도 그 사회적 책임은 가장 약한 글쓰기가 ‘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문인들은 자신의 사적인 삶과 생각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일기를 택하곤 한다. 장정일의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가 그렇고, 돌아가신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도 일기문의 형식을 띤 자아-드러내기이다. 아마도 김현 선생의 표현으로는 ‘내면풍경' 쯤이 되겠지만.
이문구 선생은 [관촌수필], [유자소전], [매월당 김시습] 등의 소설로 유명하신 분이다. 문단사에서 이문구 선생 만큼 축복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때, 문단사상 초유로 문인협회, 작가회의, 펜클럽 등 3단체가 합동장례식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문단사의 지위는 짐작할만하다. 그러한 분의 내면풍경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재미있다. 거인의 작은 일상사가 어찌 재미없겠는가. 일기문은 그가 돌아가시기까지 3년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투병기와 자식에 대한 사랑, 문단에 대한 염려와 시대에 대한 아픔과 분노가 곡진하게 그려져 있다.
한편 나는 일기문을 읽으며 분노한다. 그것은 이문구 선생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나라 문인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이다. 2000년에 받은 동인문학상 상금 5천만 원은 “도둑질하기 전에”는 결코 만져볼 수 없는 것이고(2000.12.31), 초등학교 교과서에 선생님의 작품이 실리고 받은 돈이 고작 12,360원에 불과하다는 것(2001.7.12), 또한 설문조사에서 순수 소설가로서의 소득’만 적으라는 주문에 3백만 원이라고 적은것. 그것도 '사실은 이것도 과장된 것이다. 발병 이전의 수입을 기준한 것이니까.”(2002.8.26) 라는 문장을 읽을 때다. 유명하다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이러한 정도이니 다른 소설가들이야 말해야 무엇 하겠는가. 그러니 울며 겨자먹기로 대우가 형편없는 소설쓰기보다는 잡문쓰기를 하고 이를 “팔자 소관이거나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2000.1.18)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소설가들의 힘겨운 삶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치밀 뿐이다. 그럼에도 위로를 받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접할 때다. 이문구 선생의 명복을 빈다.
“올해는 나의 갑년(甲年)이다.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년이다. 비로소 60객(客)에 접어든다. 1.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2. 갑년을 기념하는 어떤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3. 더욱 겸손하고 겸양할 것이다. 4. 스스로 기(氣)를 접을 것이다. 5. 예년과 똑같이 살 것이다.”(2001.1.1)